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 가을로의 진입과 함께 옷차림의 노선을 정해야 할 때가 됐다. 여성 특유의 낭만과 장식성에 충실한 스타일링이냐, 남성복 요소에서 드러난 디자이너의 시그너처에 집중하느냐다. 제각기 독보적 매력을 어필하는 이 두 방식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나.

폭발하는 낭만

러플과 프릴로 표현한 굽이치는 물결 형태의 장식이 한동안 메가 트렌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올봄엔 구찌와 미우미우의 사랑스러운 너드와 소녀가 거리를 휩쓸었고, 지난해 겨울은 발렌티노와 알렉산더 매퀸, 지방시 등의 고딕적인 색채를 입고 유행을 선도했다. 여성의 낭만성을 계속해서 집중하자고 마음먹은 디자이너들은 이들을 어떻게 쿨하게 해석할지를 골몰하다 이번 시즌 스타일링에 집중하자고 결론 내린 듯 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이스와 러플로 둘러쌌다면 그대로 공주, 소공녀, 귀족적인 여왕님으로 보이겠지만, 극적으로 대비되는 이질적인 아이템의 조합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알렉산더 매퀸은 섬세한 오프숄더 니트 드레스에 갑옷을 연상시키는 버클 장식 코르셋을 덧입혔고, 샤넬은 그저 소녀 시대로 끝날 법한 흰색 레이스 드레스에 호두까기 병정을 연상시키는 모자로 룩을 단숨에 중화시켰다. 티어드 드레스에 슬리퍼를 매치한 페라가모나, 러플 장식 베이비돌 드레스에 새파란 사이하이 부츠를 과감하게 더한 펜디, 크로셰 니트톱에 고전적인 모자, 선글라스까지 예측 불가한 스타일링을 선사한 구찌도 마찬가지. 한편 이자벨 마랑필로소피는 시스루 블라우스와 드레스에 터프한 가죽을 더하는 식으로 쿨한 무드를 주입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스타일링의 열쇠가 액세서리에 달렸음을 눈치챘을 것. 로다테의 롱장갑이나 드리스 반 노튼의 깃털 초커를 보아도 그렇지 않나.

수렴하는 장식

알다시피 남성복 요소를 접목한 스타일은 매니시, 톰보이, 밀리터리 등의 용어를 앞에 달고 트렌드의 궤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제3의 성이 생겨난 이 마당에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는 단어조차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지 않나. 그래서일까. 클래식한 팬츠 슈트, 턱시도 재킷, 헤링본 코트, 핀턱 셔츠, 와이드 팬츠와 같은 아이템이 극도로 남성적이거나 혹은 대단히 여성적인 방식으로 등장했다. 그 경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디자이너의 시그너처가 강력하게 드러나는 걸 고르는 게 정답이다. 대표적으로 캘빈 클라인티비, 이든, 구찌에서 선보인 핀 스트라이프 슈트와 체크 슈트는 별다른 세부 장식이나 매치하는 아이템 없이 슈트 자체에 집중하라고 외쳤고, 막스마라Y/프로젝트, 제이슨 우는 어깨를 한 뼘 이상 키우거나 소매를 감추는 커다란 아우터로 남자친구의 코트를 빌려 입은 듯한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턱시도 재킷의 라펠에서 영감을 얻은 베스트와 고전적인 로브, 두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와이드 팬츠를 내보낸 드리스 반 노튼과 글렌 체크 슈트와 베스트까지 갖춰 입은 트루사르디, 타이와 그레이 재킷으로 맨해튼의 프레피 룩을 선보인 톰 브라운은 남성복 섹션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테일러링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디자이너가 전하고자 한 애티튜드를 담대하게 소화해내야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인다는 점을 잊지 마시라. 이 시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