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낭만주의자, 게라르도 펠로니

김민지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나눈 이번 시즌 피스 유니크 컬렉션, 하우스의 영감과 비전,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더블유 코리아>!” 파리 컬렉션 기간에 열리는 로저 비비에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도착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Gherardo Felloni)가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1월 말 2024 S/S 오트 쿠튀르 기간,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매장의 살 다르장에서는 로저 비비에 ‘피스 유니크(Pièce Unique)’ 의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이 열렸고 게라르도 펠로니는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더블유>를 맞았다. 그의 영감으로 가득 찬 그 공간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꽃으로 천상의 정원을 재현했고,게라르도의 손에서 피어난 가방들은 꽃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로즈, 릴리, 데이지, 니젤라, 캑터스 달리아 등 다양한 꽃을 생생한 컬러와 입체적인 형태로 재현하고 해석한 각각의 작품들은 메종의 뛰어난 장인 정신을 가감없이 뽐냈다. 약 6년의 시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하우스를 이끌고 있는 게라르도 펠로니와 이번 시즌에 선보인 피스 유니크 컬렉션, 하우스의 영감과 비전,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의 포트레이트.

작년, ‘풋웨어 뉴스 어치브먼트 어워즈(Footwear News Achievement Awards)’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를 수상했다. 너무 축하한다! 하우스의 새로운 디렉터로 발탁된 이후 6여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기분이 어떤가?
일로 인정받아 상을 받는 것은 언제나 큰 영광이다. 6년간의 열정과 노력에 상이 뒤따랐다. 메종에 대한 나의 헌신을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

그동안 브랜드와 디자이너 자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변화와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었다. 가장 최근인 1월 말에는 파리에서 피스 유니크(Pièce Unique) 컬렉션을 선보였다. 유니크하고 익스클루시브한 백 12종과 질렛 5종으로 이루어진 피스 유니크 컬렉션은 뛰어난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새로운 접근이자 로저 비비에 실루엣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로저 비비에의 피스 유니크 컬렉션이란?
피스 유니크 컬렉션을 통해 메종의 기술적, 미학적 노하우를 정련해 정교함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은 장인이 각각 30~60시간씩 공들인 끝에 탄생했다. 이번에 발표한 백들은 제각기 다른 스토리를 들려준다. 깃털이 들어간 백, 자수나 라인스톤, 스트라스로 장식한 백 등 다양하다. 하나하나가 이름(태양의 왕, 풀밭에서의 점심식사, 눈사람 등)과 기법, 성격이 다르다. 피스 유니크 컬렉션은 팀워크의 결과물이며, 독보적인 장인들이 있었기에 성공한 놀라운 모험이다.

시즌 컬렉션과 피스 유니크 컬렉션을 둘 다 보여주는데 어떠한 차이점을 두고 작업하는가?
피스 유니크 컬렉션의 작업은 로저 비비에가 매 시즌 선보이는 일반 컬렉션 작업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방대한 연구의 결과로 탄생한 피스 유니크 컬렉션의 힘은 다양한 소재와 장식(스트라스, 깃털, 진주 등)에서 비롯된다. 정규 컬렉션 작업은 최대한 짧은 시간에 영감을 얻어 새로운 것, 매력적인 것, 다음 트렌드의 핵심 간의 완벽한 공식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한데(100개 이상의 모형 제작이 필요하다) 각자의 분야에 정통한 훌륭한 팀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이번 피스 유니크 컬렉션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수많은 크리스털과 은사가 들어간 ‘트랑블랑(Tremblant)’이다. 50시간이 넘는 자수 작업으로 완성한 감탄을 자아내는 백이다. 이 백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1800년대 네크리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알다시피 나는 앤티크 주얼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 독특하고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내 구성이 마음에 들고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로저 비비에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러 방문할 때마다 어떤 환상 속에 있는 듯 놀라움의 연속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이런 연출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이전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아 알고 있겠지만, 컬렉션이나 프레젠테이션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즐겨 섞는다. 판타지는 로저 비비에가 탄생할 때부터 줄곧 메종의 DNA로 작용한 요소다. 프레젠테이션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기 때문에 무대 연출에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다. 세팅이 컬렉션의 영감에 울림을 주면서도 제품 자체를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 세팅이 제품을 돋보이게 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발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 많은 사람의 손과 공정이 필요할 것 같다. 좋은 신발의 기준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신발에 대한 나의 비전은 건축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운 만큼 발이 편해야 하기에 신발의 형태와 구조에 신경을 쓴다. 그다음에 오는 것이 디테일과 장식이다. 요즘 여성들은 착용감을 희생시킨 아름다운 디자인보다는 실용적인 신발을 원한다. 로저 비비에가 활동하던 시절처럼 제품에서 쿠튀르적 요소, 환상, 컬러를 추구하지만 디자이너로서 나의 주된 목표는 로저 비비에의 시그너처인 시선을 사로잡은 독창적인 반전 요소가 가미된, 밤낮으로 신기 좋은 신발을 구상하는 것이다.

로저 비비에는 슈즈 명가로 유명하지만 백이나 액세서리도 인기 있다. 슈즈 외에 다른 아이템을 다룰 때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나는 일찍이 슈즈와 액세서리의 중요성을 인식해왔다. 로저 비비에는 나의 이러한 비전을 실현시킬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액세서리는 룩을 빛내주는 마지막 터치로 실루엣을 완성하는 존재다. 로저 비비에의 컬렉션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의 취향, 기분, 성격을 표현해줄 아이템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슈즈, 모자, 주얼리를 부가적이라는 의미로 ‘액세서리(ACC)’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우습기도 하다.

동의한다. 부가적인 것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당신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원래의 꿈이었나?
줄곧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았다. 일상 속 끊임없는 창작 과정이 가장 행복하다. 공부를 일찍 시작했고 가족이 구두 공방을 운영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슈즈, 그리고 로저 비비에 개인과 그의 작품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의 뒤를 잇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이처럼 뛰어난 디자이너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위대한 레거시를 전승하는 일인 동시에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도전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나의 가장 큰 목표는 혁신의 대가 로저 비비에의 뒤를 이어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주된 목표는 무슈 비비에가 디자인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현대적 시각과 테크닉을더해 재해석하여 메종의 헤리티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번 2024 봄-여름 컬렉션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선보인 카나드 슈즈처럼 말이다. 이는 그의 1950년대 오리 부리 모양의 여성스러운 펌프스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당신의 커리어를 특별하게 만든 아이템이 있나?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아이 러브 비비에’ 슈즈다. 비비에 여성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매력에 바치는 헌사로 ‘아이 러브 비비에’의 (펌프스 안에 화사한 붉은 하트가 들어간) 형태를 구상했다. 펌프스 ‘데콜테’ 부분의 뾰족한 디자인이 어느새 나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았다.

로저 비비에는 당대를 풍미한 여성들이 착용한 슈즈다. 당신이 그리는 로저 비비에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은?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후, 메종과 예술의 특별한 관계, 특히 많은 여배우를 위한 슈즈(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불 힐, 카트린 드뇌브의 벨 비비에 등)를 창작해온 로저 비비에와 시네마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했다. 자신감 넘치는 강한 여성이 신는 슈즈를 상상할 때 가장 행복하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아름다움은 스스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당신의 세계와 로저 비비에의 유산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나는 개인적인 취향과 메종 비비에의 유산, 글로벌 트렌드 사이에서 나만의 길을 다져야 한다. 메종 비비에가 슈즈 업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며 유행을 초월한 아이코닉한 컬렉션과 대표작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내 일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믿고 이를 실현시켜 매 시즌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요즘은 트렌드 주기가 너무 짧아, 공들여 만든 패션의 자리가 점점 축소되는 것 같다. 패션 시속이 빠르기에 이런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
확연히 차별화되는 가방이나 신발을 세심한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든다. 로저 비비에가 과거에도 지금도 강점과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제품에 특별한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 물론 트렌드를 알고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패션 트렌드를 넘어선 유행을 초월한 제품을 추구한다.

지금의 취향과 미감이 형성되기까지, 어린 시절의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하다.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창의성을 북돋아주는 환경에서 자랐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예술성과 장인 정신을 알아볼 눈을 길러주었다. 나는 꽃이나 동물뿐 아니라 건축과 드로잉 등 관심 분야가 많다. 어릴 때부터 재단, 드로잉, 페인팅 등 모든 걸 직접 해보았다. 호기심은 진정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뒤 슈즈 업계에 발을 들여 헬무트 랭, 미우치아 프라다, 존 갈리아노 등과 20여 년간 일한 뒤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집안 공방에서 (기술적인 지식과 장인 정신의 가치를 배우며) 보낸 어린 시절부터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순간까지 길러온 자연스러운 호기심은 여전히 나의 삶과 직업의 한 부분이다.

패션 말고 당신을 사로잡는 건 무엇인가?
관심사가 아주 다양하다. 영화, 오페라, 자연, 앤티크 주얼리를 좋아하고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왕성한 관심은 일할 때 무한한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맥시멀리즘은 아니지만 볼드한 디자인, 장식, 화려한 컬러, 자수,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만나 보여주는 새로운 디자인적 작용을 좋아한다. 때론 현대적이기도 미니멀적이기도 한 디자인들 말이다.

쉴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많은 출장과 여행 중 이탈리아의 섬 이솔라델질리오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엔 내가 소유하여 완전히 개조한 고대 등대인 ‘파로 델레 바카레체(Faro delle Vaccarecce)’가 있는데 그곳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때로 정신없이 느껴지는 컬렉션의 리듬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도 ‘성수동’이라는 올드 슈즈 팩토리가 있다. 서울을 방문한다면 <더블유>와 일일 투어 어떤가?
너무 좋다. 다른 문화를 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데, 한국의 슈즈 제작 기법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포토그래퍼
전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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