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적을 남긴 문인을 떠올리는 최선의 일은 그들의 문장을 곱씹는 것 아닐까? 작고한 최인훈과 황현산이 남긴 글 중에서 극히 일부를 소리 내 읽어보았다.
최인훈(1936~2018.7.23)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했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는 <광장>의 해였다고. 그해 초판된 <광장>은 2015년까지 189쇄를 돌파했다. 최인훈은 전근대적인 시대와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 한국 현대 문학의 대표 소설가다. 수필도 많이 남겼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시대니만큼 국가, 민족, 사회, 관념 등에 관한 생각을 녹인 것들이 다수다. 문학과지성사가 출판하는 최인훈 전집은 총 15권으로 구성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장교가 나앉는다.
“동무, 지금 인민공화국에서는, 참전 용사들을 위한 연금 법령을 냈소.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일터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인민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고향의 초목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 거요.”
“중립국.”
– 소설 <광장>(문학과지성사) 중
“삶의 핵은 만남과 헤어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그 사람의 그릇과 운명에 따라서 만남의 대상은 갈라지고 천차만별이다. 같은 만남에도 그 사람의 성격과 경력에 따라서 그리고 삶을 느끼는 힘의 깊이에 따라서 만남은 바람처럼 가벼울 수도 있고 바다처럼 깊을 수도 있다. 나는 온달 이야기를 만남의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보고 싶다. 만난다는 부조리,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만난다는 신비함. 만남을 모두 계산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 수필 <문학과 이데올로기>(문학과지성사), ‘만난다는 신비스러움’ 중
“우리가 오늘날 처한 운명을 따지게 되면 자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우선 개화기쯤에서 멈추어보자.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자주 개화에 실패했다. 까닭은 얼마든지 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밝혀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하고 영원히 딴소리가 있을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친구들이 망종이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망종인 것은 일본 친구들이고, 부끄러운 것은 우리임에는 변함이 없다.”
– 수필 <유토피아의 꿈>(문학과지성사), ‘역사와 상상력’ 중
“한국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 끈질기다는 것, 무엇보다 자기 말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부족은 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남보다 앞지를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 소설 <화두1>(문학과지성사) 중
“우리는 여간해서는 한 가지 일을 열 가지 가닥으로 이어나가면서 생각하기가 힘들다. 바빠서도 그렇고, 버릇으로도 그렇고, 더 이어나갈 정보가 없어서도 그렇다. 모두 바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세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가닥이며, 뿌리며, 가지를 그것들마다의 법칙에 따라 뻗어간다. 바쁠수록 잘 생각하는 일이 제일 바쁘게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 수필 <유토피아의 꿈>(문학과지성사), ‘삶의 속도’ 중
황현산(1945~2018.8.8)
그는 불문학자, 문학평론가, 번역가, 그리고 파워 트위터리안이었다. 문학을 쉽고 정제된 언어로 실어 나르고, 트위터 문화를 금세 파악해 애용하며 젊은이와 문학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 등 많은 불어 문학을 번역했다. 이 사회에 참된 어른이 부족한 듯한 오늘날이지만, 그의 수필집을 읽으면 말이 통하는 어른의 말씀을 듣는 기분이다. 기고한 글을 모은 그의 신작 <사소한 부탁> 속 모든 말은 마치 다음 세대에 전하는 당부 같다.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그 불행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한다. 탓할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불행은 지금 눈앞에 닥친 불행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미국 사회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중하류층 백인들에게 샌더스는 그 책임이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아간 월가의 부자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트럼프는 그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간 이민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잘나가는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러고는 다시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여성혐오의 혐의를 둘러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 <사소한 부탁>(난다),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 중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밤이 선생이다>(난다), ‘과거도 착취당한다’ 중
“일반적으로 문학어는 일상어보다 더 고양된 언어로 여겨지고 있지만, 높이 평가받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홍등가의 말보다도 더 비속한 표현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문학어는 일상어보다 더 양식화된 언어이지만 때로는 모든 언어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될 최소한의 양식조차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학어는 문어로서 구어에 그 본령을 두고 있는 일상어보다 더 논리적일 것이 당연하고 때로는 학술 언어의 그것에 필적할 만한 논리성을 갖추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러 경우에 술 취한 자의 주정보다도 더 지리멸렬하게 전개될 수 있다.”
– <말과 시간의 깊이>(문학과지성사), ‘모국어와 시간의 깊이’ 중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단원고의 한 학부모가 이런 말을 써서 팽목항에 내걸었다. 이 짧은 말의 밑바닥에 깔려 있을 절망감의 무한함까지 시간의 홍진 속에 가려지고 말 것이 두렵다. 우리는 전란을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싸워야 할 적도, 원망해야 할 존재도 오직 우리 안에 있다. 적은 호두 껍데기보다 더 단단해진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제 비겁함에 낯을 붉히고도 돌아서서 웃는 우리의 나쁜 기억력 속에 있다. 칼보다 말이 더 힘 센 것은 적이 내부에 있을 때 아닌가. 죽은 혼의 가슴에 스밀 말을, 짧으나마 석삼년이라도 견딜 말을 어디서 길어 올리고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우물에서 하늘 보기>(삼인),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다’ 중
“‘시적 산문’은 보들레르 이전에도 많았지만, ‘산문시’를 쓴 것은 보들레르가 처음이다. 거친 현실에서 시가 드러나는 곳은 바로 그 거칢이 가장 강렬한 지점이다. 가차 없는 현실이 허위의식을 뚫고 나타날 때 그것을 가차 없이 표현하는 언어를 타고, 전원에 연결된 구리선으로 전하가 이동하듯, 높은 시하가 정신 속으로 흐른다.”
– <파리의 우울>(문학동네), ‘파리의 우울 여록’ 중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이후에 썼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뇌의 어떤 증언이기도 하다” .
– <사소한 부탁>(난다), ‘작가의 말’ 중
- 피쳐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이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