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이 사는 세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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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가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명예졸업을, 인간문화재에 항목이 추가된다면 당장 명인으로 선정될 거예요. 누군가에겐 생소할지 몰라도 그들만의 리그에선 전설이 되어버린 스페셜리스트 13인. 이만치나 속이 올차고 야무진 손을 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컬러 디렉터●배유미

컬러 디렉터란 어떤 직업인가?
크게는 ‘색’을 통한 개개인의 이미지메이킹을 도와주는 일종의 컨설턴트다. 나는 그중에서도 ‘네일 컬러’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데, 반디네일에서는 트렌드 컬러를 선별, 조색하여 신제품 개발에 응용하는 R&D센터 연구소장과 네일리스트들을 위한 컬러 수업을 담당하는 교육이사를 겸하고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네일 컬러를 선택하는 팁을 준다면?
1. 머리카락, 눈동자, 피부톤이 붉은빛을 띤다면 옐로 베이스가 가미된 컬러는 피한다. 예를 들면, 겨자, 아이보리, 주황색, 벽돌색 등. 2. 하얀 손에는 파스텔 계열이나 비비드한 색이 잘 어울린다. 반대로 손이 검은 편이라면 브라운이나 와인 같은 차분한 색이나 톤 다운된 뮤트 컬러를 바르는 것이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3. 레드라고 다 같은 레드가 아니다. 원하는 색이 명확하게 있다면 조금씩 톤 조절을 하면서 다양한 컬러를 발라보도록. 4. 눈동자나 머리카락이 아주 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컬러는 무채색 중 하나인 그레이.

나랑 맞지 않는 컬러지만 꼭 한 번 발라보고 싶을 때는?
프렌치나 그러데이션 기법을 활용해 시선을 끊어주는 방법이 있다. 이때 포인트 컬러는 자신과 잘 어울리는 색으로 선택한다.

일반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컬러 세 가지는?
1. 초콜릿 브라운. 손톱과 발톱 어디든 무난하며 쉽게 질리지 않는다. 2. 핑크. 톤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진한 핑크색으로 젤리나 사탕 같은 느낌을 주는 젤리끄도 인기다. 3. 그레이. 20~30대 직장인이 많이 찾는다.

디지털 리터처●신경일

디지털 리터처란 무엇인가?
일차원적으로는 ‘리터칭하는 사람’.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을 포토샵 등을 통해 수정·보완하여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일종의 살을 붙이는 작업이다.

국내에 리터처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일을 하게 된 동기가 있나?
아직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기 전, 필름 사진의 스캐닝 작업부터 시작했다. 94~95년쯤이었나? 한참 매킨토시에 미쳐 있었는데, 당시에는 맥을 자유자재로 다루거나 포토샵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필름에서 디지털로 사진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고, 리터칭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나 둘 맡게 되었다.

보통 한 개의 뷰티컷을 작업하는 데 얼마 정도 시간이 소요되나?
순수하게 포토샵 작업만 두고 본다면 2~3시간 정도. 오히려 작업 방향을 잡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작업 전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놓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 쳐다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단점을 커버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의 과정이니까.

마법처럼 변하는 비포&애프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과연 리터칭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목구비를 키우거나 두상을 줄이고 팔다리를 늘리는 등의 ‘수정’은 어지간하면 다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안 되는 것도 있다. 포토그래퍼가 만들어놓은 광원을 바꾸는 일. 뭐 이것 또한 리터처의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테지만.

자신이 작업한 광고 중 대표적인 것 세 가지만 꼽자면?
최근작으로는 전지현의 더페이스샵, 송혜교의 라네즈, 김태희 시절의 헤라 지면 광고.

리터처 1세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두고 볼 때 리터칭의 역할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헤어나 메이크업, 스타일링 등에 비해 훨씬 적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바이라인조차 빠질 때가 허다하다. 지금까지는 ‘내 작업’만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전체 리터처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앞장설 생각이다.

스토어 크리에이티브 매니저●김정현

스토어 크리에이트란 어떤 일인가?
키엘의 36개 백화점 매장과 삼청동 부티크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 사무실에서 하는 도면 작업부터 전체적인 인테리어 방향을 잡는 일, 그리고 가구를 제작하고 크고 작은 소품을 구해 제품과 함께 디스플레이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다.

백화점의 수많은 화장품 매장 가운데에서도 키엘은 유난히 눈에 띈다. 만든 이로서 키엘 매장만의 아이텐티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스토리. 키엘 스토어는 매장 곳곳에 숨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손님은 물론 직원들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양한 요소를 숨겨놓는 작업은 마치 보물찾기 게임을 할 때처럼 짜릿하다.

그런 아이디어와 소품은 어디서 구하나?
전체적인 틀은 키엘 미국 본사에서 가이드라인이 온다. 그것을 기초로 한국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다. 소품은 주로 이태원의 앤티크 골목과 한남동의 할리데이비슨 매장에서 구입하고, 가구는 대부분 홍대 가구거리에 디자인을 주고 주문 제작한다.

온전히 본인의 아이디어만으로 키엘 매장을 꾸밀 기회가 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고 싶나?
미국에서는 첫 번째 오리지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직원이 결혼식을 올린 적이 있다. 고객들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는데, 한국의 키엘 매장도 그런 진정한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번쯤 들러 추억을 떠올리고 옛날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소 말이다. 그러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한 10년쯤? 삼청동 부티크라면 머지않아 가능할 거 같다.

천연 향료 수집가●최지영

지금 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미화학(Flavor Chemistry)을 전공하고 현재는 ㈜아모레퍼시픽에서 출시되는 모든 브랜드 및 자회사 제품의 향을 개발하는 향료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로 식물이나 식품에서 향을 채집, 분석하는 일이다.

독특한 직업이니만큼 남들이 모르는 특이한 직업병이 있다면?
주변의 모든 향에 반응하는 습관이 생겼다. 음료나 과자를 먹을 때에도 어떤 향이 나는지 킁킁대고 향부터 맡아본다. 만약 생소한 냄새라도 날라치면 어떤 성분에 의한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보고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니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맛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화장품은 프랑스 등에서 수입한 향을 쓰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자체적 으로 채집하는 향이 있나?
물론! 우리나라에서 좋은 발향 식물이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 녹차꽃, 제주 한란, 광양 매화, 거문도 수선화. 차례대로 각각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설화수, 마몽드의 시그너처 향에 쓰인다.

향을 채집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순례했다고 들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 있다면?
제주도. 가장 많은 종류의 향을 채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녹차꽃과 녹차의 향이 난무하는 오설록 다원, 겨울에야 제 매력을 보여주는 동백꽃 마을, 봄이면 제주도를 가득 채우는 유채꽃 풍경을 특히 좋아한다.

두피 테라피스트●정영석

두피 테라피스트는 어떤 일을 하는가?
펌이나 염색, 스트레스, 환경 오염 등 각종 유해 요소로 인해 손상된 모발과 두피를 진단하고, 적절한 케어법을 제시해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머릿발이 중요한 연예인이나 대기업 임원,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찾는다. 비, 한가인, 이병헌, 이동건,솔비의 모발 및 두피 케어를 직접 담당했다.

헤어 디자이너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두피 테라피스트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나?
15년쯤 전에 정말 우연히 두피 케어법을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두피 쪽으로 끌렸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계속해서 궁금한 것이 생기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만큼의 효과를 눈으로 보여주었으니까.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에 디자인을 병행하면서 조금씩 준비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비듬/탈모/민감성 두피 가운데 가장 치료가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탈모 케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효과를 직접 느끼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피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다면?
1 본인에게 잘 맞는 샴푸를 선택할 것. 거품은 충분히 내고 방치 시간(약 2분)도 철저히 지킨다. 두피에 샴푸가 남아 있지 않도록 꼼꼼히 여러 번 헹구어야 함은 물론이고. 2 충분한 수면시간. 부족한 수면 시간은 두피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3각종 스트레스 요소들과 술·담배를 멀리하고, 틈틈이 머리 전체를 두드리듯 마사지해준다.

뷰티 포토그래퍼● 정용선

패션과 달리 뷰티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보는 사람, 즉 독자나 소비자와의 소통이 가장 빠르고 쉽다. 상대적으로 틀이 작고 콘셉트에 한계도 있으나, 때문에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무드보다 디테일 하나하나를 중시하는 내 취향과 잘 맞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뷰티·패션·제품·인물 포토그래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진가나 에디터나 디자이너나 어떤 의미에서는 아티스트인데,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점점 더 획일화되고 있다. 각자의 색에 맞게 일이 주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대충 스케줄 맞는(혹은 유명한) 사람에게 아무거나 가져와 ‘이렇게 해주세요’ 요청한다. 사람 중심이 아닌 일 중심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피사체로서 좋은 뷰티 모델은?
이혜상.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힘든 마스크를 가지고 있다. 서구적인 분위기가 나면서도 광대가 도드라지고, 적당히 각이 있으면서 얼굴이 작고 말랐다. 1mm의 차이까지 캐치하는 섬세한 연기도 가능하고.

1981년쯤 <나그네>로 잡지를 시작했으니, 30년 이상 사진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너무 많다. 10년 전만 해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면 절대 찍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당 부분 타협한 상태다. 그래도 늘 새로운 도전에는 목말라 있다. 사진에 관해서라면 나는 여전히 욕심쟁이다.

에디터
뷰티 에디터 / 김희진
포토그래퍼
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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