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안목까지 남다른 소지섭

김나래

배우 소지섭 ‘픽’ 추천 영화들

영화 <미드 소마>, <카페 소사이어티>, <필로미나의 기적>,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최근 상영 5일 만에 관객 수 6만 명을 돌파한 화제의 명작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까지, 해당 영화의 공통점은? 배우 소지섭입니다. 소지섭은 지난 2014년부터 자신이 설립한 소속사 51k와 ‘따로 또 같이’, 영화 배급사 ‘찬란’에 투자하면서 다양한 영화의 국내 보급에 힘써 왔는데요, “한국 씨네필은 소지섭에 빚지고 있다”는 말까지 돌 만큼 지금껏 그가 ‘하드캐리’해 제공한 작품은 수십 편에 달합니다. 2022년 <유퀴즈>에 출연한 소지섭은 대중의 사랑에 ‘보은’하려 시작한 일이라면서 말을 아꼈지만,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극장 문이 넓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소지섭의 사적인 취향이 반영된, 놓치고 지나가면 안 되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좋은 작품은 말하지 않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즈 감독이 <언더 더 스킨> 이후 무려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고요한 잔악, 절멸의 사운드, 장면 없는 아우성”, “주인 없는 괴성에 경험을 조종당한다” 등의 극찬이 연일 극장가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에 설치한 유대인 수용소를 관리했던 군지휘관 루돌프 회스와 그 가족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가해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는 지점에서 그간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신선한 차별성을 획득하고 있어요. ‘보는 영화’이자 ‘듣는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매일 담장 너머로 수천 명이 죽어가는데도 한가롭게 정원을 가꾸는 회스 가족의 목가적 일상을 차갑게 질타하는 듯 날카로운 음향으로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MTV 전성기 시절, 스파이크 존즈, 미셸 공드리 등과 ‘레전드’로 불리던 조나단 글레이즈의 전력이 한껏 투입된 영화는 올 초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상을 수상했어요.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을 지극히 독창적으로 그려낸 수작입니다.

삶과 예술은 일치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저널리스트에 버금가는 시선으로 잘 알려진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이 기록한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생존과 투쟁이 담긴 사진가 낸 골딘의 일기장’으로 바꿔 말할 수 있어요. ‘셀프 포트레이트’ 방식의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가 낸 골딘은 2017년 의사에게 처방 받은 약물 오피오이드에 중독되었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데요. 오피오이드는 의사 처방만 있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로, 미국 내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해당 약물에 중독돼 사망한다고 합니다. 낸 골딘은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거대 제약 회사 퍼듀와 오너 일가인 새들러 가문을 상대로 약품의 부작용에 대해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유서 깊은 박물관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우는 힘겨운 투쟁을 시작합니다. 영화는 낸 골딘의 저항 정신과 투쟁의 향방을 쫓으면서 그의 내면에 자리한 불꽃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담담하게 추적합니다. ‘어떤 이에겐 예술이 곧 삶이다’라는 것을 방증하는 작품으로 진지한 태도에 임한 채 감상하게 됩니다.

맹목적 믿음은 때때로 악독한 위로를 전한다, <미드소마>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제작사이기도 한 A24는 현재 ‘미국 독립 영화의 핵’이라 불리고 있어요. 국내에 주로 독립, 예술 영화라 분류된 장르 중심으로 해외 영화를 제공하고 있는 배우 소지섭은 일찍이 A24가 제작한 영화 <미드소마>, <유전>을 주목하고, 이를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이제는 제법 한국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아리 애스터 감독이 <유전> 이후 메가폰을 잡은 <미드소마>는 <유전> 때와 마찬가지로 ‘점프 스케어’와 같은 공포 영화의 익숙한 문법과 완전하게 동떨어진 기괴하면서도 충격적인 서사로 관객의 마음을 떨게 하는데요. 영화는 가족을 모두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대니(플로렌스 퓨 역)가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잭 레이너 역), 친구들과 다 같이 미드소마 축제가 열리는 호르가 마을을 방문해 축제에 참여하면서 겪는 사건을 그리고 있어요. 미드소마는 실제로 매년 6월 중순 스웨덴에서 열리는 하지 축제를 뜻합니다. 저녁인데도 백야로 환한 대낮, 90년에 한 번 9일간 열리는 미심쩍은 마을 축제에서 벌어지는 다소 ‘악독한’ 위로가 담긴 영화예요.

사진
찬란, IMDb, @soganzi_51, @christian_friedel_official, @nangoldinstudio, @florencep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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