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카멜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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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을 물들일 주인공은 바로 수많은 프린트!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플라워와 페이즐리다. 그러니 이번 시즌 당신의 패셔너블한 보호색이 되어줄, 다채로운 색감과 조우한 프린트의 향연을 맛볼 것.

지난해 가을, 2012 S/S 컬렉션의 열기가 한창인 파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건 이번 시즌엔 프린트를 빼놓고는 어떠한 룰도 성립하기 힘들다겠는 것이었다. 강렬한 프린트 도배는 준야 와타나베와 같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부터 스텔라 매카트니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여성을 겨냥한 디자이너까지 두루 집중한 트렌드였으니까. 그 가운데에서도 마치 반복학습처럼 에디터의 시신경을 자극한 건 바로 플라워와 페이즐리 패턴들. 우선, 꽃무늬는 봄이 오면 으레 돌아오곤 하는 트렌드지만 올봄엔 더욱 아티스틱하고 과감한 모습을 선보인다.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로다테를 비롯해 노부요시 아라키의 관능적인 꽃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어 그로테스크한 보라색 붓꽃을 선보인 프라발 구룽, 앤디워홀 작품 속의 꽃을 닮은 마르니, 모던한 팝 아트를 보는듯 컬러 블록의 수선화를 선보인 마리 카트란주 등이 그 예. 또한 이번 시즌 꽃무늬엔 자수 등의 전통적인 기법과 쿠튀르적인 섬세함이 깃들어 있다. 라일락을 수놓은 준야 와타나베부터 채도 높은 산뜻한 오렌지 색상의 국화를 코트에 흩뿌린 프라다, 화이트 셔츠에 난초를 수놓은 클로에와 쿠튀르적인 터치로 수국을 입체감 있게 장식한 발렌티노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채롭다. 한편 어깨에 힘을 준 파워풀한 실루엣의 미니 드레스에 온화한 진달래를 수놓은 발맹식 발상이나 상·하의의 프린트를 서로 다르게 믹스 매치한 에르뎀과 스포트막스 식의 스타일링 제안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로써 꽃무늬는 더 이상 지극히 여성스럽고 고루한 프린트가 아닌, 트렌디함과 예술성을 겸비한 신선한 트렌드로 재탄생했다. 게다가 피터 솜, 알투자라, 프로엔자 스쿨러,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이 눈여겨본 수풀이 우거진 아열대 지방의 꽃무늬는 수줍기는커녕 화려하고 도발적인 자신감으로 휘감싸고 있으니, 꽃도 다 같은 꽃이 아니라는 말씀. 즉, 다섯 살 이후론 단 한 번도 꽃무늬 옷을 입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그 누구에게도 올봄의 부케가 만발한 프린트 룩은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그렇다면 페이즐리 프린트는? 늘상 에스닉 무드와 함께 S/S 시즌을 장식하는 요소 중 하나로 호흡을 맞추던 페이즐리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페이즐리를 주목해야 할 듯. 질 샌더와 스텔라 매카트니라는 미다스의 손을 빌려 새롭게 태어난 페이즐리 프린트의 원피스와 점프수트 등은 패셔니스타들이 앞다투어 찾게 만들 모던함을 지녔으니까. 1950년대에 한껏 취한 질 샌더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당시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하던 페이즐리 프린트를 부활시켰는데, 색상 역시 그 당시 유행하던 페이즐리의 네온 분홍색과 초록색 등을 적절히 응용해 미니멀한 실루엣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남성의 실크 스카프에서 페이즐리에 대한 모티프를 얻은 스텔라 매카트니는 리드미컬한 헴라인의 미니 원피스, 파자마에 점퍼를 매치한 캐주얼한 룩을 통해 페이즐리 문양을 새로운 방식으로 각인시켰다. 그 외에 하이더 애커만, 타쿤, 폴앤조, A.F 반데보스트 등이 이국적인 곳에 대한 동경을 담아 페이즐리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쇼 직전 인도를 여행하기도 한 하이더 애커만은 정교한 테일러링이 더해진 매니시한 팬츠룩으로 페이즐리를 멋지게 부활시켰다. 이처럼 페이즐리 패턴의 화려한 비상은 어릴 적 목에 한두 번쯤 매보던 아빠의 실크 타이나 엄마의 스카프를 떠올리는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던 걸들에게 용인되는 현대적인 아름다움과 절제의 미학을 잊지 않은 명민한 디자이너들이 낳은 결과다. 그러니 이번 시즌에야말로 프린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New Year, New You’를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위한 보호색이 아닌 온갖 색채가 만연한 봄의 정원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룩으로서, 또한 도심의 삭막함에 활력을 주는 휴식과 같은 룩으로서 말이다. 무엇보다 프린트에 젖어드는 순간, 당신 안에 숨겨져 있던 카멜레온과 같은 매력도 동시에 만개할 테니까.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서원기, KIM WESTON ARNOLD
아트 디자이너
art works by KIM YOUNG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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