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온다

W

박형식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다. 그 이전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아기병사’라는 이름표를 떼고 앳된 소년의 얼굴을 내비치는 배우로, 스물넷의 건강한 젊은이로.

베이지색 터틀넥 니트는 김서룡 옴므, 회색 바이커 데님은 발맹, 롱 무톤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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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계는 무슨, 신들의 전쟁 같아요. 재능이 다 출중한 데다 시키는 건 뭐든 다 해내잖아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한창 놀고 싶을 나이에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노래, 춤, 예능에 나가 웃기는 것까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나는 지금도 PC방에 앉아 있고 당구장에 가 있고 그랬을 거 같은데 말이에요.” 남 일처럼 한 발 떨어져 얘기하지만 박형식 역시 그 ‘신들의 전쟁’ 에서 맹렬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다. 91년생인 이 청년은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지 5년 차에 접어들었고 그동안 몇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뮤지컬 무대에서는 한편으로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찍었다. 서툴지만 구김살 없고 뭐든 열심인 모습에 시청자들은 ‘아기 병사’라는 별명을 붙이며 그를 귀여워했다. 그리고 요즘은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막내아들 달봉이 역으로 출연 중이다.

매일의 스케줄은 전쟁 같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 전투의 한가운데 있는 박형식은 부상입은 데 없이 건강해 보인다. <진짜 사나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모습처럼, 그는 고된 훈련 속에서도 자신이 잘하는 사격에서 재미를 찾고 소박한 간식에 행복해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유복하게 자란 환경 탓이건, 타고난 성격 덕분이건 운이 좋은 셈이다. 하지만 물정 모르는 해맑음을 간직하기에는 데뷔 이후 녹록지 않은 3년을 겪기도 했다. “데뷔했을 땐 꿈과 희망의 덩어리였죠. 대통령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예계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이 겸손해지더군요. 생각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겪으니 스스로를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눈이 생겼어요.” 나름의 냉정한 객관으로, 지금 누리는 인기나 관심이란 열심히 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일 뿐이며 그걸 신뢰로 바꾸는 건 자기 몫임을 이제 안다. 실제 가족에서도, 제국의아이들 팀에서도, 드라마 속에서까지 애교 많은 이 막내는 녹록지 않은 사회 생활을 하며 뜻밖에 철이 단단히 들었다. “아기 병사 이전에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진짜 제가 어린 애는 아니지만, 그렇게 출발할 수 있었다는 건 다행 같기도 해요. 이렇게 조금씩 해 나가다 보면 내 성장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W Korea 50부작 주말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고, 시청률 1위를 경험 중이다. 이전에 찍은 드라마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다.

박형식 그전에 미니 시리즈에 출연해 봤지만 조연 내지 단역이라 잠깐 가서 한두 신 찍는 정도 였다. 덕분에 즐겁게만 촬영했다. 처음으로 분량도 늘고 긴 호흡을 같이 해보니까 30부 정도에서 일단 신체적 고비가 오더라. 워낙 활발하고 욱하는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떨어진 것 같다. 감독님이 ‘너, 보약 지어 먹어라’ 하시더라(웃음).

가족 드라마인데 여러 세대 선배 배우들과 함께 부딪치는 일은 어떤가.

처음 대본 리딩을 하러 왔는데 다 ‘선생님’ 들이셔서 너무 긴장했지만 다행히 예뻐해주시더라. 극 중 아버지인 유동근 선생님이 많이 챙겨주셔서, 대기실에서도 늘 같이 있다. 나랑 붙는 장면을 맞춰보기도 하고, 대사 연습하시는 걸 보면서 많이 배운다. 이것저것 잘 안 풀리는 달봉이가 아버지 옆에 앉아 엉엉 우는 장면이 있었다. 같이 대성통곡하고 나서, 진이 빠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부지가 ‘멍하지? 그럼 연기 제대로 잘 한 거야’ 하시더라. 믿고 따르는 배움의 장이다.

<진짜 사나이> 때도 그랬지만, 어른들에게 예쁨 많이 받는 스타일 같다.

싹싹한 편이다.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다. 예쁨 받아서 덜 혼나야지, 하는 생각보다 NG 내고 대사 틀려서 현장에 민폐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어른들로서는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 캐릭터일 것 같다.

나 혼자 연습해도 되겠지만 괜히 선배들 옆에 가서 큰 소리로 읽고 있으면 ‘거기 한번 다시 해봐’ 하고 자연스럽게 알려주신다. 내가 절실하니까, 못하는 걸 아니까 계속 도움을 요청하는 거다.

가수 출신 배우들의 연기를 평하는 기사에서 당신을 놓고 ‘막냇동생 같은 편안함’을 언급하더라. 스로는 어떤 걸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밝은 역할이 의외로 어려운 것 같다. 원래 내 성격이 긍정적이고 밝긴 하지만 일상 속의 사람은 기분이 마냥 위로 업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달봉이는 아주 활발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표현 이 자연스러운지 늘 점검해야 한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진실되게 표현하는 방법이 고민된다. 연기에 맞고 틀리고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있는 것 같다. 그거에 따라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 아닌 배우도 생겨날 거고.

정답이 없는 대신 호오가 갈리는 분야라는 얘기겠다.

그래서 선배님들은, 이것저것 다 해보라는 말씀을 하신다. 다양한 경험에서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배우에게 경험이 자산이 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아이돌이고 스타기 때문에 자유롭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많지 않나?

그래서 연예인들이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다. 평범한 학생이던 때는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했는데, 그걸 못하니까 이제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 보며 울기도 하고.

울었던 건 어떤 영화?

폭풍 눈물 흘렸던 게 <레 미제라블>이었다. 한창 뮤지컬을 하고 있을 때여서 도움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봤는데, 마지막에 엄청 울었다. 연기만으로 눈물까지 나긴 힘든데, 노래가 더해지니까.

네이비색 니트는 다미르 도마 바이 무이, 검은색 팬츠는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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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뮤지컬 배우, 드라마 연기, 애니메이션 더빙까지 했다. 뭐가 제일 힘들었나?

뮤지컬.

뮤지컬이랑 <진짜 사나이>랑 비교한다면?

그래도 뮤지컬이다. <진짜 사나이>는 4박 5일만 버티면 3주 쉴 수 있는데 뮤지컬은 매일매일 실제 상황이니까.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드라마라고해서 틀려도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시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건 주어지는데 뮤지컬은 지금 즉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똑같은 걸 반복하는데도 쉬워지지 않는다. 생각을 잠깐이라도 놓으면 가사도 대사도 잊어버린다. 관객의 분위기, 느낌에 따라 내 감정도 달라진다. 특히 <보니 앤 클라이드>는 무거운 이야기다보니 매 공연마다 울어야 하고 죽음에 대한 감정을 내내 느껴야 해서 사람이 어두워지더라.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계속 쓰고 긴장해야 하는 게 뮤지컬이다.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뮤지컬의 길만 쭉 걸어온 배우 분들이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힘드니까, 뮤지컬은 다시 안 하고 싶나?

좋은 작품이 있으면 당연히 하고 싶은데, 그땐 그거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뮤지컬하면서 음악방송 하고 예능도 가고 이랬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 모든 것에 프로다워야 하는데 사람이 점점 흐물흐물해지더라.

그렇게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낸다는 게 대단하다.

아이돌이 대단한 직업인 거 같다. 무슨 신 같다. 아이돌계는 신들의 전쟁 같고. 재능이 다 출중한 데다 시키는 건 뭐든 다 해내니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한창 놀고 싶을 나이에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노래, 춤, 예능에 나가 웃기는 것까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나는 지금도 PC방에 앉아 있고 당구장에 가 있고 그랬을 거 같은데 말이다.

아이돌 시스템이 혹독한 트레이닝의 산물이라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이 힘들면 안 하고 못할 거다. 자기가 좋아하니까 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연예인이 의무가 아니지 않나. 해봐서 내 길은 아니다 싶으면 손들고 떠날 수도 있는 거다. 계약이란 게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한다는 건 팀 간, 팀 내부의 선의의 경쟁 덕분에 가능하다.

그 경쟁이 이제 너무 과열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저 팀, 저 사람이 잘된다고 해서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만이 가진 매력이 있을 테니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걸 해서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을 때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만 한다는 거야말로 아이돌 팀에서는 하기 힘든 것 아닌가?

그래서 제국의아이들이 아직 부진한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멤버들 각자의 취향이 뚜렷해서 우리 사이의 경쟁 같은 게 없다. 평화롭게 자기 갈 길 가는 선인들 같고 노인들 같은 느낌이 있다. 굳이 피 튀기고 싸울 게 아니라 동료니까 끌어주고. 같이 있으면 음악 좋다 연기 잘 봤다고 북돋아주고.

같은 팀의 임시완도 요즘 드라마 <미생>을 찍고 있다. 서로 응원하나?

너무 바빠서 본방 사수는 꿈도 못 꾸는 일이지만 서로 기사로 접하면서 북돋아준다. ‘너 시청률 37% 넘었더라?’ ‘형, 케이블에서 7%는 혁명이야.’ 같은 시기에 연기하는 멤버가 있다는 든든함이 있을 거 같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은 게 나는 공중파, 시완이 형은 케이블에서 각기 시청률 1위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 거다. 한 팀에서. 그런 자부심이 있다. 행복하다.

내년 초면 데뷔한 지 5년이 된다.

아직도 기분은 신인 같다. <진짜 사나이>부터가 내 진짜 데뷔였다고 생각한다. 그전 3년은 데뷔했지만 연습생이었던 것 같고. 주말 드라마의 막내아들 역을 맡은 데는 아기병사의 힘이 컸던 것 같다.

별명도 그렇고, 너무 어리게 봐서 스트레스 같은 건 없나?

진짜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애교 많고 귀여운 남자아이로 많이들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집에서도 막내아들이고 팀에서도 막내인 건 사실이니까. 이렇게 조금씩 해 나가다 보면 서서히 커나가는 박형식의 성장기를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지만 백프로 내 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쟤가 열심히 하는구나, 하며 지켜보시는 거니까. 그 호감을 단단한 믿음으로 바꾸어놓는 것은 더 노력하는 내 몫일 거다.

배우로서는 그렇다치면, 원래 제아 팬들은 좀 더 든든할 것 같다.

근데 우리 팬들이 무작정 우리를 좋아해주지는 않는다(웃음). 우리 팬 연령대가 좀 있다. 초중고 학생 팬 보다는 비율로 따지자면 누나들이 많다고 느낀다. 누나들은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오히려 내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분명히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팬들이 괜찮다 잘했다고 말해주면 크게 와 닿지 않는데, 팬들도 이상했던 부분을 지적해주면 공감한다. 더 인간적인 것 같다.

자유시간이 거의 없을 텐데, 뭘 하면서 보내나.

잠이 엄청 많아서, 27시간 연속 잔 적도 있다. 이런 내가 아침 6시에 숍 가서 스케줄 준비하는 걸 보면 엄마가 신기해하신다. 고집이 세서 내가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격인데, 잠 못 자고 피곤해하면서도 불만 없이 일하니까 네가 정말 그 일을 좋아하는구나, 하시더라.

원래 연예인이 되고 싶었나?

그렇지도 않다.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특별활동 밴드부에 지원했는데, 오디션을 봐서 보컬로 뽑혔다. 공부하라고 과외며 학원이며 신경 써주신 부모님께 혼날 각오를 했는데, 합격 소식을 알려 드리니 오히려 따뜻한 반응을 보이셨다. 야단맞았다면 마음의 골이 깊어졌을 텐데 응원해주시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대회 나가면 늘 3등 안에 들었다. 엄마한테 상장 갖다 드리고 칭찬받고 하니까 낙이 생기더라.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밥이나 먹고 살면 좋은 거지, 하는 학생이었는데 그렇게 풀려간 걸 보며 엄마는 운명이었나보구나, 하신다.

운명, 맞았을까?

스트레스 없이 일하는 거 보면 그런 것 같다. 이거 아니면 할 게 없다. 뭔들 하기야 하겠지만 하고 싶지 않다. 그럴수록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책임감이 생기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유복해지 는 건 아니다. 행복할 뿐이지. 앞으로 나도 가정을 꾸려야 하는 가장이 될 텐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또래들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 아닌가?

물론 지금 누리는 것이 나한테 과분한 거구나 항상 느끼며 살고 있다. <진짜 사나이> 전까지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박형식이었다. 하지만 직장인처럼 월급이 나오는 게 아니고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건데, 시선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으니까. 그때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이 있다.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것까지 생각 안 하고 지금을 즐기기에는 너무 불안한 직업인 것 같다. 데뷔 후 3년을 아무도 몰라주는 연예계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이 겸손해지더라. 데뷔 했을 때는 꿈과 희망의 덩어리였다. 대통령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의욕만큼 이뤄지지 않다 보니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제3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어려움 없이 편하게 자랐다가, 일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철이 일찍 난 것 같다.

데뷔 후에는 집에 손 벌리지 않고 지냈다. 내 의지로 하고 싶은 일 시작한 건데 그러면서 용돈을 받는다면 부모님 마음도 속상하실 것 같았다. 힘들어서 알바라도 뛰어야 하나 싶을 때가 있었지만(웃음).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일 텐데.

나는 집이 그렇게 좋다. 술 마시고 클럽 가고 이런 거 힘들다. 옷에도 관심없어서 맨날 추리닝 차림이라 꾸미고 다니라는 얘기 많이 듣는다. 돈 쓰는 데가 있다면 먹는 거 정도?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거 같은데 어렵다.

5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귀엽다, 열심히 하는구나 얘기 듣는 단계라면 5년 뒤에는 믿고 보는 사람, 멋진 남자가 돼 있었으면 좋겠다. 그사이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예행 연습은 충분히 하고 가겠다.

군대가 어떤지 알고 가는 게 씁쓸하긴 하다. 모르고 가야 시간이 잘 갈텐데!

에디터
황선우
스타일리스트
선우현
헤어
이혜영 (아베다)
메이크업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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