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티와 크리스 반 아셰의 제2막.
신발에서 출발한 가죽 하우스 벨루티가 2019 F/W 컬렉션을 통해 레디투웨어의 중심부에 완벽하게 안착했다. 여기에는 굵직한 패션 하우스에서의 오랜 시간을 뒤로하고, 벨루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이름을 새긴 크리스 반 아셰의 도전과 모험이 있었다. ‘자유(Freedom)’라는 키워드를 들고 자신의 존재를 재정립한, 벨루티와 크리스 반 아셰의 제2막이 시작됐다.
1월에 있었던 파리 남성 패션위크를 앞두고 주목할 만한 쇼를 찾아보다가 크고 작은 이슈가 추려졌다. 스타급 디자이너들이 남성복으로 이동하면서 패션 시장과 주목도가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남녀 합동 컬렉션이 강화되어 남성 패션위크의 중요도가 그만큼 커져간다는 것. LVMH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크리스 반 아셰의 벨루티 데뷔 쇼가 어떻게 치러질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실 그가 영입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2018 F/W 캠페인을 통해 드러났다. 세리프를 덜어낸 로고와 흑백 이미지를 강조한 비주얼에서 하우스의 풍성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젊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하우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19 F/W 첫 쇼를 ‘자유’에서 출발한 모험심 넘치는 벨루티의 남자는 누구에게나 유혹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페라라에 위치한 벨루티 워크숍의 염료가 튄 대리석 패턴은 실크 셔츠와 나일론 백 등으로, 클래식한 가죽 신발의 파티나 컬러는 자연스러운 빛깔을 입은 가죽 코트와 브리프케이스, 각진 형태의 클러치로 탄생했다. 테일러링을 강조한 모터사이클 팬츠, 메탈 플레이트를 적용한 신발, 로고를 강조한 후디, 시선을 끄는 팝한 컬러의 등장도 쇼를 흥분시키는 요소였다. 쇼가 열린 오페라 가르니에의 화려하고도 고전적인 면모와 현대적인 룩은 묘한 조화를 이뤘음은 물론이다. “저는 고상함과 거칢의 대조를 좋아해요.” 벨루티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크리스 반 아셰를 만났다.
벨루티에서의 첫 쇼 잘 봤다. 쇼 직후 당신의 사진을 찍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수많은 매체와 지인들이 줄지어 있었고, 오랜 시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담담해 보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담담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컬렉션에 대해 자신감은 있었다. 첫 번째 쇼를 위해 나와 우리 팀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으니까.우리는 성공을 누릴 만하다.
평소 성격은 어떤가? 내 성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우리 스튜디오 측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끊임없이 일한다’는 말은 내 성격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벨루티는 남성복 가운데서도 최상위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 독창적인 가운데 패션적인 요소를 잃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고급스럽다는 말은 ‘시대를 초월한’ 정신이 수반된다는 뜻이다. 나는 벨루티가 높은 품질과 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많은 예술가와 VIP 고객을 매료시켜왔다고 확신한다.
이번 시즌을 ‘자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하우스에 자유를 더하겠다는 건가, 디자이너로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건가? 영감의 시작점을 듣고 싶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벨루티에서 더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하우스의 실질적인 DNA가 신발에 있었고, 여기에 몇 가지 강력한 코드를 주입해 재해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됐다. 그다음은 실루엣을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했다. 내가 따르고자 한 원칙은 ‘고급스러움과 품질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 그거 하나였다.
오프닝 룩이 많은 것을 설명하는 듯했다.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헤리티지를 반영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우스의 헤리티지는 신발에 대한 장인 정신에서 온다. 그러나 나는 장인 정신을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옷에서 보인 파티나 (Patina) 가죽 슈트처럼 말이다. 이 노하우야말로 벨루티를 독창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노하우를 더욱 확장해갔다.
오프닝 룩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벨루티’ 하면 떠오르는 클래식한 신발의 원형이 그대로 옷으로 구현되었으니까. 게다가 오프닝으로 한국 모델, 황준영을 세웠다. 그의 어떤 느낌이 당신을 매료시켰나? 처음 캐스팅 미팅에서 그를 보자마자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우아한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을 가진 흔치 않은 캐릭터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선보이는 통합 컬렉션이 많아지는 추세다. 벨루티 역시 남성 브랜드지만 여성 룩도 꽤 눈에 띄었다. 피날레를 비롯한 남녀 합동 워킹도 런웨이의 흐름을 주도했고. 의도가 있었나? 이번 쇼를 위해 오페라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일반적이지 않은, 전통적인 공연과 발레, 혁신적인 현대 무용 등이 공존하는 특별한 오페라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보통 오페라에 갈 때 입는 방식이 아닌, 현대적인 옷입기 방식을 연상했다. 나는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나 부인을 오페라에 데리고 가는 로맨틱한 상상을 좋아한다. 벨루티를 입는 남자들은 유혹하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은 집착적으로 검정 티셔츠를 입고, 블랙 룩을 선호하면서 컬렉션엔 팝한 컬러를 올린다. 어떤 취향인가? 블랙 옷을 입을 때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벨루티 안에서는 여러 가지 색을 시도해보고 싶다. 파티나 작업(가죽에 색을 입히는 하우스만의 정교한 방식)에서 볼 수 있는 뉘앙스 때문인지 내가 생각하는 벨루티는 다채로운 색을 품고 있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번 컬렉션에서 핑크와 레드의 매치, 가죽 후디와 지퍼 슬릿 팬츠, 모터사이클 팬츠 등이 눈에 띄었다. 클래식한 가죽 신발을 만드는 패션 하우스로서는 과감한 시도처럼 보였다. 창립자 올가 벨루티는“ 벨루티를 입는 남자는 모험적이다. 그는 고급스러움 속에서 길을 잃은 방랑자다”고 말했다. 벨루티의 신발에 개성이 없었다면, 눈에 띄지 않는 신발만 고집했다면 이렇게 벨루티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컬렉션은 하우스의 유산에 내가 가진 현대적인 비전을 담아낸 것이다.
메탈 장식을 더한 클래식한 구두도 신선했다. 앞으로 액세서리 라인에도 변화가 생길까? 물론이다. 액세서리는 내가 벨루티에서 매일 하는 작업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벨루티만의 노하우를 새로운 방향으로 비트는 과정에서 배울 것이 매우 많다.
새롭게 정립한 캠페인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했나? 처음 하우스에 합류하고 만들어낸 캡슐 컬렉션으로 캠페인을 구상했다. 벨루티의 아이코닉한 앤디 로퍼, 알레산드로 신발, 파티나, 스크리토 등에 아이디어를 더하는 작업을 거친 결과다. 남성 고객을 위한 첫 번째 결과물인데 기존 고객들은 물론 더 젊은 세대에도 벨루티가 어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캠페인에 등장하는 모델은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남성을 반영한다. 이 같은 생각은 액세서리에도 투영된다.
당신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보면 공적으로 활용한 게시물이 많이 보인다. 사생활을 공개한다거나 주변 인물에 대한 노출은 전혀 없다. 의도적인 건가? 당신이 SNS를 활용하는 방식도 알고 싶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플랫폼이다. 이 안에는 너무도 많은 정보가 있다. 다만 모든 정보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동안 패션계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가치는 다음 쇼로 결정된다는 것.
패션 외에 당신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은? 예술과 디자인에 있어서 최신 흐름과 경향에 정통하고자 한다. 계속해서 배워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꽃에 대한 열정도 빼놓을 수 없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6월에 있을 두 번째 쇼에서 만나자!
“하우스의 실질적인 DNA가 신발에 있었고,
여기에 몇 가지 강력한 코드를 주입해 재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됐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포토그래퍼
- 김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