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새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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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고 쿨하며 집단적이다! 밀라노에서 만난 새로운 세대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서로를 향한 동질감을 지니고 있으며, 옷 자체의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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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디자인한 룩을 입은 모델과 포즈를 취한 디자이너들. 왼쪽부터 로렌초 세라피니 (Lorenzo Serafini), 아르투어 아르베서(Arthur Arbesser), 마시모 조르게티 (Massimo Giorgetti)

이탈리아 패션 산업에서는 자기 중심적인 경쟁이 유독 치열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 경쟁적인 모드는 몇몇 파워풀한 브랜드 사이에선 여전하지만, 작년부터 분위기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로렌초 세라피니(Lorenzo Serafini), 아르투어 아르베서(Arthur Arbesser), 마시모 조르게티(Massimo Giorgetti) 등 새롭고 신선한 얼굴들은 각각 필로소피, 아이스버그, 에밀리오 푸치를 맡고 있다. 하지만 전임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화기애애하게 일 카르파초 레스토랑에 모여 네그로니 칵테일을 즐기곤 한다.
“옛 방식의 경쟁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요. ”세라피니는 패션계의 톱을 놓고서 벌이는 불화와 반목에 대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들과는 다르고, 지금은 너무 많은 디자이너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더욱이 우리 앞세대 디자이너들은 비즈니스맨이자 각자의 공장을 갖고 있었지만, 우린 주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개별적인 디자이너의 형태이죠.” 2014년 말 필로소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세라피니(43세)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뉴 웨이브를 이끌고 있지만, 패션 산업에 있어서는 결코 신예가 아니다. 그는 로베르토 카발리와 돌체 앤 가바나에서 10년 이상 디자인 작업을 맡아왔다. “패션계의 빅 네임 속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여러모로 행운이었지요. 한 번도 무대 뒤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좌절해본 적은 없어요. ” 비단 세라피니뿐만이 아니다. 종종 뉴욕과 런던에서는 갓 패션 스쿨을 졸업한 디자이너들이 곧바로 독자적인 레이블로 뛰어드는 걸 볼 수 있는 반면,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기까지 적어도 10~20년간 경험을 축적한다. 아르투어 아르베서(33세)는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후 밀라노의 엠포리오 아르마니에서 일하다가 2013년에 자신의 레이블을 론칭했다. “살짝 이른 감이 있지만, 30세로 접어들 무렵 ‘지금 하지 않으면 결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은 채 돌아다니는 아르베서는 특유의 브라운 헤어와 뿔테 안경으로 마치 소년처럼 보인다. 그의 주변에는 첫 프레젠테이션을 열도록 자신의 모던한 아파트를 빌려준 건축가 루카 시펠레티(Luca Cipelletti)와 독특한 프린트 작업을 돕는 프렌치 일러스트레이터 아가트 싱어(Agathe Singer)를 비롯해, 친구와 조력자가 가득하다. 게다가 로컬 산업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그의 레이블은 빛의 속도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밀라노는 그 어떤 곳보다도 새로운 꿈을 시도 중인 젊은 신예 디자이너들에 관심이 뜨거워요.” 아르베서는 2015년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을 위한 LVMH 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에 올랐고, 곧이어 아이스버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유사하게 마시모 조르게티 역시 2009년 데뷔 이래 젊고 에너제틱한 MSGM 레이블을 이끌면서, 에밀리오 푸치의 새로운 크리에이터 디렉터직도 맡고 있다. 두 역할 때문에 밀라노와 피렌체를 오가면서 일 년에 10차례의 컬렉션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38세의 이 디자이너는 막대한 작업량에도 행복한 미소를 띤다.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푸치는 이탈리아 패션의 역사 그 자체인데요.”
조르게티는 마치 아름다운 디너를 준비하듯이, 쉽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창조적인 과정을 구상해간다. 그에게 푸치는 ‘팔라초와 스트리트 사이의 균형’을 발견하는 것이며, 브랜드의 스포츠웨어 헤리티지를 모던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푸치의 진정성을 잊어버리고 있어요. 지난 몇 년간 푸치가 레드카펫에 치중해온 탓이지만, 저는 스포츠웨어에 강한 푸치를 되살리고 싶어요. ” 그는 스키 슬로프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그래픽의 2016년 가을 컬렉션과 늘 과감한 패턴과 톡톡 튀는 색감의 프린트로 유명한 푸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세계에서 이동하되, 그 헤리티지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죠!”

에디터
정진아
포토
DRIU & TIAGO
Alice Cavanagh
스탭
스타일링 | Katie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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