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코리아 Vol.10 베스트 퍼포먼스 – 김우빈

이예지, 전여울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다 이루어질지니> 속 ‘지니’는 멋있다가 망가지고 망가졌다가 바로 치명적이어야 하는, 배우가 가진 모든 감정과 모든 표정을 다 사용해야 하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다. 개구진 얼굴, 잘생긴 얼굴, 차가운 얼굴, 고독한 얼굴,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얼굴을 두루 표현해야 하는데, 김우빈을 보며 배우에게 왜 ‘천의 얼굴’을 가졌다, 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 이루어질지니> 작가 김은숙

<W Korea> 배우 김우빈과 작가 김은숙. 이 조합을 오래 기다려온 팬들이 많습니다. 2012년 SBS <신사의 품격>, 2013년 SBS <상속자들>을 거쳐 올해 10월 공개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로 오랜만에 김은숙 작가와 재회했죠. 이번에 작업하며 둘 사이 여전하다고 느낀 것, 혹은 새롭게 느낀 변화가 있나요?
김우빈 여전한 것은 언제나 놀라운 글을 써주신다는 거죠. 한 신, 한 신 보내주기 아까울 정도로 대본이 너무 좋았어요. 작가님 특유의 대사 맛은 물론, 글이 품고 있는 깊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죠. 아마 끝까지 보시면 ‘와,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고 감탄하게 될 거예요. 변화라고 한다면, 글쎄요. 뵌 지 어느덧 14년이 지났는데 그 세월만큼 쌓인 진한 애틋함이 있어요. 제가 지나온 길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 유독 감사한 마음이 커요.

김은숙 작가에 따르면 ‘인간에게 소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이번 작품의 집필을 출발했다죠. 배우 입장에선 <다 이루어질지니>가 어떤 이야기를 건넨다고 보나요?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램프의 정령 ‘지니’를 소재로 삼아요. 지니가 어느 날 인간 앞에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하면, 인간은 제한된 소원 안에서 결국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모두가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 사랑과 우정의 의미,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까지 묻는 이야기로 확장돼요. ‘여러분도 어디선가 지니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보실 분들께 이런 말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 작품을 통해 미리 작은 ‘예습’을 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김우빈을 보며 배우에게 왜 천의 얼굴을 가졌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김은숙 작가가 <더블유>에 전한 말이 인상적이에요. 이번에 연기한 지니는 인간도 아니면서 감정은 과잉된, 그야말로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로 그려지죠.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지니 특유의 유쾌함도 있고, 때론 겁이 날 정도로 잔인해졌다가 또 하찮아지기도 해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캐릭터예요. 그런데 너무 감사하고 다행인 건, 왜 살다 보면 머리가 돌아가는 회로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와 작가님의 회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어려서 작가님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 장면을 이런 의도로 쓰셨구나’라는 게 약간 본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요. 이번에도 쉽지 않은 캐릭터였는데 그런 무언의 교감이 큰 힘이 됐어요.

아마 <신사의 품격> 종영 직후였죠? 김은숙 작가가 어느 날 전화해서는 “너는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아는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면서요. 방금 이야기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목 같아요.
그게 작가님과 나눈 첫 통화였어요.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사실 <신사의 품격>에서 제가 조연으로 나왔고, 그전까지는 인사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니 그 말씀을 하시고는 “오늘 생일이라며? 축하해. 잘 소화해줘서 고마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막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그 당시는 데뷔 초반이라 사실 칭찬보다 혼나는 일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전화 한 통으로 ‘내가 그래도 잘하고 있나 보다’라고 마음을 좀 놓은 것 같아요. 너무 큰 생일 선물이었죠.

비인간적 존재를 표현해야 했던 <다 이루어질지니>, 1년 넘게 블루 스크린 앞에서 씨름해야 했던 영화 <외계+인>, 요즘 시대가 열광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 서로 다른 삶의 결이 교차하는 군상극의 진수를 보여준 tvN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지난 출연작을 훑으면 안전지대에 머무름 없이 곧장 새로운 도전으로 직행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작품을 고를 때 ‘도전이 가능한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나요?
글쎄요, 작품을 선택할 때 그렇게 계산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아요. 사실 계산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단지 늘 제1의 관객이 된 마음으로 대본을 읽으려 하죠. ‘도전이 가능한가’보다도 ‘이야기가 좋은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그 당시 제 생각과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질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그저 이야기 자체에 홀리듯 빠져들거나 여태 못 해본 새로움에 끌리기도 해요. ‘이 시기엔 이런 장르’ 같은 전략은 없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을 담은 이야기, 인물의 성장과 관계가 품은 따뜻함에 끌리는 건 분명해요. 결국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돌아봤을 때 가장 큰 돌파구가 되어준 작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외계+인> 같아요. 그 현장에서 제가 자주 했던 말이 있어요. ‘나 진짜 성공했다. 배우를 한다고 시작해서 이런 영화를 찍고 있구나.’ 언젠가 <외계+인> 같은 영화가 나온다면 반드시 최동훈 감독님이 만들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그 현장에 제가 서 있었던 거잖아요. 물론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어요. 블루 스크린부터 시작해 처음 도전하는 낯선 것투성이였고, 무려 13개월에 걸친 긴 촬영을 버텨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까 ‘이제 웬만한 건 다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의 블루스> 속 김우빈을 좋아해요. 이전 작품들에선 연기보다 캐릭터가 훨씬 부각된 반면, 이 작품에서는 힘을 쏙 뺀 듯한 일상 연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노희경 작가가 김우빈에게서 ‘잘생김’을 압수하니 비로소 그의 연기가 선명하게 보이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웃음).
하하. 우선 글이 워낙 좋았어요.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작품은 거절하기가 힘들어요. 거절할 이유가 없죠. 옴니버스 형식이라 작가님이 “우빈아, 한 달 반만 시간 내줘”라고 하셨는데, 막상 제 분량만 6개월 가까이 찍은 것 같아요(웃음). 작품마다 고유의 톤과 매너가 있듯 그에 맞춰 연기하는 게 기본이지만, 이 작품은 특히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움직이려 했어요. 작가님 대본은 지문이 아주 촘촘하잖아요. 그 틀 안에 나를 녹여내면서도 나만의 해석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죠. 극 중 ‘정준’은 현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물인데, 평소 즐겨 보던 다큐멘터리나 사람들을 관찰하며 얻은 작은 디테일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이전까지 맡았던 역할과 결이 다르다 보니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최근에 본 작품 가운데 ‘내가 연기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상상해본 작품이 있을까요?
얼마 전 영화 <F1 더 무비>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브래드 피트는 정말…. 속으로 ‘우리 형 또 기막힌 영화를 찍었구나’ 싶더라고요(웃음). 그냥 존재 자체가 멋있잖아요.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영화관에서 오프닝 음악이 흐르며 데이토나 레이스가 펼쳐지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흥분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관객의 감각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느꼈는데, 사실 저같이 생각한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겠어요. 그 힘을 새삼 실감한 것 같아요.

“너의 욕망을 잘 들여다봐.” 이번 <다 이루어질지니>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해요. 그렇다면 김우빈이 배우로서 여전히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늘 더 좋은 연기,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을 하나라도 더 꺼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그리고 가끔 길을 걷다 관객분들이 “영화 잘 봤어요”라고 건네주시는 한마디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요. 우리가 같은 시간을 함께 통과했다는 뜻이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오래, 자주 만들어가고 싶어요.

<다 이루어질지니>로 보낸 뜨거운 한철, 그 시간이 김우빈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작품은 결국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구나, 이 사실을 유독 느낀 현장이었어요. 극 후반부에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 장면만 무려 3~4일에 걸쳐 찍었어요. 촬영을 앞두고 부담이 너무 커서, 그 이틀 전쯤 새벽 3시에 혼자 세트에 남아 1시간 반가량 리허설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감독님을 믿어요. 그러니까 감독님도 저를 믿어주세요.” 그 순간만큼은 감독님께도 힘을 드리고 싶더라고요. 그날의 현장은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도 서로를 믿는 용기를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인간에게 소원이란 무엇인가.‘ 이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 작품 <다 이루어질지니>는 단순히 그저 그런 판타지물에 머물지 않는다고, 김우빈은 말했다.
“지니가 어느 날 인간 앞에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하면, 인간은 제한된 소원 안에서 결국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모두가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 사랑과 우정의 의미,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까지 묻는 이야기로 확장돼요.”

단 하나의 장면, 단 한 줄의 대사만으로도 그해의 감정을 가로지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더블유> Vol.10은 그들을 위한 빛나는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고현정, 김우빈, 박찬욱과 손예진, 소지섭, 송중기, 임윤아, 주지훈, 한지민. 그 이름을 되새기는 건 지금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도달한 감정의 깊이와 밀도를, 작품의 성취를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들의 독자적인 순간이 찬란하게 펼쳐집니다.

포토그래퍼
목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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