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위대한 유산

권은경

전자음악을 통해 진보적 사운드를 선보인 아방가르드의 기수였고, 아카데미 수상자였으며, 팝부터 클래식과 월드뮤직을 아우르는 작곡자이자 연주가였던 이름. 세상의 음악을 두루 경험한 후에는 음악의 근본인 소리 자체를 탐구했던 철학자.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난 후, 최근까지 그와 일을 해온 음악 애호가가 거장과의 시간을 떠올렸다.

2012년 여름, 뉴욕에서 <더블유>와 인터뷰 중 류이치 사카모토의 스튜디오에서. 사진가 안웅철은 당시 책에 게재된 모습과 또 다른 흑백 필름 사진을 꺼내 기꺼이 보내주었다.

올해는 유난히 벚꽃이 빨리 피었다. 언제 온지도 모르게 피어난 벚꽃들이 하나둘 떨어지던 4월의 첫 주말,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소속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가 71세를 끝으로 별세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망일은 거의 일주일 전인 3월 28일. 활짝 피어난 벚꽃을 배경으로 딸아이 사진을 찍어준 날이었다. 병세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한 순간이지만, 막상 공식 부고를 접하니 깊은 슬픔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나는 영화음악으로 먼저 류이치 사카모토를 만났다. 대학생이 된 이후 접한 다양한 영화 중 사카모토가 음악을 맡은 <마지막 황제>와 <마지막 사랑>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 사카모토가 개인 레이블인 güt를 통해 발매한 <Sweet Revenge>와 <Smoochy>, <1996> 등을 계기로 그의 음악 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2000년대부터는 일본을 자주 방문해 일본 한정으로 발매된 그의 앨범을 찾아다녔다. 정규앨범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위한 사운드트랙, 라이브 앨범과 광고 음악 등 사야 할 것은 끊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단 수많은 앨범을 모아두면 팝에서 보사노바, 아방가르드 등 드넓은 스펙트럼으로 채워져 언제나 신선했다.

나는 2001년부터 팝과 재즈, 월드뮤직에 이르는 해외 음반을 라이선스해 국내 발매하는 씨앤엘 뮤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년 전만 해도 사카모토의 작품은 주로 글로벌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기에 ‘성덕’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일을 통해 만나게 된 일본 음악 관계자 들에게 ‘사카모토의 팬’이라는 사실을 부지런히 알린 덕분일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는 2006년 자신의 레이블 Commmons를 설립했는데, 당시 해외 업무를 담당하던 지인이 2012년 12월 사카모토가 한국에서 공연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이번에 발표할 신작을 한국에 소개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온 것이다. 꿈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Bibo No Aozora’ 등 사카모토의 명곡 13개를 담은 <Three>의 한국 정식 발매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2년 겨울, 팬이 아닌 한국의 조력자로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사카모토를 맞이했다. 인터뷰와 라디오 출연, 팬 사인회 등을 수행하며 알게 된 그의 모습은 음악가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완성형’이었다. 키스 재럿, 팻 메시니, 도미닉 밀러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일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만날 때마다 친절함과 관대함을 잃지 않고, 함께 일하는 이의 안부를 챙기는 이는 보지 못했다. 다소 혼잡했던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의 사인회에서도 불편한 기색 한번 없이 웃음으로 팬들을 맞이하고, 라디오 방송 전 들른 카페에서 그를 알아본 팬에게 친절하게 사인과 함께 사진 촬영에 응해주던 사카모토. 공항에서 헤어지는 순간 “다시 만나요, 뉴욕에 오면 꼭 연락해요”라고 하던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2012년 12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내한 공연을 마친 후, 류이치 사카모토는 트리오로 공연한 첼리스트 자키스 모렐렌바움, 바이올리니스트 주디 강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모렐렌바움은 브라질 태생의 거장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과 오랜 세월 같이 활동한 거장으로, 부인인 파울라 모렐렌바움과 함께 사카모토의 브라질 음악 앨범 <CASA>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날 대화의 주제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보사노바를 비롯한 다양한 브라질 음악이었다. 사카모토는 조빔이 생전 이용하던 스튜디오에서 조빔이 연주하던 피아노로 자신도 연주해서 좋았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의 브라질 음악을 늘 사랑했다고 고백한 그는 당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앙카 지즈몬티(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이그베르투 지즈몬티의 딸)까지 언급하며 브라질의 여러 신예 뮤지션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에게 웃으며 ‘Too Much Music Lover’라고 말하던, 그 누구보다 폭넓게 음악을 사랑한 거장. <Three> 다음 앨범인 <Playing The Orchestra 2013> 역시 한국에서 내게 되면서, 지금까지 씨앤엘 뮤직은 영화 사운드트랙을 제외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을 라이선스 발매하는 일을 맡아왔다.

그가 인두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건 2014년 가을을 앞둔 때다. 도쿄예술극장에서 만난 그가 ‘올가을에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공연으로 서울에서 보자’라고 기약한 후 몇 개월이 흘러서였다. 수술 후 그는 1년쯤 지나 활동을 재개했지만, 공들여야 하는 정규 공연을 시도하긴 힘든 일이었다. 2018년, 피크닉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전을 위해 내한한 그는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절했고, 예술혼이 넘쳤다. 그 전시는 사카모토가 암 치료와 요양을 병행하며 어렵게 만들어낸 8년 만의 정규앨범 <Async>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전작들과는 조금 달리 ‘소리’ 자체를 추구했던 앨범 <Async>를 들으며, 문득 ‘소리에 깊이 천착하는 독일의 레이블인 ECM과 류이치 사카모토가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카모토에게 내가 쓴 ECM에 대한 책을 선물하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역시나 오랫동안 ECM의 음악을 좋아해온 그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9년 뮌헨에 있는 ECM오피스에서 레이블 설립자 만프레트 아이허를 만나 말을 건네자 그 역시 ‘뉴욕에서 사카모토를 만난다면 재미있겠다’고 했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되었을 프로젝트. 그런데 팬데믹이 닥치고, 사카모토가 다시 직장암으로 투병하게 되면서 류이치 사카모토와 ECM의 만남이 불발된 점은 두고 두고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 만남이 성사되었다면,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과연 어떤 소리로 채워진 명작을 접할 수 있었을까?

2020년 12월 12일 비대면 스트리밍 형식으로 진행한 <Playing the Piano 12122020>은 결국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예감이 이상해진 건 1년여 전부터다. 나와 손발을 맞추는 Commmons 레이블의 디렉터가 사카모토의 앨범 발매 계획이 연달아 잡혀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사카모토의 새 앨범과 사운드트랙, 리메이크 앨범, 그리고 베스트 앨범까지 여러 작품이 순차적으로 나올 거라는 일정을 공유하고 한 달 후인 작년 6월, 사카모토는 암 4기에 다다랐다. 치료하지 않으면 ‘6개월 시한부’라는 소식도 들렸다. 작년 가을,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찾은 도쿄에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았다. 첫 번째 암 투병 중 촬영한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 더 남기고 싶다’라고 말하던 류이치 사카모토. 생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음을 감지한 그는 어쩌면 미완의 음악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서두른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그의 마지막 영화 음악이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의 사운드트랙을 비롯해 몇몇 앨범 발매 작업을 진행 중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에겐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줄 음악이 있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류진현(씨앤엘 뮤직 A&R 매니저, 저자)
포토그래퍼
안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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