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이 새롭게 선보인 하이 주얼리.
사랑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처럼 매혹적인 루비 컬렉션. 반클리프 아펠이 새롭게 선보인 하이 주얼리에는 메종의 역사와 사랑, 꿈, 시적인 상상, 그리고 빛나는 이상이 담겨 있다.
지난 4월 14일, 반클리프 아펠의 초청으로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방콕.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반클리프 아펠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Treasure of Rubies’를 마주한 순간, 루비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명하게 확인했다. 붉디붉은 심장과도 같은 빛깔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자신감도 함께. 세계적인 루비 산지 중 하나인 태국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한 프리뷰 현장.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 앞에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 루비 컬렉션은 친근한 듯 또 새로웠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루비’가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과 같은 특별한 소재이기 때문.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아카이브에서 몇 번을 되새기며 보았던 그 원형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재탄생한 루비 주얼리는 시선을 빼앗을 만큼 아름다웠다. 메종의 유산과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채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탄성을 자아내는 ‘트레저 오브 루비’. 이번 컬렉션은 총 3천 캐럿에 달하는 루비를 사용했는데, 이들을 한데 모은 전시장은 한 편의 장엄한 대서사시가 펼쳐진 듯 장관을 이루었다. 마치 어릴 적 꿈꾼 보물 상자를 발견한 듯한 황홀한 환상이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60개의 주얼리로 구성된 ‘트레저 오브 루비’ 컬렉션은 루비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반클리프 아펠의 젬스톤 전문가에 따르면 루비는 핑크부터 다크 레드까지, 색감의 뉘앙스나 폭이 무척 넓고 진귀해 모든 보석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고 한다. 특히 붉게 타오르는 강렬한 석양처럼 매혹적인 색으로 오랫동안 여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최고 품질의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이처럼 자연에서 얻는 원석이기에 과연 ‘완벽하다’는 말이 적용 가능할까? 그 순간 메종의 젬스톤 전문가가 인정한 ‘완벽한 컬러’를 지녔다는 플램보이앙트 루비(Rubis Flamboyant)를 보았다. 무려 25캐럿이 넘는 탐스러운 붉은빛의 루비를! 게다가 메인 스톤인 루비를 다이아몬드가 감싸는 구조로 완성된 반지는 펜던트나 클립으로도 연출할 수 있어 메종이 추구하는 ‘변형 가능한 주얼리’의 가치에도 부합했다.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시그너처이자 마스터피스로 꼽히는 ‘지프 네크리스(Zip Necklace)’ 역시 변형 가능한 작품에 대한 반클리프 아펠의 집념과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지퍼가 실용적인 잠금장치로써 일상복에 적용되기 전, 지퍼는 세일러 제복에 처음 사용된 후 1930년대 오트 쿠튀르에 차용될 정도로 귀한 장식이었다. 그 후 1950년에 제작된 지프 네크리스는 지퍼를 오픈해 길게 늘어뜨리는 형태의 목걸이로 착용하거나 지퍼를 닫은 채 손목에 감싸 팔찌로도 연출되며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아방가르드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루비 컬렉션으로 재탄생한 지프 네크리스 역시 부드럽게 지퍼를 올리듯 형태가 변형되는 트랜스포머 주얼리로 눈길을 끌었으며 붉은 루비를 세팅한 독보적인 화려함은 드라마틱한 판타지를 선사했다.
메종이 특별한 미스터리 세팅 기법을 처음 적용한 원석이라는 점도 루비와의 각별한 인연을 말해준다. 1937년 제작된, 반클리프 아펠 아카이브에 종종 등장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더블 피오니 클립은 모란꽃을 묘사한 두 개의 클립으로 구성된 주얼리다. 하나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 형태며 다른 하나는 꽃잎이 활짝 피어난 형태로 7백여 개 루비가 미스터리 세팅 기법을 통해 정교하게 배치되었다.
메종의 미학이 깃든 하이 주얼리를 논하며 ‘기술력’을 빼놓을 수 없다. 유서 깊은 하이 주얼리 메종의 역사는 과거와 예술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장인들의 테크닉에 대한 경외에서 출발하니까. 내가 주얼리를 편애하는 이유 역시 하이 주얼리야말로 과거의 아카이브에 대한 존중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는 없다.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특별한 크리에이터일지라도 재능과 솜씨는 분명 과거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이러한 연결 고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메종의 정신을 기리는 주얼리 브랜드들의 숭고한 정신이란! 중요한 건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하이 주얼리는 모두 장인들의 ‘손’을 통해 인고의 시간 속에 완성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쿠튀르 컬렉션은 장인 정신이 탄생시킨 뛰어난 예술로서의 주얼리를 다루며, 마스터 주얼러의 눈을 통해 재해석된다는 점이 특별하다. 주얼리 메종의 메이킹 비디오를 볼 때면 주얼리 공방의 장인들이 하는 일은 에디터와 비슷한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주얼리 메이킹 영상 속에 드러나는, 굳은살이 배긴 장인들의 손끝에서 하나하나 찬란하게 완성되는 주얼리는 마치 상상을 현실로 바꿔낸 화보가 완성되는 과정처럼 느껴지니까. 각 분야의 마스터들이 모여 하나의 캐릭터와 아름다움을 연출하듯이, 원석을 고르고 갈고 닦아 섬세하게 세팅해내는 과정을 통해 드로잉 속 주얼리를 재현해낸다. 그때 장인들의 손길은 따스하고도 정교하며 또 묵직하다.
반클리프 아펠의 역사와 그 아카이브 주얼리를 다룬 책, <Treasure and Legends>의 표지에도 루비 목걸이가 등장한다. 이 책에는 루비로 만든 피오니 클립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은막의 여배우 마를린 디트리히가 반클리프 아펠의 루비 팔찌를 착용한 도도하고도 아름다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한 챕터를 할애해 ‘루비’와 메종의 깊은 유대 관계를 다뤘다. 참, 웨딩 기프트 섹션에선 다이아몬드가 아닌 반클리프 아펠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헤리티지 루비 주얼리를 소개했다. 옛날 옛적으로 일컬어지던 시대에 남녀가 사랑의 증표로 주고받던 주얼리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루비와 사파이어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뜨거운 심장을 상징하는 루비의 붉은색은 사랑의 열정을 드러낸다. 붉은색은 자칫 과하다라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도 루비 앞에서라면 마치 석류 열매처럼 탐스러운 색감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이 루비 컬렉션을 보며 소망을 하나 품게 되었다. 10주년을 기념한 리마인드 웨딩에 아주 작은 루비 반지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누군가 내게 말했듯 ‘꿈의 주얼리’는 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쉽게 지갑을 열게 하는 명품 가방이 시즌의 트렌드에 따라 곧 수명을 다하고, 특별한 한 끼의 식사가 이내 잊혀지나 주얼리는 캐럿을 떠나 그 자체로 상상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가장 작고도 값진 물건으로서 특별한 로맨스와 취향, 기념일을 공유하는 매개체이자 대를 이어 물려 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니까. 물론 일생 동안 그 어떠한 룩에도 함께하는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반클리프 아펠 메종을 의인화한다면 아마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소녀 같은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은 나의 소망과도 맞닿은 주얼리. 반클리프 아펠을 보면 순수하게 꿈꾸고, 시를 노래하는 고아한 여인이 떠오른다. 그리고 2019년 버전의 하이 주얼리 루비 컬렉션은 그런 온화하고 여성스러운 면모에서 조금 더 나아가 열정적인 매력을 드높인다.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미 모티프의 반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형상화한 클립, 마하라자 왕의 진귀한 목걸이에서 영감을 받아 1천 캐럿이 넘는 아홉 줄의 루비 비즈를 세팅한 목걸이, 1906년 처음으로 파리 방돔 광장에 설립된 메종의 기원을 기리며 파리에서 영감을 받은 파리에 대한 오 마주를 담은 팔찌, 그리고 마치 거울에 비친 듯한 형상으로 재치 있게 디자인한 언밸런스 형태의 드롭형 귀고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붉디 붉고 더없이 탐스러운 ‘루비’를 통해 완성되었다. 그래서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시그너처를 집대성한 방대한 하이 주얼리 루비 컬렉션인 ‘트레저 오브 루비’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오늘날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갈 주얼리!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유한한 인생에서 주얼리가 갖는 특별한 가치임을 선명하게 드높이면서 말이다.
- 패션 에디터
-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