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에 동참한 국제갤러리와 문성식 작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사유의 화면

2020-11-29T15:05:12+00:002020.11.30|FEATURE, 컬처, 피플|

독특한 회화 양식을 구축하고 있는 화가 문성식과 국제갤러리가 작품을 연결고리 삼아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에 동참했다. 꽃 한 송이와 함께 문성식 작가를 만났다.

약 1년 전, 국제갤러리가 보내온 전시 초대장은 책상 위 방치된 우편물들 속에서 단연코 눈길을 끌었다. 꽃과 이파리, 나비와 새가 있는 그림. 그리고 여기에 소개된 전시 제목, <Beautiful. Strange. Dirty.>. 그림 속 ‘예쁜 것’들을 두고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이라 명명한 제목이 선언처럼 다가왔기에 유심히 바라본 것 같다. 화가 문성식이 4년 만에 선보인 그 개인전에는 작은 크기의 드로잉 연작부터 캔버스의 가로 길이가 5미터 이상인 대형 작품까지, 상당한 양의 그림이 있었다. 관람객이 줄어들지 않았고, 전시는 애초 정한 기간보다 연장됐다. 시간이 지나 전시된 작품이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느리고 단단하게 가는 문성식의 다음 전시가 언제쯤 열릴지는 알 수 없었다.

문성식(B.1980), <주고 받다>, 2020, SILKSCREEN ON SOMERSET PAPER, 35 × 24.8cm, EDITION OF 300,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300개의 에디션으로 출시된 실크스크린 판화, ‘주고 받다’(2020).

그리고 <더블유>의 제15회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준비가 한창일 무렵, 국제갤러리와 문성식 작가가 이 자선 캠페인에 기부로 마음을 보태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문성식의 판화 작품 판매를 통해 기부금을 조성하는 건 여러모로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다. 판화는 1980년생인 문성식이 스물다섯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최연소 참여 작가’라는 묵직한 수식을 달고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최근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작가의 오리지널 피스인 작품 한 점이 컬렉터 한 사람의 품으로 갈 때, 판화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향한다. 캠페인의 목적이 ‘영향’임을 생각하면, 작품이 여러 사람의 품으로, 세상으로 나갈 때마다 캠페인과 미술이 만난 예술적 영향력이 퍼지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에 대해 전해 듣고서 아픈 이에게 꽃을 주는 일을 떠올렸어요. 캠페인과 꽃이라는 희망이 서로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작품명 ‘주고 받다’는 꽃을 담은 문성식의 그림 중에서 가장 간명하게 따뜻하다. 화면 중앙에 있는 꽃 한 송이와 꽃을 주고 받기 위해 뻗어 있는 두 손만으로, 이것은 메시지가 된다.

“개인전을 끝낸 후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한동안 푹 쉬고 싶었지만 잘 못 쉬었죠. 전시만큼 큰일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일들이 계속 이어지니까요. 저는 능수능란하지가 못합니다(웃음). 이제는 좀 쉬고 싶어요. 쉰다지만 궁리를 하는 거죠. 다음 작업으로 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요.” 문성식을 만나기 전날까지 그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대구아트페어에 낼 신작을 마무리했다. 신작은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 전에서 선보인 장미 연작 ‘그냥 삶’이 그간의 모색을 거쳐 조금 변화한 버전이다. “마티에르가 더 세졌어요. 스크래치도 늘었습니다.” 캔버스에 검은 칠을 하고 젯소를 바른 후 송곳, 커터 칼, 긁어낼 때 쓰는 헤라 등 날카로운 도구로 긁고 떼어내는 기법. 그 방식을 요즘 계속 진화시키는 중인 그는 두텁고 단단한 드로잉을 만드는 ‘쾌’가 있다고 말했다. 재료 면에서 채색보다 힘이 약하다는 인식이 있는 드로잉이 그의 화면에서는 두꺼운 상태로 존재한다. “그림의 소재는 일부러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제 삶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그림을 만드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오래 했어요.” 적지 않은 ‘현대미술’이 아리송한 방식으로 예술을 혼란스럽게 만들 때, 문성식은 보다 명징한 시각 언어를 골몰했다. 작품이란 누구에게나 내밀 수 있고 통할 수 있는 손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렇게, 동양과 서양의 역사 속에서 그에게 손 내민 것들이 있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와 프랑스 라스코의 동굴 벽화, 그리고 한국의 민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함보다 그 이전의 뭔가 조금씩 불완전한 것들에 매력을 느껴요. 저는 오래된 벽화들이 상당히 모던해보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벗겨진 색과 질감이 오히려 모던했고, 거기서 물질적인 영감을 받았죠. 또 하나는 동양화에서 찾았습니다. 고려 미술도 그렇고, 조선 미술에 훌륭한 것들이 많은데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 미학적 전통의 맥이 끊겼잖아요. 이 두 가지에서 인상적인 점을 취해 잘 섞으면, 새로운 화면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전에 못 보던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못 보던 정서, 못 맡던 냄새를 원했어요.”

<그냥 삶>, 2020, 캔버스에 혼합재료, 65.4 × 1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번 대구아트페어에 출품한 신작, ‘그냥 삶’(2020). 1년 전 개인전에서 선보인 연작보다 화면의 두터움과 스크래치가 강해졌다.

‘그냥 삶’, 이 연작 중의 하나가 ‘우편물로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눈길을 끈 바로 그 그림이다. 장미 연작을 눈앞에서 봤을 때, 잠시 동안 판단을 내리는 뇌 회로가 공백 상태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 알았지만, 그건 작품에 밴 서로 다른 속성과 층위 때문에 다가온 낯섦이었다. 장미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아름다움과 벌레가 꼬이고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난 모습의 공존. 화조도 같은 전통 민화를 떠오르게 하지만 민화가 머금은 누르스름한 기운 없이 화폭을 메운 민트색. 그리고 나이든 벽화처럼 화면에 가득한 요철과 질감, 이 모든 것들의 기묘한 조합. ‘못 보던 정서’가 맞았다.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동시에 존재해요. 아름다움과 추함도 그렇습니다. 예술에 대한 고민을 붙들고 살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들면, 환상에 빠져 있다가도 확리얼리티로 돌아와요. 삶에는 양가적인 면이 공존하죠. 그래서 ‘웃프다’라는 말도 생겼잖아요.”

문성식은 몇 년 전부터 부산에 내려가 살고 있다. 번아웃되는 자신을 거두기 위해,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자 한 선택이다. 그가 사는 빌라에 작은 정원이 있다. 거기서 장미를 심고 키웠다. 장미는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이후 ‘폭삭’ 주저앉았다. “5월 동안만 정말 화려하고 6월부터 주저앉기 시작해서 7월부터 추해집니다. 예쁘지만, 예쁘다는 말이 잘 나올 수 없는 거죠.” 삶에서 저절로 따라오는 소재란, 그가 살아온 과정과 이유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채택되는 것들이다. 문성식은 한국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담은 유화를 연필로 긁어내거나(‘그저 그런 풍경’), 매스컴을 통해 접한 이산가족의 이별 장면 중 ‘손’의 모습에 인상을 받고 그를 강조한 채색 드로잉을 그리기도 했다 (‘끌림’). 과거에는 연필 세밀화를 주로 그렸다. 의식의 명령을 손이라는 매개를 거쳐 왜곡 없이 보여주는 연필을 이용하면, 비교적 오염되지 않은 정신의 선을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정원에 만개한 장미와 나비와 벌레들에서 세상의 메타포를 발견하기까지, 그에겐 꽃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있다. “동네에서 우리 집이 유명했어요. 유일하게 꽃들이 피어 있는 집이었거든요. 아버지가 꽃을 정말 좋아하신 나머지 농사를 지으면서 밭에다 꽃을 심는 황당한 농부셨죠(웃음). 집 안에 희한한 화초가 많았고, 할머니의 산소는 백일홍과 영산홍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만남>, 2018, 캔버스에 젯소, 구아슈, 18 × 25.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캔버스에 젯소와 구아슈를 재료로 사용한 ‘만남’(2018). 마주 댄 얼굴에 거친 선들이 만들어내는 눈물과 세월의 흔적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회화라는 화면에는 그린 사람의 시간과 노동과 의지가 깃들어 있다. 붓, 연필, 송곳, 무엇을 쥐든 그걸 잡은 이의 움직임이, 육체가 반영된다. 문성식은 지나가듯이 스크래치를 ‘발버둥’이라고 표현했다. 그림의 두터운 층을 만드는 젯소 등의 재료가 가진 성질, 본인의 의지로 긁어내지만 물감의 마른 정도나 도구에 따라 모두 다른 흔적은 작가가 백퍼센트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과거에 연필 세밀화로 가학적일 만큼 섬세한 드로잉을 그렸던 문성식은 이제 우연성이 깃든 작업 방식을 가져간다. 그건 선 하나에 밴 습관과 미술 교육을 거치며 어쩔 수 없이 고착됐을 그 무엇이든 떨쳐내려는 그의 몸부림이다.

우리는 마주 앉아 그가 좋아한다는 겸재 정선의 ‘박연 폭포’를 검색해봤다. 정선, 박수근, 이중섭은 그가 작가로서 동경하는 이들이다. “이 폭포를 보세요. 폭포는 절대로 이렇게 생기지 않았거든요. 폭포 줄기를, 길을 낸 것처럼 단순화하고 약간은 우둔하게 그렸어요. 이것이 그의 해석입니다. 지금 봐도 촌스럽거나 올드하지 않은 현대적 해석을 한 거예요. 이 변이된 형태와 먹의 붓놀림이 이 시대가 추구한 미학의 정수를 보여줘서 아주 좋아합니다.” 가난한 시절을 살던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에는 소박미의 정수가 담겼다. 문성식은 그렇게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가의 그림, 즉 개인과 시대가 모두 녹아든 그림을 이상적인 예술로 삼는다. 그의 팬심이 담긴 작가 예찬을 듣느라, 동양과 서양, 현대의 재료와 고전 미술의 양식, 양가적인 가치들을 그림에 담는 그의 태도가 이 혼종의 시대 정신과 부합하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당분간 그는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하던 대로 갖은 식물과 새를 키우며 새로운 기법을 더 연 마할 것이다. “똑같은 선을 그린다고 해도 선마다 됨됨이가 다릅니다. 의식하거나 계획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선이 나오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그 됨됨이의 격차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지, 생기를 잃지 않으면서 창작을 이어갈지, 늘 궁리해요. 하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냥 하늘의 뜻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웃음). 참 미스터리하고 마법 같은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