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이 들려준 그녀만의 이야기

전여울, 이예지

데뷔 후 3년의 시간을 경유한 이야기가 고요히 이어지며 지젤을 감싸던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낙엽이 지는 때였고 지젤은 에스파의 미니 4집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단서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지젤은 자신이 통과해온 ‘지젤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년기의 꿈, 사랑과 의리, 데뷔 후 3년의 시간을 경유한 이야기가 고요히 이어지며 지젤을 감싸던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크롭트 재킷, 레깅스는 돌체앤가바나 제품, 보디슈트,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생일이었죠. 어떤 하루를 보냈어요?
좀 재미있었어요. 생일 전날 (전)소미랑 온종일 집에서 뒹굴거렸거든요. 집 청소를 하다 전화를 걸었는데 밥을 안 먹었다길래 규동을 같이 만들어 먹었어요. 완전히 저염식으로.

미니 4집 준비에 한창일 줄 알았어요.
며칠 뒤면 발매니까 준비는 거의 끝났죠. 이제 프로모션만 남은 상태예요.

앨범 티저를 봤는데 왜 지젤이 ‘핫 걸’이라 불리는지 알겠더라고요. 타이틀곡 ‘Drama’가 힙합 장르인데 비트도 강렬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이란 메시지를 강조하잖아요. 곡 분위기가 유독 지젤과 잘 어울려요.
오 마이 갓, 핫 걸(웃음). 저도 이번 타이틀곡 너무 좋아요. 퍼포먼스도 멋질 거예요. 기존에 에스파가 갖고 있던 ‘쇠 맛’도 잘 담겨 있어서 팬분들도 분명 반가워할 것 같아요. 진짜 열심히 준비해서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을 듯해요.

언젠가부터 K팝 신에서 ‘핫 걸’이 유행어처럼 쓰였는데 돌이키면 지젤이 데뷔한 이후가 아닌가 싶어요.
데뷔 전부터 따라다닌 별명이었어요. 졸업 앨범에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That’s Hot’이라고 적는 바람에(웃음). 팬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인데 실제 저는 핫 걸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 같기도 해요. 의외로 내성적이고 낯도 좀 가리고 감성적이거든요. MBTI도 INFJ예요.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냉탕보다 온탕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게 떠오르네요.
네. 정말 그래요. 핫 걸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적인 모습이 물론 제 안에 있긴 해요. 그런데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도 있거든요. 사실 지난 ‘Spicy’ 활동 때가 제일 혼란스러웠어요. 정말 진지하게 ‘아, 핫 걸이란 뭐지?’라고 고민했을 정도예요(웃음). 그런데 뭔지 알겠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뭔지, 그게 핫 걸에서 나오는 어떤 에너지란 것도요.

평소 드라마를 보며 친밀감을 느낀 캐릭터가 있나요?
오, 있어요. 공감을 잘하는 편이라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나랑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면 더 재미있더라고요. 미국 드라마 <화이트칼라>에서 맷 보머가 연기한 ‘닐 카프리’를 봤을 때 정말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물론 닐 카프리는 희대의 사기꾼이라 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인물이지만요(웃음). 성격이 정말 비슷해요. 똑똑한 면도 있지만 바보처럼 의리가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저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어릴 때부터 의리가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세상 모든 일에서 의리가 가장 중요했어요.

가죽 스카프, 숄더 링, 벨티드 재킷, 스커트, 타이츠, 힐은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제품.

핫 걸로만 알았던 지젤의 입에서 ‘의리’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저는 의리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고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 같아요. 좀 오글거리지만 이 세상에 의리와 사랑만큼 센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돈을 좇는 이유도 결국 돈을 벌면 사람이, 그러니까 사랑이 함께 따라와서이지 않을까요?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이번 앨범 티저 영상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이에요. 지젤의 이야기가 시작된 출발점은 어디였을까요?
연습생 때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왔을 때. 현재로서는 이 일이 저의 모든 것이니까요.

뮤지션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이후로는 오랫동안 배우를 꿈꾸기도 했어요. 그림이나 연기에 재능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몰랐지만요. 한때는 디즈니 스타도 꿈꿨는데, 열심히 학교 다니다 보니 이미 하이틴이 지나 있었고요(웃음).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쯤 K팝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즈음 뒤늦게 사춘기 비슷한 걸 겪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싹 사라지고 갑자기 엄청난 의지가 생겼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다음 날 한국으로 왔죠. ‘이거 해야 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한 뮤지션은 누구였어요?
아주 어려서는 미국의 펑크록 밴드 블링크182, 에이브릴 라빈을 좋아했어요. 기본적으로 록을 좋아했어요. 사실 록스타가 되고 싶었는데 성격상 그 꿈을 이루진 못했죠(웃음). 그러다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푹 빠졌고요. 가장 유명한 히트곡인 ‘Problem’이 나오기 전, 디즈니 채널에 나오던 때부터 좋아했어요. 빨간 머리카락 날리면서 명랑하게 ‘Hi~’라고 말하던 그 시절. 아, 엘비스 프레슬리도 좋아했네요. 애니메이션 <릴로 & 스티치>도 엘비스의 노래가 많이 나와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니트 톱, 하이웨이스트 쇼츠, 더블 스트랩 힐은 페라가모, 프레셔스 레이스 링은 쇼파드 제품.

말 그대로 반짝반짝한 록스타, 팝스타가 취향이었네요.
그런데 또 저의 인생 뮤지션은 XXX텐타시온입니다(웃음). 제가 봐도 취향이 들쭉날쭉하네요. 고등학생 시절엔 XXX 텐타시온 음악만 들으며 살았던 것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에 음원을 올리던 때부터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 사고로 일찍 생을 마감했잖아요. 그 당시 학교의 서머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XXX텐타시온이 사망한 다음 날 팬들끼리 모여 추모식 비슷한 걸 했어요. 모르는 사람 30명 정도가 공원에 모여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다 같이 음악을 들었어요. 길가에 팬들은 이쪽으로 오라는 화살표 같은 게 붙어 있었고. 그런데 길을 몰라도 사람들을 보면서 어찌어찌 찾아갈 수 있었어요. 딱 알아볼 수 있거든요, 패션으로. ‘아, 저 사람 XXX텐타시온 팬이다.’(웃음)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다양해요. 게다가 화가, 가수, 배우를 동시에 꿈꿨고요. 어린 시절의 지젤은 보고 듣고 하고 싶은게 넘쳐나는 사람이었네요.
네. 그런데 진로적으로는 연기자가 가장 저에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연기할 때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고,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도 연기예요. 성격상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춤과 노래로 나를 표현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면 지금 여기서 당장 춤을 추라고 했을 때 그 관심을 온전히 즐기면서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막상 상상하면 부끄럽기도 하거든요. 물론 무대에 서는 건 너무 좋아해요. 너무 행복해요. 다만 저의 진짜 성격을 생각하면 감정을 수단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인가요?
너무 많은데, 우선 브래드 피트. 단순히 잘생겨서가 아니라 저는 먹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왜냐면 어떤 디테일을 아는 사람이거든요. 먹는다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이자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을 연기로써 매력적으로 표현할수록 멋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브래드 피트는 핫도그 하나를 먹어도 정말 남다르거든요.

크롭트 톱은 준지, 크로스 벨트는 알라이아, 드레이핑 스커트 레깅스는 블루마린, 퍼 부츠는 주세페 자노티 제품.
조형적인 재킷, 비대칭 스커트, 부츠는 릭 오웬스 제품.

지젤이란 사람의 중심엔 뮤지션, 그중에서도 랩이 있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의외네요. 에스파에서의 랩 파트도 인상적
으로 봤지만 그보다 2021년 NCT 태용, 제노, 헨드리, 양양과 5인조로 함께한 랩 유닛 ‘Zoo’의 활동을 관심 있게 봤거
든요.

‘Zoo’ 활동은 저도 정말 신나서 했어요. 태용 오빠가 베베의 바다와 함께 안무를 짜기도 했고 제노와 저는 본인 파트를 직접 썼으니까요. 다섯 중에 혼자 여자였는데 그게 편안하기도 했어요. 제 성격이 중성적이라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평소 남자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Zoo’ 때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아까 에스파의 음악을 ‘쇠 맛’이라 표현한 만큼 타이틀을 포함한 대부분의 곡이 편안한 이지 리스닝 계열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젤의 랩 파트가 등장하는 순간 템포가 느려졌나 싶을 정도로 어떤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특유의 그 루비한 톤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레코딩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너무 신기하게 방금 말씀하신 딱 그거예요. 듣기 편안함. 제 파트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거든요. 목소리에 정말 예민해서 레코딩이나 모니터링할 때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가 나면 화가 나요. 왠지 거슬리는 소리, 멋없는 오글거리는 소리 있잖아요. 최대한 꾸며낸 느낌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실 레코딩할 땐 여러 톤을 시도하는데 웬만해선 제가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테이크는 안 쓰게끔 할 때도 있어요, 일부러. 또 예전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구조,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녹음했는데 요즘엔 내 파트가 귀에 들릴 때 얼마나 재미있게 들리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귀에 꽂히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지젤만의 솔로 앨범을 기획한다면 어떻게 완성하고 싶어요?
완전히 세련되고 내추럴한 느낌으로 가고 싶어요. 비주얼적으로도 많이 덜어내고요. 음악적으론 템포가 느린 발라드 장르를 시도하되 록 사운드가 가미되면 좋을 것 같아요. ‘샤샤’한 느낌 아세요? 아름다운데 슬픈 느낌. 평소 좋아하는 노래들엔 다 그런 요소가 들어 있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인 캐시미어 캣의 음악도 그렇고요. 약간 업되는 노래도 몇 곡 있으면 좋겠네요. 사실 제가 톱 라인을 쓸 때 랩보다 노래 쓰는 걸 더 좋아해요.

조만간 에스파 데뷔 3주년 팬 미팅도 개최하죠. 지난 3년을 돌이키면 어떤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벌써 3년?’ 이런 느낌이에요. 왜냐하면 아직 보여줄 것도, 할 것도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한 해, 한 해를 꽉 채워 활동했고 운이 좋게도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해서 3년을 참 촘촘히 살았다는 기분도 들어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뭔가 오래된 느낌이에요.

에스파의 세 멤버는 지젤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가족이죠. 저희가 서로 친한 게 정말 너무 큰 행운이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멤버들 성격이 제각각이다 보니 제가 셋에게서 힐링을 얻는 지점이 다 달라요. 예를 들어 일로 가장 의지하는 멤버는 카리나예요. 일에 치여서 스스로가 너무 딱딱해진다고 느끼거나 ‘나도 소녀인데!’란 괜한 마음이 들 땐 윈터를 찾아요. 편안함을 느끼고 싶을 땐 닝닝이랑 시간을 보내고요. 셋에게서 모든 필요가 충족돼요. 이 관계에서 꽉 차는 듯한 충만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2023년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죠. 올 한 해 지젤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아직 어려서인지 몇 개월 단위로 성격이 바뀌곤 하는데요. 제 생각엔 아마 서른 살까진 이런 상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올해 확실히 좀 성숙해진 것 같긴 해요. 예전엔 짜증 나거나 신나거나 하면 그 감정에 휘둘렸는데, 이제 좀 컨트롤이 되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는 것도 쉬워졌고. 올해 좀 많이 배웠어요.

반대로 결코 바뀌지 않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의리?(웃음) 진짜 저도 왜 그렇게 의리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떨 때 보면 제가 꼭 강아지 같아요.

고양이파라고 생각했어요.
느낌은 고양이, 행동도 고양이, 하지만 속은 강아지(웃음).

스팽글 장식 점프슈트, 힐은 셀린느 by 에디슬리먼 제품.

2023년 지젤의 삶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그 제목은 무엇이 될까요?
숨. 올 한 해 한 호흡, 한 호흡 숨을 쉬듯 규칙적으로 살아온 느낌이에요.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었고요.

가상의 드라마 <숨>엔 어떤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할까요?
고양이와 강아지 사이의 인물. 되게 새침한데 집에 가선 남몰래 훌쩍거리는 느낌이면 좋겠네요(웃음).

올해 마지막 밤은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대화를 새벽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샤워하고 깨끗하게 생얼로. 물이랑 맛있는 음료 같은 걸 깔아놓고요. 그리고 어두워야 해요. 조명이란 조명은 다 끄고 아주 은은하게 스피커 조명만 켜둘게요. 되게 디테일하죠(웃음). 명상 음악 같은 게 흐르면 더없이 좋겠네요.

버튼 장식 가죽 코트, 흰색 부츠는 보테가 베네타, 하이 주얼리 이어링은 쇼파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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