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엑소 이하 아이돌 그룹은 모두 비슷해 보이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이름만 읊어도 벅찰 정도로 많은 신진 아이돌 중, 주목할 이유가 있는 여섯 그룹의 정보만 업데이트해도 좋다.
청량한 소년의 정서 – 세븐틴
신인 중 유일하게 남자 아이돌 음반 판매 TOP 10에 들고, 각종 시상식에서 최고의 루키로 꼽히며 큰 인기를 얻었다지만, 세븐틴은 분명 지금보다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는 그룹이다. 20년 한국 아이돌 역사를 되짚어봐도 이만큼 소년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어필하며 많은 이를 ‘입덕’하게 한 그룹은 없었다. 이는 세븐틴 멤버들이 대부분의 프로듀싱, 랩메이킹, 안무를 자신들이 직접 만든 덕이 크다. 단순히 스스로 많은 걸 주도했다는 것만으로 높이 사는 게 아니다. 멤버들은 자체 제작하며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정서를 부담스럽지 않게 어필 할 줄 안다. 또 어느 곡을 살펴봐도 웬만하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멤버 우지(Woozi)가 함께한 프로덕션은 신남 그 이상으로 특유의 청량감을 안기며 그룹의 정서를 극대화한다(프로듀서 계범주의 세련된 프로듀싱 스타일도 크게 한몫 한다). 대체로 훵키한 스타일의 타이틀곡만 살펴보면 ‘아낀다’에서는 입술이 말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며 끊임없이 아낀다고 외치고, ‘아주 Nice’에서는 너에게 가는 길이 꽃길이 된다며 설렘 가득한 마음에 기분이 아주 나이스하다고 말한다. ‘Ah Yeah’에서는 무작정 인기 많은 게 아닌 우리 이야기로 대중의 귀를 채우고 싶다고 했듯, 세븐틴은 스물두 살이 최연장자일 정도로 어린 나이에 걸맞은 감정, 생각, 그리고 스 토리를 음악 안에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귀여운 최단신 우지와 성숙한 이미지의 최장신 민규가 한데 어우러져 ‘어부바 안무’까지 하니 심장 폭행당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건 13명이 각기 비슷한 듯 다른 소년의 이미지를 띠면서도 무대 구성, 파트 분배에 있어 좋은 밸런스를 보인다는 것이다. 분업화된 아이돌 시스템에 맞춰 한 팀 안에 랩, 보컬, 퍼포먼스 유닛을 구성해놓은 기획사 플레디스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많은 멤버가 컨트롤이 잘되고 있다는 건 안무 구성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세븐틴은 공간을 나누어 멤버를 배치하고, 번갈아가며 안무를 소화하는 대규모 아이돌 그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성의 안무를 구사하지 않는다. 대신 13명의 멤버와 세 유닛이 합쳐 하나의 그룹이 된다는 이름의 뜻(멤버 수인 13+유닛 수인 3+’하나’를 뜻하는 1 = 17)이 무색하지 않게 일사불란하게 함께 움직인다. 때로는 파도가 치듯 앞의 멤버를 뛰어넘는 식의 종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횡적인 움직임 을 보일 때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서로 센터로 치고 나온다. 언뜻 보면 보통의 군무와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세븐틴은 절도 있음보다는 다이내믹함으로 앞서 언급한 소년의 상큼발랄함을 강조한다. 이러니 엄격하거나 진지하지도, 귀여움을 짜내지 않아도 많은 10대, 20대 소녀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밖에. 글 | 김정원(<힙합 LE> 편집장)
YG라는 마법의 주문 – 블랙핑크
블랙핑크 데뷔 직후, 합법적 루트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단 두 가지였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SBS 인기가요>를 보거나, YG 공식 블로그와 네이버 TV 캐스트로 ‘블핑TV’를 보는 것. 이래서야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주위에 쉽게 권할 수나 있겠나 싶지만 역시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블랙핑크는 고작 데뷔 13일 만에 ‘휘파람’으로 공중파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며, 기존 미스에이가 가지고 있던 기록 22일을 단숨에 갈아치웠고, 멜론, 올레, 네이버 뮤직, 엠넷, 지니, 소리바다 등 국내 6개 주요 음원 사이트의 월간 차트 1위 자리를 휩쓸었다. ‘휘파람’은 물론 더블 타이틀곡인 ‘붐바야’에 대한 반응도 뜨거워서, 공개 후 두 달 된 시점, 뮤직 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가 4천9백만 뷰를 훌쩍 넘어섰다. 활동 기간으로 보자면 아직 그룹 소개도 채 입에 익지 않았을 햇병아리지만, 화력으로만 보자면 웬만한 기존 그룹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매머드급 신인이 탄생한 셈이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의 밑바탕엔 두말할 것도 없이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투애니원이 있다. ‘소속사 덕을 본다’거나 ‘선배 그룹을 닮았다’는 수군거림은 이제 지루해도 너무 지루한 아이돌 신 클리셰라 웃으며 넘기려다가도, 블랙핑크가 내놓은 결과물과 활동상은 분명 그 웃음기를 가시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YG표 음악의 핵인 테디가 처음으로 앨범 프로듀싱까지 맡아 전력을 다해 완성한 노래들은 새로움보다는 지금까지 소속사가 만들어온 것들의 깔끔한 연장선상이다. ‘끝을 모르게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소녀들은 부끄러움 없이 ‘오빠!’를 불러대는 패기를 제외 하면 혀끝을 굴리는 법에서 멋을 과시하는 몸짓까지 투애니원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그런데 그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이 어쩐지 신경 쓰인다. 블랙핑크를 두고 ‘굳이 투애니원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밝힌 양현석 대표의 발언은 이런 당당함의 화룡점정이다. 딱히 누구다우려고도, 혹은 누구답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는 온전한 의미의 자유를 얻은 소녀들은 지난 20여 년간 소속사가 다져놓은 비옥한 토양 위에서 뛰고, 춤추고, 심지어 스포츠카를 타고 달린다. 관건은 리사, 제니, 지수, 로제 네 사람이 안전한 만큼 견고할 것이 뻔한 익숙한 고정 틀을 깨고 나와 자신들의 개성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보다 음악 방송 무대나 안무 영상에 무심코 손이 가는 걸 보면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글 | 김윤하(음악 평론가)
저 하늘의 무수한 별자리처럼 – 우주소녀
언제부터였을까, 멤버가 많은 그룹이 안면인식장애의 나를 힘겹게 한 것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1990년대 초반은 아이돌 그룹 인원 증대의 태동기였다. 자장면 값이 오르듯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도 점점 늘어났으니까. 1992년 잼(ZAM)이 다섯 명의 멤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듬해 데뷔한 잉크는 무려 일곱 명이 복작거리며 서로간 구분을 어렵게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2016년,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 덕에 사람 많은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지간한 멤버 수에는 쉽게 놀라지 않게 되었다. 우주소녀가 <더 킹 오브 파이터즈>마냥 13명의 소녀를 선보이기까지는. 사실 Mnet 〈프로 듀스 101>으로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도 선보였는데 13명이 뭔 대수랴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명씩 비슷한 콘셉트를 잡고 무대에 세우면 구분이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주소녀 ‘입덕’을 위해 여러분에게 팁을 제공하나니, 이름 하여 우주소녀 구분하기! 얼굴이 길쭉한 미인상은 리드보컬인 설아이고 가창력이 좋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는 수빈이다. 입술이 두텁고 명랑해 보이는 건 은서, 45도 각도로 보았을 때 태연과 닮은 건 보나, 밝게 염색한 멤버는 루다이다. 엑시는 Mnet <언프리티 랩스타 2>에 출연했고, 다원은 JTBC〈걸스피릿>에 출연했다. 선의와 성소, 미기는 중국인 멤버이고, 여름은 그냥 막내, 다영은 신동엽 닮은 막내, 연정은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막내다.
그리고 이들은 별자리를 하나씩 나눠 가지고 있다. ‘우주’소녀니까. 우주를 배경에 두고 소녀다움을 내세우는 이들에겐 하늘거리는 치마, 밝게 웃는 미소, 노래와 가사까지 모두 소녀를 느끼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사실 우주소녀가 처음 ‘모모모’와 ‘캐치 미’를 들고 나왔을 때, 소녀시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닌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밀이야’로 선배들과 자신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줬다. 그건 바로 ‘아이돌과 서브컬처의 융합’이다. ‘비밀이야’ 티저 영상과 뮤직비디오의 시작 부분에서 전설적인 소년 만화 <세인트 세이야(聖闘士星矢)>의 캐치프레이즈인 ‘네 안의 코스모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Have You Ever Felt Cosmo Inside of You?)’를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문구로 인해 서브컬처에 익숙한 이들의 기쁨은 두 배, 우주소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우주소녀의 이름을 부르고 관심을 쏟기만 하면 된다. 마침 갈수록 밤이 길어지는 가을은 별자리를 바라보며 우주소녀를 떠올리기 좋은 계절이다. 글 | 유제상(문화 콘텐츠 평론가)
SM의 Neo적 선언- NCT
SM 팬들 사이에서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이수만은 ‘아버님’ 으로 불린다.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 하던 희한한 한자명의 동방신기나 ‘엑소 플래닛’에서 지구에 착륙한 초능력자 콘셉트의 엑소에 이르기까지, 그 뒤엔 ‘너희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양하게 준비해봤어’라며 미소 짓는 아버님의 모습이〈꼬꼬마 텔레토비>의 하늘에 떠 있던 인자한 태양처럼 존재한다. 이수만은 올해 1월, SM의 신규 프 로젝트 프레젠테이션 쇼에 직접 등장했다. 그리고 거대한 홀로그램 세트에서 사업 방향과 함께 소개한 그룹이 바로 NCT(Neo Culture Technology)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기치로 내건 신개념 아이돌 그룹. 새로운 멤버 영입이 자유롭고, 인원수에 제한이 없으며, 세계를 무대로 각지에 현지화된 유닛이 순차적으로 데뷔한다. 우주를 유영하던 조각들이 적절한 우주 정거장을 만나 도킹하는 모양새 같달까? 혹은 체세포 분열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현재 14명인 NCT는 NCT U, NCT 127, NCT DREAM 등으로 조합과 변신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NCT라는 이름은 하나의 인력 풀로서 작동하는 브랜드인 셈이다. 아이 돌을 보면서 수학, 생물, 지구과학, 기타 등등이 연상될 줄이야.
물론 그룹이 지닌 새로운 패러다임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매력과 실력이다. NCT의 첫 작품, NCT U의 ‘일곱 번째 감각’은 몽롱하고 음울한 비트를 타는 유려한 안무 구성이 여느 신인 데뷔와 격이 다른 차원을 보여줬다. 지금껏 일부 SM 아이돌이 데뷔 초반에는 황당함이나 민망함을 안겨주다가 서서히 다수의 사람을 굴복시킨 것에 비하면, 처음부터 세련되고 매끈한 나머지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었다. 여름에 공개된 NCT 127의 ‘소방차(Fire Truck)’라는 노래 제목 앞에서 헛웃음이 나온 것도 잠시, 랩만으로 파워풀한 무대를 채워가는 그 기세엔 SM이 드디어 힙합까지 접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NCT 군단 중 10대만 뭉친 NCT DREAM이 호버보드를 타고 발랄하게 등장해 ‘츄잉껌’을 부를 땐, 이 그룹의 정체를 곱씹다가 비로소 정신이 아찔해졌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원처럼 해사한 얼굴을 하고서 부푼 마음을 노래하는 아이와 탁월한 피지컬과 카리스마로 ‘하드 캐리’ 중인 태용이 한 이름으로 속한 그룹. A부터 Z에 이르는 다양한 아티스트 인력 중에서 랜덤으로 뭉쳤다가 흩어지는 시스템. 분야를 막론하고 스타 개인의 파워가 강해진 연예계, 멤버 이탈과 타격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 잦아진 아이돌 기획사는 이처럼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를 발휘해 그 힘을 증명해가야 한다. NCT는 한마디로 소속 회사의 선언적인 미래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아이돌인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이들 에게 통하고 있는지는 갸우뚱하지만, 샤이니도, 엑소도 처음부터 빵 터지지 않았다. NCT를 주시하면서도 아직 멤버들을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기 전까진 모든 멤버 얼굴을 식별하고 이름을 외울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NCT를 필두로 한 SM의 실험 결과가 나와 있을 것이다. ‘아버님’의 깊은 뜻도 더욱 헤아릴 수 있을 테고. 글 | 권은경(<W KOREA> 피처 에디터)
데뷔를 향한 영리한 걸음 – 플레디스 걸즈
시청자의 투표로 11인조 걸그룹 I.O.I의 멤버를 뽑은 <프로듀스 101>은 모든 출연자가 좀처럼 살아남기 힘든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출연자들은 언행을 조금만 마음에 안 들게 해도, 실력이 안 좋아도 욕먹었다. I.O.I 멤버가 된 후에도 고난은 계속되어, 몇몇 멤버들은 소속사의 결정으로 각자의 소속사가 준비한 걸그룹으로 옮겨가면서 <프로듀스 101>로부터 생긴 I.O.I의 팬들에게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한 결정도 아니었지만, 모든 행동을 투표로 평가받은 그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평가 대상이었다. I.O.I의 멤버 임나영과 주결경이 소속된 회사 플레디스의 플레디스 걸즈는 이 빌어먹을 게임의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이다(정식 데뷔를 한 뒤엔 플레디스 걸즈라는 이름도 바뀔 수 있겠다). <프로듀스 101>에 7명을 출연시킨 이 회사는 그들을 섣불리 데뷔시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길보다 I.O.I의 두 멤버를 제외한 멤버들에게 매주 소규모 공연을 열도록 했고, 200여 석의 무료 공연으로 시작한 공연은 16번째에 이르러 2만원짜리 티켓 800석이 매진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투표에서 선발된 두 명이 대외적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은 공연을 통해 조금씩 팬을 늘려갔다. <프로듀스 101>이 일본 걸그룹 AKB48의 투표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면, 플레디스 걸즈는 AKB48의 또 다른 반쪽인 공연을 통해 조금씩 팬덤을 구축해간 셈이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플레디스 걸즈는 <프로듀스 101>, 또는 AKB48의 활동 시스템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회사는 데뷔라는 유혹을 참고 기다렸고, 그사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멤버들은 팀워크를 다지며 조금씩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 두 멤버가 합류해 ‘완전체’가 되길 원하는 팀의 서사도 만들어졌다. 실패할 가능성만 높았던 게임에서 너무 나서지도, 앉아서 당하기만 하지도 않았으니 데뷔 후 또 다른 게임에서 승리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진다. <프로듀스 101> 때문에 지난 1년 여 고생한 출연자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글 | 강명석(웹진 <아이즈> 편집장)
반전 있는 소녀들 – 오마이걸
팔랑팔랑한 흰 스커트와 ‘큐피드’란 제목의 데뷔곡. 작년 4월 오마이걸의 시작은 언뜻 빤한 걸그룹일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지은 것 같은 이름마저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란 느낌.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오마이걸은 ‘큐피드’의 살짝 비틀린 마칭밴드 드럼처럼 기묘한 야심으로 가득했다. ‘Closer’ 에서는 무대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봐야 관찰할 수 있는 별자리 동선을 연출했다. ‘Liar Liar’ 뮤직비디오는 스릴러 영화의 서스펜스를 사랑스러움으로 연결해냈고, ‘Windy Day’ 는 이를 다시 판타지 세계의 긴장으로 뒤집어 보였다. 가요계에 나올 건 다 나왔다는 푸념 속에서 그래도 새로운 것을 기다리던 이들에게, 오마이걸은 눈이 번쩍 뜨이고 자리를 박차게 되는 경험이었다. 놀라운 것은 영상과 안무, 음악과 가사가 정교하게 맞물린다는 점이다. 분명 K–POP 산업이 ‘갈 데까지 갔기에’ 등장하는 극단적 형태다. 익숙한 요소들을 가져와 전부 비틀어놓고는 그 아이러니들을 교묘하게 끼워 맞추는 기획력 말이다. 소녀들이 초원 위에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서 있지만 하필이면 눈도 못 뜰 강풍에 시달리고, 어쿠스틱 위주의 사운드가 긴박하게 몰아치면서 시각 요소와 조응하는 식이다 (‘Windy Day’). 또는 파스텔 톤의 복도에서 밀실 살인 게임이 암시되는 가운데 소녀들이 숨바꼭질하듯 뒷짐을 지고 ‘콩’ 뛰어나오며 발랄하게 소리 지르기도 한다(‘Liar Liar’). 무엇보다 오마이걸의 음악은, 다소 낡은 말이지만 ‘좋은 취향’으로 가득하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보기 드물게 좋은 멜로디의 미덕을 선보이는 가운데 맛깔스럽게 비틀린 요소들이 매혹을 발한다. 경쾌한 엇박자와 과감한 화성으로 훵크를 가미한 일렉트로 팝 사운드를 버무려, 소녀적 팝의 산뜻함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정말이지 이런 걸그룹, 그리고 이런 걸그룹 음반은 어디에도 없다.
멤버들은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한 얼굴들, 소녀풍 아이돌 중에서도 유난히 선이 가늘다. 의상이나 표정은 종종 아슬아슬할 정도로 저연령 이미지를 보인다. 청순 콘셉트 외에는 무엇을 해도 큰일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 특징은 이 소녀들이 복잡하게 꼬인 무대와 콘셉트를 정교하게 수행해낸다는 지점에서 반전을 일군다. 까다로운 퍼즐을 풀어내는 순간의 희열과도 같은 들뜬 공기가 이들에게 대단한 생동감을 부여 한다. 그것은 압도적인 스타도, 대상화된 인형도 아니다. 애교스럽게 웃으면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영악한 기획을 똑 부러지게 담아내는 오마이걸. K–POP 산업이 낳은 새로운 유형의 예인들이다. 글 |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 에디터
- 권은경
- 글
- 김정원, 유제상, 김윤하, 권은경, 강명석, 미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