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데이비드 내시에게 나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파트너다.
어쩌면 귀에 선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내시는 현대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거장 중 한 명이다. 재해로 인해 쓰러지거나 병든 나무만을 소재로 취하는 그는 야생의 형태를 신중하게 가공해 독특한 추상 조각을 완성한다. 국제갤러리에서 1월 25일까지 열릴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칠순의 아티스트는 오래된 나무처럼 훌쩍 키가 컸으며, 서글서글했다. 전시작인 ‘코르크 돔C(ork Dome)’ 앞에서는 한 조각을 쑥 뽑아 들더니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도 했다. 엉겁결에 작품에 함께 손을 댄 통역사는 잠시 후 내시에게 자신이 혹시 실례를 한 건 아닌지 양해를 구했다. 작가가 미소와 함께 건넨 대답은 이랬다. “천만에요. 그리고 이제는 당신도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W Korea>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 작품의 소재로 파고 들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데이비드 내시 네 살쯤, 그러니 까 유아원에 다니던 무렵의 가을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버지니아 산 덤불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잎이 예쁘게 달린 나뭇가지들을 모은 뒤 옆에 떨어져 있던 고무줄로 묶어서 바닥에 세웠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이 켜보니 그게 내 첫 조각이었던 셈이다. 이후 유년 시절을 거치는 동안에도 목재를 자주 다룬 편이다. 사실 예술 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다양한 소재를 시도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다시 나무로 돌아오게 되더라. 돌은 공정이 느리 고, 주조는 어렵고, 합성수지는 냄새가 고약하고, 점토는 너무 막막하니까.
작업할 때 딱히 수종(樹種)을 가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특별히 선호하는 조건이나 상태는 있을까?
굳이 말하자면 크고 오래된 나무를 좋아한다. 재료를 얻으면 껍질을 깎아내고 썩은 부분부터 도려내는 게 먼저다. 조각을 하기 전 나름의 준비를 하는 거다. 상태를 따지기보다는 선호하는 상태를 만들어가는 쪽을 택한다.
오랜 시간 나무를 탐구해왔다. 초기와 지금을 비교할 때 이 소재에 대한 접 근 방식에 달라진 부분은 없나?
전시 의뢰를 받으면 작품이 놓일 공간을 상상하면서 적절한 재료를 찾고 구상을 한다. 코르크를 쌓아 완성한 ‘코르크 돔(Cork Dome)’ 역시 국제갤러리를 염두에 두고 소재와 크기를 결정했다. 초기에는 갤러리에 작업을 설치한다든가 전세계를 돌며 전시할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산 속의 은둔자처럼 조용히 지냈는데 하나둘 사람들이 새로운 제안을 해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전시를 하게 된다면 작가로서 그전까지 산에서 해온 것 이상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그 무렵 작품 세계에 한 차례 변화를 겪었다. 내가 일관적으로 지키는 룰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초대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전시를 하고 싶다고 먼저 갤러리에 손을 내민 적이 없다. 산에 들어가 지내기 전부터 스스로 약속한 바고, 그래서 첫 전시를 위해 내려오기까지 6년의 세월이 걸렸다.
나무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그 본연의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는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작가로서 계산과 계획보다는 직관과 우연에 더 크게 의지한다고 생각하나?
우연에 따른다기보다는 재료를 창작의 파트너로 인식한다고 하는 쪽이 맞겠다. 조각을 지배하면서 구상을 빈틈없이 구현하 려 한 적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만족감이 없었다. 더 커야 하나, 소재가 바뀌어야 하나, 늘 고민했다. 그런데 나무를 파트너로 여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풀렸다. 처음 코르크를 접했을 때, 몸 깊숙이에서부터 흥분이 밀려 나오는 기분이었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다짜고짜 10톤이라는 엄청난 양을 주문했다.
완성된 작품은 다소 추상적이다. 원시 미술이나 토템이 연상되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시대성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고유한 원형에 가까워 보인다.
원시 시대의 유물을 감상하는 걸 무척 좋아 한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시간을 넘어서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일종의 매개자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작업은 내재한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가깝다. 대부분이 땅 위에 버티고서는 균형 감각을 타고나는 것처럼, 진리에 대한 감각도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내 조각은 그 감각을 발현하는 과정이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흔한 제목이 ‘무제(Untitled)’다. 하지만 당신은 작품들에 ‘왕과 왕비’ ‘토르소’처럼 쉽고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는 편이다.
난 ‘무제’ 라는 제목이 정말 싫다(웃음). 물론 내 작품이 언뜻 추상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각의 범주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충분하다. 내 작품 중 ‘패밀리 트리(Family Tree)’라는 드로잉이 있는데 생각들이 합쳐지고 또 뻗어나가는 풍경을 표현한 일종의 마인드맵이다. 그 이미지가 강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 내 작품 세계는 고작 하나의 강이었지만 예순아홉이 된 지금은 바다처럼 넓어졌다. 물 은 흘러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상징이다. 나는 작가로서 꾸준히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순간이 내 작품 세계를 이끌기도 한다.
1970년대에 선보인 ‘애시 돔(Ash Dome)’은 원 모양으로 둘러 심은 나무들이 점차 자라나 하나의 돔을 이루도록 한 설치 작업이었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작품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사례라고 하겠다. 여전히 시간은 당신에게 중요한 주제인가?
웨일스에 있는 2제곱미터 정도의 땅에서 1년 전부터 이런저런 작업을 하고 있다. ‘애시 돔’처럼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 작품인데 그중에는 성공도 실패도 있었다. 청솔모나 양이 내 프로젝트를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비슷한 시도를 좀 더 해보고 싶긴 하다. 일단 락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힘, 그리고 그것들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나의 꾸준한 관심사다.
자연 재해로 쓰러진, 혹은 불가피한 이유로 이미 베어진 나무만을 가져다가 작업을 한다. 자연이 허락한 재료만을 사용하는 셈인데 수급에 어려움은 없나?
늘 나무는 쓰러지고 가지도 떨어지니까(웃음). 각지에서 거대한 목재를 옮겨와야 하다 보니 종종 배송이 문제가 되긴 한다. 조각을 하나 팔면 돈이 생기니까 그걸로 두 개든 세 개든 다음 프로젝트 비용을 마련한다. 그런데 아예 판매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배당’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아내가 못 팔게 한 작품을 모아놓는다.
이제는 나무의 가능성을 충분히 탐색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 이 소재로 하고 싶은 작업은 여전히 많이 남은 상태인가?
물론이다. 야외 설치 작업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바다 근처에 두면 목재는 하얗게 변색되는데, 이런 환경에 따른 변화를 작품에 반영해보고 싶다. 딱따구리가 특히 좋아하는 나무를 서식지에 가져다 놓는 아이디어도 있다. 새들이 직접 조각을 하는 거다.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지만 안 팔리면 또 어떤가? 아, 지금 대화를 나누다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박물관에 들렀다 벽에 걸려 있는 바이킹 선박 파편을 발견했다. 무려 8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조각을 땅에 묻은 뒤 한 500년쯤 뒤에 파보면 어떨까?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을 테지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