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0! 가을 대비 족집게 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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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은 복습을 해요. 우등생은 복습도 하지만 진도를 앞서 나가요. 지금 막 발표된 따끈한 프리폴 컬렉션을 보면 다가오는 F/W에 대한 감이 잡혀요. 미리미리 알아두면 옷장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봄옷을 장만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시즌 개념을 따지는 건 모범생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문득 떠오르는 플래시 백. 2009년 12월호를 준비하던 지난 11월초의 편집부 패션팀 에디터들은‘2000-2009, 패션 10년사’기사를 준비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10년간 쌓인 수십 권의 잡지는 물론이고 각종 서적, 인터넷, 신문을 비롯하여 편집부 창고 깊숙한 곳에 묻어둔 컬렉션 북과 인덱스, 각 브랜드의 연도별-시즌별 룩북까지 총동원하여 지난 10년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리하느라 만만찮은 수고가 들었고, 그만큼 보람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짧은 지면에 긴 세월을 정리하다 보니 아쉽게 언급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그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대목은 바로‘오트 쿠튀르의 몰락과 레디투웨어의 양적 팽창’이다. 오트 쿠튀르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면서 쿠튀르적인 판타지가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몫으로 대폭 편입되었고, 그러면서 레디투웨어가 종종‘현실에서 입기 힘든’방향으로 풀리다 보니 상대적으로‘팔리는 옷’의 몫은 점점 크루즈나 프리폴 컬렉션으로 넘어오게 된 것. 글로벌 젯셋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부분 휴양지에 어울리는 룩으로 구성되는 크루즈 컬렉션은 액세서리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프리폴 컬렉션은 의류에 주력하기 때문에 발표하는 룩의 가짓수는 적지만 당장의 활용도를 위한 웨어러블한 의상이 대부분이며, 다가오는 시즌의 트렌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그 중요성은 매우 높아지고 있다. 두터운 아우터류를 제외하고는 시즌을 불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도 많기에 적어도 두세 시즌쯤은 거뜬히 옷장에서 버텨낼 수 있는 옷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프리폴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KEY ITEM 1 드레시한 케이프

케이프가 몇 시즌째‘롱런’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 기본형의 테일러드 코트에 비해 다소 튀는 아이템이라 겨울 시즌이면 늘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곤 하던 케이프를 프리폴 컬렉션의 주요 아이템으로 선보인 브랜드가 꽤 많았다. 이들이 제안하는 룩을 통해 케이프 선택 요령을 정리해보자면, 어깨만 덮는 장식용보다는 엉덩이를 덮는 넉넉한 기장을 고를 것, 가죽이나 니트, 혹은 새틴등 평범한 모직에서 벗어난 소재를 고를 것, 그리고 보, 핀턱, 러플, 엠브로이더리나 자수 등 장식적인 요소가 있는 것을 고를 것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와 피비 필로(셀린), 히트 아이템 제조기인 두 여성 디자이너가 시즌을 불문하고 앞다투어 반드시 만드는‘쿨한’아이템이라는 것도 케이프의 롱런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KEY ITEM 2 디지털 프린트 드레스

‘리틀 블랙 드레스’의 자리는 당분간‘리틀 그래픽 드레스’가 대신할 전망. 비즈니스나 스타일링 면에서 액세서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색감의 디지털 프린트가 자리 잡은 드레스라면 별다른 추가 액세서리 없이도 충분할 정도다.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최근의 스타일링을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일종의‘미니멀리즘’인 셈. 랑방, 루이 비통 컬렉션처럼 헴라인이 풍성한 칵테일 파티용 드레스, 베르사체나 발렌시아가 컬렉션처럼 마이크로 미니 헴라인의 튜닉 드레스 스타일 등 극과 극의 선택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화려한 레그웨어나 컷아웃 스타일의 부츠를 더하면 좋고, 후자의 경우에는 미니멀한 재킷을 어깨에 툭 걸치는 정도에서 스타일링을 마무리할 것.

KEY LOOK 1 허벅지를 드러내는 마이크로 미니 룩

적절한 스타일링만 가미한다면 사시사철‘마이크로 미니’룩을 즐길 수 있다는 디자이너들의 끈질긴 설교는 이번 프리폴 컬렉션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지고 있다. 봄/여름 시즌에는 한 뼘 길이도 되지 않는 쇼츠가 득세했다면, 가을/겨울 시즌에는 드레스나 스커트 위주로 선보일 전망. 프라다, 발렌시아가, 클로에 등이 모두 허벅지 위로 껑충하게 올라오는 톡톡한 소재의 스커트를 선보였고, 지방시와 베르사체의 키 룩은 아찔한 길이의 섹시한 미니 드레스! 미우미우처럼 짧은 코트를 마치 미니 드레스처럼 연출하는 것도 마이크로 미니 룩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 이 짧은 룩을 스타킹조차 신지 않은‘맨다리’에 적용했다는 사실! 이번 겨울에는 한파가 오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KEY LOOK 2 가느다란 레이디라이크 룩

팬티인지 팬츠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익스트림 쇼츠’를 남세스러워서 도대체 어떻게 입고 다니냐는 한숨을 내쉬는 당신을 위한 희소식. 이번 겨울에는 무릎 길이의 단정한 스커트 수트 룩이 대세다. 디올, 니나리치, 막스마라, 도나 카란 등 도시를 불문하고 프리폴에 이 룩을 내세우지 않은 디자이너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허리와 허벅지까지는 꼭 맞게 떨어지면서 무릎을 봉긋하게 감싸는 펜슬 스커트에 니트나 트위드, 모헤어 소재의 재킷을 입고 허리는 가느다란 벨트로 조이는 전형적인 레이디라이크 룩. 마이클 코어스나 알렉산더 매퀸처럼 상하의 소재를 맞춘 앙상블도 있지만, 디올이나 막스마라, 니나리치처럼 상하의를 따로 매치하는 스타일도 많아 조합의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어느 편이든 스커트 소재는 허벅지의 실루엣을 살짝 보여줄 정도로 얇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포인트.

KEY TREND 1 업타운 밀리터리

지난2007 F/W를기점으로대거쏟아지기시작한밀리터리 트렌드가3년이 넘도록 변형되어 살아남고 있다. 밀리터리 룩이 2천년대 들어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까닭은 유니폼-사파리-그런지 등 약간의 키워드를 보태면서‘여전사’일색으로 흐르지 않도록 연구한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 이번 프리폴 컬렉션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군대 특유의 카무플라주 프린트를 귀엽게 변형한 프라다, 무슈 생 로랑의 사파리 재킷에 로맨틱한 레이스 스커트를 덧대어 드라마틱함을 표현한 디올, 카키 톤의 배기팬츠와 유선형의 웨지힐 부티만 가지고도 깨끗한 유틸리티 스타일을 표현한 보테가 베네타 등이 대표적이다. 당장 전투판에 나가야 할 거친 룩이 아니라 대도시 한복판에서 입을 수 있는‘업타운’느낌으로 에지를 더한 것이 공통점이다.

KEY TREND 2 뉴 드레스 업

프리폴 컬렉션은 크루즈 컬렉션과는 달리 하늘하늘한 이브닝 가운을 거의 선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연말연시에 몰려 있는 파티를 겨냥한 드레스업 스타일은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커머셜한 아이템을 주로 선보이는 프리폴 컬렉션을 살펴보면‘평상시 아이템으로 손쉽게 드레스업 하는 법’에 대한 스타일링 팁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시즌에 응용 가능한 것으로는 먼저 장 폴 고티에나 알렉산더 매퀸 컬렉션처럼 드레시한 소재의 코트를 드레스 대용으로 입는 것(허리를 조이는 벨트는 필수다), 셀린이나 알렉산더 왕처럼 평범한 화이트 셔츠에 화려한 벨트를 더해 포인트를 줄 것(하의는 검정을 선택하여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 이브 생 로랑이나 구찌처럼 정제된 오피스 룩에 짧은 퍼를 둘러줄 것(색상은 같은 계열로 통일하는 편이 고급스럽다) 등의 방법을들수있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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