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로 떠나야 하는 이유

권은경

지금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 미술관이다. 2023년 2월까지 이어지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이 섬이 지닌 신묘한 마력인 회복의 힘을 동력 삼아 곳곳에 미술 작품을 부려놓았다. 인간은 자연과 공명하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작업들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제주도립미술관.

미술관옆집 제주.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이 개막했다. 2022년 11월 16일부터 2023년 2월 12일까지 16개국 55팀이 참여, 총 165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 비엔날레는 2017년 제1회 비엔날레가 막을 내린 이후 5년 만에 개최되었다. 제2회 제주비엔날레는 팬데믹 사태 속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프로젝트 제주’ 행사로 대체했다. 길고 긴 시간을 돌아 제주에서 다시 펼쳐진 미술 축제이자 담론의 세계. 이 반가운 세계는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으로 제주를 하나의 생태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다. 예술감독 박남희가 제주도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를 기획하며 주목한 것은 제주의 자연이 지닌 회복의 힘이었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죽어가는 것을 되살리는 섬, 사람에게 상처받고 일상에서 도망친 이를 치유하는 섬. 예술감독은 객체지향철학(Object-Oriented Ontology), 인류세 등을 논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섬이 지닌 회복의 힘을 하나의 대안으로 봤다. ‘움직이는 달’을 통해 자연의 시간과 변화의 속성을 포착하고, ‘다가서는 땅’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상호작용의 지평을 구체화해 자연과의 공존을 시각화한 것. 전시는 허균의 <한정록>에서 영감 받은 네 가지 세부 주제에 따라 구성되었다. 물고기를 살게 하는 네 가지 고른 호흡법인 ‘밀밀(密密; 고요하고 깊음)’, ‘면면(綿綿; 가늘고 길게 이어짐)’, ‘유유(幽幽; 그윽함)’, ‘미미(微微; 있는 듯 없는 듯)’라는 개념이다. ‘밀밀’은 자연이 세계를 이루는 많은 신화와 설화 가운데 놓인다는 ‘신화적 자연 공명’의 세계를 탐색한다. ‘면면’ 은 자연이 물질로부터 존재를 형성한 이래 인류의 시간을 관통하는 ‘역사적 자연 공명’의 세계를 함께했음을 다룬다. ‘유유’는 자연이 수많은 존재가 서로 호응하는 ‘물질적 자연 공명’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미미’는 생명을 우주 본연의 창조성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결과로서 ‘우주적 자연 공명’의 존재 방식으로 본다.

탐라 건국 신화의 시조 탄생지인 삼성혈을 공중에서 바라본 장면.

자연과 전시장을 오가는 비엔날레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숲이 있고 바다가 있는 푸른 섬 제주 전체를 전시장 삼아, 총 여섯 군데 공간과 장소를 무대로 마련했다. 주제관은 제주시 중산간(해발 100~300m의 고지대)에 있는 제주도립미술관과 저지리 제주현대미술관 두 곳이다. 위성 전시관은 서귀포시 제주국제평화센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유적지이자 국가지정문화재이기도 한 삼성혈, 가파도의 지형과 생태를 느낄 수 있는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그리고 제주현대미술관 근처에 있는 미술관옆집 제주 등 네 곳이다. 위성 전시장은 서로 거리가 있지만,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가파도 AiR가 평소 개방하지 않던 전시장 외 공간을 개방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대안 공간적 성격을 가지고 운영하던 미술관옆집 제주 역시 그간 미공개였던 공간에 작품을 설치해, 공간 그 자체를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방문해보기 좋다.

미술관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따라 찬란한 프리즘을 보여주는 김수자의 ‘호흡ʼ.

제주 출신의 노년 작가, 강요배가 영상으로 담은 바다.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주목할 작품은 김수자를 비롯해 강요배, 알로라&칼자딜라(Allora&Calzadilla), 자디에 사(Zadie Xa) 등의 작업이다. 1층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김수자의 ‘호흡’은 미술관에 들어서면 보이는 중정의 유리벽에 설치한 특수 필름에 햇빛이 투과하는 장소특정형 작품이다. 빛에 의해 미술관에서 생성되는 프리즘의 스펙트럼은 오로라와 같이 발광하여 보는 이에게 가 닿는다. 자연, 예술, 인간이 초월적 빛 안에 함께 존재하며 전시 주제를 아우른다. 강요배는 2022 통영국제트리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영상 작업을 이번에도 시도했다. 제주 출신 노년의 작가가 자기가 나고 자란 바다가 파도치는 장면을 온전히 담은 작품에서는 날것의 시선이 전해진다. 포스트 프로덕션이라 불리는 화려한 편집 기술의 시대에서 있는 그대로의 시선과 거기 담긴 자연을 접하는 기회는 여러모로 소중하다.

언뜻 서정적인 장면으로 보이지만, 알로라&칼자딜라의 ‘접목ʼ은 기후위기를 문제의식 삼는다.

2층 전시장으로 향하면 전시장과 미술관 계단에서 알로라&칼자딜라와 자디에 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알로라&칼자딜라는 푸에르토리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오로 그간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국가, 전쟁 등 사회 속 미세한 분열을 강조해왔다. 이들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파괴된 카리브해 나무에서 떨어진 꽃을 재활용 폴리염화비닐로 재현해 설치했다. 지구 온난화가 일으킨 자연의 흔적을 미술관에 펼쳐놓은 이 작품 ‘접목(Graft)’ 을 통해 듀오 작가는 환경 문제를 논한다. 한국계 캐나다인, 자디에 사는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지구 생물과 공상가를 위한 달의 시학’ 작품을 선보인다. 신화에 초점을 맞춘 이 연작은 한국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조각과 빛, 소리가 결합한 멀티미디어 작품이다.

반투명 아크릴판에 플라스틱병이 프린트된 설치물. 앤디 휴즈의 이 작업은 플라스틱 쓰레기와 그 너머 푸른 바다를 동시에 응시하게끔 한다.

주제관 외의 장소에서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작품에는 미술관옆집 제주의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삼성혈의 신예선, 가파도의 아그네스 갈리오토(Agnes Galiotto)와 앤디 휴즈(Andy Hughes) 등의 작업이 있다. 태국 작가 리크릿은 사람과 작품, 주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관계 미학의 대표 작가로, 전시장에서 카레와 팟타이를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고 관객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는 행위를 작품 내용으로 삼은 적도 있다. 이번에 그는 비엔날레 준비 기간 동안 전시장 외부 밭에 만든 퇴비와 막걸리를 관람자와 나눈다. 풀이나 짚, 가축의 배설물을 썩힌 것인 퇴비는 유기물, 공기, 물로 만들어진다. 그것을 나누는 행위는 인간 사회 공동체 의식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의식을 상기시킨다. 신예선은 제주 개벽 신화와 관련한 유적지인 삼성혈 숲에 있는 고목들을 명주실로 둘러쌌다. 나무의 식생별로 색이 다른 명주실은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삼성혈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아그네스 갈리오토는 가파도의 한 폐가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얽힌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이태리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Agnese Galiotto)는 가파도라는 작은 섬 속 한 폐가의 벽에 그림을 그려 ‘초록 동굴’을 만들었다. 작가는 우연히 발견한 폐가에서 후대에 발굴된 폼페이의 집처럼 대기 현상에 지배된 미래 인간의 유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섯 개의 방에 프레스코화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그려 그것들이 얽히고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영국 출신의 앤디 휴즈는 가파도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병을 동그란 반투명 아크릴판에 프린트해 야외에 설치했다. 관람객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통해 ‘See-Through’ 가파도 바다를 보게 하여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인간이 만든 쓰레기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역발상을 담는다. 이렇게 자연과 전시장을 오가는 광범위한 비엔날레는 섬세하게 선정된 작품들을 통해 주제 의식을 강화한다. 다만 우리는 그 탐험의 과정에서 인간이 신화를 이데올로기
의 장치로 삼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삼성혈 숲,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뻗은 명주실은 신예선의 작업.

제주에서 걷고 호흡하며 우주로 향하기

제주비엔날레에는 전시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학술 프로그램인 국제 큐레이터 토크는 ‘미래의 자연, 미래의 예술: 미래 자연과 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라는 타이틀 아래 마련되었다. 제주를 거점으로 국내외 큐레이터들을 연결, 소통하며 비엔날레의 주제를 확장,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 비비아나 체치아(Viviana Checchia) 델피나 파운데이션 큐레이터, 에밀리 엘리자 스콧(Emily Eliza Scott) 오리건 주립대학교 교수, 안혜경 아트스페이스 · 씨 관장 등이 참여했다.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송출된 이 대화에서 참여자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존재를 환기하며 미래의 자연과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그것을 과학, 우주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급변하는 자연 지형과 미래의 예술을 여러 큐레이터의 시선과 관점으로 공유하는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이었다. 비엔날레 개막 초기, 또 눈길이 간 프로그램은 참여형 워크숍 ‘예술가와 함께 걷고 낭독하기’다. 일반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걷고, 글을 낭독하는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현무암이 전 면적 90% 이상을 차지하는 섬의 땅 위를 거닐고, 낭독하며 바다를 숨으로 들이켜 쉬는 기회. 예술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참여하고 자기 생각을 내뱉을 수 있었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엔날레가 어려운 현대미술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담론에 빠진 ‘난장(難場)’으로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하면 신선한 기획이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와 맞닿은 객체지향철학의 주창자이자 주요 철학자인 레비 브라이언트(Levi R. Bryant)는 <존재의 지도(Onto-Cartography)>(2007)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 비판 이론의 결점 중 하나는 그 이론이 오로지 해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과잉 상태인 비판과 해체가 아니라 대안과 실천이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단순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기획으로 바로 이 대안과 실천에 관한 구상을 보여줬다. 여섯 곳이나 되는 전시장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일부러 마련하지 않은 것도 관람자가 섬을 직접 탐험하며 자연과의 공존을 경험하기를 바라서다.

제주비엔날레를 방문하던 날,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륙해 제주에 착륙하며 그 아래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주에서 보면 서울이 있는 육지도 제주라는 섬도 결국은 모두 크고 작은 섬이 아닐까?’ 싶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큐레이터 오쿠위 엔위저(Okwui Enwezor)의 별자리 또는 성좌(Constellation) 개념이다. 그는 2003년에 발표한 논문 ‘탈식민주의의 성좌(The Postcolonial Constellation)’에서 세계가 서구 중심 이분법에서 벗어나 별자리처럼 서로 밀고 당기며 평등하게 존재할 가능성을 논했다. 이제 인간 사이에서 논해졌던 평등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제주비엔날레 베뉴 사이를 오가고 전시장을 거닐며 섬 위인 동시에 우주인 어딘가를 걷는 기분을 느꼈다. 관객뿐 아니라 제주, 자연, 전시, 작품 등등이 저마다 상상의 궤도를 만들어 운동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번 제주비엔날레가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섬이고, 당신이 별이라고. 섬이 당신이고, 별이 당신이라고. 우리는 결국 하나이기에 당신을 그리운 채로 두지 않고 만나러 가겠다고. 함께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같은 땅 위를 걷기 위해.

피처 에디터
권은경
김한들(미술 이론가)
사진
COURTESY OF 제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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