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든 철학자

W

삶과 사랑, 돈과 명예를 좇으면서도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인가, 예술과 여행을 통해 어떤 위로를 얻으며 스트레스와 강박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까.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을 위한 카운슬러이자 철학자, 호기심 많은 수다쟁이다.

촘촘하게 밀도가 높은 캠든의 시가를 벗어나 서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자 런던보다는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하이츠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알랭 드 보통의 집은 마당에 장미가 피어 있는, 꽤 넓은 2층의 주택이었다. 몇 년에 걸쳐 서로의 스케줄을 조율하다 성사된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 장소는 시내에 위치한 그의 교양 스쿨인 ‘인생 학교’ 대신 보통의 자택이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그는 특별히 자신을 아껴주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따로 썼는데, 거기에 이 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집을 얻는 데 한국어판 인세가 큰 보탬이 되었지요. 물론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경제적 관계란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글을 통한 상상의 우정이거든요.” 인터뷰 중간에 보통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가상의 우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많은 독자 또한 그를 만난 적 없음에도 친구처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관심사가 다방면에 걸쳐 다양하며, 나도 느끼는 문제들을 지적으로 풀어 써주고, 끊임없이 뭔가 재밌는 일을 벌이는 바쁘고 수다스럽고 똑똑한 친구로. 보통은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것 외에 어른을 위한 교양 강좌 프로그램인 ‘인생 학교’를 런던과 멜버른에서 운영하고, 또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아름다운 집을 지어 사람들에게 살아보게 하는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인을 위한 일종의 클리닉 같은 거죠. 우리 삶에서 성공이란 큰 성취보다는 정신적인 건강을 지키며 사는 거니까요.” 보통은 매일 이메일을 열고 몇몇의 황당한 의견, 그리고 소수의 아주 환상적인 제의를 받으며 하루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로 트윗을 올리기도 하는데, 침대 속이건 비행기 안이건 어디서나 ‘생각을 붙잡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가 생활이 없지만 별로 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있을 때야말로 가장 행복하다는, 즐거운 워커홀릭이기도 했다. 이런 친구가 곁에 있으면 자극도 받고 질투도 날 테지만 무엇보다, 보통 이상으로 재미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응접실에는 많은 철학 책과 아이들의 사진, 비행기 모형, 그리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기사 훈장의 증서가 놓여 있다. 그의 최근 저서 에서 예술이 삶에서 갖는 치유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자신의 거실에 걸어놓고 있는 것은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천장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그는 여기서 삶에서 추구하고 싶은 이상적인 균형미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의 응접실에는 많은 철학 책과 아이들의 사진, 비행기 모형, 그리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기사 훈장의 증서가 놓여 있다. 그의 최근 저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이 삶에서 갖는 치유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자신의 거실에 걸어놓고 있는 것은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천장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그는 여기서 삶에서 추구하고 싶은 이상적인 균형미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터뷰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당신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최근에는 어디를 방문했나?
알랭 드 보통 스위스와 독일에 다녀왔다. 런던에 사는 나에게는 전혀 이국적이지 않은 곳들이다. 작년엔 아프리카에 있었는데, 뉴스와 미디어에 대한 새 책에 필요한 리서치를 위해 BBC와 함께 우간다에 다녀왔다.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당신의 새 책에 대한 단서를 듣게 되다니 반갑다. 조금 더 소개를 부탁한다.
우선 첫 번째 책은 예술에 대한 것으로, <치료로서의 예술>이라는 제목이다(국내에는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으로 10월 중순 발간). 그림과 조각, 그 밖에 다른 예술 작품이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다. 현대인은 예술이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나치게 유용하기만 하거나 싸구려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실 예술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주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꽤나 단순하다. 우리 기분을 더 낫게 만드는 것, 일종의 치료 같은 것이다. 나와 내 공동 저자(멜버른 대학 예술철학 연구원으로 있으며 <사랑의 발견> 저자인 존 암스트롱)는 예술 작품들이 어떤 식으로 우릴 도울 수 있는지 효용을 찾았다. 한 가지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또 하나는 우리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선명한 그림으로 설명하게 돕는 것이다. 또한 예술 작품은 우리를 품위 있게 슬퍼할 수 있게 한다. 우린 자주 슬프고, 자주 편집증적이 되고, 고통받거나 혼자임을 느낀다. 예술 작품은 종종 흥미롭게 위엄 있는 방법으로 멜랑콜리하다. 이런 여러 가지 쟁점을 가진 이 책으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뉴스와 미디어에 대한 책은 그 다음인가? 그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
뉴스를 보면서 덜 미치게 돕는 일종의 매뉴얼 같은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뉴스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면서도 중독적인 재미를 준다.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부러워하게 만들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심지어 더블유 매거진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훌륭한 시와 소설을 읽고 해석할지는 말하면서도 잡지, 신문, 텔레비전 쇼에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끊임없이 뉴스에 노출되는 환경이 당신에게 이런 관심을 불러일으켰나?
그렇다.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긴 시간 동안 테크놀로지와 연결되어 있다. 뉴스는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하루에 한 번 프린트되는 게 아니라 매 5분마다 업데이트된다. 즉 계속 시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뉴스는 사람들 사이에 더욱 스며들어 중독되게 만든다. 많은 미디어 회사들이 재정적으로 약해졌지만 뉴스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이 현대의 모순이다. 뉴스를 접하는 대중의 상상력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사태는 비행기에까지 와이파이가 생긴 일이다. 현대 사회의 마지막 평화가 깨진 순간이다. 이제 비행기에서 아무도 책을 읽지 않을 거다. 정말 슬픈 일이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당신은 어떤 예술 양식이 왜 누군가에게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서술한 바 있다.
나에게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 어떤 사람은 꽃 그림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산과 들의 그림을 좋아할까? 이런 취향의 차이는 패션에도, 접시나 소파를 고를 때도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내 생각에 취향은 우리의 내면이 필요로 하는, 우리 자신이 갖지 못한 가치를 드러낸다. 차분한 경향의 공간이나 예술을 좋아한다면, 자주 내면의 침착함을 잃어버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 침착함을 잊은 채 아마도 매우 스트레스받고, 긴장하고, 불안해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예술에서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일상생활에서 기울어진 성격 또는 캐릭터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제각기 다른 어떤 것들이 결여되어 있고 예술은 그걸 되찾도록 돕는다. ‘아, 저건 아름다워’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가 실제로 표현하는 메시지는 ‘저건 나에게 필요해’일지도 모른다. 시각적인 레벨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위에서도 그렇다. 눈의 세계와 마음, 영혼의 세계는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눈으로 보지 않고도 좋아하는 건 우리가 마음과 지성으로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 전체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 당신의 공간에 걸린 예술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웃음). 예를 들면 건축물의 내부를 찍은 저 사진은, 당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었음을 말해줄까?
저 작품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매우 복합적이다. 호주 포토그래퍼의 작업이며,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지붕이다.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이지만 동시에 남성적이고, 규칙적이고, 대칭적이다. 그래서 내게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완벽한 조화, 혹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 보인다. 놀라운 균형미를 가진 사진이다. 만약 누군가 저 천장을 닮으려 애쓴다면 아마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 될 것이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합리적이며, 동시에 부드럽고 섬세함을 갖출 테니까. 그런 가치들은 말하자면 내 인생에서 이루었으면 하는 이상이다.

대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보다 글을 편하게 여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 반대 경우도 종종 있고. 그런데 당신은 말과 글 양쪽을 다 잘 다루는 것 같다.
난 수학을 정말 못하니까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웃음). 하지만 말은 제법 잘할 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겐 소통이 중요하며, 자신을 단지 작가라기보단 커뮤니케이터라고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소통의 방법 중 단지 하나일 뿐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나를 작가로 보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여러 분야에 대한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여긴다. 그리고 소통의 많은 방식 가운데에 내게 잘 맞는 것이 글쓰기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TV 쇼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곡을 쓰고… 뭐가 되건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미디어의 예를 들자면 우리는 단지 신문이 아니라, 사진, 트위터, 태블릿의 어떤 앱, 또는 콘퍼런스 등 다양한 방식의 뉴스를 다루는 사람인 셈이다. 작가는 여러 플랫폼을 넘나드는 유연한 방식으로 자신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쓸 때 가톨릭 문화에 대해 깊이 공부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다. 가톨릭은 어째서 건축, 예술, 음악, 그리고 패션에까지 심취해 있었을까? 예수의 삶이나 철학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려면 책뿐 아니라 모든 걸 다 이용해야 한다. 전체적인 몰입, ‘토털 워크 오브 아트’인 것이다. 나는 독일인들이 말하는 종합예술 (Gesamtkunstwerk – 음악·연극·시 등을 통합한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과 소통할 때 그 방식이 꼭 책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내 삶에서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정말 이상한 초대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일부는 좋은 이상함, 일부는 나쁜 이상함에 가깝지만 그중 몇몇은 아주 훌륭하다. 우린 사람들이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나는 협업을 하고 경계선을 부수는 시대에 사는 것을 즐긴다.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집을 짓고, 거기에 보통 사람들이 살아보게 빌려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어떻게 시작된 구상이었나?
자연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다. 우린 멋진 건축에서 사는 것이 하나의 진지한 꿈과 희망으로 여겨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실제로 그런 기회를 갖는 건 아주 소수의 사람뿐이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책을 쓰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갔다. ‘괜찮은 집을 짓는 사업을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어떨까?’ 그리고 사람들이 흔치 않은, 흥미로운, 자극이 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건축가들을 초대해 디자인하게 했다. 4~5년 동안 영국에 6개의 멋진 집이 오픈했고, 4개는 곧 열릴 예정이다. 가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며, 한국인 방문객들이 영국 교외까지 찾아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간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큰돈을 모아야 하고 변호사, 건축회사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특히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안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길 만한 것들을 설득하는 것, 그들과 얘기해서 이해시키도록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포함해 내가 하는 일은 결국 설득에 관한 거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도 결국 ‘보세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요, 이걸 실현시키려는 데 도와주시겠어요?’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건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 즉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걸 잘하는 작가라면 비즈니스에 뛰어날 수도 있다.

<여행의 기술> 말미에는 자기 방 안에서의 여행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어떤 집에 일시적으로 살아보는 것도 일종의 작은 여행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편으론 그렇다. 더 흥미로운 공간에서 살아간다면, 이동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여행은 언제나 내게 재미있는 주제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성지순례하는 것을 잠깐 다뤘다. 나는 어떤 면에서 ‘순례’라는 개념을 사랑한다. 아프고 지치고 슬플 때 여행을 가는데, 어느 시점에서 여행으로 인해 치료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휴가를 갈 때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여행하지만, 그 목적에 충분히 잘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할 프로젝트 중 하나는,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문제와 이슈를 갖고 있을 때, 그걸 위해 어딜 가야 할지 말해주는, 좀 다른 종류의 여행 가이드북이다. 사람들은 종종 ‘난 파리에 갈 거야!’ 하고 자신에 차서 외치지만 파리에서 원하는 게 뭔지, 깊은 바람이 무엇인지, 어떤 꿈과 환상이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여행산업은 너무 희미한 것 같다. 사람들이 왜 여행하는지의 개념부터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그들이 거기에 더 집중해서,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얻도록 돕고 싶다. 우리 삶에서 여행은 더 개발되어야 할 영역이다. 세속적이고 저급한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나는 패션과 여행이야말로 철학적 콘텍스트에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는 주제라 생각한다.

특정한 예술 작품이 치료의 효용을 가진다면, 여행의 목적지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여행지를 그런 심리적 치유의 목적으로 소개해준다면 누구에게 하겠나?
만약 당신의 삶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면 런던은 여행지로 좋지 않을 것이다. 런던을 즐길 만한 이상적인 사람은 엄격하고 정돈된 사회, 모든 것들이 시계처럼 돌아가고 규칙이 아주 많은 곳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그들이 와서 즐길 만한 것은 바로 매력적인 혼란이다. 거친 거리를 가지지 못한 문화의 사람들, 삶에 좋은 의미의 더러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런던은 그걸 제공해준다.

서울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슬프지만, 서울은 아주 못생긴 도시다, 사람들이 도시보다 훨씬 아름답다. 나쁜 건축의 희생양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못생겼지만 에너제틱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매우 에너지가 넘치고, 열린 도시 같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도시에 비해서 말이다. 유럽에서 온 방문객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갈 법한 도시 같다. 의미 있는 만남과 많은 커넥션들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당신의 저작이 유독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혹시 생각해본 적 있나?
솔직히 내 커리어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내 책이 한국에서 잘 팔린다는 것이다. 한국과의 그런 좋은 관계 덕분에 한국에 가보기도 하고 친구도 만들면서 나는 깊은 곳에서 더 풍요로운 사람임을 느낀다. 왜 한국 독자들이 많은지 생각해봤는데,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고 중산층 폭이 두터운 나라다. 전반적인 지적 수준과 정교함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높다. 또 한국은 매우 진지한 나라다. 사람들이 언제나 큰 질문을 던진다. ‘인생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국가의 역할은 뭔가?’ ‘지금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등등. 영국처럼 일찍 산업화된 나라의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에 그러한 질문을 멈췄으며, 역사의 주요한 순간들이 아주 오래전에 지난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바로 지금 그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라도 지금 일어날 수 있으며, 그들 스스로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다. 영국에서 역사는 400년 전에 일어난 무거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이후’에 있다. 반면에 한국은 그 역사가 바로 지금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호기심 많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우린 뭘 배울 수 있는지 배우고 질문하려는 욕구 말이다. 내가 종사하는 일은 질문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비즈니스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마침 한국 역사에 알맞은 순간에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성에 관한 면이라면, 이 세대의 한국 남자와 여자는 감정과 친밀한 인생에 대해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배우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저작은 아마 그 대화들 어딘가에서 변화하는 남녀의 대화를 돕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다.

사랑을 다루는 당신의 최근 책을 보면 시니컬하게 변해가는 것 같다.
나의 나중 프로젝트 중 하나는 결혼에 관한 제대로 된 장편 소설을 쓰는 거다.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은 물론 많이 변했다. 우선 단기 연애와 장기적 관계는 아주 차이가 큰 것 같다. 단기 연애는 세상의 모든 노래와 영화들이 얘기하는 로맨틱한 사랑이다. 장기간에 걸친 관계와는 다른 언어로 표현되며 질적으로도 무척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 이 사회의 책임도 크다. 우리는 로맨틱한 사랑의 모든 화려한 면과 흥분을 찬양하지만 오랜 관계의 매력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언급한다. 이건 슬픈 일 같다. 우리 모두는 장기 관계를 향해 가며, 그래서 우리에겐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다. 다른 한 인간과 장기간 잘 지낸다는 것은 누구나 요구받는 엄청난 도전 중 하나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 한 사람과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도 멋진 섹스를 하고, 같은 취향을 갖고, 공통의 친구들을 만나는 동시에 멋진 집도 갖고 싶어 한다. 이건 너무 큰 야망이며 성취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꿈이 좌절된다면, 꿈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올림픽 100미터 육상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한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 사람의 꿈, 이기고자 하는 욕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아주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이 힘들어하며, 성공하기가 힘들 뿐이다. 사랑은 100미터 달리기와 비슷하다. 세상에는 아주 소수의 우사인 볼트가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우리는 제각기 방식대로 몸부림친다. 사람들은 운동선수가 축복받은 엘리트이며,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민주적 견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모두가 사랑할 수 있고, 모두가 아주 잘 사랑하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 중 몇몇, 아니 많은 사람은 그러기에 너무 감정적으로 상처가 크다. 잘 달리기 위해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하기에 충분히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육상선수처럼 뛸 순 없는 대신 자기 나름의 조깅을 할 순 있다. 그걸 인정할 때 더 잘 사랑할 수 있다.

사랑, 종교, 예술, 건축, 여행…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당신인 만큼 다음에 또 어떤 테마를 다룰지 궁금하다.
나의 바람은 당신이 쓰는 ‘노화’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나역시 늙어감에 대해 써보고 싶다. 늙는다는 건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나도 당연히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잘 이해할 때까지 몇 년 더 기다리고 싶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게 어떤지 어린 사람들에게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그 경험이 너무 슬퍼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중요한 슬픔이다. 다시 예술의 역할로 돌아가게 된다. 늙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또는 남자가 여자에게,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예술 작품은 타인의 경험과 깊은 감정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이런 식의 번역들이 계속되는 것은 세상에 무척 중요하다.

육아라는 주제는 어떤가? 당신의 경험이기도 한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편으로 정말 어렵고, 다른 한편으로는 즐겁고 보람찬 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당신은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전의 삶에서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물어봤겠지만 부모가 되면 다른 한 인간을 위해 이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당신 자신밖에 없다. 뭘 먹이고 입혀야 할지, 무엇을 읽게 해야 할지, 어떤 교육을 받게 할지, 부모로서 당신은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다 결정할 수 있다. 아이에게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건 진짜 특권이면서도 아주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일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인생에 대해,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그들을 향한 내 사랑에 대해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또한 내 아이들이 용감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문제를 두려워하는 대신 충분히 겪고, 거기서 해결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 고무적이고 도전적인 일이다.

당신은 교육이나 계몽의 가치를 신봉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 학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살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회계, 엔지니어링, 경제, 디자인 같은 것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본인이 직접 배우려 하지 않으면 인생이 잘못될 수 있는 다른 영역이 훨씬 많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는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깨닫는가, 특정한 스트레스, 불안감,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등이 인생에서 중요한 감정의 영역이다. 이런 넓은 영역의 것을 스스로 배우자는 취지로 인생 학교를 시작했다. 런던, 멜버른에서 현재 진행 중인데 언젠간 서울에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에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들은 주로 작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 책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가 흥미로운 것만이 아니라, 막연하게나마 그 작가 자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책이 있다. 이상한 기분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작가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물론 그건 실제로 벌어질 리 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들 중 다수는 죽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니까. 요즘은 노먼 메일러 (주로 전쟁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과 논픽션을 발표하고 퓰리처상도 다수 받은 미국의 작가. 2007년 사망했다)의 책을 읽고 있다.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으며, 매우 따뜻하고, 동시에 광적이지만 자신의 광기에 대해서조차 지적인 사람이었다. 이 작가가 이미 죽었음에도, 나는 그를 친구처럼 느낀다. 살아 있다 해도 딱히 그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내 친구다. 책을 통해 작가를 사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마치 작가들과 친구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이라면, 현실 친구들과의 우정은 어떤가?
나에게는 한두 명의 아주 좋은 친구가 있다. 친구는 스스로가 무너질 듯 힘들고 희망을 잃었을 때, 내 인생에 좋았던 것들을 기억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가끔 우리 스스로를 충분히 믿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어려운 순간도 마다하지 않고 내가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자신에게서 보지 못하는 무언가 좋은 것을 보는 사람.

당신이 꿈꾸는 행복이란?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서 좋아하는 품성은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행복이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잘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가장 큰 기쁨은 내가 하고 있는 창의적인 무언가가 잘되고 있다고 느낄 때다. 나는 호기심이 강하다. 항상 질문을 한다. 기운이 넘친다. 사는 것이 신난다. 삶은 나를 불안하고 슬프게 하지만 난 우울하지 않다. 이만하면 좋은 것 같다.

픽션 속의 여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면, 누구였나?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가 연기한 셀린느가 좋다. 그녀에겐 뭐든 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어떤 얘기를 건네 더라도 ‘아하. 그거 재밌네’라는 식으로 반응할 것 같은 여자다. 호기심이 많고 매우 감정적이지만, 자신의 감정에서 거리를 둘 줄도 안다. 그런 여자라면 알게 되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고, 연애하기에 좋은 사람일 것이다.

당신의 책에서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가 돈, 명예, 대의가 아니라 사랑이나 관심, 인정 같은 사소한 것이라고 종종 얘기한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가 오히려 어렵지 않을까?
의도한다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건 정말 큰 문제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모두의 인생에서 아주 큰 주제다. 이게 내가 <불안>을 쓴 이유고, 이 책은 한국에서 아주 잘 팔렸다. 우리 모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자아를 가졌고, 지속적인 위로가 필요하다. 이건 매우 어렵다. 우리는 위로가 언제나 필요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일의 문제점이다. 모두가 부유해지고 싶지만 소수만 부를 갖는 상황이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좌절시킨다. 트랙터를 몰거나 막노동을 하거나 하인이라 해도 특별한 직업으로 존중받는다면 환상적일 테지만, 우리 사회의 직업인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행하고 슬프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건 어렵고도 큰 주제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나?
난 여가 시간이 전혀 없다. 아니, 여가 시간을 싫어한다. 언제나 일에 관련된 뭔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육아도 일종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건 나쁠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난 아주 행운아라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해왔고, 내 일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들과는 많이 다르다. 어떤 식으로 보면 일보단 놀이에 더 가까운데 이건 아주 큰 꿈에 가깝다.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주중에도 하는 것으로, 아주 좋아하는 일, 멈추고 싶지 않은 직업을 갖는 것이다. 자기 직업을 안 좋아하면서 그냥 중독된다면 문제가 있다. 쉬지도 못하고, 보스는 두렵고, 아무런 흥미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나쁜 버전의 워커홀릭이다.

인터뷰 이후 오늘은 어떤 일정이 남아 있나?
할 일이 많다. 새 프로젝트에 대해 의논할 사람을 만날 것이다. 미팅이 2개고 써야 할 레포트가 있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RAM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