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이토록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신간 세 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by 난다, 황현산 지음
불문학자이자 문학 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생전에 남긴 트윗을 모았다. 트위터 아이디는 septuor1. “트윗을 시작합니다” “이제 뭘 해야 할지?”라는 말을 시작으로 SNS에 발 들인 선생은 단문의 세계이자 빠른 소통이 가능한 트위터의 속성을 금세 파악하고, ‘트친’과 수평적 관계를 맺으며 많은 텍스트를 남겼다. 거기엔 사소하지만 그의 말이어서 사소할 수만은 없는 말, 문학과 사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흐른다. 명언으로 남기를 꿈꾸는 일갈과 날 서 있는 비판이 넘쳐나는 트위터에서 그는 ‘각’ 잡지 않은 채 진솔하고 편안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지혜와 지식이 묻어나는 트윗들은 자연스럽게 아포리즘으로 남았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는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계셨다’고 쓴 걸 보고서야, 황현산에게서 느껴진 그 유연함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시절일기> by 레제, 김연수 지음
‘시절일기’라는 말부터 흥미롭다. 우리가 한때 남긴 글들을 훗날 다시 본다면, 그 글들은 결국 한 시절에 대한 기록이자 그 시절의 나를 비출 것이다. 10대 때 친구와 나눈 편지에 그 시절에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처럼. 시인 김연수는 10년에 걸쳐 쓴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2014년 4월 어느 날에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이 진실이 되리라. 이십 년 전에 뭔가 쓰고 싶은 욕구를 느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생겨서.’ 가볍게 쓴 일기는 아니다. 김연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에 가깝다. 문학과 같이 가는 자의 일상이란 그 저변에 문학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살펴본 과거의 기록 중에서 어떤 글이 자신이 쓴 글이고, 또 어떤 글이 저절로 쓰여진 글인지 김연수는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책을 냈다는 건 또 하나의 시절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쁘게 울긴 글렀다> by 와이즈맵, 김가혜 지음
펑펑 울어야 할 것 같은데 안구에 변비가 걸린 것마냥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막힌 눈물을 토해내야 화창한 내일이 시작될 텐데. 눈물이란 너무 심한 노출을 의미하는 일 같기에 남 앞에서는 되도록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산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일일까? 이 책은 본격 울음 조장 에세이다. 슬픈 이야기로 심금을 울리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울음을 긍정하는 그 태도가 눈물이 막힌 자에게 소화제처럼 작용한다. 소극장 내 화장실에서 통곡하다 연극 공연에 라이브로 곡 소리를 입힌 일처럼 특이한 에피소드도 있고, 이별한 후에 운 것처럼 보편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이 눈물 많은 작가는 “근데, 너 괜찮냐?” 한마디에 무너져서 울기도 하다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목청껏 울지 못하고 뜨끈한 육개장 한 사발을 들이켜기도 한다. 지금 엉망이 된 심신으로 무언가를 꾹 누르면서 버티는 직장인은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다’를 읽으며 비로소 울지도 모른다. <보그 걸> 피처 에디터 시절 다양하고 재밌는 칼럼을 남겼던 김가혜는 세상에서 가장 질척거릴 수 있는 소재를 산뜻하게 만든다. 눈물이 이 책에 고마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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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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