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성과 정통성을 모두 갖춘 패션 하우스에 얼굴을 내미는 일, 스타 디자이너의 뮤즈가 되는 일이 더 이상 놀라울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한국 모델들.
리카르도 티시의 버버리와 최소라
지극히 영국적이던 버버리 하우스는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티시를 영입한 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중에 있다. 전위적인 고딕 스타일의 예찬론자, 분방한 스트리트 문화의 신봉자인 리카르도 티시는 하우스의 로고와 모노그램을 새롭게 바꾼 후 하우스를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변화하고 있는 리카르도 티시의 버버리 하우스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비추고 있는 건 최소라다. 프리폴 컬렉션에 모델로 등장한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 새롭게 공개된 2019 S/S 캠페인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스텔라 테넌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등 거물급 모델들과 나란히다. 리카르도 티시의 곁에서 그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알렉산더 왕과 정소현
남자처럼 짧은 머리, 동양적인 얼굴 선, 긴장한 듯 날 선 표정 덕분에 정소현은 한 번 보면 좀처럼 잊혀지기 힘든 모델이 됐다. 덕분에 지방시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라던가 헬무트 랭의 셰인 올리버와 같은 독보적인 미학적 시선을 가진 디자이너들에게 격렬한 애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정소현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는 디자이너가 있다. 2017년, 처음 뉴욕에 간 그녀에게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알렉산더 왕이다. 그녀의 뉴욕 데뷔를 이끌었던 일이 중요한 계기가 됐고, 그 날 이후 알렉산더 왕의 모든 면면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와 한지웅
에디 슬리먼처럼 유행 따위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밀어붙이는 디자이너도 없지 않나 싶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든 그저 날렵한 재단이라던가 LA라는 도시, 소년과 소녀에 깊게 몰두하는 그만의 집요함은 에디 슬리먼이라는 사람을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엔 의미가 부여된다. 한지웅이 그렇다. 에디 슬리먼이 선택한 최초의 동양인 남자 모델. 크레이그 그린, 코트 웨일러, 라프 시몬스 등 요즘 인기 좋은 디자이너들의 쇼에 선 모든 일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근사한 수식어이자 밀접한 관계가 됐다.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와 박경진
최근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단연 발렌시아가다. 고아하고 견고한 사진과 멋지고 세련된 영상을 올리기에도 촉박한 동시대 흐름 속에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망가지고 우스꽝스러운 사진만 골라 올려 버린다. 그 특유의 B급 정서는 오히려 발렌시아가의 우아한 옷들을 시원시원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무엇보다 그 흥미로움 틈에서 박경진의 모습이 생각보다 자주 발견된다. 런던과 파리 등을 오가며 해외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발렌시아가에서 일하는 친구가 뎀나 바잘리아에게 박경진을 추천했고, 그를 아주 흡족하게 여긴 뎀나 바잘리아가 인스타그램 프로젝트에 그를 포함시켰던 것이었다. 조만간 발렌시아가의 캠페인에 얼굴을 비출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지방시와 수민
거칠고 분방하던 지방시 하우스를 관능적이고 매끄럽게 재해석하고 있는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분명 명민한 디자이너임에 틀림없다. 하우스를 점점 더 융통성 있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 특유의 융통성있는 작업 방식은 동양인이나 흑인 모델을 지방시 하우스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한다. 특히 계절이 변하고 마음이 떠나는 가운데에서도 늘 곁에 두는 한국인 모델이 있다. 바로 수민이다. 민 머리, 희끗희끗한 눈썹, 심오하고 묘한 표정의 수민은 윤택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옷을 가장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게 소화한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파리의 고고한 하우스, 그리고 세상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이너가 그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선영
- 사진
- Instagram @burberry @sora5532 @alexanderwangny @hannxji @balenciaga @givenchyofficial, Courtesy of Givenc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