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밀이 선사한 시간 이상의 맛!
톡톡 튀는 색감의 달콤한 디저트로 무장한 봉봉(Bon Bon) 컬렉션이 당신의 오감을 충족시킨다.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워치 메이킹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 바로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했다. 지난해에 비해 따듯한 데다 청명한 날씨와 파랗다 못해 시린 하늘, 저 멀리 뽀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시계의 고장, 스위스에 왔음을 실감했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다리 주위를 올려다보니 유서 깊은 건물마다 명망 높은 워치 브랜드의 로고를 머리 위에 이고 있다. 이곳에서 나흘 동안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팔렉스포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최고의 워치메이킹 기술과 하이 주얼리 못지않은 섬세한 디자인을 뽐내는 워치들을 마주하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2019 SIHH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뉴스 스탠드. 전 세계의 유명 시계 전문지와 신문을 모아놓은 이곳에서 <파이낸셜 타임스>의 얼굴을 장식한 ‘남다른’ 워치를 발견했다. 파스텔 톤 색감을 지닌 찐득하고 달콤한 마시멜로를 다이얼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리차드 밀의 워치였다. 뭇 시선을 강탈하는 천진무구한 경쾌함이란! 무엇보다 수많은 타임피스들이 뜨겁게 경합하는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이야기하는 독보적이고 진중한 존재감 따윈 무시한 채, 여유만만하게 휘파람을 불 것만 같은 색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워치메이킹 분야의 달콤하고 발랄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바로 이러한 방식이 아닐까. 리차드 밀이 내놓은 시계의 한 수는 바로 이름도 경쾌한 ‘봉봉(Bon Bon)’ 컬렉션이었다. 새롭게 공개된 컬렉션은 총 10개의 베리에이션으로 구성되며, 각 모델별로 30개씩만 생산해 선보인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일 듯한 다채로운 맛의 스펙트럼을 지닌 ‘후르츠(Fruits) 라인’과 ‘스위츠(Sweets) 라인’으로 구성된 10종류의 타임피스는 팝아트와 같은 아티스틱한 영역까지 넘본다. “색상을 자유롭게 활용해서 기존의 컬렉션을 재해석해보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팝에서 영감을 받은 재미있는 요소를 담았죠. 이번 유니섹스 컬렉션을 위해 60가지 컬러 팔레트를 만들기도 했고요.” 봉봉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세실 게나의 설명처럼 리차드 밀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그래픽, 감성, 색채가 어우러진 팝아트 영역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물론 시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을 아우르는 오감 만족은 덤!
우선 후르츠 라인은 카본 TPT와 쿼츠 TPT 조합으로 제작된 케이스가 특징이다. RM07–03 모델의 리치와 미리틸(블루베리), RM16–01 모델의 프레이즈(딸기)와 시트론(레몬), RM37–01 모델의 세리즈(체리)와 키위로 구성된 6가지 디자인은 ‘기분 좋은 달콤함의 유혹’이라는 콘셉트를 먹음직스럽게 드러낸다. 아크릴 페인트로 색감을 입혔으며 수작업으로 래커 처리한 다이얼 위에 미니어처 조각 3000개가 흥미롭게 부유하는 워치. 자세히 살펴볼수록 사실적인 면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시도한, 파우더 에나멜과 모래시계에 사용되는 매우 미세한 입자의 모래를 활용한 ‘슈가 코팅’ 효과가 더욱 돋보인다. 마치 시계 부품의 일부처럼 보이는 앙증맞은 후르츠 장식 역시 스켈레톤 구조의 베이스 플레이트에 생기를 더했다.
한편 그랑 푸 에나멜이나 블랙 크롬 처리된 티타늄으로 제작된 투톤의 세라믹 케이스가 눈에 띄는 스위츠 라인은 RM07–03 모델의 마시멜로와 컵케이크, RM16–01 모델의 레글리스(감초), RM37–01 모델의 슈세뜨(막대사탕)의 4가지 디자인으로 구성되었다. TZP 세라믹 케이스의 크리미한 속성을 활용하여 다이얼에 탑재된 부품을 폴리싱하거나 매트한 느낌으로 마무리했으며, 탁월한 에나멜 세공 기술력을 통해 부드러움과 바삭함, 폭신폭신함과 같은 촉감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더불어 리차드 밀의 기본 색상인 검정은 다이얼 표면 전체를 장악하는 검은색 감초를 재료로 한 젤리 롤을 통해 개성 넘치게 표현되었다. 또한 스탬핑 공정, 즉 블랙 크롬 코팅의 마무리 작업을 통해 타임피스에 딱 맞는 색상과 텍스처를 완성했다.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그래픽 조합으로, 보면 볼수록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디저트처럼 완성된 10개의 타임피스는 세심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리차드 밀의 심미안을 드러낸다. 특히 각 부품의 음영과 텍스처를 풍부하게 살려냈으며, 크라운과 미들 케이스 일부를 컵케이크나 젤라토 같은 형태로 만든 위트 넘치는 상상력은 미소를 자아낸다. 부드러운 마시멜로, 바삭하고 한 입 깨물고 싶은 롤리팝, 톡 쏘는 새콤한 시트러스 파운드 케이크까지… 소재와 텍스처의 과학을 타임 피스에 독창적으로 적용시킨 봉봉 컬렉션의 탐미적인 매력은 끝이 없다. 리차드 밀의 아카이브에 특별한 발자취를 남기며, 오래전에 잊고 지낸 추억의 맛을 되새길 워치. 어쩌면 당신의 미각뿐 아니라 마냥 즐거웠던 유년 시절의 순수한 기쁨마저 되돌이키지 않을까.
- 패션 에디터
-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