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로잉, 매튜 바니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구속의 드로잉, 매튜 바니

2022-10-28T15:07:17+00:002022.10.28|ART + JEWELRY|

17년 만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작가, 매튜 바니와의 대화.

Portrait of Matthew Barney, Photographer: Julieta Cervantes.

‘창조의 근원은 구속이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가 데뷔 무렵인 1987년부터 전개하고 있는 ‘구속의 드로잉’(Drawing Restraint) 연작은 이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작품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가는 자신의 신체에 물리적 구속을 가하고 이러한 제약에 맞서 드로잉을 시도했는데, 지난 20여 년에 걸친 그의 탐구를 보자면 이는 흡사 묘기, 기행 등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울어진 트램펄린에 올라 아슬아슬 고꾸라질 듯 점프하며 천장에 드로잉 흔적을 남기고, 허벅지에 탄성 밴드를 매어 근육이 팽창된 상태로 경사면을 올라 벽에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풋볼 선수가 근육 단력을 위해 사용하는 기구인 블로킹 썰매를 애써 밀며 그림을 이어가는 식. 이렇듯 ‘물리적’ 구속을 탐구했던 초창기를 지나, 바니는 구속의 개념을 확장하여 ‘심리적’ 구속까지 더듬어갔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사티로스로 변신해 뉴욕 곳곳을 가로질렀던 ‘구속의 드로잉 7’을 시작으로 이후 뮤지션 비요크(Björk)와 함께 일본의 포경선에 올라 기이한 여정을 펼쳤던 ‘구속의 드로잉 9’ 등에선 변화된 경향이 뾰족이 부각되었다.

올해 10월 14일부터 12월 2일까지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진행하는 개인전 <Drawing Restraint 25>는 이러한 연작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2005년 리움미술관 개관 1주년 기획전으로 가진 국내 첫 개인전 이후 꼬박 17년 만의 개인전. 신작 ‘구속의 드로잉 25’는 지난해 1월 촬영한 총 28분 길이의 영상으로, 이번 작품에서 바니와 그의 딸 이사도라는 듀엣 퍼포먼스를 펼친다. 영상의 배경은 음험한 기운이 깃든 주조소. 일꾼들은 달아오른 용광로에 금속 주괴를 집어넣으며 작업을 이어가고, 딸 이사도라는 공간을 빙글빙글 맴돌며 때때로 알 수 없는 춤을 추거나, 용광로에 나뭇가지를 태워 임시변통으로 만든 숯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바니는 그러한 이사도라를 시종 눈으로 좇으며 딸의 모습을 나무에 새겨간다. 바니가 이사도라의 모습을 포착하려 시도하는 사이, 움직임을 이어가는 이사도라로 인해 생기는 엇갈림, 엇박, 어긋남. 이렇듯 아버지와 딸의 내러티브는 바니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장편영화 <Redoubt>에서 탐구하고자 했던 아티스트와 대상 사이의 소유욕, 경계심, 권력의 역학 관계 개념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아이다호 소투스 산맥의 풍광을 스크린 가득 담아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왔던 <Redoubt>는 다이아나와 악티온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와 그녀의 님프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본 사냥꾼 악티온이 여신의 분노를 사 사슴으로 변화한 이야기는 바니에게 ‘예술가가 대상을 포착하고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바니는 총 134분 분량의 영화를 중심으로, 소투스 산맥에서 벌채한 불탄 나무줄기를 활용한 대형 조각 4점 등을 제작했다. <Redoubt>에서 매튜는 아이다호의 황야를 가로질러 세 여성을 추적하며 그들의 행위를 드로잉으로 남기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번 개인전에서는 <Redoubt> 속 바니가 연기한 캐릭터가 기하학적으로 형상화된 드로잉 ‘Drawing Restraint 25: Headlamp’도 만나볼 수 있다. 이렇듯 <Redoubt>와 ‘구속의 드로잉’이 묘한 중첩을 그리며 탄생한 바니의 국내 두 번째 전시 <Drawing Restraint 25>, 개관을 며칠 앞둔 10월의 어느 날 메일을 통해 그와 이번 개인전을 둘러싼 대화를 나눴다.

<W Korea>2005년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이후 17년 만에 글래드스톤 서울에서의 개인전을 펼친다. 한국에서 다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매튜 바니 서울에서 ‘구속의 드로잉’ 신작을 선보인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도시와 다시 소통한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특히 ‘구속의 드로잉’은 긴 호흡을 갖고 오래 지속해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과거에 펼친 전시가 오늘날 서울의 관객들에게 이번의 새 전시를 위한 ‘가독성’을 제공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1987년 시작해 어느덧 30년째 전개하고 있는 연작 ‘구속의 드로잉’의 신작을 이번 개인전에서 공개한다. 신작 ‘Drawing Restraint 25’에선 당신의 딸인 이사도라가 등장해 당신과 함께 일종의 듀엣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와 딸’이라는 내러티브가 전면에 드러나는데, 여기엔 어떤 함의가 담겨 있나?

사실 이번 작품은 2019년 발표한 장편 영화 <Redoubt>에서 다룬 바 있는 ‘소유’를 공통 주제로 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내러티브의 중심에 ‘불’이 있고, ‘변형’ 또한 두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주제였다. <Redoubt>에서 내가 연기한 캐릭터 ‘Engraver’는 다이아나를 따라 숲을 가로질러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한다. 극 중 ‘Engraver’와 다이아나의 관계를 통해 ‘다이아나와 악티온’ 신화를 투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로써 예술가들이 대상을 소유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다. 예술가와 대상 사이의 역학 관계는 특히 19세기 미국에서 유행한, 민족주의적이라 간주할 수 있는 풍경화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신작 ‘Drawing Restraint 25’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작품 속 아버지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는 딸의 모습을 시종 지켜보며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간다. 이를 통해 부모가 자녀를 소유해야 하는 필요성과 그 안에 내재된 불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당신의 지난 작품에서 ‘장소’는 결코 단순히 배경에 그치지 않고, 종종 내러티브의 중심이 되는 요소이곤 했다. 이번 영상 신작은 ‘주주소’를 주요 배경으로 삼는데, 이러한 설정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나?

‘Drawing Restraint’ 연작은 일반적으로 내가 작업하는 공간에서 제작된다. 그곳이 작업실이든 전시 공간이든 상관없이. 항상 스튜디오를 완성작을 생산하는 장소로 생각하기보다는 어떠한 과정, 개발, 트레이닝을 위한 장소라 생각해온 것 같다. 주조소는 시각적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재료가 형태가 되는 과정의 장소, 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변형의 현장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삼게 됐다.

 

영상의 초중반 흑백으로 진행되던 화면은 주조소 직원이 드로잉에 황동을 붓는 순간 컬러로 극적으로 전환되며 주황빛 화염이 화면을 한가득 채우게 된다. 이사도라의 춤은 격정적으로 이어지고 당신이 주조소를 떠나며 영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듯 후반부 극적인 전환을 통해 당신이 전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나?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은 파열, 또는 무언가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던 아버지와 딸 사이의 역학 관계는 쇳물을 부은 후 활활 타오르는 ‘불’에 의해 중단되고, 이때부터 보다 유동적이고 즉흥적인 안무가 이어진다. 그리고 딸의 움직임은 마침내 그녀가 주조소를 떠날 때 훨씬 더 자유로워지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중 ‘Drawing Restraint 25’ 영상에 등장한 드로잉과 소품들을 올려놓은 조각적 유리 진열대가 눈에 띈다. 이렇게 작품을 전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항상 ‘구속의 드로잉’의 영상 속 등장했던 드로잉 등의 요소들을 벽에 거는 대신 유리 진열대에 배치해왔다. ‘구속의 드로잉’을 통해 집중하고자 했던 건 드로잉 자체라기보다 그 ‘흔적’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리 진열대에 배치된 드로잉은 드로잉이라기보다 그 욕망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전시장엔 이사도라가 발에 나뭇가지를 테이프로 부착해 발로 그린 드로잉이 벽에 걸려 있기도 한데, 나는 이 또한 일종의 벽에 걸린 유리 진열대라고 생각한다. 즉, 벽에 전시된 드로잉들 또한 바닥에 놓인 조각적 유리 진열대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0년 이상에 걸쳐 ‘Drawing Restraint’ 연작을 전개하며 신체적, 심리적 구속을 탐구해왔다. ‘구속’은 당신의 예술세계에서 어떤 의미는 지니는가?

스스로가 부과한 저항이자, 성장의 촉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