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태피스트리
차세대 텍스타일 예술가들의 신선한 시도가 전 세계 갤러리와 미술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기꺼이 활용하는 작가부터 오로지 손의 감각을 따라 베틀을 돌리는 예술가까지, 직물을 다루는 방식한 또 다채롭다.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창작을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간다는 것. ‘실’로 새로운 세계를 엮어내는 태피스트리 작가들의 이야기가 도착했다.

PHOTO BY DAMIEN MALONEY・에디터 | ANTONINA GETMANOVA・헤어 | SOPHIA FLORES (FOR BUMBLE AND BUMBLE)・메이크업 | ROBERT BRYAN (FOR PAT MCGRATH AT THE WALL GROUP)・포토 어시스턴트 | MORGANNE BOULDEN.
올해 4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새 공간이 베일을 벗으면,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유려하게 굽이치는 유리 벽과 은은하게 빛나는 금속 커튼, 회색 물감을 겹쳐 바른 듯한 질감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벽까지. 거기에 LA 출신 아티스트 사라 로살레나(Sarah Rosalena)의 텍스타일 신작은 이 미래적인 공간에 정점을 찍는다. 미술관 레스토랑의 중앙 벽을 가로질러 배치한 약 8m 길이의 작품은 야외에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만약 작품의 풍경이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건 지구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르기 때문일 테다. 이 초현실적인 지형도는 나사(NASA) 위성이 촬영한 화성 이미지를 결합해 만든 작품이다. 로살레나의 텍스타일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얼음 빛이 연상되는 푸른색이나 사막 모래 같은 러스트 색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은 오래된 전통 직조 기법과 최첨단 기술이 결합된 디지털 창작물이다. 원목 직조기로 면과 울 원사, 합성섬유를 짜는 대신, 초대형 텍스타일을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산업용 기계로 제작했다. “직접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꼬박 1년 동안 바느질만 해야 했을 거예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직조기는 그렇게 큰 작품을 만들 만큼 거대하지도 않고요.” 섬유와 컬러, 패턴 샘플을 테스트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지만, 작품은 단 5일 만에 완성됐다. 멕시코의 소수 민족인 위샤리카 혈통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직조 기술을 배운 로살레나는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에서 전통 수공예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컴퓨테이셔널 크래프트(Computational Craft)’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 로살레나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직조 기술과 인터넷 시대의 도구를 결합해, 공예와 순수미술, 직조와 컴퓨팅, 그리고 고대 기술과 현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번성한 유럽 태피스트리 전통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당시 왕궁의 벽을 장식하는 데 쓰인 태피스트리는 회화 못지않은 위상을 지닌 예술로 통했다. 오늘날의 텍스타일 작품들은 유구한 전통을 바탕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규모의 실험적인 작업으로 변모해 미술관 곳곳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지난해 댈러스 컨템퍼러리 미술관에서 열린 태피스트리 기획전의 큐레이터 수 우(Su Wu)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주목하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제작 방식과 깊이 연결된 이 예술을 버리거나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반항적이면서도 신선한 표현 방식을 찾기위해 고민하고 있죠. 그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PHOTO | COURTESY OF JULIA BLAND.
미술계의 시선이 태피스트리로 향하는 것은 주로 여성의 노동이나 북미 원주민의 전통으로 치환되던 영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특히 조피 토이버아르프, 아니 알베르스 같은 20세기 텍스타일 예술가들이 재평가되고, 셰일라 힉스와 올가 드 아마랄처럼 살아 있는 거장들이 뒤늦게 인정받으면서 텍스타일 예술은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2024년 10월부터 2025년 3월까지 파리 까르띠에 재단에서 열린 올가 드 아마랄 회고전이 지난 10년간이 기관에서 열린 전시 중 최다 관객을 기록한 사실은 최근의 흐름을 수치로 증명한 셈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네 작가는 지난해 뉴욕 MoMA에서 막을 내린 순회전 <Woven Histories>에 소개되기도 했다.
퀼팅이나 뜨개질 같은 다른 텍스타일 작업보다도 직접 직물을 창조하는 위빙 기법, 즉 직조가 동시대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직조가 컴퓨터 문화와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직기는 가로 방향의 씨실이 세로 방향의 날실 위나 아래로 지나가는 2진 구조로 작동한다.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조제프 마리 자카르가 발명한 ‘자카르’ 직기는 펀칭 카드를 이용해 날실을 올리고 내리는 과정을 프로그램화한 기계로, 수학자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영감을 준 장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고로 해석기관은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앞서 보여준 고급 계산 장치를 말한다.

PHOTO BY KEITH OSHIRO・에디터 | ANTONINA GETMANOVA・메이크업 | AMY CHANCE (FOR KIEHL’S AT CELESTINE AGENCY)・포토 어시스턴트 | CHLOE NORRIS.
“기술도 일종의 연속체라고 생각해요.” 로살레나처럼 스레드 컨트롤러 2(Thread Controller 2, TC2)를 주로 사용하는 호벤시오 데 라 파스(Jovencio de la Paz)의 말이다. 스레드 컨트롤러란 작가의 스튜디오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디지털 직기다. “바느질용 바늘은 한때 뼈나 소나무로 만들었지만, 이후 강철 바늘로 바뀌었고, 그다음에는 재봉틀이 등장했죠. 이 모든 기술은 인간의 창의성과 발명의 표현입니다.” 오리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데라 파스는 최근 TC2를 활용해 단색의 와플 조직 텍스타일을 제작하고 있다. 모노톤의 작품은 조각가 루이스 네벨슨의 검정 목조 부조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일반 직조기로 작업할 경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일 정도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이유로 데 라 파스는 TC2용 특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컴퓨터 엔지니어와 협업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디지털 직기와의 ‘협업’이라고 소개한다. “툴을 이용해 구성을 잡긴 하지만, 실의 종류나 색, 소재 같은 근본적인 요소는 모두 제가 선택합니다. 이러한 조합이 독특한 하이브리드 미학을 탄생시킨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키보드의 단축키를 번갈아 누르며 기계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천 년전의 직기를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베틀을 손으로 움직여야죠.”

PHOTO BY KEITH OSHIRO・에디터 | JAX CHEN・헤어&메이크업 | LAURA BUENO・포토 어시스턴트 | CHLOE NORRIS
텍스타일 예술가들은 보통 서로 알고 지내는데, LA에서 활동하는 작가 크리스티 마슨(Christy Matson)은 과거 시카고 미술관에서 데 라 파스를 가르친 스승이다. 그는 회화적인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TC2를 고집한다. 텍스타일에서 그러데이션이나 음영을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고난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이에 작은 그림을 그린 뒤, 그 회화를 포토샵으로 다듬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덕분에 직조로 탄생된 풍경은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강력한 도구들 사이에서 과연 직조가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존속할까? 이 질문을 제기한 미국의 텍스타일 아티스트 퀄리샤 우드(Qualeasha Wood)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전개한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 휴학계를 낸 뒤 쉬고 있던 어느 날, 우드는 할머니 집에서 담요(사촌들과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 프린팅된 담요로, 이모가 온라인으로 주문해 선물해준 것이다)를 덮고 있다가 작업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안한 방법은 이렇다. 먼저 포토샵으로 작업한 디지털 콜라주를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공장으로 보내 직물로 제작한다. 그리고 완성된 직물을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가져와 손으로 구슬 장식을 달거나 자수를 놓아 마무리하는 식이다. 우드는 외부에 직물 제작을 맡긴 대가로 한 가지 즐거움을 발견했다. 바로 작품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컬러 팔레트는 제한적이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말이다. 한번은 그녀가 직물 공장에 적어보낸 감사 메모를 주문 중 하나로 착각해 태피스트리 한쪽 구석에 ‘감사합니다 :)’라는 문구가 그대로 적혀나온 일도 있었다.

PHOTO BY KEITH OSHIRO・에디터 | TYLER VANVRANKEN・헤어 | RAINA LEON (FOR AMIKA HAIRCARE AT SEE MANAGEMENT)・메이크업 | AYAKA NIHEI (FOR DIOR BEAUTY AT WALTER SCHUPFER MANAGEMENT)・포토 어시스턴트 | LIA ELMS・프로덕션 어시스턴트 | JEFF CECERE.
디지털 이미지는 우드의 작품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주제다. 주로 셀피나 스크린 캡처 이미지, 애플의 로고, 팝업 오류 메시지 등 쉴 새 없이 우리의 뇌를 가득 채우는 것들을 포착하고,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해 보여주는 형태로 등장한다. “저는 온종일 스크린샷을 찍어요. 노트북이 멈춘 화면도, 휴대폰이 버벅거리는 순간도 캡처하죠.” 일례로 지난해 9월, 우드는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라는 전시를 선보였다. 그녀가 갤러리 안에 설치한 침대에서 끊임없이 쇼츠를 보는 동안, 관람객들은 옆에 놓인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 휴대폰 화면을 지켜보는 퍼포먼스였다.
물론, 방대한 컨템퍼러리 위빙 세계에서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이를테면 1980년대 비디오 게임을 연상케 하는 픽셀 이미지를 그리는 멀리사 코디가 그렇다. 4대째 나바호족의 직조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는 조상들의 방식 그대로 직기를 이용해 작업한다. 텍스타일 예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디드릭 브래킨스 역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미묘한 색감을 얻기 위해 직접실을 염색한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예술가들은 특유의 리듬감 있는 반복이 시간의 흐름을 바꾸거나 잠시 멈춘 듯한 상태로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작업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에요. 마치 세상의 모든 시간이 제게 주어진 것 같죠.” 지난해 코네티컷 리지필드의 울드리치 컨템퍼러리 아트 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연 브루클린 출신 아티스트 줄리아 블랜드(Julia Bland)의 말이다. 블랜드는 직물 위에 직접 채색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놓인 작품을 만든다. 그녀의 작업은 패브릭으로 구성된 커다란 마름모 형태와 빈 공간이 거미줄 같은 삼각형처럼 보이는 구조가 특징이다. 그 때문에 종종 20세기 직조의 선구자 레노어 토니의 ‘오픈 워프’ 직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PHOTO BY KEITH OSHIRO・헤어 | GINGER LEIGH RYAN (FOR HAIRSTORY AT MUSE CREATIVES NY)
메이크업 | MOLLIE GLOSS・포토 어시스턴트 | LIA ELMS.
아동 학대나 가정 폭력 같은 민감한 주제를 자기만의 서사로 풀어내는 예술가 에린 M. 라일리(Erin M. Riley) 역시 디지털 기술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라일리는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전통 직기로 사진처럼 정밀한 태피스트리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뉴욕 PPOW 갤러리 전시에서 직사각형이 아닌 불규칙한 형태의 직조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하나인 ‘High Miles But Runs Good’은 그녀가 고등학생 때 일기장에 붙여둔 신문 광고를 그대로 옮겨온 작품이다. 내용은 ‘1995년식 혼다 시빅, 1인 소유, 상태 양호, 주행거리 8만9,000마일, 가격 5,000달러’가 전부지만, 신문에 사용된 폰트뿐 아니라 광고를 뜯어내면서 생긴 종이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까지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라일리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으며, 디지털 직기를 쓰지 않아도 작업 속도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텍스타일 작업이란 일종의 ‘생산적인 딴짓이자 스스로를 자극하는 행동’으로, 파괴적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분주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취리히에서 태어나 LA에서 활동하는 작가 크리스티나 포러(Christina Forrer)에게도 음악처럼 느껴지는 직조 특유의 리듬은 매력적이다. 포러의 작품에는 스위스 동화 같은 풍경에 만화 스타일로 표현한 마녀와 광대, 수많은 숲속 동물이 등장한다. “저에게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찾는 순간이에요.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좋아요. 그림을 그릴 때처럼, 어느 순간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라일리와 포러는 모두 엄격한 의미의 태피스트리 기법을 따르고 있다. 한 줄의 직조 과정에서 여러 실을 사용해 패턴을 만들어내는 전통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태피스트리는 벽에 걸기 위해 만들어진 대부분의 텍스타일 예술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화려하고 퀴어적 코드가 묻어나는 프린지 커튼 작품을 만드는 존 폴 모라비토(John Paul Morabito)는 2016년 무렵부터 자신의 작업을 태피스트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이 용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금기어처럼 느껴졌거든요.” 수 우는 댈러스 전시에서 더욱 확장된 개념을 제시했다. ‘태피스트리란 반드시 직물일 필요도, 벽에 거는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이미지가 ‘캔버스’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된 형태의 작품을 의미할 것.’ 다시 말해 어떤 표면 위에 그려지거나 덧붙인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와 지지체가 본질적으로 하나가 된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다양한 재료를 실험해보고 싶은 욕구는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는 작가들과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를테면 줄리아 블랜드는 작품에 아기 담요나 침대 시트 조각을 끼워 넣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삶이 작업 속으로 ‘넘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크리스티 마슨은 남은 데님 원단을 작품에 활용하기도 하고, 사라 로살레나는 실 대신 원주민 바구니를 만들 때 흔히 쓰는 긴 소나무 바늘을 사용해 자신의 창작물과 대지를 연결시켰다. “소나무 바늘을 쓰면 제 작업이 살아있는 존재로, 생명의 일부처럼 느껴져요.”


브라질 출신으로 현재 LA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클라리사 토신(Clarissa Tossin)은 아예 직기를 사용하지 않는 작가다. 대신 지구상에서 풍부한 자원 중 하나인 ‘쓰고 남은 아마존 택배 박스’를 재료 삼아 그 조각들을 손으로 직접 엮는다. 그 때문에 대형 직조 작업 하나를 완성하려면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골판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존강 유역에서 벌어지는 삼림 파괴와 착취를 마주하고 환경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다. 환경은 토신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당일 배송과 초고속 다운로드가 일상이 된 시대에도 텍스타일 예술가는 온몸을 쓰며 수행자의 길을 걷는다. 때로는 허리가 부러질 듯한 고통이 따르지만, 그 헌신 끝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그만큼 직조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시간을 새기는 예술이기도 하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으로 남고, 직기는 그 찰나를 기록하는 장치가 된다.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텍스타일 예술은 결국 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이 언젠가 풀리거나 해체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스웨터에 풀려나온 올 하나가 옷 전체를 풀어낼 수 있듯, 손으로 지은 작품 어딘가에도 늘 그런 실 한 가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예술 형식보다 태피스트리가 유난히 친밀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PHOTOS | © CHRISTINA FORRER,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CORBETT VS. DEMPSEY, CHICAGO, AND PARKER GALLERY, LOS ANGELES, PHOTO BY JOSHUA WHITE. FIELD STUDIO PHOTOGRAPHY,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TRICIA SWEETOW GALLERY.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BRICA WILCOX.
- 글
- JORI FINK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