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리 패션위크를 달군 이슈 중 하나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 발렌시아가의 기념비적인 전시. 바로 오늘날 가장 창의적인 패션 큐레이터로 일컬어지는 파리시립미술관(Palais Galliera)의 올리비에 사이야르(Olivier Saillard)가 디렉팅한 <Balenciaga, L’oeuvre au Noir>였다. 파리 부르델 뮤지엄(Mesée Bourdelle)에서 3월 8일부터 7월 16일까지 이어질 발렌시아가 전시, 나아가 패션 큐레이터로서의 삶과 영감에 대해 올리비에 사이야르와 나눈 지극히 지적이고도 흥미로운 대화들.
<W Korea> 당신이 큐레이팅한 발렌시아가의 전시는 정말 멋졌다. 크리스토퍼 발렌시아가의 절제된 룩들이 부르델 뮤지엄의 역동적인 고대 조각상과 절묘하게 어울렸고 말이다. 이번 전시 장소를 이곳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Olivier Saillard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형태에 대한 조각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실 지난 2011년에 마담 그레의 전시도 부르델 뮤지엄에서 선보였다. 그 장소에서 하이 쿠튀르 전시를 하고 싶었고, 쿠튀르 작품 중 조각적인 면이 두드러진 하우스를 찾았다. 그래서 마담 그레를 선택했고, 발렌시아가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뮤지엄 곳곳에 전시 작품을 소개하는 표식에는 각 의상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찬찬히 서너 개의 옷을 보고 나면 나중에 표식을 읽을 때 헷갈릴 수 있으니 다시 기억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거다. 난 사람들이 옷을 찬찬히 감상하고 난 뒤에 그 설명을 살펴보길 바란다.
‘Balenciaga, Working in Black’이란 타이틀처럼 주로 검은 옷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발렌시아가는 검은색 의상을 만들 때면 같은 검정 패턴 위에서 작업을 한 사람이다. 검은색 위에 그려진 패턴을 재단해서 사용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검은색 옷에는 명확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지 야마모토, 아제딘 알라이아, 소니아 리키엘, 이브 생 로랑 등도 그러한데, 그들은 ‘검은색 옷에는 목탄화 같은, 혹은 붓칠 같은 그런 데생이 들어 있다. 그것이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이러한 명확하고도 조화로운 실루엣이 나오기까지는 기술적 측면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또 검정은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익명성이고, 또 하나는 차별성이다. 왜냐면 검은색은 재단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주년을 맞이한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를 탐색하면서 어떤 요소에 매력을 느꼈나?
발렌시아가 아카이브 안에는 비밀스럽거나 감춰진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건, 옷을 재단하고 만들 때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가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기술적인 부분 말이다. 사실 우리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그가 밖으로 너무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점이 이번 전시에서 검은색 의상을 주로 선택한 것에 더해져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뿐만 아니라 그동안 잔 랑방과 마담 그레 같은 전설이 된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물론 아제딘 알라이아와 같은 현존하는 노장 디자이너의 전시도 기획했고 말이다. 혹시 지금 시대의 젊고 핫한 디자이너들, 이를테면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와도 전시를 해볼 생각이 있나?
사실 내년에 마르지엘라 전시를 할 예정이다. 그가 패션계를 떠난 지 어느새 10년이 다 되어가고, 그 안에서 일한 게 20년이다. 알라이아 전시를 했을 때, 그는 40년을 일했던 터였다. 그러니 뎀나와 이런 전시를 한다는 것은 아직은 이르지 않을까. 물론 그가 큰 자질을 지닌 사람인 건 알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치를 파악하기엔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의 작업을 너무 빠른 시간 내에 되돌아보는 건 미래로의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막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릭 오웬스를 눈여겨보고 있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 보통 10년이면 필드를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 창의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커질 테니까. 하지만 20년간 자신의 일을 했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아티스트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아카데미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가의 관점을 중심에 두고 작업을 한다. 무엇보다도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큼 정말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싶다.
하이 주얼리 하우스 부쉐론과의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전시 영역을 넘어서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인 당신의 기지가 놀라웠다. 또 배우 틸다 스윈턴과 협업한 패션 퍼포먼스 <The Impossible Wardrobe>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2005년에 알려지지 않은 모델과 함께한 작업으로 작게 시작했고, 2012년 가을에 틸다와 함께한 대대적인 작업을 계기로 미디어에 나의 퍼포먼스가 크게 알려졌다. 물론 틸다와의 작업은 흥미로웠다. 나는 그녀에게 박물관의 유물(여러 세기에 걸친 옷)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제안했다. 옷을 몸에 걸친, 정말 살아 있는 작품처럼 말이다. 뮤지엄에서는 동상들에 옷을 입힐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틸다에게 옷을 들고 있을 것을 요구했다. 이 전시는 15일 동안 매일 저녁에 40분씩 진행되었고, 우리는 틸다가 진짜 동상이라 생각하고 작업했다. 뮤지엄에 있는 조각의 색깔과 틸다의 피부색이 너무나 닮은 것도 재밌는 포인트였다.
당신의 전시는 동시대의 패션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에르메스의 광고 캠페인에서 모델이 트렌치를 입지 않고 누드 상태로 걸치고만 있더라. 그 모습이 틸다의 퍼포먼스를 생각나게 했다.
고맙다. 그런데 또 다른 면으로 보면 그러한 아이디어는 결국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가 옷을 사러 갔다가 입어보기 싫으면 그냥 대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하하하. 나의 비전은 패션 뮤지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패션 전시라고 하면 왜 다들 옷이 정자세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좀 누워 있는 옷을 전시하면 어떤가.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라면 더 좋고 말이다. 사실 이런 전시를 기획했을 때 다른 뮤지엄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패션 전시는 여느 아트 전시와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패션 전시라는 것은 의상이 지닌 내면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또 몸이 사라진 옷을 전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트 전시에는 그런 측면이 없다. 아트에는 그림이 있고 조각이 있고, 퍼포먼스가 있다. 그래서 패션 전시에 대한 해결책은 항상 찾아내야만 한다. 이번 발렌시아가 전시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이 마네킹에 걸린 옷들이 건조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살아 있는 신체는 유물이 있는 뮤지엄에 들어가서 전시될 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늘 전시의 새로운 형태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패션 에디터로서 늘 패션은 아트의 일부, 혹은 아트의 속성을 지닌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동경해왔다. 하지만 혹자는 그것을 단순한 산업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물론 패션은 아트이다!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특히 패션 종사자 중에 패션을 아트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그 많은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내면서도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컬렉션에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은 단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아티스트 제프 쿤스를 예로 들자면 그의 아틀리에는 거대한 회사다. 그것도 엄청난 돈이 흐르는. 세계 수많은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은 아주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그 안에 상업이라는 게 안착되어 있다. 아트와 패션 모두 그 안에 상업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런데 왜 패션은 상업이라는 단어에 고통받는 것인가.
패션 큐레이터를 꿈꾼 계기는?
내가 종종 이야기하는 나의 작은 역사인데, 아주 어릴 적 나는 4명의 여자 형제와 지냈고 내 방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 옥탑방은 수많은 옷들이 마치 창고처럼 그냥 쌓여 있었다. 거기서 뒹굴며 놀았고, 거기가 내 방이었다. 그 당시부터 내 직업이 옷을 지키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하하하. 학창 시절 나는 미술사를 공부했고, 그 이후 바로 패션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전시를 하면서 갖고 있는 원칙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입혀졌던 옷, 그 안에 담긴 추억, 이런 것들은 옷이 그 안에 몸을 감춘 사람에게만 내어주는 특별함이다.
당신의 전시는 영감을 주는 요소가 풍성하다. 패션 전시를 기획할 때 사 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하게끔 하는 힘은 무엇인가?
질문에 답이 있다. 내가 전시를 기획할 때 패션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대중을 위해서도 특별한 것을 준비한다.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로. 비단 오트 쿠튀르만은 아니다. 동시대 옷들 중에 요지 야마모토, 꼼데가르송, 아제딘 알라이아도 있다. 대중은 매일 자기가 입는 것을 전시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청바지에 대한 전시를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19세기, 20세기의 청바지를 만나고 싶지, 매일 자기가 입는 바지를 굳이 뮤지엄에서 다시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올 6월, 파리와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도 당신이 기획한 루이 비통 트렁크 전시가 열린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라는 흥미로운 타이틀의 이 전시에서 놓치면 안 될 포인트는?
역사와 이야기다. 100년이 훨씬 넘는 기업이 쌓아온 그들의 역사에 담긴 숱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저 현재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쌓아온 유구한 시간 말이다. 예를 들어 100년 전의 영수증을 보여줄 거다. 영수증 한 장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아름답지 않나?
패션 전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소통하고 싶나?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시간을 가지고 보라는 것이다. 오늘날 패션쇼는 7분이다. 50년대에는 하나의 패션쇼가 2시간이었다. 60년대에는 40분, 80년대에는 20분, 오늘날은 7분에서 길어야 11분이다. 오늘날은 눈에 띄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인터넷보다도 더 빨리 사라지는 것들이다. 정말 안타깝다. 패션 전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옷 가까이 와서 그 앞에서 긴 시간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 에디터들이나 패션 종사자들은 패션쇼에 초대되지만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정작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패션위크라고 떠들어대지만 많은 대중이 접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물다. 참 이상한 일이다. 반면 전시는 티켓을 사고 입장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쫓아내지 않고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갖고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이건 오늘날의 패션쇼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당신이 앞으로 정말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내 누이의 옷장을 전시하고 싶다. 우리가 부자가 아니어서 그녀는 비싼 명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꼭 해보고 싶은 전시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내 누이의 옷장이다. 일종의 퍼포먼스를 생각하고 있다. 4명의 누이 중 나에게 영감을 주는 누이가 있다. 지금 57세인데, 그녀가 다섯 살 때 입은 옷을 찾는 중이다. 그런데 50년도 더 전의 옷이라 찾기가 좀 힘들다. 하하하.
- 에디터
- 박연경
- 포토그래퍼
- CLAIR DE LUNE
- 파리 통신원
- 이길배(Guilbe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