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키를 듣는 시간

전여울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장소, 일본 교토로 향했다. 재패니즈 위스키 ‘히비키’가 품고 있는 자연과 조화, 그리고 장인 정신을 따라간 여정이다.

이곳에서 보낸 며칠간 위스키를 단순히 마시는 것은 잠시 미뤄뒀다. 대신 보고, 듣고, 무수히 감각했다. 그러자 익숙했던 히비키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히비키 30년. 보틀 위를 감싸는 섬세한 와시 라벨이 눈에 띈다.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교토 시내의 소란을 뒤로하고 남서쪽으로 30분. 야마자키역에 내리자 단조로운 기차 벨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사위는 안개로 자욱했다. 가쓰라, 우지, 기즈 세 강이 합류하는 지형적 특성 탓에 이곳은 연중 습한 안개가 깔린다. 위스키가 천천히 숨을 쉬기에 최적의 습도다. 공기에는 은은하게 맥아 향이 감돌고 있었다. 안개 너머로 야마자키 증류소의 붉은 벽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증류소 캐노피에 선명하게 새겨진 ‘Since 1923’. 이 숫자는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다. 산토리의 창업자 토리 이 신지로가 일본 최초의 몰트위스키 증류소를 세운 해, 재패니즈 위스키의 연대기가 비로소 시작된 해다. ‘야마자키’를 필두로 ‘하쿠슈’, ‘치타’, ‘히비키’ 등에 이르기까지 산토리의 스피릿은 곧 일본 위스키의 계보와 궤를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토에서는 100년을 버티지 못하면 일인분 대접을 받기 어렵다” 는 콧대 높은 현지인의 농담 섞인 진담 앞에서, 산토리는 꽤 당당한 셈이다. 

세 강이 합류하는 특수한 지형에 자리한 야마자키 증류소.

보리가 당화되며 내뿜는 눅진한 열기를 지나 닿은 숙성 창고. 한낮의 초여름 열기도 이곳의 냉기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1924년산 셰리 캐스크를 포함해 수 천 개의 오크통이 잠든 이곳은 자연 환기가 이뤄지는 덕에 바깥보다 한 박자 느린 계절감을 유지한다. 다양한 원액이 익어가는 오크통 사이를 거닐며 각자 태어난 해의 캐스크를 찾느라 분주하던 방문객들의 시선이 직원의 호출에 따라 한곳으로 모였다. 미즈나라(水楢), 일본산 물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이었다. 

“미즈나라는 어쩌면 산토리 위스키의 인상을 결정짓는 재료입니다. 흥미로운 건, 본래 미즈나라는 위스키 캐 스크에 그리 적합한 목재가 아니라는 점이죠. 투과성이 높아 원액이 새기 쉽고, 다루기도 까다롭거든요. 일반 참나무보다 두세 배 긴 생육 기간이 필요하고, 오크통으로 짠 뒤에도 최소 15년은 숙성해야 비로소 특유의 진가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인고의 끝에서 터져나오는 향은 독보적이다. 계피에서 날 법한 날렵한 스파이시함 뒤로, 오래된 사찰에서 풍길 법한 서늘한 침 향이 흐른다. 20세기 중반, 해외 오크통 수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안으로 찾은 것이 당시 고급 가구재로 쓰이던 미즈나라였다. 소재 자체가 희소한 데다 공정이 까다로워 현재 산토리 하우스 내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하지만, 이제 미즈나라는 산토리 스피릿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대체 불가능한 재료가 됐다.

다양한 원액들이 맛있게 익어가는 숙성고.

1989년, 산토리 창업 90주년을 앞두고 블렌디드 위스키 ‘히비키’가 출시됐다. 당연히 히비키에도 미즈나라 캐스크에서 숙성한 원액이 쓰인다. 당시 하우스의 방향키를 쥐고 있던 인물은 2대 블렌드 마스터 사조 게이조였다. 어느덧 100년 가까이 축적된 하우스의 세월 속에서, 숙성고에 층층이 쌓인 100만여 개의 오크통은 그에게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되었을 터다. 히비키는 그 축적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와는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미즈나라 오크를 비롯해, 바닐라와 꿀의 단맛을 더하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타닌에서 비롯된 초콜릿 같은 농후함을 보태는 스패니시 오크 등 다양한 캐스크 원액을 블렌딩해 완성한 히비키는 산토리 블렌딩 미학의 정점을 보여 준다. 마치 ‘공명’ 혹은 ‘조화’를 뜻하는 그 이름처럼 말이다. “우리는 위스키를 음악에 비유하기 좋아해요. 다양한 원액을 섞는 과정은 과거와 미래의 블렌더가 나누는 긴밀한 ‘협주’라 볼 수 있죠. 이때 각각의 원액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테고요. 그렇게 탄생한 히비키는 단순히 만들어진 위스키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한 구성의 산물이라 볼 수 있죠.”

사람과 자연이 만든, 와시 라벨

에리코 호리키의 와시. 기하학적 패턴이 돋보인다.

종이로 만든 샹들리에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한 크리스털을 주렁주렁 매단 모습은 과연 샹들리에답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말해줄까요? 연약한 종이가 지탱하고 있는 저 크리스털의 무게만 50kg에 육박해요.”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와시(和紙) 예술가, 에리코 호리키가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1989년 히비키가 탄생하던 해, 그녀 역시 산토리 하우스의 미학적 동반자로 성큼 들어섰다. ‘와시’는 한국의 한지처럼 천년 넘게 이어져온 일본의 전통 수제 종이다. 히비키의 보틀을 섬세하게 감싸며 액체의 황금빛을 투과하는 와시 라벨을, 그녀는 오랜 시간 책임져왔다. 산토리는 히비키를 설명할 때 종종 ‘일본의 조화 속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문장을 꺼내 든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다층적이다. 여러 원액 간의 균형 잡힌 블렌딩은 물론, 일본의 자연과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의 결합까지 아우른다. 히비키 보틀은 어쩌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실체에 가깝다. 일본의 24절기를 상징하는 24면의 보틀 커팅, 그리고 그 위를 감싸는 와시 라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화인 셈이다.

야테 미나하레(やってみなはれ), 즉 ‘일단 해봐라’.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이 도전적인 문장은 에리코 호리키의 삶과도 궤를 같이한다. 교토의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그녀는 40여 년 전,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와시 제작에 뛰어들었다. 본래 와시는 순백의 섬유로만 제작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일본어로 종이를 뜻하는 ‘카미(紙)’가 신을 뜻하는 ‘카미(神)’와 같은 발음을 공유하는 만큼, 흰 종이는 오랫동안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색을 입히거나 다른 재료를 섞는 행위는 일종의 금기에 가까웠다. “그런 와시에 저는 염색한 섬유를 섞거나, 비정형적인 구조를 만들고, 물방울을 떨어트려 종이에 구멍까지 냈어요. 당시 장인들이 저와 말을 섞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녀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 시대의 규범을 생각하면, 저항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예요.”

교토의 오랜 사찰에서 명상을 진행했다. 어쩌면 위스키를 마시는 일은 명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에리코 호리키가 ‘히비키 하모니’의 라벨로 쓰일 와시를 조용히 내보였다. 종이는 빛을 투과하면서도 절반은 머금은 채, 각도에 따라 매번 다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종이들은 곧 위스키를 감싸는 피부가 되겠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같은 종이는 단 하나도 없어요. 와시를 만들 때마다 체감합니다. 70%는 사람이, 나머지 30%는 자연이 만든다는 것을요. 결국 우연성까지 받아들이는 일이죠.” 그녀는 위스키와 와시가 닮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듯 덧붙였다. “섬유 원료를 풀고 천천히 흔들며 평평한 결을 잡아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물’이 필요합니다. 위스키 역시 좋은 물에서 시작되죠. 결국 와시와 위스키 모두 물의 힘, 다시 말해 자연의 힘을 잠시 빌려오는 일인 셈이에요.”

자연을 직조해 완성한 기모노

히비키와 치소가 협업해 완성한 기모노.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했다.

“우리에게 전통은 ‘정글’처럼 야생적인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사람과 자연이 질서를 이루며 공존하는 ‘가든’ 에 가깝죠. 자연을 대하는 태도, 손을 사용하는 작업, 시간이 축적되는 방식. 그런 것들이 쌓여 기모노가 됩니다.” 교토에서의 어느 날, 조화를 말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1555년 교토 산조 무로마치에서 시작해 어느 덧 1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기모노 하우스, ‘치소(千總)’의 최고 브랜드 책임자 다이스케 시바다. 

에도 시대의 치소는 산조 거리 일대에 관련 상점만 100여 개를 거느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는 당대 유명 화가들과 손잡았고, 이내 일본 황실 조달업체로서 명성을 굳혔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가 콧대 높은 교토인의 전형적인 미소를 띠며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15대가 이어져온 셈이죠.”

치소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부터 축적해온 기모노 원단 조각을 비롯해 옛 도안 집, 잡지, 서적 등 이들이 보유한 자료만 2만 점을 훌쩍 넘긴다. 최근 이들은 이 아카이브에서 한 점의 그림을 다시 발견했다. 18세기에도 시대 중후반의 것으 로 추정되는 그림 속에는 국화와 매화, 당초와 소나무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자연을 향한 지극한 예찬을 담아낸 작품이다. 치소는 이 오래된 도안을 현대의 기모노로 다시 옮기기로 했다. 이 결과물은 히비키의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배우 안나 사와이가 새로운 캠페인에서 정갈하게 차려입은 바로 그 기모노이기도 하다.

완전히 펼쳐져 하나의 평면 회화가 된 기모노를 마주 했다. 시선을 가까이 가져가면 한 폭의 원단 위를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필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풍성 한 꽃바구니는 극도로 얇은 붓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었고, 유백색 바탕을 가로지르는 선들은 때로 예리하게, 때로 번지듯 뭉개지며 리듬을 만든다. 원본 도안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원화에는 없던 나비 한 마리가 기모노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이 그림을 선택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요. 히비키가 일본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위스키인 만큼, 도안 역시 다양한 식물이 묘사된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그림은 꽃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투영합니다. 마치 향기가 배어나는 듯하죠. 그래서 그 향기에 이끌려 잎 위에 내려앉은 나비를 상상하게 됐어요.” 이 한 벌의 옷을 위해 스무 명 남짓한 장인이 달라붙었다. 염색과 자수, 금박과 마감까지 각 공정마다 다른 손을 거쳤고, 제작에 꼬박 1년이 걸렸다.

비로소 들리는 것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향도 전통.

오래된 일본식 가옥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이 먼저 손님을 맞았다. 다다미방에 정좌해 고개를 드니 한 단 높게 자리한 도코노마(床の間)가 눈에 들어온다. 본래 족자나 꽃꽂이로 장식되는 그 내밀한 공간에 생화는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의 결, 바로 ‘향도(香道)’였다.

향도는 직역하면 ‘향기의 길’을 뜻한다. 천년 넘게 이어져온 일본의 전통 예술로, 과거 귀족들은 향나무의 향을 통해 시적 영감과 정신적 수양을 추구했다. 이글거리는 숯 위에 운모판을 올리고, 그 위에 잘게 자른 향목을 얹는다. 불로 직접 태우는 대신 천천히 열을 가해, 나무 안에 잠든 향을 깨워내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향을 음미할 때 ‘맡는다’ 대신 ‘듣는다’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문향(聞香). 그 정적인 의식의 중심에서, 미즈나라를 다시 만났다. 증류소에서 육중한 오크통으로 마주했던 미즈나라가, 이곳에선 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조각으로 놓여 있었다. 

유리병 안에 담긴 미즈나라의 향을 ‘듣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건조한 나무 냄새 뒤로 서늘한 침향과 스파이스가 아주 희미하게 번졌다. 잠시 후 향도를 주관하던 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재의 온도가 조금 달라졌어요. 이제 향도 처음과는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향은 형체 없이 사라지지만, 기억은 마음속에 남죠. 다시 한번 천천히 호흡하면서 달라진 향을 들어보세요.” 

“블렌더가 되기 위해서는 말하지 못하는 위스키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가 남긴 이 문장은, 감각을 동원해 나무의 숨결을 가려내는 향도의 문법과 필연적으로 겹쳐 보인다. 결국 위스키를 만든다는 것 역시 자연이 건네는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들을 하나의 균형 안에 배치하는 일에 가까울 테다. 

조화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히비키.

교토를 떠나 서울로 돌아온 며칠 뒤, 익숙한 바에서 히비키 하모니를 다시 주문했다. 늘 마시던 위스키였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가장 먼저 미즈나라 특유의 서늘한 스파이스가 또렷하게 올라왔고, 뒤이어 야마자키의 축축한 공기와 향도실에 가라앉아 있던 나무 향이 천천히 겹쳐졌다. 와시 라벨을 만들던 에리코 호리키의 단단한 손마디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향도를 주관하던 이가 말했듯, 형체는 사라졌되 그 정수만이 공명처럼 남은 셈이다. 다시 한 모금을 머금자 켜켜이 쌓인 조화가 입안 가득 조용히 번졌다.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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