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드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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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싱어송라이터 드비타는 2020년 자신의 데뷔 EP였던 <CRÈME>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할 수 없어(It’s Inevitable).” 올해 새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 만난 그녀는 자신과 음악의 만남을 운명이라 했다. 그 운명을 응시하고, 피하지 않고, 맞서 만들어낸 새로운 음악이 곧 세상에 울려 퍼질 참이다. 

핑크색 원피스는 프라다 제품.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스트레이디이자 194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불린 에바 페론을 에워싸곤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성녀 혹은 위선자’. 2020년 4월 데뷔 EP <CRÈME>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R&B 싱어송라이터 드비타는 아르헨티나 팜파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한때 삼류 배우로 극단을 전전하고, 이후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을 만나 영부인 자리까지 오르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에바 페론의 별칭 ‘에비타’에서 착안해 자신의 이름 ‘드비타’를 지었다. 에바 페론을 관통하는 ‘양극성’이라는 요소는 고스란히 드비타의 정체성이 되어 그녀가 펼치는 음악의 재료로 쓰였다. R&B와 힙합, 재즈, 신스팝 등을 교묘하게 오가며 서로 다른 음악 장르를 낯설게 섞는 시도, 뮤지션 자신이 가진 어떠한 양극성을 가사에 녹여내는 방식. 데뷔 EP로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최우수 R&B/소울’ 후보에 이름을 올린 드비타에 대한 평가도 그녀가 펼치는 음악의 ‘새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신스팝과 시티팝이 뒤섞인 사운드 위에서 무심하게 읊조리다, 내뱉다, 외치는 그의 노래는 듣는 이를 몰입하고, 춤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사운드인지, 그의 목소리인지, 에너지인지는 알 길이 없다.” 심사위원은 이어 선정의 변을 썼다. “다만 마지막에 나지막하게 부르는 가사 ‘It’s Inevitable’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존재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미국 시카고의 북서부 교외 지역. 이곳은 드비타가 10대 시절을 보낸 곳이다. 분주한 도시와 달리 한가로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드비타는 음악가였던 부모님, 훗날 클라리넷 연주자가 될 오빠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며 언제나 음악에 둘러싸인 시간을 보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자주 책을 읽었고, 또 시를 썼다. 어느 날엔 시에 멜로디를 붙여 음악을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그걸 들은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이후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혼자 만든 음악을 업로드했고, 음악 신에 알음알음 자신의 이름을 알리던 드비타는 2018년 AOMG의 눈에 띄어 AOMG 소속 래퍼 어글리덕과 함께 싱글 ‘Sugar’를 발매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데뷔 EP <CRÈME>의 발매다. 온통 음악으로 둘러싸인 유년기, AOMG와의 만남,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녹인 데뷔 앨범의 산뜻한 성공. 이 모든 과정을 드비타는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뮤지션이 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할 것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드비타는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데뷔 앨범을 발매하고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그 운명에 몸을 실은 채 새롭게 쓴 곡을 모아 새 앨범의 발매 준비를 하고 있다.

베일 장식 모자는 디올 제품.

<W Korea> 올해 새 앨범이 나온다 들었다. 데뷔 EP <CRÈME>이 평단에서 워낙 좋은 반응을 얻은 만큼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부담도 느꼈을 것 같다.

드비타 부담 없었다.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으니까(웃음). 내가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나에 대한 확신이 강하달까. 왜 카니예 웨스트도 오해하기 딱 좋은 인물이지 않나. 자존자만한 인간이라고. 자신을 이 시대의 셰익스피어라고 칭하니까.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확신, 딱 그 느낌을 나도 안다.

카니예는 심지어 ‘I Am A God’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맞다. 그런데 나도 나 자신을 신이라고 믿으려고 한다. 이건 아티스트에게 정말 필요한 마인드 세팅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우러러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앨범을 만들 때만큼은 소심해지고 싶지 않다. ‘부담’이란 말도 싫다. 음악과 부담은 섞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담 가지며 만든 음악을 과연 좋은 음악이라 부를 수 있나?

데뷔 EP 발매 이후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셈인데, 그간 어떻게 보냈나?

심적 변화가 컸던 2년이었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고뇌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평상시를 ‘0’이라 하고 업됐을 때를 ‘10’ 이라 하면, 0일 때 감당하지 못할 일을 10일 때의 내가 확 벌여놓은 적이 많았다. 그러다 다시 0으로 돌아오면 그간 내가 벌인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틈이 나면 음악 작업도 하고.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그사이 틈틈이 쓴 노래가 이번 앨범에도 몇 곡 수록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하니 <CRÈME>과는 또 다른 결의 앨범이 나올 것만 같은데.

글쎄.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는 왠지 말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고, 최대한 고요했으면 좋겠다. 나왔을 때의 무언가를 위해서.

그럼 작업 방식은 어땠나? 이전 앨범의 경우 직접 쓴 시를 음악으로 발전시켜 작업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보통 그런 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편인 것 같다. 시와 음악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떠오른다. 그 둘이 동시에 완벽하게 매칭돼서 나올 때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다. 샤워하다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순간 번뜩 떠오르는 필로 밀고 나가는 거지.

누군가가 쓴 시를 보고 영감을 얻는 방식이 아닌, 직접 쓴 시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이 새롭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왕따를 당했다. 친구가 없으니까 늘 책을 읽고 시를 썼다. 나에겐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이었달까. 어느 순간부터는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완성한 음악을 주변에 들려주니 반응이 좋았다. 별생각 없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는데 반응이 엄청, 엄청 좋았고.

그 시절 자주 읽은 시집이 있나?

찰스 부코스키를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팬레터까지 썼다. 당신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런데 다 쓰고 부치려고 보니까 돌아가셨더라고(웃음). 그렇게 부코스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그의 시가 좋은 이유가 있었나?

부코스키의 시를 만나기 전에 읽은 시들은 뭔가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했다. 그런데 부코스키는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더러움과 남루함, 비참함을 보여주는 시를 썼다. 그래서 좋았고, 그의 시를 보며 크게 공감한 어떤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레깅스 부츠는 본봄 제품, 터틀넥 톱은 에디터 소장품.

시에 있어선 부코스키의 팬이었다면, 음악에 있어선 누구의 팬이었나?

블러와 고릴라즈의 프런트맨 데이먼 알반. 다른 것 다 떠나서 음악이 너무 좋다. 물론 잘생긴 것도 있지만(웃음). 왜 항상 오아시스 대 블러의 싸움이 있지 않았나.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블러의 편이었다. 예를 들어 두 밴드에게 상자 하나를 준다고 상상해보면, 오아시스는 그걸 가지고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운 상자를 만들 거다. 하지만 블러는 3D로 된, 어딘가 우주로 가는 상자를 만들 거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만드는 이들이니까.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몰두한 이유가 있었나?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이 음악가 집안이거든. 아버지는 가수셨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치셨다. 삼촌은 밴드를 하고 계시고 사촌 동생은 래퍼다. 오빠는 서울대에 재학하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고. 돌이켜보면 음악이어야만 했던 것 같다.

늘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겠다.

가장 오래된 가족 전통이 크리스마스에 장기자랑으로 한 사람씩 노래 부르는 거였으니까, 말 다했지.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는 게 너무 당연했다. 가족이 다 같이 한 방에서 잠을 잤는데 침대맡에서 늘 엄마, 아빠가 화음을 넣어 노래를 불러주시곤 했던 기억도 난다.

고등학생 시절 혼자 만든 음악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다 AOMG의 눈에 띄어 2018년 어글리덕과 싱글 ‘Sugar’를 발매하고 이후 2020년 AOMG와 정식 계약했다. 많은 레이블 중 AOMG와 손을 잡은 이유가 있었나?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일이 너무 영화 같아서 일기에도 적어놨다. 어느 날 머리를 말리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2시쯤 갑자기 DJ 펌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아침 7시 비행기로 필라델피아로 날아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짐을 쌌다. 아침에 부랴부랴 엄마를 깨워 공항에 좀 데려다달라고 하고 그길로 바로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한 호텔 로비에서 펌킨을 만났는데 그가 날 보며 딱 한마디 했다. ‘내가 키워줄게.’ 이 말 듣고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웃음)

하하. ‘키워줄게’ 한마디로 바로 마음을 정했나?

그렇다. 그 말이 뇌리에 강렬히 박혔다. 내 포텐셜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좋은 뮤지션으로 성장시켜주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를 나만큼 믿어주는 사람이 굉장히 드문데, 그 첫 번째 사람이 펌킨이었다.

핑크색 원피스는 프라다, 통굽 부츠는 카르넷 아카이브 제품.

그렇게 2020년 4월 AOMG와 전속 계약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CRÈME>을 발매했다. 당시 ‘새로운 스타일의 R&B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했다’라는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린 기억이 있다. 당신으로서도 첫 앨범을 통해 정식으로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받아봤을 텐데, 그때 들은 피드백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알고 있던 사실을 통보받은 기분?(웃음) 어휴, 재수 없어. 나중에 인터뷰 나오면 회사에서 한 소리 들을 것 같다.

하하. 당시 AOMG가 당신의 영입 소식을 알리고자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프로듀서 그레이가 한 말도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그냥 좀 뭔가 타고난, 이걸 해야만 하는 친구”라는 말. 당신도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인가?

얘기가 좀 다를 순 있는데,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운명을 알고 태어나는 것 같은데, 내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나의 운명을 알고 태어났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 늘 감사한다. 그리고 부모님도 나를 굉장히 많이 서포트해주셨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아셨으니까. 내가 나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건 있는 듯하다.

그럼 당신처럼 운명을 알고 태어난 것만 같은, 당신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소설이나 영화, 역사 속 인물이 있나?

최근 미국 건국의 주역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뮤지컬 <해밀턴>을 봤다. 해밀턴은 세상을 바꾸려는 야망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많은 것을 망쳐버린다. 그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한 가지만 좇다 보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정말 좋았던 부분은, 해밀턴에겐 하나의 믿음이 있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거다.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그 지점이. 그리고 그런 모습이 어찌 보면 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2000년대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훗날 당신 이름이 어떻게 불리길 바라나?

음악의 흐름을 바꾸고 대중의 귀를 열어준 아티스트. 나는 서태지도, 아이유도, 지드래곤도 그런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아티스트가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나도 훗날 그렇게 불리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뤄가고 있는 것 같나?

잘 모르겠다, 사실은. 아직은 시작이니까. 시작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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