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흔들리고 휘어질 것 같은 연약한 모습으로만 유호정을 본다면, 이 풀잎 같은 배우의 내면을 지탱하는 굳고 단단한 심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온통 붉게 찍었다. 당신이 잘 안 보여주던 색깔인 것 같은데 오늘 촬영은 어땠나?

어려웠다. 연기할 때 외엔 아직도 카메라 앞이 불편하다. 

끼가 없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종종 하던데.

난 예전에 태어난 덕분에 배우 하고 있는 것 같다. 빨리 변하고 뭐든 잘하는 요즘 친구들 틈에서라면 데뷔도 어려웠을 거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 등 보고 듣는 게 많아져서 시작부터 유능한 젊은 친구들이 많다. 다만 연기 자체를 패턴화하다 보니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렇게 해야 멋있다’라는 걸 너무 잘 안다고 할까. 어떤 장르에선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1991년에 데뷔해서 필모그래피에 거의 빈틈이 없다. 오랫동안 드라마 현장의 변화를 경험했겠다.

내가 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서로 기다려주고 도와줬다. 선배님들과 분장실 같이 쓰면서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한잔 드리며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서로 불편함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지 않나. 다들 각자의 공간에 있다가, 촬영할 때만 모이니까 후배라도 어색하다. 그러면 연기가 잘 안 된다. 특히 사전에 충분히 시간을 갖는 영화 작업에 비해 시간 에 쫓기는 드라마는 그런 부분이 아쉽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특히 연예계에서는 점점 자기를 증명해 야 하는 시간이 짧게 주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 그런데 나는 나 를 보여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 스타일이다. 미니 시리즈라는 표 현을 쓴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연속극 개념에서 16부작 으로 짧아지면서 당황했다.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간이 필요한데 시작부터 중반부 호흡을 가져가야 했다.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독특하게 30부작이었다.

그래서 보통 드라마보다 더 정이 많이 들었다. 같이 고생하고 밤새우며 팀워크가 좋았다.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충분히 불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누구 하나 자기를 드러내려 튀거나 하는 사람이 없고 서로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는 어떻게 가능했나?

안판석 감독님이 즐겁게 이끄셨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연출도 뛰어나시지만, 현장에서 토론하는 걸 참 좋아하신다. 배우로서의 자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감독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녹음하고 싶었을 정도다. 연기에 있어서도 그동안 해온 습관이나 타성을 반성하고 새롭고 다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됐다. 배우들이 인터뷰용으로 “작품 좋았어요 많이 배웠어요” 하는데 이번에 나는 정말 많은 걸 가져가는 것 같다.

유준상의 경우 시놉시스도 듣지 않고 하겠다고 결정했다던데. 

나도 비슷했다. CF 모델만 하다가 처음 겁도 없이 시작한 데뷔작이 <고개 숙인 남자>라는 드라마였는데 안 감독님이 조연출 이었다. 최근에는 <밀회>나 <아내의 자격>의 빈틈이 없는 연출을 보며 배우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연락이 와서 1분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서 무슨 여배우가 자존심도 없냐는 얘기도 들었지만(웃음).

기대를 갖고 실제로 같이 해보니 어떻던가?

안 해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안 감독님 연출은 앵글이나 조명이 독특한데, 영상미가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현실적이지만 그 안에 독특한 색깔과 흡인력이 있다. 또, 배우들의 감정을 1초의 틈도 없이 뽑아 내는 데 탁월하시다. 배우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연출자에 대해 이런 신뢰를 갖고 있다는게 촬영하면서 얼마나 편한 건지 처음 느꼈다. 특히 정성주 작가님과 두 분의 호흡은 서로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일하면서 그런 파트너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최연희 역할은 끌리는 만큼 꺼려진 부분도 있는 캐릭터였을 것 같은데.

장성한 아들을 둔 엄마, 게다가 2회부터는 할머니가 되는 배역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고, 상류층의 못된 시어머니 역할이라는 게 반감을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허당끼 있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건 작가님이 워낙 잘 써주셔서인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연희에 딱이네요, 뭐 만들려고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호정 씨 그냥 하세요 제가 맞게 쓸게요” 하셨다. 연희는 언뜻 친절하고 겸손해 보이지만 자신이 귀족이라는 우월주의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굴 보든 친절한 미소는 얼굴에 담고 있고. 그런 위선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아들 부부에게 나가라고 소리지를 땐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소리를 하며 엉엉 운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설정이 결국 캐릭터를 뻔하지 않게 살려준 것 같다.

 

유준상 인터뷰를 읽었는데, 안판석 감독은 유호정이 모든 인물을 받쳐주는 인물이라는 얘기를 했던데.

연기 톤을 말씀하신 것 같다. 늘 감정 표현을 덜해야 한다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배우에게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연희에 대해서도 주변의 어떤 인물이 어떤 공격을 해오든 그 자리에 있으면서 톤을 유지해 잡아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에게 그걸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넘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분위기에 따라 더하려고 흔들릴 때마다 감독님이 수위를 잡아주셨다.

 

연희가 화를 낼 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억제하면서 파들 파들 떠는 식이었다. 액션이 크지 않고. 

가장 액션이 컸던 건 남 편을 골프채로 위협하는 장면이었다(웃음). 

 

남편과 바람을 피운 친구 지영라(백지연)에게 얼음 던지는 장 면도 좋았다. 

그 장면은 아쉬움이 남는다. 얼음을 던질 때 손에 여러 개를 한꺼번에 움켜쥘 수가 없어서 한두개씩 쥐고 약올리 듯 톡톡 던지는 식이 됐다. 어쩌면 그런 게 정성주 작가님 대본 의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일 수 있겠다. 툭하면 물잔 끼얹는 보 통 한국 드라마에서라면 아예 통째 들이부었을 거다(웃음). 어 떤 공간에서 어떤 소품을 사용해서 배우가 행동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나올지를 정확하게 알고 적절히 활용하는 작가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손주와 헤어져 지내면서, 마지막에 선글라스를 끼고 몰래 어린이 집으로 보러 가는 장면이 있다. 음 악도 그렇고 톤이 코믹해 보이지만 가슴 아팠던 신이다. 대본의 감정선들이 이렇게 우스운 겉모습 속에 복합적인 감정을 숨겨 놓은 경우가 많아서 연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연기할수록 보물 을 캐는 것 같달까. 정성주 작가님의 대본을 압축해서 영화로 만들면 배우들이 힘들겠지만 그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는 시간 과 상황이 주어지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이후로 거의 쉬지 않고 일해왔는데 지친 적은 없나? 

임신 하고 아이 낳는 시기 빼고는 1년에 한 작품씩은 꼬박꼬박 했다. 지금도 후배들이 쉬고 싶다고 하면 말린다. 나는 아직도 6개월 만 쉬어도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자신이 너무 소진됐다 싶을 때 전환점을 갖기 위한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면 오래 쉬는 게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이 보기엔 비슷비 슷한 드라마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작품마다 다 다른 경험이었 고, 그걸 통해서 많이 얻고 배웠다. 그렇다고 겹쳐서 할 체력은 안 되니까 1년에 한 작품 정도만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돌아보니 어언 20년 넘게 해왔더라.

 

의도와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을 찾았다 는 얘기 같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내 계획대로 될까? 오히려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는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 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목표대로 안 됐을 때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있을까 싶어서. 너무 진부한 얘기 같지만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으 면 좋겠다. 그게 연기하는 일이 됐건, 아이를 키우는 일이 됐건, 어떤 자리에 가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건 그때그때 행복하게 느 끼고 감사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성향이 워낙 안 되면 말지, 악착같이 꼭 해내야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우리 직업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써주면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 다 보니 감사하게도 일이 끊이지 않았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만 해도 여배우는 결혼하면 할 역할이 없어진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한참 미씨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요가 생겼다. 그 시절 함께 일하던 또래의 오연수, 하희라, 신애라 같은 동료 들이 같이 묶이면서 시너지도 있었던 것 같다. 맞벌이 부부, 워킹맘이 서서히 많아질 때여서 결혼하고도 일하는 여자에 대한 선망이 생겨난 때라 시기가 좋았다. 일이 확 줄어들지 않고 하나씩 할 수 있었다.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새로운 유형의 여자를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를 탈피하는 드라마들이 나오면 반갑 다. 

나는 즐겁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직 있다는 데 감사 한다. 내 주변에서도 나이 먹어서 여전히 아름답고 자기 관리 철저한 내 또래를 많이 본다. 자꾸 그렇게 눈에 띄어야 더 많아 진다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다는 얘기도 하고. 사실 나는 게으른 성격이라 매일 관리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인 면도 있다. 촬영 들어가기 2개월 전부터 급히 운동을 시작한다. 끝나면 맛있는 거 먹고 아이들이랑 놀러 다닌다. 그 편이 늘 관리하 는 것보다 더 인간적이라 여긴다. 휴식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일이 없을 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 퍼져 있는 내 자신이 나태한 게 아니라고 죄책감을 떨쳐내는 데 오래 걸렸다(웃음).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가? 

일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면이 있다. 원래 자존감도 낮고 자신감이 없어서 한번도 스스로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칭찬을 안 하고 엄하게 키우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디 가서 튀는 것도 싫어해서, 드라마 쫑파티에서도 앞에 나가 한마디 하라고 시키는 게 아직도 불편하다. 배우들 중에도 이렇게 내성적인 사람이 많은 걸 알고 나서는 좀 편해졌다. 배우들이라고 다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고, 그래서 표현하는 방법도 조금씩 다른데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최근 어느 토크쇼에서 배우자 이재룡이 ‘우두머리 사자’ 같다고 표현했는데 인터뷰를 하며 느껴지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내가 남에게 피해주거나 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아닌 것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고집이 세다. 그러다 보니 내 사람인 남편에게도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내 욕심이겠지. 다른 데는 욕심이 없는데 사람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엄격함이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나?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는 아무리 피곤해도 두 아이를 양쪽에 데리고 잤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가깝고 친구처럼 같이 노는 엄마지만,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가 무섭다고 한다. 소리 지르거나 매를 들지도 않 는데. 그러고 보면 매니저들도 나를 무서워하는데… (웃음).

여려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부분이 있나 보다. 

그런 점 때문에 어릴 때는 내숭 떤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말 없이 조용하게 있는데, 의외로 대범한 면도 있고 그러니까.

성격이 정반대인 반려자를 만나서 바뀌어가는 경험도 하는 듯 보인다. 

어른들이 달라야 잘 산다고 그러시는 말이 뭔지 요즘 은 알 것 같다. 나도 상대방도 서로 맞춰가면서 점점 가까워지 는 느낌이랄까, 동지의식 같은 게 생긴다.

당신의 드라마 중에 <거짓말>과 <청춘의 덫>이 기억에 남아 있다. 

배우 경력 초반에 김수현 선생님,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건 아직 뭘 모를 때 좋은 드라마들을 만난 힘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도 처음 한 게 <취화선>이었고 10년 만에 작업 한 <써니> 강형철 감독도 내가 너무 사랑하게 됐으니 운이 좋았다.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고. <청춘의 덫>은 유산을 겪으며 힘든 시기였는데 김수현 선생님이 나에게 맞게 연주 역할을 그려 주셨고, <작별>이라는 드라마도 나에게는 소중했다. 고현정 씨 와 자매인 자유분방한 사진작가로 나왔는데 큰 변신이었고 힘들지만 의미 있었다. <거짓말>은 찍으면서도 한 번 외운 대사가 안 잊히고 가슴에 깊이 남아 있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 그때 삼각관계 상대역이던 배종옥 선배님이 했던 성우 역할을 내가 맡아 리메이크를 해 보면 어떨까 싶다.

세월이 흐른 다음 여배우가 역할을 바꾼다는 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의 설정인데. 

영화와 다른 점은 내가 찍으 면서 그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다(웃음). 지금은 또 다른 감성과 관점으로 세 사람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음 작업은 드라마가 될까? 

뭘 해야겠다는 계획은 세워두지 않고 있는 편이다. 올해까지는 쉬고 연말이나 내년에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할 거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작업하느냐를 따진다. 너무 모가 나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하고 싶다(웃음).

대개의 배역이 엄마나 아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 선 밖으로 나가보는 역할도 가능할까? 

나에게 만약 액션 신이 주어진다고 하면 그건 한두 달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닐 거다. 내 안에 요만큼도 없는 모습도 있을 텐데, 그걸 억지로 노력해서 만든다고 과연 보는 이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는 연습과 훈련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면 하겠지만. 그런 것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듯 달려드는건 도전이 아닌 것 같다. 그런 게 과연 연기를 잘하는 걸까, 최선을 다하는 걸까, 그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보시는 분들의 편안함을 고려해야지(웃음).

아까 <작별>에서는 자유분방한 사진작가로 변신했다고 언급했는데. 

김수현 선생님은 배우를 볼 줄 아는 분이다. 할 수 있는 걸 주시고, 못하는 부분은 글로 수위 조절을 해주신다. 대본은 드라마에서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만난다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다. 한동안 너무 멜로를 안 해서 이젠 중년 멜로를 해보라는 주변의 얘기도 많이 듣는다. 걱정은, 내 안에 멜로 감성이 아직 남아 있을까 하는 문제인데… 없는 거 같기도 하다(웃음).

적당한 남자 배우 캐스팅과 좋은 글이 있다면 그 감성이 일깨 워지지 않을까? 

일하는 시간이 아니면 내내 애들과 함께 있다 보니. 내가 배우인지 학부형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겠나, 이 시기에 해야 할 일이 그건데. 욕심을 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가면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편안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 는 가치인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다. 뭐든 억지로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욕심이라는 건 결국 두려움에서 온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 뒤에는,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있는 거다. 있 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사랑하며 편안히 하루하루를 누리다 보 면 내가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생기는 것도 있고 생각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뭘 해도 기를 쓰지 않는 성격이라 어떤 면에서는 내가 프로의식이 없는 건가 움츠러들 때도 있지만 대신 내가 가진 다른 장점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런 편안함에서 오히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오는 게 장점 같다. 

많은 걸 내 안에 가두고 움켜쥐려 는 대신 요즘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놓을 수 있을지를 생각 하며 산다. 아이들도 점점 커가고, 이제 어느 날 눈 뜨면 50이 되어 있을 거 같은 40대 후반이다.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길 때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그래도 이래서 행복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 많이 생각한다.

아름답게 나이 먹는 방법은 뭘까? 

너무 상식적이라고 타박을 들을 소리 같기도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기뻐야 결국 얼굴에 나타나는 것 같다. 나도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지치거나 할 때 카메라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일단 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건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뭘 갖다 바르고 좋은 옷을 입어도 마음이 행복하지 않으면 얼굴이 예뻐질 수 없다. 반대로 뭔가 좀 덜하더라도 내가 행복하면 웃음이 많아지고.

주름이 생긴다며 활짝 웃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찡그리는 주 름보다는 웃는 주름이 낫지 않을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 잃는 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욕심을 잘 내려놓는 것. 운동을 좋아하질 않아서 아이들이랑 공원 가서 20~30분이라도 산책하고, 햇볕을 쬐려고 노력한다. 하늘 볼 여유를 찾으려고 하고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기분 좋아질 정도로 걷는 거, 그런 게 다 사람을 예쁘게 만들지 않을까.

국영수 중심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웃음) 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수분 관리는 한다. 저렴한 시트 마스크를 종류별로 많이 사뒀다가, 일주일에 두세 번 입욕하면서 기분대로 붙이고 그런다. 운동을 해도 몸의 라인을 잡아주는 필라테스나 발레 정도지 격렬하게 하지 않는다. 요가도 너무 벌 서는 것 같아 별로고.

이미숙 씨 인터뷰 때가 생각 난다. 하루에 두세 시간 강도 높은 운동을 하시던데. 

그 언니는, 정말 열심히 하시지(웃음). 사는 데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자기에게 어울리고 잘 맞는 방식을 찾아서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운동이나 일이나 인생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