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코리아 Vol.10 베스트 퍼포먼스 – 주지훈

김신, 권은경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주지훈은 선물이다. 함께 작품을 만드는 제작진에게, 또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주지훈은 기분 좋은 선물 같은 배우다. 선물을 받아든 우리는 때로 웃음짓고, 때로 감동하며, 가끔 묘한 먹먹함에 눈물 흘리기도 한다. 각종 기념일마다 잊지 않고 도착하는 주지훈이라는 선물을 나는 마다할 재간이 없다. 앞으로는 또 어떤 멋진 선물을 안겨줄지 벅찬 기대감으로 응원할 뿐이다.”
–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감독 이도윤

요즘, 디즈니+에서 공개될 <재혼 황후>를 촬영 중이죠? 컨디션은 좀 어때요?
주지훈 <재혼 황후> 촬영하는 중간중간 시상식이나 광고 촬영이 있었어요. 기분과 컨디션은 늘 비슷합니다. 저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작업 자체를 즐겨요. 스트레스를 동반한 행복이죠.

황제의 날들을 보내고 있으시죠. 역할 이름이 좀 어렵더라고요, ‘소비에슈’. <재혼 황후>에 대해 힌트 좀 주실래요?
해외 촬영을 한 달 정도 하고 왔어요. 지금은 국내 촬영 중이에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작품의 배경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제가 맡은 캐릭터도 그간의 인물과는 결이 달라서 여러모로 신선한 도파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블유>의 ‘베스트 퍼포먼스’는 화보 규모로 보나 인물의 면면으로 보나 스펙터클한 프로젝트입니다. <중증외상센터>는 여러모로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에요. 2025년을 여는 넷플릭스의 첫 시리즈였고, 공개 직후부터 반응이 뜨거웠죠. 완성작을 처음 본 때가 기억나세요?
배우들은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미리 볼 수 있거든요. 프로모션에 참여해야 하니까요. 집에서 봤는데, 준비하면서 걱정한 부분들이 결과물로는 잘 구현돼서 안도한 기억이 나요. 한 4화까지는 한 번에 본 것 같습니다.

위급 상황에서도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외과의사, 백강혁 캐릭터를 앞두고 육체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요?
원작 자체에 판타지 요소가 많아요. 베이스는 메디컬이지만, 들여다보면 히어로물이죠. 극 중 백강혁은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그런 요소들에 어떻게 하면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치열한 스터디와 토론을 거쳤어요.

배우들과 자유로운 스터디를 종일 하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극 중 백강혁에게 ‘항문’으로 불린 외상외과 첫 제자 양재원 역의 추영우, 깡다구 좋은 간호사 천장미 역의 하영, 묵직하고 안정감 있는 마취과 레지던트 박경원 역의 정재광 배우 모두 충분히 인상적이었죠.
재광이는 작품 경험이 비교적 있는 상태였고, 영우와 하영이가 그에 비해 경험이 적은 편이었어요. 모두 스터디하는 자세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본인들이 준비해 온 게 있을 텐데도, 감독님이나 선배 배우가 어떤 신을 해석하는 좀 다른 기준을 제시했을 때 겁 없이 스펀지처럼 ‘쑥쑥쑥쑥’ 빨아들이는 아이들이었죠. 그게 참 고마웠고, 그래서 같이 스터디했던 것들도 의미가 깊어요. 다들 촬영하는 내내 정말 말하는 족족 ‘쭉쭉쭉쭉’ 흡수하니까, 극의 흐름처럼 실제로 그 친구들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더 고마웠죠.

주지훈 씨와 이도윤 감독의 사이가 남다른 것 같더군요. 영화 <좋은 친구들> 때의 기억이 참 좋았나 봐요. 어떤 면에서 잘 통하세요?
10년을 함께한 현재진행형 영화적 동지예요. 아, 물론 <중증외상센터>는 영화가 아니라 시리즈입니다(웃음). 이도윤 감독은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와 비슷해요. 그리고 장면이 전달해야 하는 정서를 정확히 캐치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저와 의기투합해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도 했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흥망성쇠를 오랜 시간 함께한 동지여서 <중증외상 센터>로 같이 웃을 수 있었던 게 더 기뻐요. 얼마 전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저는 제 수상보다 작품상 수상이 훨씬 기뻤어요. 작품을 보신 분들은 백강혁의 활약이 돋보이니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지만, 업계 분들은 알아요. <중증외상센터>가 얼마나 이도윤 감독의 영혼이 갈려들어간 작품인지. 작품상으로 이도윤 감독의 그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아서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인터뷰하면서 ‘변곡점’에 해당하는 작품을 꼽아달라는 청을 종종 받으셨을 겁니다. 그 변곡점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겠는데요. 저는 주지훈 씨가 ‘연기하는 재미’를 느낀 시기가 언제쯤인지 늘 궁금했어요. 데뷔 때만 해도 감독에게 혼나가며 작품을 찍었다고 하셨잖아요. 연기의 맛을 느끼게 해준,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기분을 준 작품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
배우 생활 초반에는 사실 주어진 것만 소화하기에도 벅차서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죠. 그 시기의 캐릭터들이 주로 외형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이야기를 이끄는 역할이었다면··· 영화 <좋은 친구들>을 기점으로 감정을 더 복합적으로 연기할 기회가 생겼어요. 시장에서 제 쓰임이 좀 더 확장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죠. 캐릭터 탐구하는 재미를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 외에, 누군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주었다는 즐거움을 느껴본 적 있나요?
그럼요. 좋은 선배들과 작업하면 항상 저조차 몰랐던 저를 새롭게 발견해요. 모니터를 봤을 때, 생각지도 못한 제 모습을 강제로 목격하게 되죠. 그럴 때 참 행복해요. 운 좋게도 제 인생에는 그렇게 만들어준 선배가 많았어요. 연기자 선배는 물론이고, 감독님들도요.

저는 영화 <아수라>를 좋아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영화니까요. <아수라> 속의 주지훈도 아주 좋아하고요. 그 영화를 찍는 동안 ‘황정민 선배’에게 했다는 질문을 제가 주지훈 씨에게 해보겠습니다. 후배들 연기가 성에 차지 않을 때는 어떤 마음이 드세요?
그때 정민이 형한테 들은 답이 저는 아주 좋고, 정확하고 바른 자세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민이 형이 저한테 해준 말씀은 이런 내용이었어요.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아직 부족하고 어린 친구가 만약 한 70점짜리인데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기꺼이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동료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아직 70점이면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얘기해줘야 한다, 혼을 내든.’ 저는 그 말이 정답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한 인터뷰에서 ‘대중문화예술에 정답은 없지만 틀린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틀리지 않기 위해 시대를 읽는 노력’을 한다고요. 주지훈 씨가 틀렸다고 여기는 것들은 뭔가요?
일단 ‘틀렸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말로 전달하기 수월한 예를 들자면. 공식적으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있는 작품인데도 그 사전 준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않으면 틀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플해요. 각자가 해야 할 몫을 안 하는 것이니까요. 또 기본적으로 작품의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다음에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기획 의도를 벗어난 해석을 시도하는 건··· 그게, 배우가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본질에 맞게 기획 의도를 잘 읽어야 틀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를 읽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나요?
노력이라면··· 뭐, 배우니까 기본적으로 사람들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요. 여전히 시장이나 그 외 어떤 오픈된 장소에서 그냥 사람들을 잘 지켜보는 편이에요. 지나가다가 스몰 토크를 주고받기도 하고. 다행히 저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분들, 혹은 반대로 한참 어린 동생들과도 늘 함께 대화하는 직업이니, 그런 부분에서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들이 있죠.

선택할 때 주변의 의견을 두루 참고하는 편인가요, 자신의 판단을 믿는 편인가요?
일단 제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후에 주변에 묻는 편이에요. 제가 완벽할 수는 없으니.

경험과 연차가 쌓이면 아는 것이 더 많아지죠. 환경을 읽을 줄도 알게 되고요. 혹시 그렇게 ‘보는 눈’이 넓어진 탓에 오히려 조금 불편하거나 아쉬운 부분도 생기나요?
예전에는 제 앞가림하느라 정신없었죠, 뭐(웃음). 지금은 경험이 쌓이면서 훨씬 많은 게 보이긴 해요. 현장 진행 상황, 동료들 상태, 분위기를 파악하는 레이더가 자연스럽게 넓어졌죠. 물론 좋은 점이 많아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는 그냥 몰입하고 싶어도 ‘이렇게 가면 이런 부분이 위험하다’ 같은 신호가 감지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마음이 무겁죠. 그걸 다 겉으로 표현하거나 매번 상황에 개입하진 않아요. 기본적으로 주어진 자리를 지키면서 제 몫을 다하는 쪽을 택합니다. 대신 내적으로는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 감각을 다음 선택이나 연기에 반영하려고 해요.

현명하시네요. 주로 앞가림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연차의 남자 배우들이 ‘40대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경우를 꽤 봤어요. 그 나이가 되면 좀 더 무르익은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겠죠. 20대 시절 주지훈이 멋지다고 생각한 남성상은 어떠했죠?
정우성이죠.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친절한 사람, 매너 있는 사람을 가장 강한 사람으로 여겨요. 그런 면에서 우성 형이 제일 멋있는 사람이에요.

사람 좋아하시는 건 천성인가요? 대가족 속에서 자란 영향일까요?
둘 다인 것 같은데요. 천성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북적북적한 대가족 안에서 자란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가 자란 시대에는 동네 친구들이 날마다 다 같이 모여 밖에서 뛰어놀고 그랬으니, 그런 분위기에 좀 익숙한 것 같아요.

‘유년 시절’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뭔가요?
거의 책을 보며 지냈어요. 저희 어릴 때는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냥 집에 있는, 아버지가 보시던 책들을 계속 본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어요.

특별히 아끼고 좋아하는 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독서를 많이 했는데, 5~6년 전부터는 읽어야 할 대본이나 봐야 하는 영화가 많아지면서 책과 좀 멀어졌네요. 지금은 대본을 훨씬 더 많이 보죠. 책은 원래 가리지 않고 읽어요. 기본적으로 일본 문학이 갖고 있는 정서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90년대에는 각종 포스터와 브로마이드가 많았잖아요. 영화 포스터나 누군가의 사진을 방 벽에 붙여놓기도 했나요?
책받침에 관한 기억은 70년대생에게 유효할 것 같고요. 전 <비트>. <동방불패>, <천녀유혼>, 그리고 주성치의 거의 모든 영화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를 기억하세요?
<우뢰매>!

<우뢰매>로 극장 영화를 접하고, <비트>와 주성치 영화를 보며 자라 <궁>으로 본격 출발한 주지훈이 백강혁에 이르렀습니다. 배우로 20년쯤 지나온 결과 지금 남아 있는 큰 교훈은 뭔가요?
제가 몇 번 얘기한 적 있는데요, 나이 마흔이 넘어가니까, 이게 더 이상··· 그러니까 게임을 하드코어 모드로 하는 기분이에요. 20대 때는 30대 역할을 할 수도 있고, 30대 때는 20~30대 역할은 물론이고 분장하면 40대 인물까지 소화할 수 있죠. 그런데 이제부터는 해가 바뀔 때마다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에요. 여기서 10년 정도 지나가면 그때부터는 아예 다른 느낌이 나올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하루하루 소중히 살자.’ 교훈이라기보다, 요즘 결국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 그래요. ‘하루하루를, 잘 살자.’

베이스는 메디컬 드라마이지만, 들여다보면 히어로물. 올해의 출발점에서 <중증외상센터>의 뜨거운 열풍을 이끈 ‘백강혁’ 캐릭터는 주지훈의 차가운 분석에서 나왔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작품의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다음에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기획 의도를 벗어난 해석을 시도하는 건··· 그게, 배우가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단 하나의 장면, 단 한 줄의 대사만으로도 그해의 감정을 가로지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더블유> Vol.10은 그들을 위한 빛나는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고현정, 김우빈, 박찬욱과 손예진, 소지섭, 송중기, 임윤아, 주지훈, 한지민. 그 이름을 되새기는 건 지금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도달한 감정의 깊이와 밀도를, 작품의 성취를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들의 독자적인 순간이 찬란하게 펼쳐집니다.

포토그래퍼
목정욱
스타일리스트
양유정
헤어,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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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
김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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