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과 누군가가 공존하는 이야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서울의 독립 예술 공간들을 한자리에서 만끽하기. 그를 통해 다름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는 일. 구찌가 기획한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한국 미술 신에 ‘대안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관을 중심으로 한 주류 문화나 제도가 수용하지 않는, 혹은 기피하는 실험을 꾀하는 공간들. ‘대안’은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내리쬘 것만 같은 희망을 품은 단어다. 한동안 대안 공간과 레지던시가 일으킨 활발한 기류가 있었고, 그러다 사라지는 대안 공간도 제법 많았지만, 그들이 일으킨 담론과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대안이란 시대 상황에 따라 늘 새롭게 모색할 수 있는 것. 2010년대 들어 전과 조금 다른 세대에 의해 또 다른 공간들이 출현했다. 공간 뿐 아니라 전시 기획에 있어서도 신선한 물음표가 생기는 자리 역시 등장했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는 15개의 신생 공간과 다수의 기획자들, 작가들이 참여해 새로운 양상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여느 아트 페어와는 달리 작가들이 직접 부스를 차려 관객이자 소비자를 만났고, 판매할 작품이 없다며 거지 분장을 하고 구걸하던 작가, 왁자지껄한 시장통 분위기가 형성되던 그 풍경이 퍼포먼스의 일종으로 보였다.
그리고 2020년 서울에, 저마다 다른 성격의 독립 예술 공간들이 존재한다. 대안과 실험이라는 키워드는 전과 비슷하지만, 오직 주류 기관의 대안이라기보다 각자의 맥락을 가지고독립적인 생태계를 꾸려가는 곳들이다. 서울이라는 좁은 땅 안에 지리상으로 흩어져 있는 그들을 한자리에 초대한 건 놀랍게도, 구찌다. 대림미술관에서 4월 17일부터 시작해 7월 12일까지 열릴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전을 둘러보며 구찌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행보를 떠올려봤다. 장르와 젠더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인 가치, 경계를 가뿐히 허물어버리는 그 진보적인 정신. 보다 큰 가치인 ‘인류’를 향하는 매니페스토, 그러면서 놓치지 않는 미학. 이 전시는 서울에 있는 독립 예술 공간 10군데와 단일 작가 5명을 통해 각각 다른 실체가 ‘함께’한다는 것이란 뭔지 사유해보길 권한다. 이 기획의 정신과 어우러지면서 그곳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작업을 소개하며, 우리가 모색해야 할 ‘다른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참여한 공간들은 시청각, 통의동 보안여관, D/P, 합정지구, 오브(OF), 탈영역우정국, 공간:일리, 스페이스원, 취미가, 화이트노이즈다. 결이 다른 공간들의 일부 역사를 한자리에 펼쳐놓는다는 점에서 전시는 그 자체로 아카이브 역할도 한다. 유토피아란 이상향일 뿐이지만,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장소를 뜻한다. 이 전시장은 다소 추상적인 그 의미에 가닿기 위한 장소가 될 것이다.
대안적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이 공간
총괄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와의 인터뷰
미리암 벤살라가 가장 먼저 자신을 소개한 말은 ‘튀니지계 프랑스인 큐레이터, 작가, 편집자’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파리의 현대미술관 ‘팔레드도쿄’에서 일하면서 특별 프로젝트와 공공 프로그램을 담당했고, 특히 행위 예술, 영상, 출판 사업에 중점을 뒀다. 그 후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관에서 열리는 독립 전시 프로젝트와 상영회를 진행했고, 지난 4년 동안 감각적인 예술 잡지 <칼레이도스코프> 편집장이기도 했다. 얼마 전 시카고에 있는 르네상스 소사이어티(Renaissance Society)의 관장이자 수석 큐레이터가 됐다.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의 원제는 <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다. 전시명이란 전시 내용과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열쇠인데, 이 전시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미리암 벤 살라(Myriam Ben Salah) 전시명은 독립적인 예술 조직(대안 공간, 예술가가 운영하는 공간 등)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공간’이라는 단어의 편재성을 활용하는 한편, 새로운 자율적 서사가 펼쳐지는 유토피아적 장소이자 사색적 도구가 되기도 하는 ‘외부 공간’과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또 ‘다름’을 이해하고 소수자 정체성과 퀴어 정치에 대한 탐구를 되새기게 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이 전시는 ‘공간’이라는 추상적 형태를 그보다 구체적인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초대장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에 비하면 낯선 용어다. 미셸 푸코가 저서 <헤테로토피아>에서 ‘현실화된 유토피아,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라고 기술하기도 했는데. 당신도 그 책을 읽어봤나? 물론이다. 나는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늘 미셸 푸코를 참고했고, 오랫동안 그의 사유를 탐구했다. 미셸 푸코가 콜레주드 프랑스에서 ‘유토피아적인 몸(Le Corps Utopique)’ 이라는 제목의 콘퍼런스를 했을 때도 인상 깊게 봤다. 그는 몸을 궁극적인 ‘다른 공간’으로 정의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그 개념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전시와 관련해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예술 커뮤니티 안의 ‘대안 공간’ 개념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 미술의 생태계로부터 힌트를 얻었다고 들었다.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겠나? 처음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서울에 있는 예술가들을 조사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예술가나 큐레이터가 운영하는 독립 예술 공간들이 주요 미술관이나 시장 중심의 미술계에 대한 대안으로서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 이번 전시의 큐레이토리얼 컨설턴트로 함께한 여인영 덕분에 나는 한국 미술의 생태계 안에 자리 잡은 그 구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서울에 대안 예술 공간 1세대가 등장한 건 2000년대 초반이고, 당시 관계자들은 급진적인 사명을 띠었다. 기존 제도를 제대로 뒤엎고, 주류 미술계에 존재하지 않는 실험의 장을 열고자 했다. 전시에 참여한 공간들과 작업하면서 ‘대안’ 혹은 ‘다른’ 공간의 의미를 더 넓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살짝 어두운 지금 시점에서, 또 우리 모두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대안적 서사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이란 뭔지 생각해볼 만하다. 소위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공간을 생각 해보자는 것이다.
당신이 쓴 전시 서문에 고대의 개념인 ‘프로크세니아 (Proxenia)’가 등장한다. 그 개념에 착안해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고? 어떤 개념인가? ‘프로크세니아’란 고대 그리스에서 손님을 접대하던 관습을 가리키는 말인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에 대해 생각하는 비전의 핵심이자 구찌가 진행한 여러 예술 프로젝트를 이끈 개념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구찌는 손님을 맞이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다방면의 예술 독립체들이 단일한 묶음으로 자리한 게 아닌, ‘함께’, 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환경 말이다.
이번 전시의 모든 과정에서 당신이 염두에 둔 가장 큰 화두는 뭔가? ‘세상을 바라보고 따르는 대안적 방식을 구축하는, 은유적 장소로서의 대안 공간.’ 서울에 있는 독립 공간들이 미술계 제도권의 주변부에서 하는 일을 생각하면, 주류를 탈피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전 세계가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는 그런 성찰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강조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 지구와 관계를 맺는 다른 방식이 있을까?’ 하는 질문들 말이다.
서울에서 어느 독립 공간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질 때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이 클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부동산 임대료 문제다. 독립 공간의 의미와 결은 도시마다 문화마다 다를 수 있는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당신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젠트리피케이션은 까다로운 메커니즘이다. 대안적 예술 공간, 나아가 예술가들은 보통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동네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공업 지대나 도시 변두리에 주로 정착한다. 문제는, 그들이 동네를 가치 있게 만들면서 그 동네가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지역으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예술 공간이나 예술가들에게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 과정은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서울에 새로 생겨나는 독립 예술 공간들은 지리적 접근성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SNS와 온라인 노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튀니지에서 자란 경험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에 끼친 영향이 있을까? 내가 ‘서구 세계’ 밖에서 자랐다는 점이 미술 제작에 대한 내 사고 방식, 큐레이팅 접근 방식에 확실히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미술계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북아프리카, 더 넓게는 중동 지역의 예술이 오랜 세월 ‘뭉뚱그려져’ 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지역 출신 예술가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수행’해야 인정받는 문화가 있는 듯했다. 그 지역의 대중 문화와 현대성에서 비롯된 방대한 유산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재치와 유머, 모순과 불손, 관능과 키치함 같은 것들 말이다. 일부 큐레이터들은 투쟁 서사나 빛나는 과거에 집착했다. 그 결과, 그 지역 예술가들이 이른바 ‘암묵적 의뢰’에 부응하는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 같다. 모로코 학자 모하메드 라치디(Mohamed Rachidi)가 말한 이 암묵적 의뢰를 하는 이들은 충격적인 배경이 있어야 진정성도 있다고 여긴다. 나는 누군가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그 지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전시의 형식주의에 부역하면서 쉽게 뭉뚱그려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왜 미술을 택했나? 처음에는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현대 미술이 철학적 발상과 개념을 발산하는 창구이자 형식에 대한 고민을 담는 물질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고, 때로는 헷갈리게도 하며,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보게 만든다고 봤다. 그런 예술의 힘에 끌렸던 게 아닐까 한다.
불어, 아랍어, 영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스페인어까지 총 5개 국어를 한다고 들었다. 꿈은 불어로 꾸고 화낼 때는 아랍어로 화낸다니, 당신이야말로 구찌가 추구하는 다양성과 복합성의 결정체 같다(웃음).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특성이 예술 활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까?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건 건강한 정신적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관점을 바꾸고, 자신의 생각이나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생각과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은 결국 언어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는 게 늘 편리한 일만은 아니다. 나는 여러 언어들 사이를 오가면서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내가 100% 자신 있게 구사하는 언어는 불어뿐이다. 하지만 불문학 공부를 했기 때문인지 불어로 글을 쓸 때 오히려 부담감이 크다. 영어로 글을 쓰면 모국어가 아닌데도 더 자유로운 느낌이다.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전을 찾을 관람객 중에는 평소 미술과 전시에 큰 관심이 있다기보다 ‘구찌의 프로젝트’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큐레이터로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관람객들 사이에 차이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메시지라는 것이 있다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달될 것이다. 예술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다른 경로로 이 전시 이야기를 듣고 방문할 수 있다면 기쁠 뿐이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떠나는 사람이 대안적인 생활과 일, 소비 방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가상’도 ‘현실’의 일부다
작가 세실 B. 에반스와의 인터뷰
런던에 거주하는 그는 감정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이데올로기나 기술과 접할 때 생기는 저항감을 주로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음이 원하는 것(What The Heart Wants, 2016)’이라는 41분짜리 영상을 선보인다. 큐레이터 미리암 벤살라는 세실 에반스의 작품이 ‘대안적 가능성’을 고민하는 전시에서 소개하기에 완벽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어떤 상태로 존재할지, 인간성이라는 것의 여러 의미를 탐구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상에는 Hyper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외형으로는 ‘여성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는 인터넷의 종말 이후 편재적 시스템으로 남은 존재다. 이 작품은 2016년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커미션 작품으로 공개된 것이기도 하다.
현재 대림미술관 제일 위층에서는 온전 히 당신의 작품 하나만 상영 중이다. 그래픽 이미지, 화면에 오버랩된 텍스트, 바닷속 해파리, 남한의 탈북자 토크쇼 클립 등 상당히 많은 요소와 레이어가 풍성하게 뒤엉킨 작업물이다. 그런 복잡함과 뒤엉킴은 그것이 바로 디지털 환경의 속성이기 때문에 의도한 스타일인가? 혹은 의도하지 않아도 결국 우러나는 당신의 취향인가?
세실 B. 에반스(Cécile B. Evans) 우리가 ‘디지털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별개의 무언가가 아니다. 디지털에도 실체가 있다. 데이터는 무게가 있고, 자리를 차지하며, 데이터를 생성하고 유포하는 기계는 누가 봐도 물성이 명백하게 느껴지는 재료로 만든 것이다. 디지털은 자연이나 현실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름을 부여한 다른 모든 것과 나란히 존재하는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이질적 다수를 위한다’는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의 제안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존재의 여러 음영, 그 음영들이 ‘세계’라는 틀 안에서 교차하는 방식을 인정한다는 거니까. 영상 안에 다양한 소재(CGI, 실사, AI, HTML 등)를 겹쳐 넣은 것은 나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공간에 레이어 한 겹이 더 생긴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공간이 설치 작품처럼 경험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관객이 변화와 감각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공간과 서사 사이를 연결할 가능성을 심어주고 싶었다. 관객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견고한 방식으로 교감하도록 초대받는 셈이다.
대림미술관이든 베를린 비엔날레에 서든 당신의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궁금했을 법한 것이 있다. 통유리창 너머로 끝내주는 자연 뷰가 있는 넓은 집과 울창한 산이 계속 등장한다. 그곳들은 어디인가? 그 장면은 제20 회 시드니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동안, 호주 서던하일랜즈와 블루마운틴에서 촬영했다. 집은 현대주의 건축가 해리 시들러(Harry Seidler)가 설계했고. 현대주의적 이념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기반 시설이기에, 이 점을 HYPER가 집어 삼키는 힘의 상징이라고 상상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용 중 Hyper를 방해하면서 ‘이 집의 기억을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흐르는 부분이 있다. 그 이야기는 집의 원소유주 중 한 명과 내가 실제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 당사자는 비엔날레에서 그 장면을 보고는 자신이 기억하는 맥락에서 벗어났다며 몹시 불편해했는데,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다. 같은 장소에서 생성된 서로 다른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으니까. 다시 말해서 그건 서던하일랜즈 토박이와, 원래 주인이 쫓겨난 다음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임대한 많은 사람들 사이의 엇갈린 기억이다. 이를 통해, 작업 중이던 ‘A Memory From 1972’라는 영상에 기억에는 장소와 사람보다 오래 지속 될 수 있는 고유의 존재감이 있다는 개념, 기억은 서로 대립되는 계층 구조들이 협상을 벌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라는 개념을 강화하게 됐다.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촬영 장소 중에는 호주 서부 해안에 있는 분홍빛 호수도 있다. ‘귀 협동조합’이라는 게 처음 소개되는 곳 말이다. 역시 혼종의 성질과 밀도를 선보이기 위해, 풍요로운 풍경이 필요했다.
당신이 몰두하는 세계, 그리고 당신이 작품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의 키워드는 뭔가? 작품이란 각각 다르고, 그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해준다. 대화는 내가 가진 의문에 다른 사람도 관심이 있는지, 그 작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타당한 논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과정이 작품을 만들겠다는 내 열망을 더 강하게 불지펴준다.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 원하는 것’은 미래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거나 인간이 되고 싶어 할지, 어떤 제도가 그런 결정을 가능하게 할지 조사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율 시스템인 HYPER에 대한 아이디어는, 민간 테크 기업들이 공공 서비스에 가깝게 작동하는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기분과 감각에서 나왔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온한 움직임과 그에 저항하는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이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내게 예술과 작품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덕이다.
과거 배우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연기와 미술은 모두 예술의 한 범위이지만,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각성하게 만든 경험과 생각은 무엇이었나? 여러 직업을 가져봤는데 그중 배우 생활을 가장 오래 했다. 가장 크게 실패한 직업이기도 하다. 시각 예술가에게는 다루고, 참조하고,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수단이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배우로 일하면서 배운 것이 큰 도움을 줬는데, 바로 ‘감정에 대한 투자’다. 실패한 경험은 큰 충격이었지만, 결국 자양분이 됐다. 존재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 그렇듯, 감정이 지닌 가치(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루기 힘든 대상 이라는 점)가 있다는 걸 배웠다. 인간성을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는 대부분 고정된 가치와 성공 모델을 바탕으로 번성한다. 하지만 감정은 우리에게 변덕과 변화의 잠재력을 상기시켜준다. 또 주어진 틀 안에서 번성하는 수많은 현실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 가능성이 이번 전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헤테로토피아’일 것이다.
당신은 디지털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다. 혹시 일찍부터 각종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했나? 툴과 이펙트 사용법을 최대한 많이 배운다. 우선 그렇게 배워둬야 프로젝트, 작품, 캐릭터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모든 조각, 설치, 영상 작품에는 수십 가지 툴과 기술이 동원된다. 내가 그 기술을 전부 완벽하게 터득할 수는 없을 테고,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더 신나기도 하다. 적절한 사람들을 찾아 일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 것이 결과적으로 작품의 어떤 측면에 분명 영향을 끼친다.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이 ‘The Virtual Is Real’이라는 말을 했던가? 이 시대에 현실과 가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건 무의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로 둘러 싸인 세상에서 실제가 아닌 가상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지각한다는 건 ‘시각’이 ‘촉각’ 등의 여러 감각을 대체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몸이라는 물성을 가진 존재인데 말이다. 가상과 현실 사이에 ‘실제가 아닌’ 것은 없다. 현실은 이분법도, 물질성도 아니다. 나는 자라면서 ‘가상’이라는 말을 싫어하게 됐다. ‘가상’은 낡은 권력 체계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 방식을 조작하고 방향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다. 가상이라 불리는 것은 현실의 일부이지, 현실에 반대되는 선택이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 다. 비슷한 예를 찾자면, 소설은 현실의 일부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에 ‘실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비 물성’이라는 말도 특정 종류의 노동과 경험에 대한 설득력을 없애기 위해 이 세상에서 계획적으로 사용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방문하거나 여행한 적이 있나?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에 갔어야 했는데, 세계적인 유행병 사태로 갈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기 전에 꼭 그 바람을 이루고 싶다.
장소성을 만드는 ‘우리’에 대하여
큐레이토리얼 컨설턴트 여인영과의 인터뷰
해방촌에 자리한 스페이스원의 디렉터이자 작가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토리얼 컨설턴트로서 총괄 큐레이터인 미리암 벤 살라가 서울 미술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일을 돕고, 프로젝트 초기에 전시 토대를 잡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서울의 대안, 독립 공간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서울에 산 지난 7년 동안 가장 많은 전시를 보러 다녔다.
전시 큐레이터인 미리암 벤 살라는 서울의 미술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당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시의 주제와 취지에 관해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여인영 서울의 대안 독립 공간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 ‘공간’이란 단순한 지리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함께 형성해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장소성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다. 우리는 누구일까, 장소성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위해 장소성을 형성해가는 걸까. 대화를 하며 그런 생각을 함께 정리해갔다. 여기서 ‘누구’의 자리에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주류가 아닌 ‘대안’을, ‘무엇’의 자리에 자본과 권력이 아닌 ‘소수, 소외’라는 말을 대입해보면 또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나는 한국의 동양화를 볼 때면 ‘우리’의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떤 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하나의 평면에 공통적으로 묘사되는 광경을 보면, 화가의 의도가 ‘나’가 아닌 ‘우리’를 보라는 뜻 같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다름’이 공존하고 순환하는 관계가 이번 전시에서도 중요하다.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남은 대목이 있나? 미리암 벤 살라는 유럽과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튀니지에서 자랐고, 튀니지 사람과 역사가 소외된다고 느끼는 경험을 해봤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 살면서 한 번은 소외되는 기분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소외됨을 어떻게 잘 풀어나가고 전시에 녹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전시에 참여한 공간들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다 다르다. 한 시기에 여러 곳과 교류하면서 문득 느낀 점이 있을까? 모두 열정 넘치는 공간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한국의 많은 분야에서 ‘마이크로 커뮤니티’가 여기저기 산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독립 공간들도 그런 면이 있다. 생각만큼 교류하고 소통하며 지내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걸 느끼기는 했다. 그 점에 대해서 참여자들과 대화도 했다. 모든 현상에는 장단점이 있고, 변화도 오기 마련이다.
당신은 이번 전시의 큐레이토리얼 컨설턴트이자 전시에 참여한 스페이스원의 디렉터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원은 전시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였나? 포스터 인쇄물 설치와 3채널 영상 설치를 했다. 형식이 다른 이 두 가지는 모두 스페이스원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전시와 프로젝트의 아카이브다. 그간의 전시 이미지와 전시 관련 글을 수집해서 하나의 포스터에 담았다. 영상 설치물에서는 각각 ‘소외하다’, ‘엮다’, ‘조립하다’라는 세 가지 주제의 영상이 흐른다. ‘어떻게 하면 오래된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여성은 직물을 계속 엮어왔는데, 이처럼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비선형적으로 엮을 수 있을까?’,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새롭게 조립해 미래를 만들어 나갈까?’ 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 담론을 위한 프로젝트다.
스페이스원이 해방촌에 자리 잡은 지 6년이다. 그동안 해방촌의 변화를 지켜봤을 텐데,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 꿈꾸는 해방촌이라는 공간의 모습이 있나? 비영리 예술 기관을 만드는 것, 다른 예술가, 예술 공간이 자본이나 정치 권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염두에 두며 운영했다. 그 독립성 때문에 생기는 고난과 외로움 등등이 있는데, 어떤 길을 택하든 어려움은 따르는 법이니까. 해방촌 신흥시장은 올해 서울 도시 재생 공사에 들어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사실 그런 변화가 내가 꿈꾸던 모습은 아니다. 예전에는 이 동네에 비어 있는 상점이 많았는데, 그 공간을 예술가들이 채우면서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꾸려가면 어떨까 상상했다. 해방촌도 이미 상업화됐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생겼다. 그런 시점에서 꿈꾸는 해방촌이라면, 글쎄, 새로운 의미와 감성의 공동체가 긍정적으로 형성됐으면 한다.
전시 도록에 당신과 합정지구 관계자들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나눈 대담이 실렸다. 스페이스원이 태동하던 2014년 당시를 ‘다양성이 많이 부족한 시기’라고 느꼈다 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 것 같나? 다양성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 다양성이란 소수, 소외된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어떤 논의가 주류 안에서만 돌고 돈다면, 주류와 대중의 시선에 맞는 안전하고 편한 다양성 개념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러 기업과 정부 사업에서 청년, 스타트업, 독립 공간에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일이 늘었는데, 아직은 좀 제한적인 면이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한 일 같다.
대담에서 당신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건, 당신이 한국과 미국에서 자라면서 ‘내 안의 한국은 뭘까’라는 질문을 항상 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적’이라는 지역성과 정체성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해석과 상상을 가두는 프레임이 되면 곤란할 것이다. 미술계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말할 때 어떤 관점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동시대 철학자 육후이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동아시아 시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는 한글로도 번역된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코스모테크닉스 시론>과 최근의 저서 <Recursivity and Contingency>에서 정교한 기술 철학 이론을 펼친다. 작년에 육후이를 초청해 강연도 진행했다. 지금까지는 글로벌화 자본의 관점과 논리가 중점이었다면, 이제는 우주론에 기반한 다양한 방향의 인간과 자연, 기술에 대한 관계적 관점과 논리가 한국에서 필요할 것 같다. 그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주변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서로 관계 맺을 수 있는지 풍성한 논의가 있길 기대한다. 한국의 지리적, 경제적, 정치적 위치를 고려하면 ‘관계성’에서 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대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본다면? 보편적 접근이란 나와는 다른 문화, 인종, 젠더를 이해할 때 사회나 대중이 정의 내린 카테고리, 선입견 등에 끼워 넣는 일을 말한다. 쉬운 예로 ‘여자는 어때야 해’처럼 남녀 성 역할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접근이 그렇다. 그런 보편적 시선과 선입견은 어디서 유래했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 ‘대중적인 의견’이라는 말은 사실 주류 권력층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된 의견일 것이다. 누가 그 목소리의 진정한 주체인지를 알고 보면 그것이 뻔한 상업적 의도에서 나온 목소리일 수도 있고, 문화, 감정, 자아를 흔드는 뿌리 깊은 것일 수도 있다. 보편적 접근을 피하자는 건 단순히 그 반대로 행동하자는 게 아니라, 그 보편적 시선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영역, 탈영역우정국
탈영역우정국은 예전 창전동 우체국이었던 건물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건물 1층은 주로 전시, 공연 등을 하는 공간으로, 2층은 소규모 프로젝트와 워크 숍 등을 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설립자 김선형은 처음부터 큰 틀에서의 색깔과 목표를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탈영역’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규정할 수 없는 그들만의 영역 안에서 다양한 이슈를 실험하는 장소. 과거 우체국을 이용했던 시민이 전화로 택배 문의를 하는 것 같은 에피소드 는 요즘도 간간이 생긴다. “제가 미디어 아트를 공부한 버펄로는 과거 예술 신이 없지는 않았지만 점차 낙후된 도시였어요. 그래서 도시 곳곳에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유휴 공간이 많았죠. 그런 공간에서 다양하고 실험적 프로젝트가 벌어지는 걸 자주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저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꿈꿨어요. 탈영역우정국이 5년 동안 자리 잡고 있는 이곳도 원래 우체국 건물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탈영역우정국은 2018년 그곳에서 개인전을 치른 강우혁의 <달나라 부동산>을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전에 다시 안고 왔다. <달나라 부동산>의 아이디어는 달에 있는 땅이 실제로 매매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갈 수는 없지만 구매할 수는 있는 땅. 게다가 서울 땅값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싼 금액이라면, 현실에서 요원하기만 한 ‘소유’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작가는 달나라 땅을 분양 판매하는 ‘루나 엠버시’라는 곳에서 땅 1에이커를 샀다. 루나 엠버시는 가상의 부동산이 아니라 실재 하는 회사다(대체 달나라의 토지를 누가 무슨 자격으로 소유고 있나 싶지만, 그곳의 토지를 ‘찜’하고 팔겠다는 발상을 처음 한 사람은 선점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 땅을 다시 분양하기 위해, 작가는 2018년 개인전에서 토지 증서를 10등분하여 경매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낙찰받은 이들에게 ‘다시 매물로 내놓을 것인지’ 조사한 설문지 모음도 전시된다. 긴 형태로 10등분한 증서가 표구를 거쳐 오브제 형태로 전시된 모습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분양의 방법으로 땅이 아닌 종이를 분할하는 상징적 행위를 곱씹으며, 달나라에 건축될 아파트 단지 모형, 달나라 거주자들의 행복한 일상을 합성 이미지로 선보인 키치함 등을 즐기다 보면 유쾌한지 씁쓸한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연결 지점을 찾아서, 합정지구
문화 예술 창작자들이 운영하는 비영리 미술 공간, 합정지구는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뒤편의 골목길 귀퉁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공간이다. 젊은 공간이지만, 신진 작가들의 전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옛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연결 지점을 찾으려 한다. 약 20년 전, 가부장제에 항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여성 그룹 ‘입김’과 젊은 여성 활동가들의 작업을 함께 보여준 전시 <비트윈 더 라인스>가 그 예다. “어느 매체의 본질과 속성, 작가의 태도랄까, 그런 걸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그럴 때 장르든 주제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들여다보면, 세대와 시공간의 구분을 떠나 새로운 줄기가 생기죠.” 설립자 이제는 <이 공간, 그 장소 : 헤테로토피아> 전에 함께한 공간들 성격이 저마다 다른 데서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기획전을 할 때면 참여자 서로 간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한데 묶는 경우가 흔한데, 이번 전시에서는 누군가가 부여한 하나의 기준보다는 편견 없는 자유로운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합정지구는 화가 전혜림의 <육면체의 인덱스>를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회화는 회화인데 캔버스라는 직사각형과 다른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캔버스 안의 그림이 캔버스 밖으로 확장되거나, 정면이 아닌 여러 방향에 서도 바라보게 되는 그림, 그래서 회화이자 설치물과도 같은 작품. 전혜림은 회화의 속성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그것이 평면으로만 고정되지 않게, 때로는 면과 면이 중첩되는 형식을 취한다. 기존 개념을 유지하되 그 프레임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낸 작업이다. 회화란, 매체란 뭔지 질문하는 작가의 속성은 합정지구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기존의 것을 마냥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과 연결하면서 이 시대와 새롭게 엮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 말이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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