멈춘 듯 흐르고, 흐르는 듯 머무는 미야오 나린의 모멘텀.


<W Korea> 요즘 나린보다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을 성실하게 챙겨 보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데뷔 후 첫 시도인 드라마 OST ‘No Savior’로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고 있죠.
나린 멤버들과 모여 앉아 본방 사수를 하곤 해요. 첫 OST 작업이라 매 순간이 의미 있게 다가오거든요. 평소 스릴러 장르를 즐겨 보는 편이라 다행이었어요. 덕분에 극 전반의 흐름이나 특유의 가라앉은 공기를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거든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차가움’이 전해졌어요. 다크한 무드가 짙게 깔린 곡인데, 녹음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디테일이 있었어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보컬 질감을 시도해봤어요. 더 짙고 어두운 톤으로 누를 수도 있었는데, 지나치게 무겁기보다는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톤 위에 감정을 얹는 게 더 잘 어울린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미야오 활동에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목소리를 꺼내본 셈이니까요.
구원 없는 끝에 선 인물이 스스로 지옥을 택하는 순간. ‘No Savior’는 이 모습을 그리며 탄생한 곡이라 들었어요. 곡의 주제와 반대로, 나린에게는 지옥 같은 찰나에도 자신을 건져 올리는 ‘구원자(Savior)’ 같은 존재가 있나요?
특별하고 거창한 것보다 연속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 일종의 구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행위가 저를 제자리로 데려와주는 역할을 해요. 예를 들면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물을 마시고, 뭔가를 적는 행위들처럼요. 그런 습관이 저를 안심시키고 매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죠. 사실 팬들 덕분에 지옥 같은 순간이 쉽게 찾아오진 않지만요.


나린의 목소리에 어떤 서사가 깃들어 있다고 느낀 건, 평소 나린이 엄청난 다독가라는 소문 때문이었을까요? 최근 읽은 문장 중 유독 마음을 건드린 문장이 있었어요?
벌써 네 번째 읽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 속 구절인데요. 너무 좋아해서 페이지까지 외우고 있어요. 178쪽에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제게는 세상이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고, 태어날 때부터 그 사실을 아주 분명히 했어요. 저는 세상에 외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세상이 저의 요구를 거부하는 날이 올 거예요.”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주인공 ‘주디’의 태도가 기특하면서도 무척 공감됐어요.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문장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단단하고 낭만적인 문장인 것 같아요. 이런 담담한 말투의 문장을 특히 좋아해요.
“어떤 책들은 읽으면 채워지는 느낌인데, 오히려 고전은 비워지는 느낌이에요.” 작년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유독 나린에게 그러한 ‘비움’을 가르쳐준 고전은 무엇이었어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요. 가장 좋아하는 고전은 아니지만, 고전의 매력을 이해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에요. 이 책은 두 번 읽었는데요.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절반도 못 가 덮어버렸거든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다양한 고전을 더 읽어본 후에 다시 읽었더니 재밌게 읽히더라고요.
다시 펼쳤을 땐 무엇이 다르던가요?
처음엔 숨겨진 의미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너무 바빴는데, 다시 읽을 때는 ‘이 책도 결국 나를 비워주겠지’ 싶어 마음이 편했어요. 글을 있는 그대로 읽는 법을 가르쳐준 셈이죠. 주인공이 깨달음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상태에 가까워지잖아요. 읽고 나면 저도 같이 마음이 가라앉고, 제 안의 수많은 욕심이나 기준들을 다시 돌아보게 돼요.


“호기심이 유난히 많아서 그 호기심을 원동력 삼아 다양한 걸 시도해본다.” 작년 <더블유>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죠. 요즘 나린의 호기심 안테나가 새롭게 착지한 분야가 있어요?
클라이밍을 시작했어요! 컴백 전까지 체력을 기르고 싶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매주 배우러 가요. 보기엔 쉬워 보여도 미끄러워서 잡기 힘든 홀드가 많고, 아주 작게 튀어나온 부분이 막상 밟으면 안정적인 경우도 많아 신기하더라고요. 클라이밍을 시작한 뒤로 제 알고리즘이 온통 관련 영상으로 가득해졌을 정도예요. 정작 할 때는 재밌어서 힘든 줄 모르는데, 끝나고 나면 정말 힘들어요. 운동한 다음 날까지 배가 고프더라고요.
요즘엔 새로 나올 앨범이 나린의 가장 거대한 호기심이죠. 이번에 컴백을 준비하면서 전혀 다른 결의 ‘낯선 나’를 발견하기도 했을까요?
이번에는 예전처럼 직감이나 즉흥적인 선택에 의존하기보다, 더 집요하게 고민하는 과정에 집중했어요. 더, 더, 더 좋은 걸 찾으려고 애썼죠. 그렇게 몰아붙이면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즐겁고 안심이 되더라고요. 새 앨범의 모든 곡이 정말 다 좋아요. 곡들이 만들어진 과정도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활동하면서 그 분위기를 최대한 잘 전달하고 싶어요.
이전 앨범의 ‘Burning Up’을 비롯해서 여러 수록곡의 훅을 책임지잖아요. 나린의 목소리가 얹히면, 미야오 음악이 어딘가 더 ‘미야오답게’ 완성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만약 ‘미야오스럽다’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다고 상상해봐요. 거기에 나린은 어떤 해설을 달고 싶어요?
음… ‘혼란스럽고 매력적인 소녀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싶고, 다양한 음악에 도전하려는 모습이 곧 저희의 정체성이거든요. 다섯 명이 겉으론 무척 당당해 보여도, 사실 불안해하고 고민에 빠질 때도 많아요. 확신에 찬 모습보다는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는 상태가 제가 생각하는 ‘미야오스러움’인 것 같아요.



나린의 보컬적 매력이 가장 잘 표현됐다고 생각하는 곡이 있어요? 개인적으론 나린의 나른한 목소리로 열었던 ‘Toxic’을 자주 들어요.
데뷔곡인 ‘Meow’를 고르고 싶어요. 저는 밀도 있는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강렬한 힙합 베이스인 이 곡의 보컬이 가장 저답게 느껴지거든요. 힘 있고 단단한 질감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그런 목소리에는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남들은 눈치채지 못해도, 끝까지 지키려 하는 무대 위 ‘한 끗’ 같은 것도 있을까요?
‘진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예를 들어 겉으로는 기쁜 표정을 짓고 있어도 실제 마음이 그렇지 않다거나, 보이는 것과 진심에 차이가 있다면,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제 마음이 편치 않거든요. 완전히 일치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최대한 ‘진짜’를 표현하고 싶어요.
돌이켜, 가장 성장했다고 느낀 때는 언제예요?
여러 순간이 있었지만, 최근 지난 활동의 무대 영상들을 다시 보며 느낀 게 있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생각보다 밖으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데요. 보이는 건 진심 같지 않아서, 때로 변질도 되고, 희석되기도 하더라고요. 무대에서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배로 표현해야 비로소 온전히 전달된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감사하게도 주변에 따뜻한 분들이 많아서 저까지 스스로를 다정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요. 그래서 대체로 냉정하게 구는 편이고, 가끔은 저 자신에게 못되게 굴 때도 있고요.
가장 사랑하는 나만의 모습이 있을까요? 반대로 내게는 없어 탐나는 타인의 모습이 있다면요?
자유로운 상태의 저를 가장 사랑해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를 때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껴요. 자유라는 게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 기분 속에 있을 때의 제 모습이 가장 좋아요. 반대로 탐나는 건, 무엇에든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는 태도예요. 저는 사소하게는 음식부터 책, 사람, 감정, 일까지 한번 빠지면 아주 깊이 빠져들거든요. 가끔은 좀 더 가볍고 유연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지금 바깥은 초여름으로 향하고 있잖아요. 이 계절에 할 수 있는 일 중 나린이 가장 사랑하는 건 무엇인가요?
공포영화 보기요! 여름이 다가오면 무서운 영화가 유독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저는 사계절 중에 여름을 가장 좋아해서, 이맘때면 재밌는 공포영화도 찾아보고 산책도 더 자주 해요.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린의 플레이리스트 첫 번째 곡은 무엇일까요?
크리스탈 워터스의 ‘Gypsy Woman’요. 오늘 촬영하면서도 들은 곡인데, 특유의 쿨한 태도와 유니크한 분위기가 이번 화보와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밝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게 마음에 들어서, 돌아가는 길에도 다시 듣고 싶어요.
모든 화보 이미지는 iPhone 17 Pro로 촬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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