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의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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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는 관점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2022년, 다시 돌아온 봄과 여름을 맞이하는 패션신의 ‘노출’ 트렌드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 단순히 ‘벗음(Bare)’이라는 시각적 정의를 벗어나 자기다움에 대한 당당하고 적극적인 ‘드러냄(Expose)’을 뜻하는 뉴노멀 시대의 노출. 여기에는 매혹적인 당위가 존재한다. 

2022년 여전히 마스크로 얼굴의 일부를 가린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출’의 의미는 특별하다. 신체의 일부를 가리고 보호하는 차원의 안정감을 벗어나 나를 드러내는 일. 여기엔 전에 없이 짜릿한 해방감과 모험심이 깃들어 있다. 다가올 S/S 시즌,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드러냄에 대한 갈망을 담아 한층 더 대담해졌다. 옷을 찢고, 자르고, 구멍을 뚫는 것은 예사. 가위손을 능가하는 커팅 기술로 전방위 컷아웃 효과를 더한 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란제리웨어로 여겨지던 브라나 코르셋을 웨어러블한 방식의 완전한 아우터로 정착시키고, 속이 다 비치는 시스루 소재를 이브닝웨어가 아닌 데일리웨어에 활용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 정신을 발휘했다. 과거의 유산과 현대의 시대정신을 아우르며 그 접점에서 독자적인 미학을 펼쳐온 미우치아 프라다는 노출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오늘날 젠지들이 열광하는 Y2K 시대의 팝 문화가 안겨준 활력을 되새기듯, 초미니 스커트와 크롭트 톱으로 대변되는 90년대의 산물을 가장 그녀답게 재창조한 것. 이미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접한 2022 S/S 시즌 미우미우의아찔한 로라이즈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와 허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크롭트 톱은 대부분 잘록한 허리와 늘씬한 다리를 드러낸 모델과 셀러브리티에게 입혀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눈길을 끈 이미지가 있다. 바로 풍만한 허리와 다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의 <i-D 매거진> 커버. 그리고 팔로마를 앞세워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스타일링은 팬데믹 이후 더욱 뜨겁게 회자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설파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일명 ‘엔젤’이라 불리던 육감적인 모델들을 무대에 세워 화려한 쇼를 선보이던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마저 지난해 팔로마 엘세서를 새로운 홍보대사 중 한 명으로 임명했을 정도다. 이처럼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노출에 대한 우리 시대의 관점을 급진적으로 전복한다. 노출이 이성의 시선을 의식한 섹시함이 라는 상투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됨을 의 미 있게 시사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오롯이 드러낼 때, 패션의 진정한 기능과 목적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매우 반갑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언더붑 패션은 가슴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노출하며 센슈얼함을 더하지만, 일부 디자이너들에게 브라는 가슴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섹스어필하는 도구가 아닌 신체의 일부로서 상징적인 요소다. 이를테면 시몬 로 샤는 최근 아이를 낳으며 경험한 수유 브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유의 로맨틱한 드레스에 크리스털 장식의 브라 컵을 더했다. 엄마로서 아이와의 강한 연대감을 느끼는 과정에서 수유 브라를 아름답게 기념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의도는 브라, 나아가 가슴을 순수한 애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프라다는 니트 스웨터의 가슴 아래 유선형 와이어를 더했고, 스포티한 무드의 디올 쇼에도 캐주얼한 브라렛이 가슴 언저리에 자리했다. 코치는 스케이터 쇼츠에 편안한 착용감의 브라렛을 매치했고, 젊고 재기 넘치는 신진 디자이너들 역시 독창적인 시각으로 신체의 일부를 향한 신선한 해석을 더했다.

1990년, 마돈나가 월드 투어 무대에서 착용한 장 폴 고티에의 유명한 콘브라를 기억하는지. 콘브라를 착용한 마돈나가 섹시하면서도 자신감 넘치고 강한 여성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이전의 나 약하고 인형 같은 여성상을 대체했다면, 프라이빗 폴리시의 듀오 디자이너 그리고 바퀘라 등이 선보인 젠더리스 브라와 브라톱은 그 젠더의 경계마저 허문다. 나아가 2022 S/S 시즌의 노출 트렌드는 가슴을 떠나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때로는 대중이 그 매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신체 일부분을 무심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도 눈길을 끈다. 미우미우의 로라이즈 미니스커트 헴라인 위로 로고 드로어즈를, 샤넬의 컷아웃된 스커트 아래 비키니 팬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룩처럼 말이다. 블루마린 역시 치골이 드러나는 로라이즈 데님 진으로 90년대 세기말 패션을 소환해 젠지들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넘버21과 아크네 스튜디오, 끌로에, 이자벨 마랑 등이 그 행렬에 동참했다. 심지어 로에베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 컷아웃 효과를 더했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무릎.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은 이제껏 소외되어온 신체 일부분을 통해 뉴노멀 시대의 관능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이러한 관능은 이번 시즌 발망부터 낸시 도자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디자이너의 스트링이나 밴드 장식 룩, 컷아웃과 시스루 룩을 통해서도 발현된다.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는 시스루 룩은 사실 런웨이가 아닌 일상에선 접근하기 힘든 아이템이지만, 그 위에 브라렛을 레이어링하거나 스윔웨어와 함께라면 이상적인 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크롭트 톱을 즐겨 입는 이들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임신한 배를 드러낸 스타들. 에이셉 라키와 함께 밀란의 구찌쇼에 참석한 만삭의 리한나 역시 D라인을 그대로 드러낸 스타일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패셔니스타는 그 외에도 동그란 배를 드러내거나 D라인을 강조하는 의상을 입으며 자신의 몸에 찾아온 특별한 축북을 만끽하는 중. 그녀처럼 현재 지금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디자이너들은 보디컨셔스 룩에 한층 편안한 착용감과 탄력성을 지닌 소재를 적용했다. 지난해 AZ 팩토리를 선보인 고 알버 엘바즈는 첫 컬렉션의 티저 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착용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옷이어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죠.” 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컬렉션을 디자인하며 무엇보다 여성의 다양한 체형에 관심을 둔 채, 혁신적인 니트 기술을 통해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보디컨셔스 드레스를 선보였다. 또한 대중소나 44~77로 구획되던 기존 사이즈의 폭을 넓히며 여섯 사이즈의 컬렉션을 출시해 거의 모든 여성의 신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양한 몸을 존중하는 옷들이 등장했다. 새로운 패션의 이상향을 지닌 채 여성의 다양한 몸을 포용하고자 한 디자이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시아나 미국, 혹은 유럽이나 중동으로 나눠진 패션 시장이 아닌 개별성을 지닌 여성 그 자체였다.

모든 몸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크건 작건, 마르건 뚱뚱하건, 나이가 많건 적건, 혹은 시스젠더이건 젠더퀴어이건 간에 말이다. 물론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시선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살을 빼고 입겠다며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둔 룩을 꺼내 입는 것보다는 내 생각의 틀을 전환해 지금의 내가 즐길 수 있는 룩에 도전하는 게 더 건강한 태도다. 편협한 잣대를 버리고 드넓은 아름다움의 스펙트럼을 포용할 때, 비로소 드러냄이 편안해질 것이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아트워크
허정은
사진
JAMES COCH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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