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ost Transparent You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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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름으로 보낸 20년에 가까운 시간, 다정다감한 기운, 사려 깊음, 두려움과 기대를 모두 안은 채 눈앞에 있는 남자. 진솔한 공유를 투명하게 들여다본다.

채색한 듯 맑고 선명한 꽃무늬 셔츠와 팬츠는 Louis Vuitton 제품.

회색 재킷과 크루넥 니트, 검정 팬츠는 모두 Louis Vuitton 제품.

LA 아트 신의 초석을 세우고 무려 50년 동안 지역 예술가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해온 노 작가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공유와 <더블유> 팀은 베니스 비치 앞에 자리한 화가 빌리 알 벵스턴의 건물 한 채, 집과 아틀리 에와 수장고를 겸한 공간 구석구석을 빠르게 점령했다. 공유가 겪어본 적 없는 화보 콘셉트이면서 <더블유>의 아트 이슈에 걸맞은 컬러풀한 회화들의 집. 이곳은 작가의 절친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비롯해 오래전 이 지역의 힙스터들이 곧잘 모여 놀았다는, ‘팩토리’ 같은 장소다. 출국 전, 작가 측에 ‘대한민국 톱스타’와 함께 간다고 말해놓은 터였다. 수십 년간 할리우드 인근의 화려한 파티를 경험하며 많은 셀렙들을 스쳐 보냈을 작가 부부 에게도 공유는 흥미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당신, 무비 스타인가요?”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부인은 스태프 무리 속에서 누가 봐도 ‘바로 그 톱스타’인 공유의 정체를 확인하며 남편과 공유를 나란히 앉혀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빌리 알 벵스턴은 화보 촬영을 위해 자신의 공간을 이틀간 내어준 일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좋았음. <더블유 코리아> 팀과 만난 건 멋지고도 편안한 경험이었음. 매력적인 녀석 공유는 언제나 환영. 물론 <더블유 코리아> 팀 모두 언제나 환영. 알로하.”

주머니 장식 니트 재킷과 검정 트라우저, 슈즈는 모두 Louis Vuitton 제품.

유유자적한 LA 베니스 비치의 분위기는 최근 2년간 공유가 보낸 시간과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결이 비슷하다.’ tvN <도깨비>를 마친 이후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기까지, 2년 반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달리기보다 멈추고, 일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에 몰두한 날들. “저에게 필요한 건 그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여행을 떠난다거나 뭘 하는 게 아닌,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혼자만의 시간요. <도깨비>가 잘되고 환호를 받으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한편,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든 날이 시작됐어요. 누군가에게 사랑과 갈채를 받을 때도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그러기에는 제가 소진된 상태였죠. 그때 저는 좋은 반응 앞에서 전혀 즐기지 못했어요.”

시청자는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는데, 그 무렵 공유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떠올려야 할까? 구름 위에서 맹렬하게 달리다가 기차가 멈추고 모든 게 끝나도 아직 영혼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듯한 얼얼함 말이다. 스물아홉에 만난 <커피프린스 1호점> 때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는 그의 서른아홉에 <도깨비>가 있었다. “<도깨비>의 영향은 더 묵직했어요. 누가 봐도 좋은 상황인데 힘들었던 제 상태를 남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죠.”

느린 호흡으로 작품을 소화하던 공유는 2016년 영화 <남과 여>, <부산행>, <밀정>으로 연달아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 러시의 성대한 끝을 2017년 초 <도깨비>가 장식했다. 대중의 환호를 자기 노력의 응당한 대가로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가 이미 스타였다 하더라도 작품이 대성공했을 때 썰물처럼 닥치는 여러 현상으로 인한 시차가 생긴다. 게다가 공유는 도깨비 신이라는 역할에 흠뻑 빠졌던 듯하다. 김은숙이 그런 작가다. 보는 사람도, 연기하는 사람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치 넘치는 ‘티키타카’식 콩트와 배우가 오열하는 정극 요소를 한 작품 안에 마음껏 버무리는 그 특출난 작가는 도깨비라는 제목 앞에 ‘쓸쓸하고 찬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놨다. “제가 했던 작품 중에 가장 처연하고 외로운 캐릭터였어요.”

크림색 가죽 코트와 셔츠, 오버사이즈 팬츠, 랜드스케이프 앵클부츠는 모두 Louis Vuitton 제품.

공유를 떠올리면 사라지지 않는 생각은 그에겐 위화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배우의 길을 가기 위해 잘생긴 얼굴을 숙명처럼 넘어서야 했던 장동건,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최고야’라고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차라리 희화화하길 택한 정우성, 캐릭터의 이미지와 실제의 삶을 포개어 언제까지나 근사한 남자의 표본으로 남을 이정재. 공유 앞세대의 남자 스타들에게는 거리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화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공유의 출연작을 볼 때면 스타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잊히곤 한다. 12 등신이지 않을까 싶은 작은 두상과 큰 키에 양감 있는 이목구비, 한국 남자 연예인 중에서 손에 꼽게 예쁜 몸(개인의 취향임을 감안하더라도 공유처럼 보기 좋은 근육과 훌륭한 비율의 몸이 흔치 않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배우의 큰 무기인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 특징들을 가지고도 공유가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건 사람에게서 풍기는 다정다감함과 상냥함 때문일까? 그래선지 공유는 특별해도 거리감이 있기보다는 ‘대중적’이다. “굉장한 칭찬으로 들립니다. 기분 좋은 소리예요. 제가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대중성이 없는 존재라면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잘 듣지 않을 거예요. 대중적인 거라면 이상하게 거부감을 느끼던 어릴 때가 있었어요. 이제는 그게 얼마나 큰 장점이고 좋은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죠.”

검정 퐁 뇌프 셔츠와 워크 쇼츠, 볼테르 더비 슈즈는 모두 Louis Vuitton 제품.

허리 라인의 끈 장식이 특징인 파스텔 색상 재킷과 와이드 팬츠는 Louis Vuitton 제품.

해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회자될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김지영에게 별로 공감 못하겠다’는 시선을 보내는 의견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남편이 공유인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 한 문장에 극과 현실의 시점이 뒤섞인 이 진지한 우스갯소리를 생각해봐도, 이 영화가 남편 대현 역할로 공유를 캐스팅한 건 현명한 선택이다. 그는 작품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스타 배우 이면서도 정유미의 옆에서 스타라는 ‘뿜뿜’ 없이 받쳐줄 수 있는 존재니까. “저는 예전부터 현실감 있는 일상적인 연기와 작품의 톤을 좋아했어요. 한마디로 생활 연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작품에 임할 기회가 흔치 않았어요. 쉬면서 쌓은 에너지를, 반갑게도 제가 좋아하고 그리워한 무드의 작품에 쓰면서 만끽할 수 있었죠. 대현이라는 인물이 머금은 감정 자체는 피로도가 높을 수 있지만, 마음이 편안한 현장이었어요.”

미혼의 남자는 시나리오를 보고 네 형제 중 장녀인 엄마를 먼저 떠올렸다. ‘당신은 날 어떻게 키우셨는지, 어릴 때의 우리 집은 어땠는지’ 등등을 물으며 난데 없이 당황한 질문들을 던진 그는 엄마의 삶과 자신의 성장사며 가족 분위기를 되짚기도 했다. “엄마가 영화를 보며 많이 우신 것 같더라고요. 개봉 후 집에 내려 갔더니 말씀은 많이 안 하시고 그냥 저를 안아주셨어요. 지금의 저를 볼 때, 부모님이 속된 말로 저를 후지게 키우신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집에서는 다행히 누나와 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웬만큼 밸런스를 유지하며 자랐다 싶고요.” 혹시 남편 대현이 너무 스위트하게 비치는 건 아닌지 연기를 점검했던 공유는 어쨌든 감독과 이 영화를 믿었다. 육아에 지친 지영을 걱정하는 선량한 대현이 나름 그녀를 ‘도울 때’, 지영이 부지런히 빨래를 개는 동안 대현이 맥주 한 캔을 마실 때 등. 영화는 적지 않은 이들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 풍경을 무심하게 보여주며 거기서 이상함을 깨닫게 한다. 산성이냐 염기냐를 몸소 증명해주는 리트머스 종이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대립되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82년생 김지영>은 매우 온건하며 보편적인 이야기다.

파스텔 톤 티셔츠와 실루엣이 여유로운 크리즈 팬츠, 속이 비치는 키폴 50 반둘리에 백은 모두 Louis Vuitton 제품.

부드럽게 워싱한 오버사이즈 데님 셔츠와 카고 팬츠, 트레이너 스니커즈는 모두 Louis Vuitton 제품.

유능한 매니저와 스태프가 스타를 둘러싸고 있어도 결국 작품을 선택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본능적인 감각과 자기 ‘주제’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이성이 만들어내는 그 선택 말이다. “저는 영화를 볼 때 저에게 메시지든 무엇이든 던져주는 작품을 좋아해요. 보고 나면 금방 잊히는 게 아니라, 계속 말을 걸어오는 작품.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것 중에 찾을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연출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작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기획에는 관심이 있어요. 각 분야의 유능자들을 취합해 이야기의 판을 꾸리고, 저는 배우로서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그 일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저의 대중성이라는 게 여전히 있을 때,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을 때 말이에요.”

잠시, 공유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디어>에 관한 소감을 나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공유가 좋아하는 취향 중에서 물론 가장 센 스타일이다. 이를테면 그렇게 관객의 감각을 곤두서게 만드는 장르나 악의 성향이 있는 인물 등등은 지금껏 공유를 비껴갔다. “그런 기회가 생기면 재밌을 것 같아요. 제 얼굴의 좌 우 느낌이 완전히 다른 거 아세요? 아주 비대칭적인 얼굴이거든요, 눈도 짝눈이고.” 그러니까 배우의 결정적 재료인 마스크를, 누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으로 바라보고 잘 사용해준다면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공유의 미래를 말하며, 역설적으로 그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6년 전 개봉한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를 왜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은 걸 까? 버림받은 특수요원의 처절한 외로움과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수려한 액션은 또 다른 공유를 목격하는 놀라움이었는데. 이윤기 감독과 공유와 전도연이 합심해준 게 관객으로서 마냥 고마웠던 멜로물 <남과 여> 속 남자는 감정은 있으나 용기가 부족한 인물이었다. 더 격정적이어도 좋았겠지만, 눈 쌓인 핀란드의 적요를 영화의 무드로 연결한 그 ‘어른들의 영화’가 가진 기품은 겨울이면 다시 떠오르곤 한다.

그는 자신이 다수의 여성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는지 얼마나 의식할까? 지금쯤이면 공유라는 친근하고 멋진 이미지를 이유 있게 배반해도 된다고 판단할까?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미지를 배반한다는 개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써보지 않았는데, 다만 제가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악역이나 조금 다른 캐릭터가 지금껏 저에게 오지 않았을 뿐이죠. 의식하는 게 좀 필요할까요?” 그는 오히려 되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앞으로 조금 다른 선택을 하려면 신중할 필요는 있겠죠.

“이 이상 신중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저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거든요. 조금은 덜 신중하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잘 안 되 는 일에 자기 최면을 거는 듯 내뱉은 이 마지막 말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일단 2020년이 더는 새해로 느껴지지 않을 무렵, 공유와 박보검이 출연하는 영화 <서복>이 개봉한다. 대중성을 견고하게 장착한 공유가 생각과 생각의 결과로 이루었을 그 영화는 충무로 기대작이기도 하다. “화면에 보검이가 잡히면 예쁘고, 제가 잡히면 피폐해 보일 거예요(웃음). 다소 어두운 인물이라 광대가 부각되도록 살도 많이 뺀 채 촬영했고. 그 정도도 저의 좀 다른 얼굴로 보이면 좋을 텐데… 판단은 관객이 하겠죠.”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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