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이야기를 품을 때

W

김용호는 상업 사진과 순수예술 사진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40년 가까이 여러 장르를 탐험해왔다. 이미지라는 언어를 쓰는 그가 첫 사진 에세이 <포토랭귀지>를 냈다. 한 사진가의 두툼한 역사를 탐독하는 동안, 사진이라는 매체에 깃든 다양한 발상을 되새기는 반가움으로 충만해진다.

‘12년 만에 세상에 내려온 용맹한 호랑이’. 검은 호랑이의 해인 2022년, 김용호는 이를 소재로 여러 흥미로운 개인 작업 중이다.

그를 조금 알기 전까지, 그에 관해 들려오는 말을 조합하면 김용호는 단순히 촬영이 필요할 때 의뢰하기 위해 찾는 대상이 아니었다. 규모도, 의미도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고민을 거듭해 정수만을 취해야 할 때 그 과정과 무게를 나눠 질 수 있는 사진가. 셀러브리티와 패션·예술 분야 종사자들과 두루 어울리는 문화인. 무엇보다, 멋쟁이. 지금 패션 매거진에서 일하는 에디터 중 과거 김용호가 차린 ‘카페 드 플로라’나 와인바 A.O.C의 존재를 아는 이는 없을 것 같지만, 그 공간을 경험한 이들에게 추억담을 전해 들으면서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카페의 청담동 버전을 상상했다. 뉴밀레니엄을 앞둔 1990년대 중후반, 당대의 스타를 비롯해 영화, 패션, 광고, 사진, 홍보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아지트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눴을 날들. 그 활발한 사교와 논의의 장을 연 호스트 김용호는 ‘패피’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그것과 동의어로 청담동 일대에 스며 있었다. 그리고 수년 전 김용호가 현대자동차의 국내외 공장을 돌며 브랜드에 대해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비로소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여느 사람들이 사진가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심미안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사유하는 인간이었다. 하나의 이미지가 ‘한때 누군가가 무엇을 어떻게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김용호는 이중 ‘어떻게’에 있어 독자적인 사유의 힘을 발휘한다. 작은 예로, 수없이 많은 자동차가 부딪쳐 부서진 충돌 테스트 현장의 벽은 그 아닌 누구든 볼 수 있는 무엇이다. 김용호는 그 벽에서 자동차를 이루는 물질, 자본, 시간과 노고가 뒤섞여 새겨진 흔적을 본다. 상처 많은 벽을 한 편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처럼 찍은 것은 거대한 산업 문화의 정점인 자동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가치까지 담아낸 일이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진을 넘어 울림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김용호는 ‘나는 사진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 역시 잊지 않는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는 그 찰나의 순간, 그가 가진 모든 미학과 세계관이 섬광과 함께 집약될 것이다. 탁월한 사진가라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담고 표현할 수 있을까? 6월 중 출간된 사진 에세이 <포토랭귀지(Photo Language)>는 그 물음에 대한 근사한 답이다. 이 책은 40년 가까이 카메라를 든 김용호가 그 동안의 작업 이미지와 그 작업이 태어나기까지의 발상, 탐미주의자로서의 철학 등을 정리한 첫 사진 에세이다. 광고 사진가이자 패션 사진가이면서 상업 광고 사진으로 꾸준히 갤러리 전시도 하는 그는 커머셜과 아트의 개념을 한 차원으로 포개놓았다. 그리고 남이 하지 않은, 세상에 없던 작업을 하기 위해 사진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포토랭귀지>는 늘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려 하는 한 창작자의 태도가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말해준다. 언젠가 사진 소설을 집필한 적 있는 그의 다정한 필력 또한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이다.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토랭귀지>가 교보문고 예술 분야 서적 판매에서 1위에 올라 있는 걸 봤다. 그 반가움을 안고 김용호와 대화하는 동안, 시인 김남조는 왜 김용호를 두고 ‘그는 사진가이기보다 사상가’라고 평했는지 더듬어갈 수 있었다.

<W Korea> 오늘 작가님을 촬영한 사진가가 학부 시절 교수님께 일화를 들었다고 합니다. ‘김용호는 모델이나 셀럽보다 더 멋지게 차려입고 촬영하는 사람이었다.’ 사진가들은 대개 편안한 차림으로 촬영장에 나오는데, 작가님은 늘 신사다운 모습으로 유명하죠.

김용호 저는 멋스러운 걸 좋아합니다. 멋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용모가 단정하다는 건 중요한 지점이에요. 젊을 때부터 그 가치를 알았던 덕에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자주 얻었어요. 외양이 깔끔하고 예의 바르다는 점 때문에라도 저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많았거든요. 일로 만난 사람이 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제 실력이 어떤지 판단하는 건 제 인상을 느낀 다음의 일이죠. 즐겨 쓰는 표현이 있는데,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라는 말입니다.

사진 에세이 <포토랭귀지>의 서문에서 커머셜 영역의 창작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예절, 겸손, 배려를 꼽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세 가지를 강조하는 창작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저도 작업할 때는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오만과 자만이 크면 일을 망치기 쉬워요. 예의 바름은 교육 문제이기도 해서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고 봐요. 반면 배려심은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배려심 없는 사람이 재력이나 기술로 배려심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진정성이 없다면 그 배려가 과연 배려일까…. 제가 말한 세 가지를 저도 다 갖췄다기보다 그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어요.

7월에 열린 <포토랭귀지>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받고 김용호답다고 생각했어요. 마들렌 이미지와 함께 ‘드레스 코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라고 박혀 있었죠. 그 수수께끼 같은 문장 때문에 긴장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얼마 전 완주의 아원고택에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어릴 적 살던 집의 대청마루에서 놀던 기억이 났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다 옛 기억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경험을 하잖아요. 저 역시 고택에서 유년기와 청년기의 장면이 문득 떠올랐어요. 여러 형제의 막내로 수줍음 많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부산에서 잘 노는 청년이었어요. 기성복이 흔치 않을 때 모자까지 맞춰 썼고, 일본에서 수입된 해외 잡지와 책을 많이 봤죠. 새삼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은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겠구나’ 싶었어요. 책을 쓰는 동안 저 자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기도 해서,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키워드를 접목해봤어요.

수십 년 커리어를 지닌 작가도 ‘나’에 대한 고민을 끊지 못하는군요(웃음). 언젠가부터 작업이 하나로 꿰어지지 않고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발전도 꾀할 겸 그동안의 작업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는데, 할수록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저조차 답을 내리기가 힘들었어요. 결국 김용호의 작업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함에 대한 것이 되더라고요. 다양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포토랭귀지>를 만들었어요.

2006년 소마미술관 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열린 <여자를 밝히다> 전에 참여하며, 신여성이자 엘리트이면서 슬픔과 불안감도 있었을 나혜석의 감정을 사진과 회화의 중간 톤으로 표현했다. 생을 마감할 때 처음엔 신원 미상으로 분류되었던 나혜석. 초점이 나간 이 사진의 제목은 ‘잊혀진 얼굴’.

<포토랭귀지>를 아주 흥미롭게 봤어요. 흥미로운 포인트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85년 작가님의 작업에서 요즘과 통하는 무엇을 봤다는 거예요. 엘칸토와 무크의 카탈로그 작업이 많이 알려졌는데, 일단 ‘하리케인’이라는 패션 브랜드 작업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제 패션 사진 데뷔작이나 마찬가지 작업이었어요. 그때는 잡지 광고보다 카탈로그가 훨씬 인기였죠. 하리케인 카탈로그가 제법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인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찍은 모델 화보예요. 럭셔리 패션, 그리고 그와 대비되거나 이질적인 성격의 배경이 어우러진 방식은 이제 화보 스타일의 한 매뉴얼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패션 사진이라고 하면 대부분 호텔이나 고급스러운 식당 같은 곳에서 진행했어요. 저는 그 공식이 싫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패션 사진이라면 장소, 모델, 스타일링, 편집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이나타운에 가서 보니 버려진 건물들 때문에 스산한 분위기가 풍기기도 하고, 광고 촬영 무대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무대에서 모델과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었죠. 색감도 화려하고 이국적이어서 다들 홍콩 로케이션이냐고 물었어요(웃음).

한국에서 왕가위가 유행하기도 전이었고요. 빈티지한 느낌의 이미지 위에 작가님 마음대로 한자를 조합해 ‘금의야행(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다)’ 같은 문구를 넣었습니다. 카피라이팅이나 편집 디자인 파트에까지 아이디어를 냈군요. 제가 그 브랜드의 광고 담당 과장이었어요(웃음). 그러니 기획부터 촬영, 편집, 디자인과 인쇄까지 제 의도대로 다 할 수가 있었죠. 1인 프로듀싱을 한 셈이에요. 지금도 그런 식으로 일을 합니다. 사진가이면서 아트 디렉터이고, 광고 기획자 역할을 하기도 해요. 젊은 시절 규모 있는 마케팅과 홍보 등을 했던 이력 때문에 경험의 폭이 더 넓어진 면도 있고, ‘파트너가 일을 잘 못하면 내가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딱히 제 역할이 아니었던 부분까지 채워가다 보니 아트 디렉팅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 창의력을 성장시킨 동력이 바로 ‘불만족’이에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추구한 가치는 ‘남과 달라야 한다’ 였나요? 늘 남과 다르고 싶었어요. 어떤 프로젝트를 맡든 ‘쉽게 보지 못했던 걸 보여주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방식이 ‘스토리텔링’이에요. 스토리가 있다면, 같은 대상이어도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굴러가는 돌멩이는 그 상태로는 그저 돌멩이일 뿐이지만, 철학과 발상을 대입하면 작품이 될 수 있어요. 마르셀 뒤샹의 ‘샘’이 그냥 변기가 아닌 것처럼요.

KT 브랜드 이미지, ‘아름다운 신세계’(2021). 용산 기지국의 서버실에서 아주 작은 미니어처 우주인과 KT의 코비 캐릭터를 세팅했다. 서버는 우리의 미래와도 밀접한 데이터를 소장한 곳이고, 그 미래의 정보가 거대해보이도록 한 연출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축복하듯 뿌려진 꽃.

현대카드 지면 광고 ‘우아한 인생’(2012). 사진마다 여러 소품과 상황을 이용해 현대인의 욕망을 녹여냈다. 광고가 진행 중일 때 이 시리즈로 상업 화랑 초청 전시를 했으니, 이례적인 경우다.

페리에주에와 ‘벨에포크(아름다운 인생)’ 콘셉트로 작업을 했을 때, 동시대 서울의 덕수궁과 1900년대 파리의 살롱을 배경으로 한 여성 연작 사진을 만드셨죠.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시퀀스를 통해 ‘이 샴페인을 마시는 순간 시공을 초월해 벨에포크를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현대카드 지면 광고였던 ‘우아한 인생’ 시리즈에서는 각 사진마다 상징적인 여러 소품을 통해 욕망을 시각화했고요. 사진에 서사를 적극적으로 담는 그런 표현 방식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나요? 사진을 찍을 때면 이미지보다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곤 해요. 아름다움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왔는가를 함께 알려주면 작품의 의미가 더 커진다고 믿어요. 무언가를 찍을 때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려면, 그 무엇이 나타나기 전의 일과 계속 진행되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전체적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기록하듯이 이미지 하나하나를 만들다 보면 ‘무엇’이 색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전시에 홍순명이라는 작가의 거대한 회화가 걸려 있어요. 작은 패널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와 물결을 이루는 그림인데, 어릴 적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물에 빠지면 수면의 눈높이로 바다를 보게 되죠. 저에게 이야기란 결국 그런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김용호의 작업은 미술지에서도 종종 소개합니다. ‘주요 전시’ 이력만 봐도 짐작보다 많아서 놀랐어요. 2017년과 2019년에는 광주비엔날레에도 출품했고요. 커머셜 작업을 할 때도 파인 아트 하듯이 접근합니다. 의뢰받은 광고 캠페인 작업을 할 때 저는 주로 시안 없이 진행해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은 사전에 약속된 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시안이 필수지만, 이미지 구상은 보통 제 머릿속에 있죠.

여러 비엔날레에 출품되기도 한 ‘피안’(2011) 시리즈. 물 속에서 올려다 본 연꽃들이 초록 우산밭 같다.

‘피안(彼岸)’이라는 작품에서 연꽃을 담아내는 그런 식의 발상은 불현듯 떠오르는 편인가요? 연못에 가득한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찍으셨죠. 아이디어는 대개 즉흥적이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편입니다. 콘티를 짤 때는 치밀하게 짜려고 하지만요. 어느 날 관광객들이 드넓은 못에 연이 가득 핀 광경을 찍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연못이니까 다들 위에서 아래 방향을 보고 있었죠. 저는 잎맥을 눈으로 훑다가 문득 그 연밭 아래쪽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모습이 궁금했어요. 햇빛이 투과돼 잎맥이 더 선명하게 보일 거 같기도 했고요. 고요한 연밭에 다이빙 슈트를 입은 채 몸을 반쯤 담그고 있으면,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세상에 그 연밭과 나만이 존재하는 기분이에요. 내가 소금쟁이가 된 거 같기도 하고,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나는 살아 있나 죽은 건가 싶고. 장자의 ‘호접몽’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세속을 초월한 이상적 경지’를 뜻하는 제목이 나왔죠.

<포토랭귀지>에서 흥미로웠던 또 다른 포인트는, 서정적인 콘셉트의 사진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여운이 감돌 때가 많았다는 점이에요. 이미지가 품고 있는 그 장면 너머의 이야기나 무언가가 무의식중에 연상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그저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죠. 유행하는 이미지 스타일을 좇았다면, 또 광고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상품을 효과적으로 담는 데만 집중했다면, 일시적인 소비와 함께 사진의 생명도 곧 끝났을 거예요. 하지만 제 광고 사진은 작품으로 갤러리에 전시, 판매되곤 했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완성된 작업들이 지금 시대의 정신과 다소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으세요? 화면 속에서 즉각적으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잖아요.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고급 문화라고 봅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꾸준히 유지되는 것들은 있죠. 고전은 지금도 읽히고, 또 지금 봐도 재밌잖아요.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로 선보이기도 한 ‘몸mom’(2007) 시리즈. 굴곡진 지형이나 높은 언덕, 완만한 평야를 닮은 몸이라는 신대륙.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로 선보이기도 한 ‘몸mom’(2007) 시리즈. 굴곡진 지형이나 높은 언덕, 완만한 평야를 닮은 몸이라는 신대륙.

유수의 매체에서도 쉽게 만나기 힘든 인물 역시 자주 찍으셨어요. 뷰파인더를 통해서 피사체에 따른 기운 같은 걸 느끼기도 하나요? 인물에 대한 느낌은 촬영할 때보다 정보에 따라 느끼는 면이 더 커요. 저는 제가 찍을 상대를 만나기 전에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합니다. 백남준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전기를 다 읽어봤어요. 기업인을 찍을 때는 가족 관계나 취미 생활 등등까지 알 수 있는 선에서 다 알아보려고 하고요. 정보에 의해 그 사람을 보는 거죠.

일부러 백지상태로 인물과 맞닥뜨리려는 사진가도 있더군요. 만나기 전에 너무 많은 사실을 알면 선입견이 생긴다면서요. 사전에 익힌 정보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기보다 내 식대로 재해석합니다. 정보는 해답이 아니라 정보일 뿐이니까요.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촬영하면서 사소한 말이라도 이어가며 분위기를 풀기 좋죠.

예술가 초상을 찍을 때 그 사람의 ‘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뭔가요? 지금 우리가 대화하면서 손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봐요. 손은 독자적인 인격체 같다고 자주 느껴요. 두뇌의 명령에 따라, 혹은 내가 말을 해서 그 반응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달까. 고 이어령 선생은 말씀하실 때 손짓이 얼마나 현란했는지 몰라요. 손은 확실히 하나의 언어입니다. 말을 담을 수 없는 사진에서 인물을 표현해주는 요소죠.

2003년, 투병 중이던 백남준 작가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담은 포트레이트.

2000년대 중반에 ‘한국문화예술명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국 명인 28명을 찍으셨어요. 사진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현실화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역시나 수완을 발휘하여 벤츠 후원을 성사시키셨고요. 박완서, 박서보, 황병기, 정명훈 등등의 사진 중 특히 백남준 작가 촬영기가 궁금해요. 제가 찍은 명인들의 사진 중 유일하게 손이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 백남준 선생이에요. 말년에는 손동작을 취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하셨거든요. 휠체어에 앉아 계신 채로 찍었어요.

그 익살맞은 표정은 백남준 작가 스스로 지은 표정인가요? 네. 한여름이었는데 목 부분이 늘어진 낙낙한 티셔츠를 입고 계셨어요. 구보타 상이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두루마기를 입혀주셨고요. 선생이 좋으셨는지 웃으셨고, 그런 좋은 기분인 채로 담은 순간입니다.

백남준의 웃는 얼굴은 사진으로 꽤 봤지만, 그렇게 장난기 어린 모습은 처음 봐서 또 놀랐습니다. 백남준 선생의 기록 사진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특별히 포즈를 취하는 식으로 찍은 사진은 거의 없어요. 저는 백남준 선생의 집에 가서 검정 천을 치고 제대로 인물 촬영을 했어요. 거의 유일한 포트레이트일 겁니다. 그런 얼굴을 드러낸 것도 처음이고요.

올초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의 사진은 작년에 주기적으로 촬영하셨어요. <조선 비즈>의 김지수 기자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위해 인터뷰를 할 때마다 동행하셨죠. 그런데 작가님이 찍어준 사진을 본 후 그가 “이건 잘 찍은 사진이 아니야. 여기에는 내가 있잖아. 내가 보여!”라고 하셨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피사체가 비로소 ‘나’를 봤다는 겁니다. 선생은 제 사진을 통해 당신 자신을 발견했고, 그 점은 인물 사진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원로 예술가들이 인터뷰할 때 굳이 사진 촬영은 안 하려고 합니다. 평생 많은 사진을 찍었으니, 그중에서 골라 쓰라고 하죠. 이어령 선생도 처음에 그러셨어요. 그런데 문인의 초상이라고 하면 보통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많아요. 글을 쓰고 있거나 종이 더미와 함께 있는 모습이라든지.

뻔하고 전형적일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에 사진가들도 그런 사진을 남기는 거 아닐까요? 전형적인 포트레이트는 어떤 사진가든 찍을 수 있죠. 미학적 아름다움은 있겠지만 특별한 사진이라고 하긴 어려워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대개 그의 살아온 흔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사물이나 행동을 함께 담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인의 얼굴이란 있는 그대로 이미 자신의 모든 걸 말하고 있다고 봐요. 제가 찍은 원로 예술가들 초상에는 아무런 설명적 요소가 없어요. 그분들은 얼굴에 이미 각자의 가치와 흔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인물을 둘러싼 주변에 검정 배경을 치고, 그 사람 외의 것들은 모두 차단한 채 찍습니다.

영감을 주는 작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작가는 참 여럿인데, 나도 그처럼 되고 싶게 만드는 작가는 한 명이에요.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 프랑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안 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MoMA에서 회고전이 열리면서 사진가로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그가 찍은 사진의 가치는 거기에 20세기 초 프랑스 귀족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데 있어요. 사촌과 르망 경주에 참가했다거나 스위스 몽블랑에 가서 휴가를 보내는 식의…. 사적인 기록이자 한 시대를 보여주는 라이프스타일의 기록이고, 작품 면에서도 훌륭해요.

현대자동차 기업 이미지 작업을 위해 국내 공장을 둘러보던 그가 추상화처럼 담아낸 이것은 자동차 충돌 테스트 현장의 벽면이다. 남다른 시선과 인사이트가 돋보인 ‘절차탁마’(2013).

김용호의 상상과 구상은 종종 글과 스케치 흔적으로 남는다.

현대자동차 해외 공장 곳곳을 돌아본 김용호는 거대한 기계 덩어리 속에도 그 지역의 삶과 사람이 녹아있음을 느꼈다. 그 자체로 인더스트리얼 뷰티의 미감을 지닌 자동차 공장 내 여러 요소와 기계 부품 이미지, 그리고 해당 지역 특유의 문화적 요소를 포착한 이미지 사이에 절묘한 유사성이 있다.

어떤 장면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세요? 특별히 끌리는 시각적인 요소가 있다거나요. 글쎄요. 사람마다 탐미적이라고 여기는 이미지가 참 달라요. 어떤 평론가는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를 보면서 섹시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내 경우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잘 끌리는 편입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테마로 한 작업도 여러 차례 하셨죠. 김용호의 ‘모더니스트’ 사랑은 유명한데, 정지우 감독의 영화 <모던보이>를 위해 작가님의 의상과 소지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문화를 유독 애정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 시대의 정신을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그 시대의 산물을 좋아합니다.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의 사조가 다 그 시기에 발전했어요. 만 레이나 달리를 비롯해 훌륭한 예술가가 많았죠. 포토몽타주처럼 새롭고 실험적인 것들이 나타나기도 했고요. 100년 전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기초를 이루었으니 좋아할 수밖에요.

사진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언젠가는 꼭 대형 전시를 하고 싶어요. 해외에서는 상업적 목적으로 찍은 사진들만 가지고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크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에게 최고로 가치 있고 궁극적인 목표로 삼을 만한 게 바로 전시예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관객 중 나와 내 작품을 알아봐주는 단 하나의 관객을 만나기 위해 하는 거죠.

시대와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뭐(웃음). 그런데 예술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생각은 합니다. 예술가란 누가 미처 몰랐던 걸 일깨워주는 존재거든요. 당신이 몰랐을 이런 세계도 있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다양한가.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니 참근사하죠. 누군가 예술을 통해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우게 된다면 그게 바로 교육이기도 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교육요.

2020년, 아이잗바바 브랜드 리뉴얼 이미지 작업.

혹시 큰돈을 벌면 소장하고 싶은 예술품은 뭔가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모을 거예요. 전시도 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파티나 이벤트도 열고. 투자하고 지원해주는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의외의 답변입니다. 저는 20세기 초반의 유명 작가들 이름을 머릿속으로 꼽아보고 있었어요. ‘떼돈이 생기면 그걸로 뭘 할까.’ 제가 30대쯤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요? ‘전국에 쓰레기통을 보급해야지’ 했어요. 그냥 생각 정도가 아니라 내 꿈, 목표 중 하나였어요. 거리가 지저분한 게 싫어서요. 저는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고 공감을 해요. 예를 들어 이케아도 좋아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저렴한 값으로 적절한 컨디션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잖아요. 그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나은 삶이 가능해졌다는 뜻이에요. 그 사실을 존중해야죠.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량 생산이 산업 쓰레기를 낳는다느니, 취향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느니 하면서 우리 삶을 저해한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저는 예술을 통해 ‘나눔’ 하고 싶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 컬렉션을 구축해서,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나눌 줄 아는 면모는 작가님의 성정 자체겠지만, 품고 있는 그런 생각은 경험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을까요? 사회 생활 초년생이라면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기회의 소중함을 알 겁니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나에게 기회를 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제가 가진 기회들에 대한 고마움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저도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어요.

김용호의 아카이브인 <포토랭귀지>를 통해서는 어떤 나눔을 하고 싶으세요? 이 책을, 저라는 사진가를 잘 모를 학생과 젊은 층 독자가 많이 봐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회 생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는 예술 하는 사람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듣는 말이죠. 제 작업 이미지와 작업에 얽힌 과정을 설명한 글을 통해 대체 창의력이란 뭔지, 어떻게 해야 만들어지는지 알아가길 바라요. 이 책이 창의적 표현 방식에 대한 정답은 아니어도 하나의 예시는 될 수 있을 거예요.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최영모
사진
COURTESY OF KIM YO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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