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6월호 김선호 커버 풀 스토리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Blowing in the Wind (김선호)

2021-05-25T20:07:59+00:002021.05.26|BEAUTY, FEATURE, 피플, 화보|

파란 물빛으로 차려입은 김선호가 벽에 기대 서자, 겐조 퍼퓸의 촉촉한 향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하늘색 셔츠는 Kenzo, 남색 팬츠는 Recto 제품.

Beauty Note

투명하고 맑은 물결 속에 있는 듯한 김선호. 황홀하고 마법적인 물의 향기를 그려낸 Kenzo Parfums의 ‘로 겐조 뿌르 옴므’를 뿌렸다.

슬리브리스 톱은 Maxxij 제품.

Beauty Note

물의 형태를 굳힌다면 바로 이런 모양이 아닐까? 김선호가 들고 있는 보틀은 깨끗하고 투명한 느낌의 커브 디자인으로 생동감 넘치는 물을 형상화한 Kenzo Parfums의 ‘로 겐조 뿌르 옴므’.

Kenzo Parfums 로 겐조 뿌르 옴므 오 드 뚜왈렛 30ml, 5만원대, 50ml, 8만원대.

대담하고 역동적인 물의 향기

세상에 ‘물’을 주제로 한 향수는 무수히 많지만, 이토록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향수는 ‘로 겐조 뿌르 옴므’가 유일할 것이다. 활력 넘치는 유자, 신선한 프로스티드 민트에 관능적인 시더우드를 더한 향은 상쾌함 그 자체. 마치 흐르는 물을 손에 쥔 듯한 물결 모양의 보틀 역시 물이 품고 있는 센슈얼한 매력과 함께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드러낸다. 활동적인 스포츠 가이부터 슈트를 즐겨 입는 젠틀맨까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지 않게 잘 어울리는 향수.

Kenzo Parfums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 왼쪽부터| 50ml, 10만원대, 100ml, 14만원대, 30ml, 7만원대.

풍성한 핑크빛 꽃다발

겐조 향수 부동의 베스트셀러, ‘플라워바이겐조’에 핑크빛이 더해졌다. 기존 투명 컬러에서 핑크색 주스로 새롭게 선보이는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는 ‘플라워바이겐조’의 아이코닉한 향기를 더욱 프레시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불가리안 로즈, 아몬드 우드를 주원료로 한 기존 ‘플라워바이겐조’의 파우더리하면서도 센슈얼한 꽃향기에 페어, 가르데니아 등의 새로운 원료가 더해져 화사하면서도 폭발하는 꽃잎들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생기 넘치는 레드와 핑크 컬러가 조화를 이룬 30ml, 50ml, 100ml 보틀에서 꽃봉오리부터 활짝 피어나는 포피 플라워의 개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핑크 셔츠는 Rick Owens by 10 Corso Como, 와이드 팬츠는 Magliano by 10 Corso Como 제품.

Beauty Note

화사한 핑크 룩을 입은 김선호가 들고 있는 제품은 은은한 플로럴 노트가 매력적인 Kenzo Parfums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

플라워 패턴 재킷은 Kenzo 제품.

Beauty Note

Kenzo Parfums ‘플라워바이겐조’의 영감이 된 꽃 포피.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는 불가리안 로즈, 아몬드에 가르데니아 등의 향긋한 플라워 노트가 더해졌다.

흰색 가죽 재킷과 팬츠는 Bottega Veneta 제품.

Beauty Note

반짝이며 일렁이는 물빛 속에 잠긴 듯한 김선호. 깔끔한 올 화이트 룩에 어울리는 Kenzo Parfums의 ‘로 겐조 뿌르 옴므’를 전체적으로 분사해 청량함을 더했다.

패턴 셔츠 Kenzo 제품.

Beauty Note

Kenzo Parfums ‘로 겐조 뿌르 옴므’의 영롱한 유리 보틀은 빛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물결 모양이 특징. 연한 블루 톤의 시트러스 주스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베이지 슬리브리스 셔츠는 Hed Mayner by 10 Corso Como 제품.

Beauty Note

테이블 위에 하늘로 곧게 뻗은 보틀은 Kenzo Parfums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 50ml 제품. 해를 보며 피어나는 포피 플라워의 우아한 곡선을 형상화했다.

벽돌색 이너와 반소매 셔츠는 CMMN SWDN by G. Street 494 Homme, 팬츠는 Lanvin Homme by Boontheshop 제품.

Beauty Note

하늘을 떠다니는 꽃잎처럼 ‘플라워바이겐조 포피 부케’의 화사한 핑크빛 플로럴 노트가 바람을 타고 풍성하게 폭발한다. Kenzo Parfums 제품.

“내 몸에서 니 냄새가 안 없어져.” 이 문제적 대사는 3년 전 MBC 단막 스페셜로 편성된 <미치겠다, 너땜에!> 중 김선호의 입에서 나왔다. 서로의 애정사와 대소사를 공유하며 토사물까지 목격하는 사이인 남녀가 ‘어쩌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후, 여자는 비교적 자기 삶에 매진하고 남자는 속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급기야 어느 날 남자에게서 토사물이 올라오듯 터지고야 만 고백, ‘니 냄새가 안 없어져.’ 주인 잃은 강아지에게 말하는 능력이 생긴다면 그런 표정과 말투였을 것이다. 아이처럼 투덜대지만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 김선호, 상대 배우인 이유영의 몽글몽글한 인상, 살구 냄새를 맡다가 눈이 맞아 키스를 하는 남녀, 봄날의 공기와 한적한 골목길 산책… ‘여사친과 남사친이 서로의 의미를 깨닫고 커플로 발전한다’는 구태의연한 개요를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다. 단막극을 요약해놓은 이 과거의 클립이 왜 뒤늦게 조회수 상종가를 치는가. 답은 물론 김선호에게 있다. 작년 연말에 방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 이후 작정하고 김선호를 파고들다가, 혹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이 드라마에 닿은 이들은 탄식했다. ‘사람들 너무하네, 이 좋은 걸 저희끼리 보고 있었단 말이지.’

김선호도 냄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였나,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손을 잡았는데 손에서 향수 냄새 비슷한 게 올라오더라고요. 그런 냄새를 알아챈 순간 갑자기 좀 떨렸어요.” 극단 생활을 할 때는 누군가로부터 향수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겐조 향수였다. “남자 향수 특유의 무겁고 어른 같은 느낌을 안 좋아했는데, 겐조는 무겁지 않고 시원한 느낌이 있었어요. 선물 받은 향수를 다 쓰고 나서 같은 제품을 구입해 또 사용했죠.” 겐조의 두 가지 향수를 곁에 두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콘셉트로 <더블유>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는 김선호를 보면서,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후 ‘냄새’를 주어로 한 인상적인 문장으로 남을 그 대사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한 배우들은 대표적인 대사 한 줄을 갖기 마련이다(“나 이대 나온 여자야”처럼). 김선호가 ‘로코의 장인’이 된다면, 비록 스쳐 간 단막극이나마 과거 작품 속의 그 대사가 밈처럼 소환될 것이다. 사실 그 대사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의 판단으로 빠질 뻔했다고 한다. 발화되는 순간 상당히 느끼할 수 있는 표현이니까. “제가 담백하게 한번 해볼 테니 이상하면 나중에 편집 해주십사 했죠.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님도 그 대사가 살아야 한다고 거들어주셨고요. 감독님이 아주 쿨한 분이거든요. 제 연기를 보신 후 바로 ‘괜찮네!’ 하더라고요.”

드라마 <스타트업> 이후 지금까지, 약 6개월 동안 김선호는 전과 다른 김선호가 되었다. <스타트업>은 기대나 예상만큼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드라마다. 그러나 190여개국에 스트리밍되는 넷플릭스를 통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엄격히 말하면 ‘서브 남주’인 김선호에 호응하는 시청자가 많았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그가 맡은 인물은 성공한 남자일 뿐 아니라 과거에 관한 강렬한 서사를 지니고 있었고, 그만큼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했을 것이다. 나는 그 드라마가 예뻐서 좋았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한 씩씩한 여자 서달미(배수지), 여자에 대해서는 감이 없지만 실력만큼은 천재적인 엔지니어 남도산(남주혁), 막 시작하는 창업자들을 냉철하게 케어하면서 ‘키다리 아저씨’의 선한 투자자 버전을 보여준 한지평(김선호). 드라마의 삼각관계란 시청자로 하여금 한 라인을 지지하게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드라마는 인물들을 모두 응원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스타트업> 방영 도중 지인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김선호는 그때까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체감하지 못 했다. “<스타트업> 후 난생처음 광고를 찍었어요. 드라마 전부터 얘기된 광고이긴 했지만, 얼마 후에 또 광고가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광고가 또, 또, 또… 그제야 ‘반응이 좋다는 게 이런 식으로도 체감되는구나’ 싶었어요.”

김선호의 생애 첫 화보는 2019년 1월호에 실린 <더블유>와의 작업이었다. 추웠던 그 토요일 오후를 기억한다. 컷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타일리스트 팀은 김선호의 첫 화보 작업을 기념하듯 온종일 촬영해도 될 정도의 의상을 공수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우선 만나본 남자 배우 중 조정석과 더불어 손에 꼽게 밝은 피부를 가져서 놀랐다. 그 하얀 얼굴로 촬영하는 동안 말이 별로 없고 무표정인 그를 보면서 ‘혹시 체한 거면 어쩌지’ 싶기도 했다. “그때 제가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너무 떨려서 이명 증상이 있을 정도였어요. 셔터 누르는 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는데… 지금도 그 촬영 생각을 하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아찔해요(웃음).” 당시 인터뷰에서 그가 털어놓은 놀라운 이야기들은 이후 김선호에 관한 기사에 종종 인용됐다. 어릴 적 집에 강도가 들어 어머니가 공격당하고 피를 흘린 모습을 목격했다거나, 그 트라우마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 하지만 그는 친구 따라 다니기 시작한 연기 학원에서 “너는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라는 말로 그를 알아봐준 선생님을 통해 큰 위안을 얻었고,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사람들을 사귀고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방법도 잘 모르던 내가 연기 덕에 사회 활동을 알아갔다’고 했던 배우의 이야기를 잊기란 어렵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선호가 집중하는 주제는 같다. ‘연기 좀 잘하고 살자.’ 그에겐 ‘다른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시야가 좁았던 점이 오히려 배우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그는 생각한다. “대본 한 장만 손에 쥐고 있어도 내가 뭐라도 된 것마냥 두근거렸어요. 성공하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개념 자체가 저에겐 없었죠. 연기를 시작할 때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당신들은 너무 가난했기에 꿈을 꿔보지 못했지만, 저라도 꿈을 꾸고 살라고요. 부모님은 주위에서 저에 대해 물어보면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들에겐 하루도 쉬지 않고 꿈이 있었다’고 하신대요. 꿈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뭔지 어릴 땐 몰랐겠지만, 그래도 매일 꿈을 꿨다고.” 김선호는 언덕배기를 따라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판자촌에서 자랐다. 동네에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있는 것처럼, 김선호의 드라마에서 과거 ‘생활’이 좋은 재질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가난은 김선호에게 결핍도, 무기도 되지 못한다. 그의 부모님은 자식의 꿈을 격려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 먹을 때는 아끼지 말라며 용돈을 쥐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제가 가난하게 컸다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주변이 다 비슷한 상태였으니 그냥 당연한 삶이었죠. 아, 학창 시절에 학원 다닌다고 처음 강남에 가보고서는 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네요. 그때부터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나?’, ‘그럼 우리 동네는 잘 못 사는 동네인가?’라고 자꾸 질문하게 됐지만, 그뿐이었어요.”

김선호는 2017년 <김과장>을 시작으로 <최강 배달꾼>, <투깝스>, <백일의 낭군님>, <유령을 잡아라> 등 본격적인 드라마 커리어를 쌓았다. 그사이 톱 예능인 <1박 2일>에도 합류했다. ‘예능 뽀시래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논산훈련소 조교 출신의 몸에 밴 노련함을 가끔, 목소리 큰 사춘기 소년 같은 정신을 자주 드러내며 예능이 자기 무대인 듯 유쾌하게 누린 지 18개월째. 연기에 대한 우리의 대화가 물꼬를 튼 건 <1박 2일>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부터다. 방송에서 미술을 통해 멤버들의 심리를 진단한 적이 있다. 김선호가 그린 그림을 보며 ‘내적 갈등’,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고민’ 등을 상징하는 상태라고 언급한 심리 상담 전문가의 분석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김선호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드라마 촬영 초반, 그가 역할 해석과 연기 톤 문제로 혼란스럽고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즐거운 드라마 현장 분위기 속에서 결국은 연기의 옳은 방향을 찾았지만, 그는 인기를 마냥 즐기기보다는 자신의 달라진 위상 때문에 생긴 시차에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게 행복하던 때가 있는데, 어떤 걱정이 한두 개씩 삶으로 들어오다 보니까 가끔은 즐겁지 않을 때가 예전보다 더 잦아진 것 같다’고. 과거에 함께했던 동료들과 전처럼 함께하지 못해서 그런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연기 동료를 만나는 일이 설레고 현재에 대한 고마움이 분명 있어요. 새로운 행복함이 생긴 만큼 고민도 따르는 게 사실이에요.” 과거의 동료들이란 연극 무대 생활을 함께한 이들을 말한다. 잘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조바심은 늘 패키지로 따라다니는 거지만, 김선호는 연극 하던 시절에는 큰 고민 없이 살았다고 기억한다. 길을 걷다 콧등에 스치는 바람을 느낄 때마저 즐거웠다는, 시적인 행복함이 있던 시절. 김선호는 최근 드라마 <빈센조>에서 난약사의 채신 스님으로 출연한 권승우가 자신에게 상기시켰다는 옛 일화를 들려줬다. “연극에는 종료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런 작품과 한두 달 정도의 기한을 정해두고 임하는 프로젝트 공연이 있거든요. 오디션으로 배우를 뽑는 프로젝트 공연은 보수도 상대적으로 더 좋은 편이에요. 제가 그런 큰 프로젝트에 처음 합류하게 됐을 때 승우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너무 행복해. 이 정도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앞으로는 아무 욕심 안 내도 될 것 같아’라고 했대요, 제가.”

김선호는 무대를 ‘제자리, 원위치’라고 표현했다. 드라마 연기를 시작한 이후에도 2017년 <거미 여인의 키스>, 2019년 <메모리 인 드림> 등의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올 초에는 형사 역의 배우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추리 스릴러극 <얼음>을 공연했다. 장진의 작품이다. 업계에 전설로 떠도는 일화들이 많은 서울예대 출신의 재능꾼 중에서도 전설 1호라고 할 수 있는 장진을, 학생 김선호는 곁눈질로 바라보곤 했다. “저는 정극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우리 옆 방이 ‘만남의 시도’라는 창작극 동아리 방이었거든요. 그 동아리 창시자가 장진 감독님이었어요. 감독님이 자주 오셔서 어린 후배들 가르쳐주곤 하더라고요… 그게 부러웠어요(웃음).” 드디어 작업으로 만난 장진은 ‘젠틀하고 소년 같은’ 사람이었고, 인물의 음색과 특정 대사의 템포 등등을 꼼꼼하게 디렉팅하며 ‘그 정도만 지켜주면 좋겠다’고 하는 연출자였다. 장진의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작품 전체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의 연습량이 많아진다.

“누구나 자기 장점보다 단점이 유독 잘 보이지 않나요? ‘나에겐 장점도 있으니까 나를 더 사랑해야 한다’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늘 더 잘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만큼 제가 못 따라가는 거죠.” 김선호는 자신의 원형인 연극 무대라는 처방으로 과거의 활기를 수혈받은 듯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아쉬워한다. 물론 직업을 막론하고 ‘선수’라면 자책 속에서도 자기만이 아는 자신감은 있는 법이다. 그는 ‘나는 연기를 확 잘하지는 않지만 아주 못하지도 않는다’라는 사실 하나는 안다고 했다. “제가 못하는 것, 괜찮게 하는 것,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일찍부터 파악하려 했어요. 평생 지켜본 훌륭한 배우 형과 누나들의 공통점이 자기 객관화가 뛰어났다는 거예요. 그 영향을 받았죠. 그들 말을 들어보면 ‘난 이 부분을 잘했고 그래서 이 정도까지는 왔다’고, 자기가 잘하는 게 뭔지 확실하게 알더라고요. 반면 천천히 잘 풀린 이들은 이것저것 다 잘하는 경우였어요. 연기 폭이 넓은 대신 뛰어난 무기 하나를 갖지 못한 셈인데, 어떤 감독이나 작품을 통해 자기 무기를 찾은 후 배우로서 좀 더 수월하게 풀린 거죠.” 선수들만의 대화를 엿들은 기분. 김선호의 연기론은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에 관한 직업론을 연상시켰다.

우리는 몇몇 배우의 연기 스타일을 가볍게 이야기했다. 영화 <더 킹>에서 김소진이 “검찰 역사에 이 정도 쓰레기들이 있었습니까?”라고 할 때의 억양과 여유를 포함해, 김선호가 감탄하는 연기들에 대해. 그가 잘한다는 것은 속도감이 있고 위트가 밴 연기다(이 스타일의 진가는 넷플릭스에도 있는 <으라차차 와이키키 2>에서 확인 가능하다. 웃을 일이 없을 때 보면 더욱 좋다). 그러다 ‘딥’한 연기가 필요할 때는 여린 감정을 자아내는 식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것, 그게 자기 장기라는 걸 찾았다. 그럼 자신과 상반된 지점에서 돋보이는 연기를 하는 젊은 남자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할까? “한 예로 김래원 선배의 연기를 보면 템포가 아주 느리거든요. 그런데도 로맨스가 돼요. 진중하고, 깊고, 진실된 느낌을 줘요. 저라면 잘 못해내거나 다르게 했을 듯한 대사를 천천히 혹은 무심하게 해도 뭐든 전달하는 배우. 부러워서 어떤 연기는 여러 차례 돌려본 적도 있어요. 참 희한하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대개 느리고 점잖은 분위기예요.” 우리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을 동경하는 대신, 결국 자기 취향의 것을 선택하며 산다. ‘남자 어른’다운 묵직한 향은 꺼리던 김선호가 겐조 향수는 몇 병 썼다는 것처럼.

김선호는 요즘 하반기에 방영될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준비 중이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다. 그 영화가 개봉한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고, 만능 백수 ‘홍반장’은 아이코닉한 캐릭터로 남았다. 훤칠한 용모, 공식적인 직업은 ‘무직’, 그런데 동네 사방팔방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람처럼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남자. 바닷가 마을에 터를 잡고 홍반장과 얽히게 되는 치과의사 역은 신민아가 맡는다. “사람마다 각자의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느냐가 문제잖아요. 김선호의 냄새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고 느껴요. 그만큼 자기 역할만 잘해내는 것 외에도 중요한 몫이 있다는 건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주연배우라면 현장의 모두가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더라고요. 주혁이와 수지를 통해 느꼈죠.” 김선호식 홍반장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하다. 연기에 있어서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김선호가, 보다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된 몸으로, 로맨스에 힐링을 버무린 작품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낼까. 아무리 툴툴거려도 위압적인 데가 없는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면에 실리지 않은 화보 B컷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