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작품 <모던걸-경성순례기> 시리즈부터 근작인 <The Day>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 난다는 줄곧 초현실적인 기법과 도전적인 세계관으로 고유의 영토를 구축해왔다. 이번 더블유를 위한 작품에서는 초기작, 모던걸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복제인간, 즉 익명성과 획일성으로 수렴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기록했다. 난다의 뷰파인더 속에서 새롭게 구성한 일상의 풍경은 판타지라는 껍질을 둘렀을 뿐 정작 그 알맹이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구경하는 자와 구경거리가 뒤엉킨 동시대의 특권적인 상황이 빚어낸 살풍경.
<시선의 침>
시선은 보이지 않는 침을 가지고 있다. 영광의 순간에 꽂히는 침은 대상의 기운을 돋아주지만, 예기치 않은(약속된 질서를 벗어난) 실수에 날아든 침에는 수치를 흘린다.
쏘 쑈쑈
사르트르의 작품 <구토>에서 남자는 옛 연인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다. 여자는 남자에게 식물원에서 한 첫 키스의 기억을 확인한다. 여자는 그때 자신이 선인장을 깔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묻는다. 여자는 첫 키스라는 ‘특권적 상황’을 ‘완벽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선인장 가시에 찔리는 고통쯤은 기꺼이 참았다고 했다.
“모든 장면 중에서 그것이 선택되었으니까요. (…)
그래서 난 이 사건들에는
특수한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
그 상황은 정말 보기 드물게 귀한 성질과 품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그것을 완벽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은지 아닌지, 그걸 아는 것이 문제죠.”
“그렇군 알았어. 하나하나의 특권적 상황 속에서
무언가 해야 할 행위,
취해야 할 태도,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밖의 태도와 그 밖의 말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런 건가?“
아, 그런데 이 여자는 왜 오랜만에 옛 연인을 만나서 낭만의 기억을 헤집어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끄집어냈을까? 여자는 완벽한 순간을 실현하기 위해 연극배우가 되었지만 무대에서의 특권적 상황이 갖는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 사람들은 그 완벽한 순간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았어요. 완벽한 순간은 그들 앞에 펼쳐지고 있었죠.
그럼 우리 배우들은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순간은 아무 데도, 난간의 이쪽에서 저쪽에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모두들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위 글에서의 여자는 보편적인 현대인이다. 사람들은 특권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치장하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든다. 어디든 시선이 있는 곳은 무대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완벽한 순간은 사진으로 기록된다. 너무나 흔해진, 특권적 상황과 볼거리의 아우성은 지루하고 괴이한 풍경을 만든다. -작가 난다
<무대 뒤>
사람들은 항상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 쓰며 볼 만한 상태, 시선을 끌 수 있는 치장에 공을 들인다.
<셀카 둥둥>
내가 나의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의 시선을 나에게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찍은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 나 혼자 있다면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다.
<피에로는 줄을 서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 죽거나 숨기도 하고 광대가 되기도 한다. 모두 같은 의미로, 나는 광대의 분장으로 나를 없애고(죽이고) 나는 그 두꺼운 분장 뒤에 숨어 연기를 핑계로 줄서기나 예의 바른 행동 같은 일종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에디터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선민
- 포토그래퍼
- Artist / Nanda
- 모델
- 김효경, 박세라, 이정현
- 스탭
- 헤어 / 박선호, 메이크업 / 오미영, 어시스턴트 /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