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가축의 사료’쯤으로 취급받던 해조류가 최근 들어 전 세계 식품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미역, 꼬시래기, 톳, 새우, 바라문디를 활용한 테린은 파크 하얏트 서울 소속 김형진 셰프의 창작 요리. 테린 주변에 우뭇가사리와 그리핀 소스, 연어알을 곁들였다. 김을 넣어 만든 빵은 바닷가 바위를, 생선 육수로 만든 하얀 폼은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상징한다.
바다에 자생하다 파도에 떠밀려 온 해조류만큼 하찮은 생물도 없다고 생각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다 보니 각양각색 해조류가 늘 넘쳐났지만, 반찬으로 상에 오를 때는 기름진 고깃덩이에 젓가락질하느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3년 전을 기점으로 해조류가 ‘슈퍼푸드’라는 근사한 수식을 휘감은 채 각종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더니, 올해 미국의 식품 유통 체인 ‘홀푸드(Whole Foods)’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식품 트렌드 중 하나로 해조류를 지목하자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홀푸드는 아마존이 소유한 기업이다. 매년 25명 내외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이 발표하는 홀푸드의 식품 트렌드 보고서는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 식품 산업을 뒤흔든다. 올해는 상온에서 보관하는 프로바이오틱스, 흔히 ‘대마 씨’로 알려진 헴프시드, 인조 고기로 만든 가공식품 등과 나란히 해조류가 당당히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조류는 역사가 깊은 만큼 누군가 해조류에 대해 묻는다면 장대한 이야기부 터 꺼내야 한다. 약 40억 년 전인 선캄브리아대부터 해조류가 서식했다고 전해지지만, 본격적으로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신석기 시대로 추정된다. 신석기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던 원시 신석기인이 지척에 널린 해조류를 에너지원으로 섭취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해조류를 식용한 역사가 유구한 만큼 각종 고서에서도 해조류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1429년 <세종실록>에는 명나라에 보내는 특산물로 김이 등장하고,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차고 맛이 짠 다시마가 수종을 치료하며 얼굴의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뛰어나다고 기록됐다.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해조류는 일찍이 밥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식량 자원으로 대접받아왔지만 서양에서는 기껏해야 가축의 사료로 쓰였다. ‘바다의 잡초’로 풀이되는 영문명 ‘시위드(Seaweed)’만 보더라도 이들이 해조류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드러난다. 푸대접의 역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있었던 황당한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종료되고 일본 군을 상대로 한 전범 재판에서 ‘미군 포로에게 검은 종이를 먹이는 가혹 행위를 했다’라는 증언이 나왔는데, 증거물로 제출한 검은 종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이었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외양과 식감의 해조류는 서양인에게 바닷가 바위에 들러붙은 한낱 잡초로 보였던 게 분명하다.
비교적 최근까지 구글에 해조류를 검색하면 식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Edible’이라는 수사가 대번에 등장했다. 가축이 먹는 저급 사료에서 전 세계가 가장 뜨겁게 주목하는 슈퍼푸드로 신분이 격상된 것은 해조류의 영양학적 가치가 과학적으로 검증되면서부터다. 여기에 세계적 장수촌으로 꼽히는 일본 오키나와의 다시마 소비량이 일본 전국 평균치의 1.5~2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칭마저 바다의 잡초에서 ‘바다의 채소(Sea Vegetable)’로 바꿔 부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 ‘이노바 마켓 인사이트(Innova Market Insights)’는 2018년 해조류를 재료로 사용한 가공식품의 출시가 21%가량 증가했고, 특히 김 시장은 미국 내 규모가 2015년 100억 달러에서 2024년 22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언제나 새로운 식재료에 목마른 셰프, 특히 서양 요리 셰프들에게 해조류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다. 곯은 배를 채워주는 구황 식품이던 해조류가 미식의 최전선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 6월 언주로에 자리한 레스토랑 ‘이타카’에서는 김태윤 오너 셰프가 준비한 미식 행사 ‘계절의 기억 : 바다 나물’이 열렸다. 서울에서 출발해 목포, 진도, 하조도, 소마도를 열차와 버스, 배로 이동하는 긴 여정에서 셰프는 톳, 불등가사리, 구파래, 모자반에 이르는 각종 해조류를 수확해 식탁에 올렸다. 기껏해야 가니시나 페스토에 쓰이던 해조류가 당당히 메인 디시 자리를 꿰찬 것이다. 해외 레스토랑에서도 해조류의 인기가 미풍으로 시작되는 중이다. 올해 프랑스에서 개최한 ‘월드 레스토랑 어워드(WRA)’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올해의 레스토랑’으로 호명된 울프갓(Wolfgat)은 레스토랑이 자리한 남아공 패터노스터 지역에서 채집한 해조류를 코스에 전천후로 활용한다. 해조류를 넣고 구운 식전 빵을 시작으로 길게 이어지는 코스에는 파래, 다시마목에 속하는 켈프, 해안가 일대에서 자라는 미나리목 야생 식물인 삼피어가 차례로 등장한다. <2019 미슐랭 가이드>에서 3스타로 등재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울리아시(Uliassi)의 오너 셰프인 마우로 울리아시(Mauro Uliassi)도 소문난 해조류 광이다. 크래커처럼 바삭하게 튀긴 미역을 아뮤즈부시로 내어 입맛을 돋우거나 파스타 면처럼 얇게 저민 갑오징어를 해조류 페스토로 버무리는 등 색다른 변주를 선보인다.
‘해조류는 단순히 이색적인 먹거리에 머무는가?’라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전 세계 투자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푸드테크 (Food–Tech)’ 산업에서도 해조류의 꿈틀거림이 심상치 않다. 인구 증가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진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동물성 재료를 갈음하는 고단백 대체 식품의 개발은 현재 푸드테크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해조류로 알려진 스피룰리나 (Spirulina)는 65~70%가 단백질로 이뤄진 것은 물론 사막 같은 곳에서도 바닷물과 태양광만 있으면 배양할 수 있어 미래를 구하는 대체 식품으로 손색없다. 일찍이 시장성을 알아본 기업들이 스피룰리나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데, 이케아 산하의 디자인·리서치 전문 기관인 ‘스페이스10’도 그중 하나다. 스피룰리나의 치명적 결함이라면 바로 ‘맛이 없다’는 점인데 스페이스 10은 덴마크 출신 셰프 시몬 페레스(Simon Perez)와 손잡고 스피룰리나로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차가운 맥주와 궁합이 좋은 스피룰리나 칩과 스피룰리나 반죽으로 만든 빵 사이에 인조 고기를 넣어 만든 핫도그 레시피는 스페이스10에서 올해 6월 발행한 요리책 <Future Food To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침 도는 비주얼은 물론 스피룰리나가 지닌 놀라운 영양학적 가치를 훑다 보면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수백만 명이 먹는 빵에 스피룰리나를 첨가한다고 상상해봐라. 공중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페레스 셰프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시 지구의 시대부터 서식하던 해조류가 ‘미래 음식’이라고 선언되며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형국이 한편으로는 얼떨떨하기도 하다. 다만 장삿속에 따라 순식간에 슈퍼푸드로 둔갑하여 마트 진열대를 채우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기존의 식품군과는 달리 실리콘밸리의 투자 귀재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미뤄 볼 때 해조류는 지금 확연히 한 차원 다른 궤도에 서 있다. 본래 잘 모르는 대상일수록 더 발견될 여지가 많은 법. 푸대접하던 해조류를 이제는 주목해야 할 때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이수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