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신의 신예이자 뉴 클래식, 제네비브

이예지

너의 목소리가 들려

R&B 신의 대표적인 신예이자 뉴 클래식.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네비브(Jenevieve)를 이렇게 소개해도 무방할까. 지난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를 코앞에 앞둔 날, 그녀를 만난 곳은 20세기에 지어진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이 공간은 어쩐지 그녀와 닮아 보였다. 고전적인 소울과 펑크는 물론, 지난 세기 일본 시티팝이나 현대적인 드림팝의 조각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뒤섞어 끝내 자신만의 무드로 완성하는 뮤지션. 그녀는 과거와 현재, 익숙함과 새로움을 모두 끌어안고 있었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의 가죽 톱, 셔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W Korea> 서울의 힙한 장소에서 화보를 찍었는데, 촬영은 어땠어요?
제네비브
정말 좋았어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몹시 궁금해요.

서울 성산동의 대표적인 ‘현대식 올드스쿨 공동주택’이랄까요. 아무튼 정말 멋진 사진이 나왔네요.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죠?
아직 충분히 둘러보진 못했지만, 일단은 음식이 정말 끝내줘요. 미국에서도 즐기던 음식이 김밥, 비빔밥인데, 역시 본고장에서 먹으니 맛이 완전히 달라요.

5월에 낸 당신의 2집 리패키지 앨범<Crysalis (CODA)>에는 특별히 트와이스의 지효와 함께한 곡 ‘Hvnly’도 실었어요.
지효가 자기 인스타그램에 제 음악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그걸 계기로 소통하게 돼서 이번 협업이 이뤄졌죠. 어려서부터 K팝을 듣고 자란 제가 K팝 아티스트와 직접 함께하게 되니 감개무량했어요. 한때 빅뱅, 2NE1, 샤이니에 푹 빠져 지냈거든요.

잠깐만! 뭐라고요?
네, 맞아요. 어렸을 때, 옛날 소셜미디어 플랫폼 텀블러를 하던 시절에 제가 2NE1의 사진을 자주 올렸어요. 스파이크 달린 재킷이며 부츠, 모자까지 정말 너무 멋지잖아요.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됐는데 너무 멋져서, 모르는 한국어 가사를 막 흉내 내기도 했죠. 음악도 좋고 춤도 멋졌어요.

저, 2NE1 멤버들 여러 번 인터뷰해봤어요.
진짜요?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CL이 옛날 록 밴드나 메탈 밴드의 뮤직비디오, 화보 등을 찾아보면서 패션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와. CL은 정말 후대 K팝의 청사진을 제시한 사람 중 하나 아닌가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당신의 노래는 아무래도 ‘Baby Powder’일 거예요. 제목부터 재밌어요. 어떻게 해서 베이비파우더를 러브 송의 소재로 떠올렸나요?
사랑한 남자와 이별하는 내용이죠. 문득 존슨즈 베이비파우더가 생각났어요. 실은 제 성도 존슨이죠(웃음). 어렸을 때 엄마가 늘 그 파우더를 발라주셨으니 제겐 여러모로 친근한 소재기도 하고요. 베이비파우더는 땀띠가 안 나게 아기의 뽀송뽀송한 피부를 지켜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의 ‘베이비’가 떠나면서 그는 날 드라이(dry)하게, 그러니까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예요.

2021년 데뷔 앨범 부터 당신을 주목했어요. ‘Midnight Charm’이란 곡을 처음 듣고 너무 좋아서 제가 출연하는 라디오에도 소개했답니다.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냥 음악에 반한 거죠. 그리고 무려 4년이 흐른 2025년에 한층 성숙해진 2집 <Crysalis>를 냈어요. 4년의 공백 기간,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발레 선생님이셨고, 직접 무용학원을 운영하셨죠. 저에게 음악과 몸의 움직임에 대해 알려주신 분, 정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2집은 애초엔 댄스 뮤직에 가까울 정도로 비트감이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구상했지만, 결국엔 조금 우울하고 슬픈 정서가 깔린 음반으로 완성됐답니다. 더 진심 어린 앨범으로요.

박시한 줄무늬 슈트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할머님도, 어머님도 댄서였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할머니는 살사의 여왕으로 불리는 쿠바계 미국인 가수 실라 크루즈(Ceila Cruz)의 댄서였어요. 물 건너온 수많은 ‘왕’과 ‘여왕’을 위해 춤을 추셨죠. 엄마는 유럽에서 벨리 댄서로 활약했고요.

자연스럽게 제네비브도 춤을 많이 추면서 자랐겠어요.
네. 세 살 때부터 췄죠. 특히 탭댄스와 플라멩코요. 할머니가 직접 가르쳐주신 건 아니지만 그분의 친구이자 플로리다주에서 손꼽히는 무용 교사였던 페페 브론스(Pepe Bronce)에게 배웠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쿠바계잖아요. 히스패닉으로서 플라멩코를 배우는 건 아마 한국인이 한국 전통 무용을 배우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마이애미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춤과 조금 멀어졌어요. 그 대신 교회에 다니면서 저의 ‘목소리’를 발견했죠. 교회 합창단 오디션 첫날에 바로 솔로 파트를 맡게 됐거든요.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배들은 누가 있을까요?
마이애미에 살 때부터 R&B를 많이 들었어요. 배리 화이트, 테디 펜더그라스, 마이클 잭슨과 재닛 잭슨, 잭슨 파이브와 잭슨스까지…. 한편으론 리키 마틴, 샤키라도 좋아했고, 쿠바 음악을 포함한 라틴 음악부터 클래식 음악, 록 음악까지 다양하게 즐겼죠.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는 더 클래시, 비지스, 듀란듀란, 디페시 모드까지 언급하더군요. 놀라웠어요.
유럽에서 활동한 엄마의 영향이에요. 1980년대 유럽에서 즐겨 듣던 그룹을 엄마를 통해 접하게 된 거죠. 요즘 음악은 20세기 음악가들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소중하죠. 그게 그 시대의 음악을 제가 즐겨 듣는 이유고요.

음악 취향과 별개로, 20세기적 취미를 갖고 있는 게 혹시 있나요?
그럼요. VHS 카메라를 몇 대 갖고 있고, 필름 카메라와 옛날 비디오 게임도 있어요. 요즘도 가끔 그런 게임을 즐기죠. 레코드 수집에도 제대로 빠졌어요. 특히 카세트테이프요. 너무 귀엽잖아요. 롤러스케이트도 좋아하고요. 하지만 레트로만큼,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것도 즐긴답니다. 저에겐 새로운 도시, 서울에 이렇게 와 있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혹시 특별히 아끼는 카세트테이프 있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노토리어스 B.I.G.를 포함해 올드스쿨 래퍼들 노래로 만들어준 믹스테이프요. 뉴욕 거리에서 들릴 만한 그런 곡들이죠.

아티스트 네임을 ‘제네비브’로 정한 이유는요?
아티스트가 가명 대신 (성을 뺀) 진짜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뒤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걸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옛날에는 본명을 쓰는 아티스트가 많았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이름이 이국적이에요. 프랑스 분위기도 나고요.
엄마가 프랑스계 쿠바 혈통이어서 그럴 거예요. 실제로 저도 프랑스어권 아티스트들을 정말 좋아해요. MC 솔라르, 스트로마에…. 진보적이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인장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게 맘에 들어요.

러플 톱, 집업 재킷은 프라다 제품.

인터뷰하는 오늘,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서잖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 본인만의 의식이나 습관이 있다면요?
특별한 건 없어요. 물을 많이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 하죠. 때에 따라선 기도를 하기도 하고요.

음악 팬들 사이에선 아프리카계 미국 가수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있기도 해요.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화려한 기교를 앞세워 R&B 계열의 노래를 부를 거라는…. 하지만 당신의 가창은 무척 가벼우면서도 섬세하고 꿈꾸는 듯하거든요. 그런 음악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마이클 잭슨. 아무래도 그의 영향이 커요. 제겐 음악적 아버지 같은 분이죠. 음색을 중시하는 마이클 잭슨의 철학에 저 역시 크게 공감해요. 그리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좋아하고요. 그래서 제가 조던(‘Waiting Room’에서 듀엣을 한 조던 워드)을 좋아하는 거예요. 톤이 정말 미쳤죠. 제가 좋아하는 ‘음색 천재’는 다양해요. 그웬 스테파니, 액슬 로즈….

잠깐만요. 액슬 로즈? 설마 건스 앤 로지스의 그 액슬 로즈요? 당신 정말, 취향 다양성 끝판왕이네요.
액슬 로즈 음색, 정말 미치지 않았나요?

사실 당신 음악을 듣다 보면 샤데이도 떠오르지만 때론 플리트우드 맥 같은 소프트 록 밴드의 결도 느껴져서 반가웠어요.
아, 플리트우드 맥 너무 사랑하죠. 토킹 헤즈도 좋아하고, 사실 전 로큰롤 마니아예요. 아직은 음반이나 공연에서 그런 면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들려주고 싶은 게 제 안에 있는 로커의 취향과 잠재력이에요. 저는 록, 팝, R&B를 가리지 않고 두루 들으면서 자랐어요. 엄마가 들려주는 샤데이를 좋아했고, 에리카 바두와 인디아 아리도 마찬가지죠.

참, 영화 <마이클> 봤어요?
네. 재밌게 봤어요. 디테일들이 좀 더 들어갔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은 했죠. 이를테면 누나 레비 잭슨을 위해서 마이클 잭슨이 ‘Centipede’란 곡을 만들어주는 장면 같은 거요. 제가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쨌든 자파 잭슨이 마이클 잭슨을 정말 기가 막히게 연기했더라고요. 목소리와 노래까지…. 사실 살짝 눈물이 나왔어요. 개인적으로는 마이클이 키우던 침팬지 버블스가 등장하는 장면도 반가웠고요(웃음).

‘Baby Powder’에는 J팝 아티스트 안리(杏里)의 시티팝 명곡 ‘Last Summer Whisper’를 샘플링했더라고요.
‘Baby Powder’의 프로듀서 일라이저(Elijah Gabor)가 처음 제게 안리의 그 노래를 들려줬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 샘플을 기반으로 제가 새로운 파트를 만들어 넣고, 일라이저가 예전에 몸담았던 록 밴드를 위해 써둔 가사도 얹고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곡이 ‘Baby Powder’죠. 가끔 일본 시티팝을 들어보면 정말 펑키해서 좋아요. ‘슈퍼 펑키’해요.

사파리 재킷, 톱, 셔츠는 미우미우 제품.

만약에 타임머신이 당신에게 배달된다 칩시다. 20세기로 간다면 거기서 뭘 가지고 올 건가요.
음, 아마 구형 스테레오 전축,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가 대고 노래했던 것처럼 생긴, 이렇게 얇은 마이크라든가…. 상점에 들어가서 정말 많은 걸 사 가지고 와야겠어요. 요즘 안 파는 것들. 잔뜩요.

당신의 음악은 무드가 너무 훌륭해요. 언제, 어떤 장소에서 들으면 가장 ‘찰떡’일까요?
드라이브할 때, 아니면 해변에서? 시간대는 물론 밤이면 좋겠죠.

제네비브도 제네비브의 음악을 즐겨 듣나요?
음, 가끔은 다른 아티스트와 섞어서 랜덤으로 재생해요. 마이클 잭슨, 엘 드바지(El DeBarge), 안리…. 그러면 재밌어요. 제가 음악을 즐겨 듣는 건 샤워할 때. 그리고 방에서 게임할 때 정말 크게 틀어놔요. 차에서도요.

맞다. 이번 리패키지 앨범에는 래퍼 프레디 깁스가 참여한 ‘Flight Risqué’도 실었더라고요.
정말 영광이었어요. 프레디는 액션 브론슨과 함께 제 ‘최애’ 래퍼이고, DMX, 나스 같은 클래식 래퍼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Bellafonte’는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인권활동가 해리 벨러폰티에 대한 오마주인가요? 가사엔 정작 벨러폰티란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맞아요. 클래식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죠. 꿈의 남자….

역시, 당신은 다른 세기에서 온 사람 같아요….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면?
여름에 앨범을 하나 내고요.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고 계속해서 공연할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제가 가진 잠재력을 100% 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예요. 인간으로서도, 음악가로서도. 물론 댄스 앨범, 록 앨범도 언젠가는 꼭 낼 거예요!

포토그래퍼
장정우
Yuni Lim
헤어
이든
메이크업
박란희
어시스턴트
박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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