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디자이너 쇼나 히스(Shona Heath)가 창조한 매혹적인 세계.
꿈과 환상의 세계를 좇는 패션 사진가 팀 워커(Tim Walker). 그의 방대한 작업과 영감을 조망한 전시가 지난 9월 21일, 런던 V&A 뮤지엄에서 오픈했다. 내년 3월 8일까지 지속될 이 사진전의 타이틀은 다름 아닌 ‘Tim Walker: Wonderful Things’. 그곳에는 사진 이상의 특별한 세계가 존재한다. 바로 세트 디자이너 쇼나 히스(Shona Heath)가 창조한 매혹적인 세계.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가장 매혹적인 방식이 이 곳에 담겨 있다.
만나서 반갑다. 당신은 사진가 팀 워커와 함께 인상적인 화보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V&A에서 펼쳐지는 전시 <Wonderful Things>의 환상적인 디자인도 맡았다. 전시장 입구의 타이틀부터 특유의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터치가 느껴졌는데, 이번 전시의 전반적인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고맙다. 이번 전시는 세트 디자이너로서 내 커리어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중에는 비행접시가 등장한 사진처럼 팀 워커와 함께한 의미 있는 순간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을 비롯해 V&A 뮤지엄의 요청으로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10개의 새로운 화보 프로젝트 등. 우리의 사진들이 어떻게 디자인되고, 전시를 위한 인화와 표현의 과정을 거쳤는지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전시 디자인을 하며 중점을 둔 요소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모든 사진을 가장 그럴듯한 방식으로 공간 속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팀의 사진들이 걸린 벽으로 이뤄진 전시 공간은 일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니까. 또한 그의 사진에 깃든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 영감을 준 대상부터 그것을 발전시킨 아이디어까지 모든 창조적인 과정을 어느 정도 구체화해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shona.heath)을 보니 전시를 위해 수많은 멋진 이들과 협업했다고 적혀 있더라. 그 중에서도 사진가 팀 워커와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적으로 소통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이번 ‘원더풀 띵즈’ 전시를 위한 ‘원더풀 피플’은 나의 세트 팀을 비롯해 세트 기술자, 큐레이터, V&A 뮤지엄 팀 등 무척 다양하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한 팀 워커의 메시지는 일상의 다채로운 오브제에서 영감을 찾자는 거였다. 물론 V&A와 같은 문화적인 공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선별 과정을 통해 다채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현재 작업 중인 수많은 미디어에서도 그 레퍼런스를 찾아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길 바라나? 사실 큐레이터 수잔나 브라운의 메시지 역시 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로 마음을 열고 현재를 탐구한다면, 이 아름다운 뮤지엄이 경이로움으로 가득할 거라는 메시지 말이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실물을 살펴보며 여기에 빠져들라는 것. 그들로부터 삶의 영감을 얻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 일상을 반복하는 일 말이다. 또 다른 메시지는 관객들을 팀의 머릿 속으로 초대해 왜 그가 이토록 환상적인 사진을 찍었는지 공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함께 작업한 모든 협력자들이 그의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도 함께.
뮤지엄의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며 각기 다른 전시 테마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컸다. 섹션마다 색다른 무드의 공간이 등장하며 경이로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는데, 그중에서도 당신이 가장 애착을 지닌 섹션은 무엇인가? ‘핑크 하우스’를 꼽을 수 있다. 늘 집이나 가정에 관련된 표현에 매료되어 있기에, 나의 세트에 일상과 집에 대한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려고 한다. 난 모든 종류의 집에 노스탤지어를 갖고 있고, 어린 시절 아이가 느끼는 이질적이고 외로운 집안 환경과 그 느낌을 표현하길 원한다. 볼품없는 환경이 주는 숨막힐 듯한 분위기조차 좋다. 전시관의 핑크 하우스에는 장식함부터 벽지까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는데 공주의 핑크 세상이기도 하고, 팀이 촬영한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모두에 속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별히 ‘Soldiers of Tomorrow’ 화보 프로젝트는 재활용과 재생산(Reuse & Recreate)의 메시지를 담았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오늘날 패션계의 화두인 점을 생각하면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은 작업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촬영 과정은 약간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딱 한 세트 분량의 중고 재료를 활용했는데, 이를 통해 화보에 ‘일상을 고치고 만드는’ 도심 속 전사들을 등장시켰다. 지난 시절의 과잉과 낭비와 소비주의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안하고 익혀가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재활용 오브제를 활용한 작업을 더 활발히 할 예정인지 궁금하다. 또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할 때의 이점과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세트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무언가를 늘 소비하고 낭비하기에 항상 환경적인 부분을 의식하려고 노력한다. 일례로 화보 작업에 쓰인 소품을 어린이들의 학교 연극과 청소년 미술 장려를 위한 스크랩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도 한다. 나아가 나의 다음 미션은 기후를 생각하는 건축 자재인데,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다.
‘Chasing the Dragon’ 전시관은 역사와 신화적인 요소를 매혹적으로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방대하고 깊이 있는 리서치 과정이 엿보였는데, 당신이 결과물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방식은 어떠한가? 영감을 작업으로 옮기는 당신만의 특별한 시각화 과정이 있는지. 이 프로젝트는 어느 날, 팀으로부터 10cm의 작은 스너프 박스가 담긴 아이폰 사진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진상으론 커보였던 박스는 생각보다 매우 작았고, 막상 사진으로 찍어보니 컬러가 형광으로 얼룩져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낮에 UV 조명을 이용해 촬영하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결국 팀이 이 작은 상자에서 읽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멋진 작업으로 재탄생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황후가 작은 애완용 용과 함께 달빛이 가득한 환상적인 정원을 거니는데, 그 이유는 12시에 시계가 울릴 때 활짝 피어나는 꽃을 잡기 위해서다. 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긴 상상의 세계를 전시를 통해 현실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인 작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영감은 ‘모든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버스 좌석이나 비닐봉지나 쓰레기 더미에도 있고, 하늘과 떨어지는 낙엽, 스치는 말,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이의 말에도, 꿈과 실수에도,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도 영감이 있다. 당신 역시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 하찮게 여겨지는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것들에서 무언가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어떤 컴퓨터 그래픽도 없이 모든 세트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팀 워커와의 화보 작업은 남다를 듯하다. 팀과 시안 상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소통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닮은 부분 덕에 매우 수월하게 소통하는 편이다. 둘 다 같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으며, 상상의 스토리를 믿고, 그 내러티브를 잘 나눈다는 점이 통한다. 주로 같은 시대의 예술과 일러스트에 관심을 지니며, 사진의 시각적 기억을 공유하고 연습하는 방식도 닮았다. 우리는 둘 다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환상적인 동화책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멋진 영감을 주는 엄마를 통해 상상력을 키워갔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Wonderful Things’가 인상적이다. 당신에게 이 문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역시 이 타이틀을 무척 좋아한다. ‘Wonderful Thinsg’는 포괄적이며 가식적이지 않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실로 전시장 안에는 멋지고 경이로운 대상들이 가득하다. 나아가 우리 모두는 언제나 근사한 존재이고, 발견해야 할 놀라운 것들이 어디에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그 누구에게든 적용될 수 있다.
어떻게 세트 디자이너 되었나? 원래 영상 작업을 위한 의상을 제작하곤 했는데, 이 때 가끔 세트 역시 제작해야 할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내 절친인 캐시 에드워즈와 함께 촬영을 하며, 거의 모든 세트를 종이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종이야말로 가장 저렴하며 다루기 쉬운 소재였으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종이로 작은 시나리오를 만들어주곤 했던 경험을 떠올렸고, 자연스레 세트 제작자가 되었다.
당신이 디자인한 디올의 오트 쿠튀르 2019 S/S 쇼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서커스라는 주제로 판타지가 담긴 쇼의 무대를 디자인하는 과정은 어땠나? 디올은 늘 무대 디자인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드 베탁과 일하는데, 그 시즌 쿠튀르 쇼를 위해 특별히 뷰로 베탁 컴퍼니는 내게 여성의 관점에 입각한 심미적 조언을 요청했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피카소의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받았기에, 서커스 퍼포머의 공연을 위한 의상을 함께 제작했다. 덕분에 환상적인 여성 곡예단인 밈브르 서커스를 만났고, 음악과 안무에도 참여할 수 있었던 멋진 경험이었다.
매거진의 화보와 브랜드 패션쇼 작업이 지닌 차이점이 있다면? 매거진은 다양한 레이어의 마법에 의존하며 변신과 위장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반면, 패션쇼는 실시간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패션쇼를 위한 묘기와 아이디어는 어떤 보장이나 편집도 없이 단 한 번의 기회만 존재한다.
화보, 광고, 패션쇼, 공연, 전시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디자인에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분야를 가장 즐기는가? 물론 나의 첫사랑은 사진이지만, 긍정적이고 창의적 접근이 가능한 디자인의 모든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작업의 최종 결과물보다 그 과정을 더 사랑한다. 작업에 대한 나의 애정과 이런 좋은 경험을 함께하는 멋진 팀원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온몸으로 느끼며 일하는 순간 말이다. 이러한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결과 역시 진실되고 훌륭함을 의미하기에.
패션이 당신에게 주는 즐거운 영감은? 변한다는 속성! 한때 사랑했던 것을 미워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 만드는 패션의 예측 불가능함 말이다.
언젠가 세트 디자이너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이미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을 사랑한다. 끊임없이 창조하고 영감을 주는 일은 그 자체로 나에게 하나의 목적을 주기에. 나아가 하고 싶은 일을 꼽자면, 언젠가 춤이나 뮤지컬과 관계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버려지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 물리적인 작품을 만들고도 싶다. 아마 건축과 인테리어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런던 통신원
- 박찬경(Romie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