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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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했던 사건 중 하나. 1981년 MTV의 개국이다.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진화시킨 이때를 기점으로 세상에 수많은 뮤직비디오가 비 오듯 쏟아졌다. 음악 좀 ‘본다’는 음악평론가, 영상감독, 아트 디렉터 등이 자신이 애정하는 뮤직비디오를 골랐다. 이들이 마치 ‘이상형 월드컵’ 하듯 고르고 고른 결과, 가까스로 총 20편이 모였다. 20개의 추천사를 읽자니 눈앞에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는 듯하다. 

1980s

Heart Of Glass by 블론디 (1978)

블론디의 ‘Rapture’ 뮤직비디오는 기록에 남았다. MTV가 1981년 개국일에 고른 첫 랩 싱글이 바로 ‘Rapture’였다. 엄밀하게 보자면 랩이 포함된 곡에 가깝지만, 랩의 대중화에 관한 ‘Rapture’의 업적과 보컬 데비 해리의 도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Rapture’ 이전에 1978년 작 ‘Heart Of Glass’가 있었다. 뉴욕 디스코 신의 성지라 불린 클럽 ‘스튜디오 54’의 로고와 함께 뮤직비디오가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나 데비 해리가 있다. ‘Rapture’의 데비 해리는 역동적이다. ‘Heart Of Glass’의 데비 해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트랙이기도 했던 비지스의 ‘Staying Alive’가 1977년을 박살 낸 바로 그 디스코라면 미친 듯이 춤춰도 모자랄 판인데, 우아하게 걷거나 손에 든 패브릭을 흔들 뿐이다. 그리고 노래하는 데비 해리의 얼굴이 나온다. 계속 나온다. 그거로 충분하다. 뉴욕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우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여자, 금발의 데비 해리다.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Beat It by 마이클 잭슨 (1982)

980년대 미국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내용을 그린다. 항간에는 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15만 달러가 들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마이클 잭슨의 사비였다고 한다. 이런 여담은 뒤로하고, ‘Beat It’은 한마디로 뮤직비디오의 교과서라 보면 된다. 3~4분이라는 제한된 러닝타임에서 어느 타이밍에 보컬, 댄스, 드라마타이즈(영상 내용을 드라마화해 담는 형식)가 등장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요즘 나온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 ‘Beat It’이 어떤 기본값이자 디폴트로 작용하는구나’를 더 잘 알게 된다. 특히 댄스 장르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렇다. 그래서 댄스 장르가 주를 이루는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작업해야 할 때면 ‘Beat It’ 을 유독 자주 꺼내 보게 된다. – 서동혁(플립이블 감독, 아이유 ‘라일락’, 김하온 ‘노아’ 등 연출)

Rockit by 허비 행콕 (1983)

‘버추얼 하우스’에서 로봇인 듯 마네킹인 듯 알 수 없는 괴상한 물체가 움직이며 춤을 추는 모습이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그냥 재밌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1980년대 서구 문화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MTV 시대 최고의 히트 비디오 중 하나. 1984년 MTV비디오 뮤직 어워드 다섯 개 부문 수상. ‘Rockit’은 재즈 키보디스트 허비 행콕이 내놓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식의 일렉트로 곡으로, 그보다 더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로 더 유명했다. 1984년 제2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되었는데, 이 미래적 사운드와 비주얼, 이제는 파핀으로 더 잘 알려진 ‘로봇춤’은 한국의 수많은 춤꾼과 미래의 힙합퍼들에게 충격이자 영감으로 다가왔다. – 김영대(음악평론가)

Take on Me by 아하 (1985)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감독 스티브 바론의 작품이다. 또 다른 무대 연출에 지나지 않았던 이전까지의 뮤직비디오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출을 시도한 ‘Take on Me’ 뮤직비디오는 어린 시절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신스팝의 빠르고 경쾌한 리듬은 디자이너 마이클 패터슨의 거친 연필로 그려진 로토스코핑 기법(실사 이미지의 외형선을 한 프레임씩 애니메이션으로 베껴 만든 후 이를 원본 이미지와 합성시키는 기법)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화면 위를 달려 나갔다. 특히 뮤직비디오 중반부 남녀 주인공을 두고 카메라가 원형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문다. – 조범진(VM프로젝트 감독, 태민 ‘이데아’, 화사 ‘마리아’ 등 연출)

Musique Non-Stop by 크라프트베르크 (1986)

크라프트베르크가 1986년 싱글로 발매한 후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곡이다. ‘보잉’, ‘붐’, ‘찹’과 같은 목소리를 샘플링한 후 리듬으로 사용한 이 곡은 보컬 샘플을 다시 3D 그래픽으로 재현한 인간(크라프트베르크)의 얼굴을 통해 들려준다. 미국 에픽게임즈의 3차원 게임 엔진 ‘언리얼 엔진’이 5까지 공개된 요즘 시대에 비디오를 보며 낮은 해상도와 프레임에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PC가 보급되기도 전 발매된 뮤직비디오라는 걸 생각하면 다른 의미에서 헛웃음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영상의 비디오는 뉴욕공과대학에서 개발한 최첨단 페이셜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만들어졌다. – 하박국(영기획 대표)

Straight Outta Compton by N.W.A (1988) 

‘콤프턴에서는 어떤 일이든 당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3명의 래퍼가 4분 동안 쏟아내는 600개 이상의 단어를 압축하면 그렇다. 영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뜻밖에 영국의 백인 연출가인 루퍼트 웨인라이트는 MC 해머의 비디오들로 유명한데, LA 외곽에서 툭 튀어나온 여섯 젊은이들의 데뷔작을 위해 가장 거친 연출법을 택했다. 황량한 도시 변두리의 풍경을 날것으로 보여주되 이른바 ‘떼 샷’, 과장된 패닝, 클로즈업, 간헐적 1인칭 시점으로 현실적 생동감을 자아냈다. 버스(Verse)가 바뀔 때마다 장면과 래퍼가 전환되는 쿨한 느낌은 멀리 케이팝에까지 영향 줬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임희윤(<동아일보> 기자)

1990s

Vogue by 마돈나 (1990)

‘Strike a pose’라는 말이 뭘 뜻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우아한 블랙 앤 화이트 화면 속에 홀로 빛나던 클래식한 마돈나의 관능미는 그를 떠받드는 남성 댄서들처럼 나를 복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사람이 몇 년 후 영화 <세븐>을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할 데이비드 핀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Vogue’가 나온 그해 1990년, 마돈나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뮤직비디오인 ‘Justify My Love’를 내놓았고, 이 두 작품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에서 여성의 표현이라는 모든 기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힙합과 R&B계의 ‘쎈언니’들이 내 미학을 장악하기 전까지, 현대적인 섹시함의 기준은 그 시절 마돈나였다. – 김영대(음악평론가)

Drop by 페르사이드 (1995)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만든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이 비디오는 특히나 그의 재기발랄함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페르사이드 멤버들의 모습은 마치 리와인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거꾸로 촬영된 필름 안에서 더욱 초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2분 55초 무렵 영상 속 멤버들이 휘두른 망치로 인해 깨진 유리 조각들(카메라 렌즈)은 다시 합쳐져 아티스트 마크 곤잘레스의 그림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노래를 통째로 거꾸로 외워야 했던 뮤지션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건 덤. – 조범진(VM프로젝트 감독)

Karma Police by 라디오헤드 (1997)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자동차 안, 벌레들의 작은 울음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뒷좌석을 비추던 카메라는 천천히 차량의 보닛 앞쪽을 바라본다. 드럼 소리에 맞추어 점등되는 헤드라이트 불빛은 길게 난 도로를 비추며 뻗어간다. 이따금씩 비치는 보컬 톰 요크의 메마르고 핏기 없는 얼굴과 도로 위를 하염없이 달리는 남자. 마치 서스펜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뮤직비디오는 끝까지 그 심플함과 서늘함을 유지하며 끝으로 나아간다. – 조범진(VM프로젝트 감독)

Come On My Selector by 스퀘어푸셔 (1997)

명작가에는 두 부류가 있다. ‘이렇게 잘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작가. ‘이렇게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 크리스 커닝엄은 후자다. 세기말에 나타난, 괴짜들을 위한 희망. 뮤직비디오계의 워쇼스키 형제(현재는 자매)이자 H.R. 기거. 에이펙스 트윈의 ‘Windowlicker’와 ‘Come to Daddy’, 포티셰드의 ‘Only You’, 뷔욕의 ‘All is Full of Love’…. 이 괴작 전시장이 그대로 그의 필모그래피다. 본 작품은 일본 오사카의 정신이상 아동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비트를 초고속 블렌더로 돌려낸 듯한 드릴 앤 베이스 장르의 난해한 질주감을 유쾌한 미스터리 액션 탈주극으로 바꿨다. 미분된 비트에 타격감을 더하고, 베이스의 상하행 선율에 오르내리는 이미지를 콜라주했다. – 임희윤(<동아일보> 기자)

Da Rockwilder by 메소드맨 앤 레드맨 (1999) 

1990년대 말 유행하던 세기말적 세트장이 우당탕 부서진다. 맥락 없는 흰 배경을 이용한 중간광고 형태의 영상, 손만 간신히 보이는 관객과 불쑥불쑥 등장하는 댄서, 2분 30초가 채 안 되는 1990년대 기준 무척 짧은 재생 시간까지 그야말로 혼돈의 1999년답다. 질서는 주인공들의 몫이다. 두 오랜 친구이자 동료, 메소드맨과 레드맨은 줄 서서 춤을 춘다. 저걸 춤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간 신나게 논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두 래퍼가 합작한 음반 <Blackout!>의 발매부터 대형 사건이었는데, 랩뿐만 아니라 몸놀림도 이렇게 잘 맞는다. 한술 더 떠 ‘Da Rock-wilder’의 프로듀서는 레드맨의 오랜 친구 록와일더(Rockwilder)다. 아, 이것은 진짜 우정이다. 우정의 비트로 시작해 우정의 뮤직비디오로 완성된 노래다. 20대 주말 밤을 함께 보낸 친구와 취하기만 하면 ‘Da Rockwilder’의 춤을 따라 하는 것으로 우정을 확인했다. 혼란스러울 때는 친구의 손을 잡을 수밖에.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Let Forever Be by 케미컬 브라더스 (1999) 

미셸 공드리는 1980년대 파리의 미술 학교에 재학하던 당시 록밴드 우이우이를 결성해 드러머로 활동했다. 팀이 해체한 1992년까지 우이우이는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공드리는 직접 자신이 몸담은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1998년 조성모의 ‘To Heaven’을 보며 어렴풋이 영화감독을 꿈꿨던 나는 대학교 1학년을 통과하던 시절 공드리가 연출한 ‘Let Forever Be’를 처음 봤다. 그때 느낀 충격이란. 여자 주인공이 시달리는 악몽을 이미지화하는 이 비디오는 처음엔 그저 그로테스크함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Let Forever Be’가 얼마나 케미컬 브라더스의 사이키델리아를 영상으로서 잘 표현했는지, 비디오라는 광학적 매체에 예술을 어떻게 절묘하게 결합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연출자가 된 이후의 일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음악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대충 검색 몇 번만 해도 드러난다. 공드리가 ‘Let Forever Be’에서 시도한 연출을 발터 벤야민의 철학과 비교하는 논문도 더러 있다. – 서동혁(플립이블 감독)

2000s

Cochise by 오디오슬레이브 (2002) 

어둠 속, 높은 타워 위 멤버들을 기다리는 보컬 크리스 코넬의 실루엣과 큰 픽업 트럭에 실려 도착하는 나머지 밴드 구성원들, 시작과 동시에 터트려진, 연주 내내 이어진 거대하고도 긴 불꽃놀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마침내 비디오가 끝나고 불꽃놀이가 남긴 연기 속에서 서로 포옹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새로운 밴드가 탄생했음을 알린다(사운드가운이 해체한 후 크리스 코넬은 R.A.T.M의 래퍼 잭 드 라 로차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과 오디오슬레이브를 결성했다). – 조범진(VM프로젝트 감독)

Kids by MGMT (2009)

막 걸음마를 뗀 듯 보이는 한 아기의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엄마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코믹스러운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 마주하는 세상이 낯설고, 그래서 모든 것이 괴물처럼 보여 두렵기만 한, 어린 아기의 시선을 뮤직비디오로 표현했다. 마침 노래 제목도 ‘Kids’. 한 인터뷰에서 보컬 벤 골드바서가 말하길, 대학 신입생 시절 새벽에 술을 들이켜며 우울감에 젖은 채 쓴 곡이라 한다. 아기에게 과거와 현재 나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뮤직비디오다. – 최소영(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

Born Free by M.I.A. (2010)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를 본 적 있는가. 언뜻 정보 없이 보면 현실감 넘치는 전쟁 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현실이고 사람들은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야만과 폭력의 시대, 다음 세대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M.I.A.의 ‘Born Free’ 뮤직비디오는 문명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아직도 그곳에 야만과 폭력이 만연함을 고발한다. 굳이 <사마에게>의 배경지인 알레포 지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반복되었고 지금도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늘상 일어나는 폭력이다. ‘폭력’을 통해 인간 역사의 야만성을 드러내온 뮤직비디오 감독 로메인 가브라스와 스리랑카 출신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뱉는 데 거리낌 없는 M.I.A.는 언제 우리 곁에 닥칠지 모르는 폭력을 똑바로 마주하라 이야기한다. – 하박국(영기획 대표)

Power by 카니예 웨스트 (2010) 

늘 새로운 예술적 시도로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카니예 웨스트.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마르코 브람비아가 연출을 맡았는데, 브람비아의 전매특허로 통하는 콜라주 기법을 적용해 ‘Power’는 단순한 상업용 뮤직비디오가 아닌 미디어아트에 가깝게 탄생했다. 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면 과장일까. 노래가 고조되는 구간, 영상에서 현란한 콜라주 아트가 흩뿌려지며 카니예를 어느 신화의 완벽한 주인공, 즉 신처럼 보이게 한 연출이 특히 돋보인다. – 최소영(젠틀몬스터 아트 디렉터)

Make Some Noise by 비스티 보이즈 (2011)

2011년, 비스티 보이즈가 돌아왔다. 2012년, 멤버 MCA(애덤 요크)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돌아오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됐다. 주변에 2020년 작 비스티 보이즈의 다큐멘터리 <비스티 보이즈 스토리>를 권한다. “영원히 똑같은 사람으로 남느니 위선자가 되겠다.” 극 중 비스티 보이즈의 애드-록(애덤 호로비츠)은 이렇게 말한다. 남은 두 멤버는 그렇게 지금도 성장하고 있었다. 비스티 보이즈의 역사가 그랬다. 망하기도 했고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침을 거듭하는 중에도 유머러스하지 않은 적은 드물었다. ‘Make Some Noise’ 뮤직비디오의 주연은 세 멤버가 아니다. 그들의 히트곡 ‘Fight For Your Right’ 뮤직비디오 출연 당시와 똑같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의 그들처럼 마구 깨고 다닌다. 등장인물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일라이저 우드, 세스 로건, 대니 맥브라이드, 라시다 존스, 스티브 부세미, 클로이 세비니, 커스틴 던스트, 윌 페럴, 올랜도 블룸, 잭 블랙 등등. 이 프로젝트를 이끈 MCA는 이미 암 투병 중이었지만, 감동 서사보다 그다운 모습의 진격을 택했다. 30분 분량의 익스텐디드 버전까지, 이 뮤직비디오에 얽힌 모든 이야기가 힙합이 말하는 ‘리스펙트’의 이상적 방식이 아닐까.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Bangin’ by 덴젤 힘셀프 (2017)

언젠가 박재범과 인터뷰하다 말고 그에게 이 뮤직비디오를 보여준 적이 있다. 중간중간 ‘우’ 하는 감탄사를 뱉으며 화면에 집중하던 박재범이 말했다. “아주 세고 특이하네요?” 런던 외곽 출신의 덴젤 힘셀프는 래퍼이자 프로듀서이고, 필름 스쿨 출신으로 자신의 모든 영상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감독이다. 그의 강렬한 ‘특이함’은 하드코어한 사운드와 에너지, 그 에너지를 자유롭게 분출하는 방식과 길거리의 삶을 담아낸 듯 거친 영상 연출 등에 기인한다. 그는 이 비디오에서 내재된 에너지와 본능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친구들과 서로 뒤엉키고, 바닥을 뒹굴거나 나무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시각적, 청각적 놀라움을 주기도 하는 그 모든 행위에서 허세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음울함 속에서도 생동하는 에너지가 전달될 뿐이다. 정말이지, 2017년 8월에 업로드된 이 비디오의 조회수가 아직도 2만9천 회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내가 다 서럽다. 덴젤 힘셀프는 분명 ‘센세이션’이라는 하나의 교본이 될 만하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This is America by 차일디시 감비노 (2018)

혹시… 본작의 2분 14초 무렵, 2층에서 투신하는 자를 발견했는지. 못 봤다? 제대로 본 거다. 이것이 미국이다. 이것이 엔터테인먼트다. 이것이 본작의 본질이다.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현란한 춤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홀려 정작 우리가 실려 떠밀려가는 거대한 시대의 강물을 감지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언어나 맥락을 몰라도 신명 나며 소름 돋는 이 괴물은 파티와 돈 자랑을 패러디하고 인종차별과 총기 문제를 고발한다. 밝고 흥겨운 소울, 초저음이 똬리 뜬 트랩. 그 크레바스 틈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나드는 악곡처럼 영상은 충격적이며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다. 엄지와 폰으로 세계 사이를 휙휙 넘어다니는 우린 신이다. 그런데 쫓기고 있다. – 임희윤(<동아일보> 기자)

Lost But Never Alone by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언컷 젬스>를 감독한 조쉬&베니 사프디 형제의 작품.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는 <언컷 젬스>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그들의 영화와 음악을 사랑한다면 ‘Lost but Never Alone’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는 미국 서브 컬처의 요소와 1980년대 일렉트로닉 음악의 사운드를 가져와 레트로-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다. 뮤직비디오 역시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클리셰로 쓰이던 장면을 묘하게 뒤틀고 재배치해 시종일관 익숙하면서도 낯선 무드를 자아낸다. 요즘 힙스터는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를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힙스터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또는 모르는 척하고 싶으나) ‘Lost But Never Alone’이 이 시대의 주요한 뮤직비디오 중 한 편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 하박국(영기획 대표)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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