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깨뜨리기

이채민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시선은 매서우며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벽을 넘어, 남자들의 영역이라 여겨져온 분야에서 자신의 뚜렷한 궤적을 남기며 길을 만들어가는 여자들을 더블유가 만났다.

제주신화월드 F&B 디렉터 김안나

건축 공부를 하던 중 지중해 음식점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다 요리로 전향했다. 여러 미슐랭 레스토랑, 글로벌 호텔, 크루즈를 거쳐 제주신화월드에서 일한다. 국내 호텔업계 최초 여성 F&B 디렉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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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월드는 완공된 호텔만 4개, 테마파크, 카지노까지 들어선 복합 리조트다.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현재 진행 중인 메인 프로젝트에 대해 묻는 게 나을 것 같다.
제주신화월드 내 식음료 파트의 프로젝트 총괄 담당자다. 관련 예산, 도면, 디자인, 콘셉트, 외부 업체 선정과 기자재 구입 등을 지휘한다. 요즘엔 테마파크와 2019년 오픈할 라이언스 게이트 무비월드의 F&B 섹션 설계를 진행중이다.

보통 셰프라고 하면 업장의 메뉴와 콘셉트를 정하고 조리하는 범위까지 생각한다.
총괄 셰프 전후부터는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고, 임원단과 회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크루즈 설계 참여 때부터 시작했으니 이렇게 일한 지 8년 정도 됐다. 마케팅과 프로모션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낸다.

직접 음식 조리하는 시간이 줄었겠다.
결코 아니다. 오늘 오전에도 테마 파크에 들어갈 솜사탕, 구슬 목걸이, 토네이도 추러스를 만들었다. 총괄 셰프와 함께 상품 개발을 진행하는데, 마늘 몇 조각, 후추 몇 그램까지 늘 신경 쓴다.

프로젝트 총괄 담당자로서 음식의 콘셉트, 퀄리티와 매출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이 빈번할 것 같다.
물론이다. 비즈니스, 매출 다 좋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음식인데’ 하는 내적 갈등도 잦다. 하지만 타 부서가 서포트해주지 못하는 부분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한다. 일상과 일에 균형을 지켜야 하는데 집착하면 무너진다. 음식에 대한 집념은 갖되 집착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언제나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칠 것 같은 인상이다.
가끔 어머니가 놀라신다. 어릴 땐 정말 내성적이었다면서. 셰프들 성향이 그렇다. 주방은 의사 결정이 빨라야 돌아갈 수 있다. 분명 몇 분 안에 또 이슈가 생길 걸 알기 때문이다. 고민을 오래 쥐고 있을 새가 없다.

20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만큼 경력도 화려하고. 비결이 있다면?
타고난 체력. 많이 일할 땐 18시간씩 하기도 했다. 주방에서는 셰프 한 명이 스테이션 하나를 맡아 로테이션과 스케줄 근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빠지면 큰 차질이 생긴다. 내 몫을 해내는 정도의 체력은 갖고 있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다른 운동을 하지도 못한다. 일만으로도 몸이 고되서. 손가락도 휘고 발바닥 물집을 터트리기 바쁘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은 아마 이해할 것이다.

홍삼이라도 매일 먹나?(웃음)
비슷하다. 음식으로 몸을 다스렸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폭식을 하거나 음주를 하기 쉽다. 과로하면 탄수화물이나 고칼로리가 당긴다. 스트레스받기보다는 가끔 먹어주는 게 좋겠지만 그 시간이 축적되면 몸에 신호가 온다. 카페인, 니코틴 효과처럼 살짝 반짝였다가 확 떨어지는 거다. 미국에서 일할 땐 영양학 공부를 많이 했고 스태미나를 유지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 비타민 워터는 완전 필수품이다. 그래도 제주도 와서 음주가 조금 늘었다(웃음).

지금의 제주도는 미식 여행의 격전지다. 제주신화월드는 어떤 차별화 전략을 갖고 있나?
음식은 ‘누가’ 먹을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고객을 제주도민, 육지에서 온 내국인, 외국인, 셋으로 나눈다. 고객들이 정신적으로 어떤 음식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어떤 음식을 맛있고 특별하다 느끼는지 고민한다. 카지노 고객들은 조금 특수하다.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빠른 서비스와 운영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또 카페, 레스토랑, 다이닝뿐 아니라 동남아의 스트리트 푸드와 분식까지 제공해 리조트 내에서도 충분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게 구성했다.

코스타크루즈에서 4년간 일했다.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경험해본 고객의 범위가 넓어졌다. 글루텐 프리, 할랄 정도는 보통이다. 채식도 종교와 사회적 배경, 직업에 따라 완전히 세분화된다. 기상 변화로 몇 천명분의 메뉴를 전면 수정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웃음). 24시간 대기 상황에 위성전화만 겨우 가능한 날이 허다했으니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크루즈에서는 그걸 불평해서도 안 되고 나의 경우 오히려 더 단절해보려고도 했다. 그래야 팀원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셰프테이너의 시대다. 하지만 미디어에 노출되는 대부분이 남자 셰프고 당신이 호텔업계 최초의 여성 F&B 디렉터일 만큼 총괄 셰프를 맡고 있는 여자는 찾기 힘들다.
그래 보인다. 그렇다고 일부러 성비를 고려해 여자를 채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리 부문은 뽑으려고 해도 여자 지원자가 별로 없다. 페이스트리 쪽에 많더라. 다만 남자 동료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으면 나에게 제일 먼저 오라고는 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정말 ‘언니’처럼 다가가려고 한다.

주방은 위계 질서 문화가 강한 곳이다. 규모 있는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 셰프의 큰 불만 중 하나는 자신들이 내내 (비교적 쉬운) 콜드 파트에만 배치된다는 점이던데.
가끔 그런 상황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럼 직접 물어본다. “다른 거 해볼래?”, ”할 수 있어?”라고. 충분히 능력이 되는데도 한쪽으로만 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 편이다. 배치 권한을 가진 남자 셰프 입장에서는 팀워크에 대한 우려 때문일 거다. 주방 안은 작은 팀들로 나눠져 있는데 한군데가 막혀서 순환이 안 되면 전체가 엉망이 되니까. 체력적으로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일 텐데, 여자 셰프 본인의 의사와 의지도 중요하다고 본다.

총괄 셰프를 선망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불 앞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라는 말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불 없이도 뷰티 화보 찍듯 기술적으로, 아이디얼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뻔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인삼 뜯어 먹고 비타민 워터 마셔 가며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KBS 촬영감독 이윤정

KBS 공채 32기로 입사해 이제 12년 차 촬영감독이다. KBS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입봉’했고, 방송 3사 여성 최초 야외 촬영감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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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닌 방송 촬영감독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엔 PD를 하고 싶었는데 내 적성이 아니더라.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고. 또 영화는 연출자의 의견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반면 드라마는 연출자가 대본을 쥐고 있지만 인물의 위치나 동선에 대한 권한이 촬영감독에게 주어지는 편이다. 그 점이 좋았다.

촬영감독으로 드라마를 찍은 지 5년째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입봉작 은 시청률은 안 좋았어도 마니아층이 형성돼 DVD까지 나왔다. 〈백희가 돌아왔다>도 기억에 남고, 〈공항 가는 길>은 대본이 워낙 훌륭했다. 드라마는 메인(A) 팀이면 1년에 1개~1.5개, B팀이면 2개 정도 한다.

방송 3사 여성 최초 야외 촬영감독이다. 방송 제작 분야도 여성 비율이 낮은 편인가?
KBS에는 촬영감독이 80명 정도 되고, 그중 여자가 6명이다. 4명은 스튜디오에서 뉴스나 드라마 세트 신을 찍고, 나는 야외 드라마 촬영을, 아래 후배는 야외 다큐를 커버한다. 최근에는 여성 프리랜스 야외 촬영감독이 종편 쪽에서 활동한다 들었다. 방송사 소속 직원 외에 현장 스태프나 프리랜서를 포함하면 비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방송 쪽도 밤낮없이 일하는 분야로 유명하다. 새벽 촬영도 잦고.
갈수록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 상상력도 떨어진다. 나는 적당히 타협하며 찍는데, 남자 촬영감독은 그 새벽에도 판을 더 벌이고 찍더라. 체력이 남아 있으니 더 보이는 게 있는 거다. 또 생리 기간 겹칠 때. 나는 직원이라 회사에 모텔 비용 청구해서 잠깐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지만 외주사 여자 스태프들은 그러지 못할 거다. 미안할 때가 있다.

여자 촬영감독이라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나?
5년 차 되기 전까진 촬영 나가면 예민한 배우나 선생님들이 싫어하셨다. 미숙해서 화면에 잘 안 잡힐까 걱정하는 거다. 보통 첫 촬영부터 3주간은 꽤 괴롭다. 방송 나가고 문제없다는 걸 알면 그 이후부턴 잘 대해주시더라. 그 기억 때문에 내가 메인 팀 촬영감독 나갈 땐 후배들 단도리를 엄청 시킨다.

만약 5년 차 미만 남자 촬영감독이었다면?
억울해서 따로 물어본 적도 있는데, 절대 그런 일 없다더라(웃음).

여자라서 유리한 점도 있나?
일적으로는 앵글이 섬세하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또 여자 스태프들에게는 현장의 주요 결정권자 중에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어막이 되는 것 같다. 남자 스태프가 듣기 거북한 농담을 여자 후배들한테 던지는 현장이 목격되면 바로 지적하는 편이다. 나중에 그 현장 여자 스태프들이 고맙다고 카드를 건네기도 하고. 나도 현장에 여자 선배가 있을 때 든든했으니까 그 마음이 뭔지 안다.

잘못은 지적하는 게 맞지만 자칫 분위기를 흐릴까 망설이는 경우도 많을 거다.
남자 선배들이 남자는 공개적으로 지적당하면 수치심이 먼저라 따로 불러 말하거나 친해진 다음 돌려 말하라더라. 근데 회의 때도 그러라는 거다. 문제가 생겨서 회의를 하는 건데, 건설적인 얘기만 나누다 끝난다. 그러고는 담배 피우러 나가 ‘보이즈 토크’를 하면서 이슈의 쟁점을 마무리한다. 대체 회의를 왜 하는 거지?(웃음) 그다음부터는 안 나가고 나중에 회의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래도 별문제 없더라.

보이즈 토크에 소외감을 느낀다는 여성이 많다.
직무 특성상 촬영감독은 사무실에서 마주치기가 어려운데, 서로 현장에 찾아가서 주고받는 얘기가 따로 있나 보더라. 농담 삼아 보이즈 클럽을 마피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마피아 활동을 잘하는 이들이 괜찮은 프로그램을 맡고, 또 괜찮은 스태프를 꾸린다. 본질이 훼손당하는 느낌이고, 재미없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노선’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2012년 파업 때가 결정적 순간이었고,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하다 보니 결국 아웃사이더가 됐다. 싫은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10년 차가 넘어가니까 조직에서의 내 위치도 점점 애매해졌다.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업무 성과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선택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 캐릭터가 된 거 같다.

나름의 틈새시장에서 잘 지내는 느낌이다.
맞다. 드라마 찍은 지 5년쯤 넘어가니까 내가 원하는 성향의 스태프로 팀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나랑 일하면 여자 후배들한테 말이나 행동을 특히 신경 써야 한다는 걸 다들 아는 눈치다. 연출자도 비교적 합리적 가치관을 가진 분들과 매칭이 되고.

회사 메인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은 없나?
없진 않지만 그 메인에 들어가는 스태프들 성향과 분위기가 짐작되지 않나. 프로그램 잘 나오는 게 최우선이라 서로 경쟁도 심하고 말조심할 여유도, 지적할 상황도 안 된다. <태양의 후예> 팀 꾸릴 때 다들 B팀이라도 들어가려고 난리였는데 난 엄두도 안 냈다.

혹시 아쉬운 건 없나?
조직에서 메이저가 아닌 건 괜찮은데, 정치가 너무 싫어 아예 안 하다 보니 좋은 의미의 사회적 관계도 만들지 못해 후배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선배는 못 된 것 같다. 친한 동기끼리 괜히 몸에 안 맞는 옷 입지 말고 민폐 끼치는 선배나 되지 말자,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내가 그런 선배들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행복했으니까.

이런 말도 자주 듣는다. 남자들은 잘 뭉치는데, 여자들은 모래알이라고.
예전엔 나도 동료들 연락이 없으면 섭섭하고 못하면 미안했는데, 그조차 남성적 시각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뭉치는 방식이 일이 아니라 회식, 담배, 개인적 연락이다. 여자들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업무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빠르다. 우린 일로 만난 사이니까 필요할 때 연락하면 되지 따로 친분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나?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맞춰줄 필요는 없다(웃음). 크게 어긋나는 게 아닌 이상, 자기 색을 지키고 실력을 쌓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떤 방식이 제 몸에 맞는 옷인지 판단할 수 있는 때가 올 거다.

레어로우 대표 양윤선

청소년기엔 음악만 하고 살았다. 우연한 기회로 디자인과에 진학,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제 공장에 갔다가 2012년부터 철제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고, 2014년 레어로우를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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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철제 가구 브랜드를 한다고 밝혔을 때의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공장에서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100명 넘는 사람의 손을 거친다.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분들이 더 놀라더라. 차갑고, 무겁고,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철제 가구가 충분히 가볍고, 실용적인 데다 미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브랜드 론칭했을 때는 철제 가구인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눈 앞에서 자석을 붙여 보여주기도 했고.

남동생이 있다고 들었다. 집안에서 그가 이어받길 원하지는 않았나?
일주일 전쯤 갑자기 남동생이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관심 끄라고 했다(웃음). 옆에서 보면 마냥 재밌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도 많았다. 그랬더니 남동생이 그런 건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더라.

그렇지 않은가?
철제 가구 자체가 국내에 별로 없기 때문에 인식을 끌어올리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사람들은 집에 ‘철’을 들이는 일에 대해 목제 가구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한다. 레퍼런스나 롤모델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과 하나하나 정해가며 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건가?
철제 특유의 뒤틀림, 휨이 있다. 사실 두껍게 만들면 될 일이지만 최대한 가볍고 예쁘게 하려니 어려운 거다. 휨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이냐, 고객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이해를 전혀 얻지 못해 정리된 제품도 꽤 많다.

컴플레인도 많이 들어왔겠다. 충분히 특징을 설명하고 하중 표시를 하면 될 일 아닌가?
당연히 하지만 그게 방패가 될 순 없다. 일례로 이케아 판결문이 있다. 아기가 이케아의 스테디셀러인 작은 서랍장 선반을 계단 삼아 오르다가 기울어져 다친 적이 있는데, 그게 브랜드 과실로 판결이 났다. 그 뒤로 그 서랍장 뒷면에 벽에 고정할 수 있는 홈이 추가돼 나오더라. 그런 접점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분야 특성상 남자 어른들과 일할 상황이 잦을 것 같다. 힘든 점은 없나?
내가 설계한 제품이니 어떻게 조립하는지 제일 잘 알지 않겠나. 그런데 외주 설치 기사님을 부르면 “제품 조립이 다 똑같지, 특별할 게 있냐”며 본인 스타일대로 일하신다. 내가 그분들보다 어리기 때문일까? 여자라서일까?

둘 다일 수도(웃음).
그럼 일단 물러나 지켜본다. 한참 하시다가 “안 되네?” 하고 스스로 물러나시면 “제 말이 맞죠?” 하고 다시 설명한다.

‘철’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는 여성 고객이 있을 텐데. 이 점을 특별히 신경 써서 디자인하기도 하나?
물론이다. 남자가 해주면 편하겠지.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매장에서 내가 직접 조립하는 경우도 잦다. 나조차 운반, 조립, 설치가 어려운 제품을 어떻게 팔겠나. 일하면서 무거운 가구를 요령 있게 운반하는 노하우도 많이 배웠다. 얼마든지 알려드릴 수 있다(웃음).

여자 후배가 철제 가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것 같나?
목제 가구는 혼자 만드는 게 가능 한데 철제는 100% 기계가 있어야 한다. 레이저, 절곡기가 모두 억 단위라 개인이 소유하기는 부담이 크고, 그래서 이 모든 기계가 있는 공장을 찾는 게 관건이다. 우리 공장을 포함해 국내에 5개 정도 있다. 난 운이 정말 좋았던 거다. 철제 가구 시장이 넓어지고 인식이 높아질 수 있으니 하겠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남자 경영자였으면 좀 더 수월했을까?
그 부분은 아직 모르겠다. 채용한 분 중에는 나보다 나이와 경력이 많은 분이 여럿 있고 일하면서 배우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대표인데, 직원 의견을 너무 들어주는 건가 싶어 잠 못 이룬 날도 많았다(웃음). 그렇지만 어떤 의견대로 가자고 결정하는 것도 대표의 몫이니까. 요즘엔 그 결정을 할 때 나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한다.

티웨이항공 부기장 조윤지

보안승무원이었던 아버지, 한 번 사는 인생 남과 다르게 살라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운항승무원이 됐다. 이제 5년 차. 티웨이는 만 5년이 되면 기장으로 승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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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항승무원이 되는 게 쉽지 않다고 들었다.
여자라 더 그랬다. 원래 비행 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업계 사정을 잘 아 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여자는 안 뽑는다고. 꿈을 못 접고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서 자격증을 딴 뒤 항공사 인턴십 제도에 두 번 지원했는데 낙방했다. 자격증 훈련 받을 때 나보다 미숙하고 토익 점수도 낮은 남자 친구들은 합격한 걸 보고 진짜 접으려던 찰나, 티웨이항공 공채 기회가 생겨 지원했다.

막상 들어와보니 어떻던가?
항공은 군 문화가 기반이다.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탓인지 ‘다나까’ 화법에 적응하려니 더 죽겠더라. ‘다나까’만 신경 쓰다가 반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웃음).

5년 차이니 업무에는 충분히 적응했겠다. 요즘엔 뭐가 힘든가?
나 외에 모든 사람과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다. 외로워서 카톡 보내려면 잘 시간이고. 그러다가도 구름 위로 올라가면 마음이 풀린다. 비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같은 하늘을 본 적이 없다. 비행 자체가 그렇다. 이륙, 착륙까지 항상 다른 시나리오다. 개인적으로 착륙할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

항상 궁금했다. 착륙할 때 지면 충돌이 심할수록 위험한 건지.
그건 아니다. 오히려 컨트롤 타워에서 원하는 건 ‘쿵’ 소리 나게 착륙하는 거다. 활주로 이동 거리가 짧아지니까. 스무스하면 오히려 길어진다.

착륙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
비행기의 모든 움직임은 수치화되어 있고 오토 파일럿 기능도 뛰어나서 모니터링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기기 제조사 매뉴얼에 유일하게 수치화되어 있지 않은 게 착륙 부분이다. 숫자가 아니라 범위로 나와 있다. 자동 착륙을 걸어놓으면 될 일이지만 그에 가깝게, 혹은 그보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착륙 조종을 매번 시도한다. 그리고 착륙은 곧 퇴근을 의미하니까!

듣기만 해도 덩달아 신난다(웃음). 혹시 비행할 때 여자라서 더 힘든 점도 있나?
이 질문이 나올 것 같아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없더라. 혹시 나만 그런가 싶어 인터뷰 경험이 있는 다른 여자 선배에게도 물어봤는데 오히려 이런 질문을 받는 게 힘들다고. 동감한다. 굳이 말하자면 남자 동료들의 시선. 내가 칭찬받으면 “여자니까 좋게 봐준 거지”, 못하면 “여자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한다. 조종석 안에 들어가면 기장, 부기장으로, 각자의 역할을 구분하고 그걸로 평가받는 것이지 남녀가 아니지 않나. 그 말 안 들으려고 더 실력 쌓는 일에 애썼기 때문에 인정받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티웨이항공 전체 운항승무원이 400명, 그중에 여자가 9명이라 들었다. 소수라 불편한 점은 없나?
아직 여자 운항승무원 라커룸이 없다. 오래전부터 건의했지만 여자 객실승무원 라커룸을 함께 사용하라더라. 같은 회사라도 엄연히 다른 팀이다. 오죽하면 친한 남자 운항승무원 라커룸을 빌려 쓰겠나. 아무리 친한 팀일지언정 의자 한 번 쓸 때도 말하고 허락받는 게 당연하다. 자기 팀 의자는 그냥 쓴다. 눈치 보이고 불편한 게 당연하지 않나?

승무원은 누구나 한 번쯤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그만의 특수성 때문에 드라마 소재로 흔하게 사용될 정도로 스캔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점점 개인주의가 심해진다. 입사 초기만 해도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서 팀끼리 자주 어울렸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확실히 분쟁이 일더라. 요즘엔 회사 차원에서 레이오버(도착지 숙박) 가면 각자 시간 보내고 객실승무원한테 술 마시자고 권하지 말라는 등 꽤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온다. 한번은 내가 따르는 남자 기장님과 레이오버 가서 먼저 밥 먹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 순간 너무 서운했지만 누군가는 상처받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이렇게 바뀌어가는 게 맞다고 본다.

운항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여자 후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처음 비행하겠다 결심했을 때 남자 선배에게 업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고, 많이 울었다. 선배가 반대하는 모든 이유의 배경은 내가 ‘여자’기 때문이었다. 대학 때까지는 나만 열심히 하면 대부분 성취할 수 있었지만 여자로 사회에 나와보니 안 되는 게 더 많더라. 항공사는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아예 여자를 안 뽑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걸 다 듣고도 항공승무원이 됐다.
반전 있고 도전하는 인생을 지향한다. “스키 탈 줄 알아?” 하면 그렇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탄 게 13년 전이면서(웃음). 비행을 즐기던 생텍쥐페리 가 남긴 말을 품고 산다. ‘추락해도 후회하지 않으리.’

카레이서 권봄이

‘재미없는 건 안 한다’를 인생의 모토로 삼아 여러 직업을 거쳐 카레이서가 된 지 9년째. 아직은 카레이싱이 가장 재밌다고. XTM <더 벙커> 시즌 3, 4, 5, 6의 진행자로, MBC <무한도전>의 게스트로 출연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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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은 남자가 절대 다수인 분야다. 남녀의 어떤 차이가 두드러지던가?
레이싱 결과가 안 나왔을 때 여자는 울면서 “속상해”라고 한다면, 남자들은 “아쉬워”라고 말하며 문제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여성 선수의 비율이 5~10% 정도 되는데, 체력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감정 컨트롤이 어려운 단점도 분명 있을 거다. 처음엔 나도 힘들었는데, 거치면서 성장하는 부분이 있더라. 요즘엔 스스로 남성화가 되어간다 느낄 정도다.

결과 부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다.
맞다. 시골의 한 마을이라 생각하면 쉽다. 옆집 누구네 뭐 새로 바꾼 거 다 알 듯, 폐쇄적이고 특수성이 강한 분야고 여자 선수의 행동 하나가 쉽게 가십이 된다.

남자에겐 덜한가?
확실히. 사귀다 헤어져도 남자 선수에겐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면서 여자 선수에겐 사견이 따라붙는다. 관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마 남초 분야에는 어디나 그럴 거다. 소문만 따르자면 나도 안 사귀어본 남자가 없을 정도니까(웃음). 어떤 순간엔 거의 이 악물고 버텼다.

스포츠로서 카레이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생소해하는 이도 많다.
멋있고 신기해 보이는 직업 중 하나인 것 같다. 스포츠 중에 가장 비싼 종목이기도 하고. 요즘엔 데일리용 세단에 간단한 장치만 설치해도 서킷에서 안전하게, 차량의 한계를 충분히 느끼며 즐길 수 있다. 무작정 빠르게 모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하고 빠르게’는 제대로 배운 사람만이 가능하다.

체력적으로는 힘든 점은?
카레이싱을 ‘스포츠의 종결’이라고 한다. 희열이 있고, 극단적이어서 한 번 하면 다른 스포츠가 들어오질 않는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엄청나다. 경기복 안에 방염 내의를 입고 양말, 헬멧을 착용하고 에어컨이 없는 상태에서 열기를 버텨야 한다. 경기 한 번 하면 일주일은 누워만 있는다.

카레이싱은 남녀 구별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들었다. 체력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
실제로 신체 접촉이 있는 스포츠라면 성별을 구분했겠지만 이건 기계가 움직이는 일이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차도 느려지기 때문에 경기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은 필수다.

남자 선수들의 견제를 받아본 적도 있나?
15명이 나간 경기에서 2위를 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내 앞에서 말도 조심하고 견제하더라(웃음). 시기나 질투라고 보긴 어렵고, 행복했다.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동시에 외로워지기도 한다.

카레이서를 꿈꾸는 여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나도 화려하지 않다는 점. 너무 고된데, 땀 한 방울을 우아하게 흘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힘든 걸 표현하는 순간 약점이 된다. 남자 선수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에겐 우리가 이방인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들보다 서너 배 노력해야 빛을 볼 수 있는 분야다.

요즘엔 분야, 업계 상관없이 모두 그런 것 같다.
카레이싱은 한 바퀴 돌면 랩 타임이 바로 찍힌다. 그 숫자에 여러 주관이 더해져 요리가 되면 당연히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기도 하지만 이 분야는 몹시 폐쇄적이고 고지식하다. 자리 잡기 전까지 그 시간을 버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재차 묻고, 드라이빙 스쿨부터 제대로 거쳐서 올라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게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일 거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신정원
포토그래퍼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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