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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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꼭대기로 향하면 자코메티의 조각이 형형하게 반긴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막 비행 준비를 마친 우주선을 연상시켰다. 이제는 게리의 시그너처로 통하는 곡선 유리가 선비의 도포 자락처럼 너울거렸는데, 특히 상공과 맞닿은 빌딩의 4층부에서 그 디테일이 유독 빛났다. 건축의 최상위층이기도 한 4층은 여러모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공간이다. 가로수가 늘어선 압구정로가 훤히 내다보이고, 게리가 심어놓은 디테일을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해왔던 루이 비통은 이곳을 다채로운 미술 전시가 이뤄지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로 단장하기로 결정했다.

1031일부터 내년 119일까지, 루이 비통은 4층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을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 내어주었다. 재단이 소장한 컬렉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프로젝트 ‘미술관 벽 너머’의 일환으로, 개관 전시 작가로 자코메티를 택한 것이다.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을 통해 다시 활기를 찾은 파리의 실존적 고독을 교차시킨 작품 ‘걸어가는 세 남자’(1948), 자코메티의 조각 중 가장 큰 스케일로 알려진 ‘키가 큰 여인Ⅱ’(1960)를 비롯해 대표작 총 8점으로 구성됐다. 잘 알려져 있듯 자코메티는 막대기처럼 얇다 못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 인물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다. 1950년대부터 지금의 우리가 익히 알 듯 최소한의 선만으로 구성하는 특유의 자코메티 스타일이 정립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1963년 미술사학자 장 클레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거리를 걷는 남자는 무게가 없다. 죽은 남자나 의식이 없는 남자보다 훨씬 더 가볍다. 걷는 남자는 자신의 다리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루엣을 다듬어서 이런 가벼움을 만들고자 한다.”

자코메티가 남긴 조각은 여전히 숨이 붙은 채 전 세계 곳곳을 돌며 다양한 사람과 마주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코메티는 유년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평생을 시달리며 살았다. 이러한 사실을 단서로 쥔 채 그의 조각을 감상하면 생과 사, 실존과 본질 등에 이르는 다양한 철학적 질문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자코메티도 정답을 빈칸으로 남겨둔 채 조각을 빚었을 것이다. 이제 빈칸을 채우는 일은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전시가 내년 연초까지 길게 이어지니 문득 생각이 스칠 때면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문을 두드려도 좋겠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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