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에 펼쳐진 잔혹 동화, 24 FW 톰 브라운 컬렉션

명수진

THOM BROWNE 2024 F/W 컬렉션

톰 브라운은 런웨이가 그저 옷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톰 브라운은 ‘패션은 자기표현의 한 형태이며, 나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하고 싶다’고 소신을 밝혀왔다. 24 FW 시즌, 톰 브라운은 다시 한번 패션과 내러티브를 결합한 무대를 통해 뉴욕 패션위크의 피날레를 드라마틱하게 마무리했다. 그가 선택한 이야기는 에드가 앨렌 포(Edgar Allan Poe)가 1845년에 발표한 시 ‘까마귀(The Raven)’.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밤 우연히 까마귀와 만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해 보지만 까마귀는 ‘네버모어(Nevermore)’라는 말만 반복하고, 결국 남자는 절망과 슬픔을 마주하며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 캐리 쿤(Carrie Coon)의 카리스마 있는 시 낭송이 런웨이 가득 울려 퍼졌다.

런웨이는 에드가 앨렌 포 특유의 암울하고 고딕적인 스타일로 연출됐다. 하얀 눈이 쌓인 들판처럼 연출된 무대 중앙에는 거대한 블랙 푸퍼 코트를 입은 거대한 ‘나무 사람’이 서있었다. 푸퍼 코트 아래에는 블랙 슈트를 입은 4명의 어린이 모델들이 숨어 있다가 등장하며 쇼의 조력자로 활약했다(피날레에 선 모델이 거대한 코쿤 코트를 벗자 어린이 모델들이 이를 무대 뒤로 날랐다). 모델은 검은 베일로 만든 헤드기어를 장식하거나 머리를 땋아 제멋대로 자라난 뿔처럼 연출했다. 검은 까마귀는 플라워 패턴과 함께 주요 모티프로서 코트, 슈트, 가운 등에 새겨졌고, 톰 브라운의 아이코닉한 트위드재킷은 검은색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해체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아방가르드한 패턴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로그랭(Grosgrain) 디테일을 코트나 재킷의 라펠이나 소매 등에 장식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채 완성하지 않거나 혹은 낡아서 조직이 다 드러난 듯한 블랙 니트 카디건을 화이트 셔츠, 커머 밴드 펜슬스커트에 믹스 매치한 룩도 새로웠다. 마치 디자이너가 공연 사이사이 숨겨놓은 이스터에그처럼, 드라마틱한 컬렉션 사이사이 벨벳 슈트, 오버사이즈 코트, 패치워크 트위드재킷, 피 코트, 맥코트 등 매장에서 판매되어도 좋을 커머셜한 아이템이 존재감을 뽐냈다. 턱시도 코트 안에 매치한 럭비 셔츠처럼 스포츠 웨어 모티프도 상업적으로도 인기가 좋을만한 아이템. 닥스훈트 형태의 헥터 바게트 백(Hector Baguette Bag), 투명 갈로시(Galoshes) 슈즈, 까마귀와 장미 모티프 타이즈 등 액세서리 시리즈도 재미와 실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다.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영상
Courtesy of Thom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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