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으로 돌아온 씨피카 화보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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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에서 탄생해 그 속살을 더듬는 전자음악. 불가해한 명령으로 가득한 주술을 읊조리듯, 신원 미상의 실험적 음악을 펼치는 뮤지션 씨피카가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꽃무늬 블라우스, 주름 스커트, 검정 부츠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어젯밤 야심한 시간에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하나를 염탐했다. 스피노사우루스, 마우 소니아 등 멸종 공룡이 심해를 유영하는 사진이었지? 덕분에 꿈자리가 좀 사나웠다. 꿈을 꿀 정도였다고?(웃음) 희귀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자주 찾아본다. 스피노사우루스는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인데 그간의 복원도에서는 네 다리가 굉장히 짧은 모습이었다. 최근 학술지를 통해 사실 스피노사우르스가 물속에서 헤엄쳐 다닐 수 있는 긴 꼬리뼈를 가졌고, 그래서 육지가 아닌 바닷속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밝혀졌다. 그런데 진짜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예쁘지 않나? 최근엔 엄청나게 크고 투명한 심해 오징어의 사진도 저장했다. 심지어 사이클롭스처럼 외눈박이다. 뭐랄까, 기형인데 그냥 좋다. 탄생지가 ‘심해’인 것들은 빠짐없이 좋아하는 편이다. 심해야말로 완전한 미지니까.

최근 트위터도 시작했지? 두 번째 게시물로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판화 한 점을 올리곤 이런 말을 남겼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날 웃게 해”라고. 여름에 발매할 앨범 커버를 그림으로 채우고 싶어서 일러스트를 찾던 도중 발견한 작품이다. 예전부터 윌리엄 블레이크를 좋아했는데, 다시 보니 너무 아름다운 거 있지.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 속 상상력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대개 그런 작품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유행을 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작품들. 현대미술이 막 태동했을 당시 여러 예술가가 뭉쳐 과거의 사조를 부수고 다같이 판을 바꾸려 했을 때 나타난 ‘미친’ 에너지도 너무 좋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과학자 아이작 뉴턴을 ‘최고의 악당’이라 부르고 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과학, 이성주의의 반대편에 서서 한평생 욕망, 무의식, 충동을 그려나간 윌리엄 블레이크에겐 뉴턴이 눈엣가시와도 같았겠지. 그런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신이 추구하는 어떤 ‘이상향’에 가깝나? 고민된다. 난 과학도 정말 좋아하거든. 과학을 거의 종교처럼 믿는 편이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뉴턴의  대편에 서서 그를 악당이라 불렀다는 사실은 좀 슬픈데? 난 둘의 교집합이 좋다.

과학을 신봉하는 이유는 뭔가? 궁금한 것에 답해주니까. 사람들이 연예인 뉴스를 업데이트하듯 나는 새로운 과학 연구 결과가 밝혀지면 그걸 가십 좇듯 찾는다.

최근 본 뉴스는 뭐였나? 스페이스X가 인류를 달에 보내 는 프로젝트를 위해 달 착륙선 개발을 추진한다는 것.

좀 뜬금없지만, 방금 얘기를 듣고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가 1988년생 전자음악 뮤지션 그라임스와 열애 중이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진짜 너무 화난다. 내 이상형이 일론 머스크다(웃음). 한때 그라임스 팬이기도 했는데, 열애 소식을 접하곤 한동안 친구들에게 그 라임스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심지어 음악도 듣지 말라고.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뉴턴이 악당이라면, 당신의 악당은 그라임스인가?(웃음) 에이, 설마(웃음). 나에게 악당은 순수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상대에게 순수한 마음을 줬다가 그게 다른 방향으로 이용된 경험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함을 너무 쉽게 잃는다는 거다. 순수함은 한번 잃는 순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계속해서 깎이는 느낌이 든달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는 순수하다고, 이걸 다치게 하지 말라고,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고 호소하는 편이다. 입 밖으로 자주 꺼내면 자연스레 단단해질 거라 생각해서.

별 모양의 구조적인 아우터와 부츠는 한킴 제품. 안에 입은 핑크색 후드 재킷과 스커트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4월 중순 당신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곧 발매될 정규 앨범을 설명하는 내용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번 앨범은 내가 경험한 각자 다른 의미에서의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 최근 사랑을 탐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지난 1년 사이 여러 종류의 사랑을 체험했다. 거기엔 인간에 대한 사랑도 있고, 나아가 꿈, 과거, 미래, 물체, 혹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종류의 사랑도 있다. EP 1집에선 주로 과학을 말했다면, 이번 앨범에는 사랑의 다양한 단상과 메타포를 담았다. 이전에 발매한 ‘OOZOO’, ‘DOOROOGO’, ‘말하려고 했던 말’ 역시 사랑을 말하는 트랙이었다. 다만 그때 그린 사랑과 지금 말하려는 사랑은 결이 많이 다를 거다. 과거엔 사랑이 예쁘고 반짝이기만 한 거라 생각했고, 난 항상 그런 감정에 중독되어 있었다. 지금에 와선 더러운 것, 징그러운 것, 기괴한 것, 어두운 것 또한 사랑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든다기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경험을 겪었다. 아무래도 사랑의 어두운 면을 많이 목격하게 된 것 같다. 다만 그 어두움을 외면하거나 질타하지 않고 그것마저도 사랑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많은 곡을 썼다.

사실 한국 대중가요를 통틀어 산울림만큼 다양한 사랑을 말한 뮤지션은 없다고 생각한다. ‘옷 젖는 건 괜찮아’ 라든지 ‘왜! 가’ 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정말 주옥같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번 앨범에 산울림의 ‘청춘’을 리메이크 한 곡이 있더라. ‘청춘’은 2016년 유튜브를 뒤적이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시험 삼아 만들어본 곡이다. 당시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에 음원을 올렸는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다. 이해가 안 갔지. 지금 들으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별로거든(웃음).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청춘’을 들려 주고 싶어서 7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이번 앨범에 넣게 됐다. 작업을 끝내고도 몇 달이 지나면 ‘이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라는 오기가 발동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곡이다.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하면 죽어도 못한다(웃음).

원작자 김창완은 씨피카의 ‘청춘’을 어떻게 들을까? 글쎄. 일단 김창완 선생님을 직접 만나긴 했다. 리믹스를 발매하려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해야 해서 회사로 음원을 보냈는데 선생님이 듣곤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영광스럽게도 술자리도 함께했다. 그때가 마침 내가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던 시기였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음악 만들겠다고 막 한국에 들어온 시점이었거든. 3~4년 전 얘기다. 오로지 음악만 바라본 채 엄청난 각오를 하고 아무런 연고 없이 한국에 왔는데, 막상 오니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활동은 하고 싶은데 일은 안 들어오고. 그러다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너 노래하는 거 너무 좋고 예쁘다고,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땐 예쁘게 불러야지 슬프게 부르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이때부터 감정을 저만치 뒤로 하고 담백하게 부르는 창법을 연습했다.

산울림의 수많은 트랙 중 ‘청춘’에 도전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유학 당시 시청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작점이었다. 동생이 하도 열심히 보길래 나도 오며 가며 힐끔댔는데 마침 OST로 가수 김필이 리메이크한 ‘청춘’이 흘렀다. 그때가 막 음악을 독학으로 배우던 시절인데 그걸 듣곤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나도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에 OST로 참여해야지?’(웃음)

아까 순수함이 중요하다고 힘줘서 말하지 않았나? 음악을 만든 동기가 어째 하나도 안 순수하다(웃음). 이보다 순수할 순 없지!(웃음) 그땐 모든 게 쉬울 줄 알았다. 음악을 만들어 공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라 믿었다. 무조건 뜬다, 이거 들고 한국으로 간다, 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던 시절이다.

산울림 외에 한국 대중음악 가수 중에 특히 아끼는 이가 있나? 어릴 때 이정현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언니네 이발관도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더는 활동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좀 놀랍다. 당신이 1990년대 한국을 풍미한 이정현을 즐겨 듣고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당신의 음악에선 어떠한 국적도, 성별도, 연령도 느껴지지 않아서다. 그건 아마 내가 ‘짬뽕’이어서일 거다. 소위 사춘기이자 정신적으로 가장 큰 혼돈을 겪을 때인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다 4년 전 오로지 음악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라온 환경이 워낙 ‘하이브리드’다. 아직까지 완벽한 한국어도, 완벽한 영어도 구사하지 못한다. 짬뽕인 것은 꼭 언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먹는 것, 입는 것,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 행동하는 것, 심지어 손의 사소한 제스처까지 모두 짬뽕이다. 그런데 음악에서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나도 좀 의외다. 뭔가 좋다. 그 피드백. 나를 두고 ‘여성스러워’, ‘예뻐, ‘가냘퍼’라고 말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딱히 칭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여성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느껴져서.

주얼 장식 꽃무늬 패턴 코트는 8 몽클레르 리처드 퀸 제품.

미국에서 광고 미술을 전공하며 대학을 마쳤단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인생의 방향키를 갑자기 음악으로 돌리게 만든 사건이 있었나? 미국에 ‘판도라 라디오’라고 디제이의 진행 없이 하루 종일 음악만 스트리밍되는 라디오 서비스가 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워시드 아웃의 앨범 <Witinin and Without>이 흘렀는데, 듣고서는 말 그대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슬픈데 희한하게 댄서블하고 전자 음악인데 어딘가 따뜻한 구석이 있는, 굉장히 상반된 요소가 밸런스를 이루는 음악이었다. 그때까진 전자음악을 전혀 알지 못했고, 기껏해야 팝이나 재즈만 듣는 수준이었거든. 이후 워시드 아웃의 라이브 영상을 찾기 위해 유튜브를 뒤적였는데 한 댓글이 시선을 당겼다. ‘죽기 전 침대에서 듣고 싶은 음악’이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 그때 처음으로 음악가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

당신의 음악적 오리지낼리티는 어디서 길어왔다고 생각하나? 무의식적으로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다. 엄마가 클래식, 특히 오페라를 정말 좋아했다. 두세 살 무렵부터 집에선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엄마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워낙 히피 같은 분이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것은 전부 엄마에게 배웠다. 오죽하면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Just Do It’일 정도니까(웃음). 내 음악에는 항상 ‘자연’의 에너지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걸 ‘흙냄새’라고 번역한다. 컴퓨터상의 가상 악기로 작업할 뿐만 아니라, 딱히 자연의 소리가 직접적으로 음악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어딘가 ‘오가닉’한 면이 음악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인터뷰에서 영화 음악에 도전하고 싶다는 언급을 자주 했다. 개인적으로 음악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영화가 있나? 감히 말하자면 <컨택트>. 평소 정말 존경하는 요한 요한손이 <컨택트>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했다고 알고 있는데, 나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재창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치 ‘청춘’을 그런 마음으로 작업했듯이.

머리에 쓴 꽃무늬 재킷, 도트 무늬 스커트, 치마처럼 연출한 붉은색 패턴 재킷은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제품.

지난 3월 막을 내린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올해의 작가상 2019>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난민 문제를 마치 SF 영화처럼 다룬 김아영 작가의 영상 작품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2019)에 음악으로 참여했다. 어떤 경험이었나? 진짜 재미있었다. 준비 기간이 부족해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영상의 주인공인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가상의 광물로 이뤄진 데이터 덩어리다. 그가 데이터이기 때문에 중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던지기도 하고,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 캐릭터 ‘어머니 바위’가 등장하는 신에선 내 목소리로 허밍을 추가하는 식으로 굉장히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진행했다. 이를 작업하던 당시 한창 우울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김아영 작가가 굉장히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전시가 끝나고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만남이 성사되진 않았다. 작가님 언제 초대해주실 건가요?(웃음)

음악가가 아닌 당신을 상상하면, 어딘가 현대미술가로 활동하며 전시회를 개최하는 당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 음악이 아니었으면 미술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그랬다면 아마 피에르 위그, 히토 슈타이얼 스타일의 작업을 쏟아냈을 것 같다.

영화 <컨택트>, 미술가 피에르 위그와 히토 슈타이얼을 경유해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에는 어떠한 공통된 결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국적인 것. 나 스스로도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또 계속해서 되고 싶은 무언가에 ‘이국’이라는 단어가 늘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당신의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은 어떤 캐릭터를 가진 사람일 것 같나?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내 음악을 즐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말하는 거다. 그리고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

당신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국에서 온 것에 이끌리는 반면, 당신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미술이나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피력하면서 뚜렷한 자의식을 쌓아가는 사람들이네? 오, 신기하다. 그런 것 같다. 다만 모든 사람이 내 음악을 좀 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자음악이 그렇게 어려운 장르는 아니다. 정말 아무나 내 음악을 편하게 들었으면 좋겠다.

어떤 ‘신비주의’가 당신을 감싸고 있는 것 같다. 그 틀을 깨는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해보겠다. 우리는 어딜 가면 당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파충류 페어?(웃음) 며칠 전까지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파충류 페어에 갈 생각에 한창 들떠 있었다. 페어에 같이 갈 친구까지 전부 골라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코로나19 로 취소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못 갔다. 조만간 파충류 페어가 개최된다면 그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패션 에디터
김민지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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