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약하는 홍콩

전여울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지난 3월의 홍콩, 그 현장을 찾았다

올해 1월, 홍콩 정부는 다시금 문화 예술 허브로 도약할 홍콩을 그리며 ‘메가 예술 문화 행사 위원회’의 닻을 올렸다. 홍콩 출신의 기업가이자 세계적인 컬렉터 에이드리언 청이 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아트 위크가 한창이던 지난 3월 홍콩 전역에선 한층 대대적이고 예술 친화적인 이벤트가 펼쳐졌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그 현장을 찾았다.

로즈우드 홍콩에서 개최된 ‘The Children Ball’ 현장에서 포착한 에이드리언 청과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였어요. 아마 지금 모두가 옛 홍콩에 향수를 느끼고 있을 거예요.”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예술 문화적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3월의 홍콩, 이곳에서 만난 아트러버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홍콩은 오랜 시간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통했다. 2013년 첫선을 보여 올해로 11회를 맞는 아트 바젤 홍콩은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아트 마켓의 하나로 이끌었고, 그로부터 거대한 컬처 웨이브가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3년은 홍콩이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던 시간이다. 팬데믹에 따른 엄격한 봉쇄 정책, 중국 본토의 검열 강화, 아시아와 서구를 잇는 문화적 관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서울, 싱가포르와의 치열한 경쟁 등. 어쩌면 올해야말로 홍콩이 다시금 ‘왕관’을 되찾을 결정적 타이밍. 2024년 1월 홍콩 정부는 더 막강하게 변모할 ‘뉴 홍콩’을 그리며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고 보조금 지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메가 예술 문화 행사 위원회(약칭 Mega ACE)’의 닻을 올렸다. ‘메가 에이스’의 목표는 향후 3년 동안 200개 이상의 행사에 17억 홍콩 달러(약 2,966억)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 이의 방향키를 쥘 의장으로는 홍콩 부동산 그룹 뉴월드 CEO 겸 K11 설립자, 억만장자 아트 컬렉터인 에이드리언 청이 호명됐다.

3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콤플렉스콘 홍콩 2024의 풍경.

홍콩이 또다시 문화 예술로 물들고 코즈모폴리턴이 찾는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 이는 메가 에이스가 그리는 청사진이자 이들이 꿈꾸는 ‘뉴 홍콩’의 모습일 거다. 한편 이러한 뉴 홍콩의 기운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었던 이벤트는 지난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펼쳐진 ‘콤플렉스콘 홍콩 2024’였다. 콤플렉스콘은 2016년 시작해 매해 미국 LA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팝 컬처 페스티벌로 패션, 음악, 예술 등이 결합한 이 특별한 이벤트는 특히 스트리트 컬처 팬들에게 종착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메가 에이스는 콤플렉스콘이 북미를 떠나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데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총 사흘에 걸친 행사엔 3만 명 이상이 방문했고, 일본 스트리트 패션 신에 크게 일조한 그래픽 디자이너 베르디가 예술감독을 맡아 100여 개 브랜드, 30여 명의 공연예술가, 200여 명의 창작자와 예술가가 페스티벌 현장을 달궜다. 다니엘 아샴 등의 예술 세계를 경험하는 ‘아트 @콤플렉스’부터 지금 뜨겁게 떠오르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최신 컬렉션 및 독점 드롭 상품을 만나는 ‘콤플렉스콘 마켓플레이스’, 21 세비지, 사이먼 도미닉 등의 공연을 감상하는 ‘콤플렉스 라이브!’ 등이 사흘 내내 펼쳐지며 잊지 못할 몰입형 경험을 선사했다.

에든버러 플레이스에서 개최된 김용 특별전을 밝힌 중국인 조각가 렌저의 작품 ‘Yang Guo(Youth)’.

홍콩이 모처럼 아트로 물드는 3월인 만큼 메가 에이스는 특별한 예술 전시도 준비했다. 홍콩 시청 앞 에든버러 플레이스에서 3월 15일 개막한 가 대표적으로, 전시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영웅문〉 등으로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무협 소설가 김용의 세계를 탐험한다. 마침 올해는 김용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 이번 전시는 총 15편의 김용의 무협 소설 속 1,400여 명의 인물로부터 시작됐다. <사조영웅전>의 소용녀와 주백통, <소오강호>의 임아행 등 총 36개의 캐릭터는 지금 중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조각가 렌저의 손길을 거쳐 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했고, 미디어 아티스트 빅토르 웡은 김용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몽골 유르트 형태로 만들어진 전시장에 몰입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의상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체험관 등도 마련해 김용이 남긴 불멸의 고전을 2024년식으로 ‘다시 보기’ 하게 만드는 뜻깊은 전시였다. 한편 이 전시가 문학과 예술의 경계 없는 만남이었다면, 3월 26일 K11 뮤제아에서 오픈한 그룹전 는 중국의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의 시간을 넘어선 조우다. 전시는 1688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와 중국 황제 강희제가 주고받은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17세기 동양과 서양의 특별한 문명 교류를 보여주는 이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전시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융합’에 초점을 맞춘다. 청나라 중기 시대의 금장 부채, 세밀한 정원 풍경의 묘사가 돋보이는 19세기 칠기 병풍 등 중국의 전통 공예품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해 제스 판, 장 쯔퍄오 등 1980~90년대생 젊은 중국계 현대미술가 13명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관람하는 경험은 중국 예술의 과거와 오늘, 그 흥미로운 변화상을 한눈에 담기에 충분했다.

K11 뮤제아 그룹전 풍경.

메가 에이스가 후원한 이벤트들이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공공의 성격을 띤다면, 올해 홍콩 아트 위크가 막 출발선에 선 때인 3월 21일 에이드리언 청이 설립한 WEMP 재단과 세계적 모델 출신의 자선 사업가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이끄는 네이키드 하트 재단이 공동 개최한 ‘The Children Ball – A Night of Infinite Hearts, A World where Every Child Can(이하 ‘The Children Ball’)’은 전 세계 셀러브리티, 명망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WEMP 재단과 네이키드 하트 재단 모두 어린이를 위한 포용적인 세상을 만든다는 사명 아래 설립된 만큼, ‘The Children Ball’은 전 세계 어린이의 정신 건강 문제를 지원하는 기금 마련을 위해 자선 갈라, 라이브 경매, 테이블 판매, 직접 기부 등의 형태로 이벤트가 진행됐다. 양조위와 유가령, 판빙빙, 공효진 등이 이날 선한 영향력에 동참했고, 옥션 하우스 필립스가 함께한 자선 경매에는 알리차 크바데, 로버트 나바의 현대미술품 등이 출품됐다. 나아가 미셸 김의 매혹적인 피아노 연주, 세계 각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만든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미니 전시 가 더해져 이번 행사의 타이틀에서도 지시된 ‘무한한 밤’은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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