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신념을 지닌 브랜드, 르쥬(LE JE)와의 인터뷰

김현지

사랑하는 일을 할 것, 변화 속에서도 방향성을 잃지 않을 것. 명확한 신념을 지닌 르쥬(LE JE)에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단단한 내면이 느껴지는 디자이너 제양모, 강주형을 만나 2023 S/S 컬렉션 ‘Space Le Je‘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르쥬(Le Je)의 디자이너, 제양모와 강주형.

UNTITLED N.1 드레스.

<W Korea> 더블유와는 두 번째 인터뷰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달라졌나?

르쥬(Le Je) 여성복 컬렉션을 시작한 것, 그리고 팬데믹 상황에서 아틀리에를 한국으로 옮긴 일.

더욱 명확해진 것도 있을 듯하다.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점차 뚜렷해졌다.

팬데믹 이전엔 아틀리에와 스튜디오가 파리에 있었다.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파리 현지 공방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공방과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2018년,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개념적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밝혔는데, 지금도 그러한가?

우리는 르쥬를 통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개념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매 시즌 컬렉션을 진행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2023 S/S 시즌의 테마 ‘Space Le Je‘에 대해 듣고 싶다. 감상적으로 이야기해도 좋고, 핵심 단어를 말해도 좋다.

1960년대, 우주 시대, 옵아트, 미니스커트, 시프트 드레스, 팬츠 슈트, 크로셰, 에디 세즈윅, 트위기…. 이번 시즌 주요 키워드는 ‘우주 시대(Space Age)’로 ‘Space’의 중의적 의미, 우주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 시대에 대한 오마주이자 몸이라는 입체적인 공간을 옷의 영역으로 가져와 평면화하는 르쥬만의 공간적 개념이다.

컬렉션의 아트피스 중 ‘Untitled’ 드레스가 인상적이다.

고맙다. 투명한 아크릴 위에 위치가 철저하게 계산된 수백 개의 실이 오가며 탄생한 입체적인 아트피스다. 러시아 출신의 구성주의 조각가 ‘나움 가보(Naum Gabo)’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선으로 공간을 짓는 그의 미학을 투영했다. 감히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라 말할 수 있는 드레스를 만들고 싶었다.

예술 작품처럼 각 피스마다 이름과 넘버가 있다. Slash 미니드레스, L 블레이저 드레스, 세컨드 스킨 N.5 드레스처럼 말이다.

우리만의 아카이빙 방식이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실루엣이나 소재에 이름을 붙여 특징을 명료화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컬렉션을 펼치려는 의지도 담긴 거다.

명명이 쉽다는 것은 그만큼 명확하다는 얘기겠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브랜드 시그너처를 확립했고. 

감사하게도 Slash, L, 그리고 우리의 지속가능성 제품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시그너처가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시그너처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그리는 이미 지 자체가 브랜드의 시그너처가 될 수 있도록 늘 고민한다.

수공예 요소에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수공예 특유의 감성을 좋아한다. 전통에 대한 관심도 꾸준하고. 한국 전통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알리는 작업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당초문을 형상화한 콘초 스터드, 불화의 보살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샹들리에 드레스, 전통 매듭 방식으로 엮어 만든 브리오슈 패딩이 그 일환이다. 신라시대 금속공예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윤여동 작가, 전통 자수 장인, 등공예 장인 등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사용하는 소재의 폭이 점차 넓어지는 것 같다.

우리에게 소재는 아주 중요한 영감 중 하나다. 그렇기에 편견 없이 소재를 바라보려고 한다. 국내부터 해외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소재를 수집하며, 이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재료는 어디서 얻는지, 그리고 어떤 공정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지 궁금하다.

저탄소발자국의 지역 구축망을 통해 플라스틱 물병과 캔 뚜껑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재료에 대한 관심만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도 고민한다. 엠브로이더리(Embroidery), 티사주(Tissage), 크로셰(Crochet) 같은 가공 방식을 연구하며 소재의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지속가능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3 Zeros’, 즉 제로 웨이스트, 제로 케미컬 프로세스, 제로 스테레오타입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실천한다. 지속가능성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앞세우거나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바란다.

지속가능성, 수공예 요소, 한국적 요소를 중시하는 브랜드 특성상 컬렉션 준비 과정이 특별할 것 같다. 한 시즌을 준비하기 앞서 치르는 일종의 루틴 같은게 있나? 

패션의 경계를 벗어나 오히려 일상 속 단순함을 즐긴다. 몇 시간씩 이곳저곳을 걷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이나 상점을 방문해 때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평소에 무심결에 지나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본 컬렉션 외 ‘패러그래프(Paragraph)’ 컬렉션을 운영 중이다.

여러 단락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듯, 패러그래프 컬렉션 역시 하나하나 모여 르쥬를 완성한다는 의미다. 본 컬렉션과 다르게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우리의 흥미와 생각을 담아낸다. 보다 개념적이고 예술적인 컬렉션 라인이다.

지금까지 총 네 번의 패러그래프 컬렉션을 진행했다. 모두 아이템 단위 구성이다.

한 가지 아이템으로 진행되기에 아이템이 곧 주제가 된다. 직관적이고 명료한 표현이 집중도를 높일 것이라 판단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바뀌지 않을 굳건한 신념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랑하는 일을 할 것.

블레이저 드레스는 르쥬 제품.

“여러 단락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듯, 우리의 컬렉션 역시 아카이빙되어 르쥬를 완성한다. 우리가 그리는 이미지 자체가 브랜드의 시그너처가 될 수 있도록 늘 고민하고 노력한다.” – 르쥬 디자이너 제양모, 강주형

미니드레스는 르쥬 제품

세컨드 스킨 드레스는 르쥬 제품.

패션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래쓰
모델
엘리스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이숙경
어시스턴트
이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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