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버리에서 마법을 부리는 마술사, 디자이너 조니 코카(Johnny Coca) 스토리.
부드러운 검정 턱수염과 따뜻한 미소를 지닌 자그마한 체구의 스페인 남자, 조니 코카(Johnny Coca)는 일 년 전 영국 최대 가죽 브랜드 멀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액세서리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신한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처럼 브랜드를 재정립할 책임이 생긴 것이다. 파리의 에콜불에서 인테리어를 공부한 그는 프리랜서로 루이 비통의 쇼윈도 를 장식하며 패션계와 인연을 맺었다. 윈도 콘셉트를 스케치하면서도 디스플레이용 가방 디자인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당시 루이 비통 CEO였던 이브 카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당신은 저를 모를 수 있지만 저는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한 수많은 가방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확히 30분 후에 카셀은 루이 비통 디자인 스튜디오 책임자들과 미팅을 잡았다고 전했고, 코카는 그를 만난 그 자리에서 바로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루이 비통으로 시작된 그의 커리어는 다른 브랜드를 거쳐 40세가 된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코카는 가방, 신발, 장신구 그리고 레디투웨어 컬렉션뿐 만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난관을 마주하고 있다. 영국 특유의 감성을 담은 가방으로 한때 번영을 누린 멀 버리는 최근 들어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가 해낼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어요!” 런던 텔레그래프 미디어 그룹의 패션 디렉터인 리사 암스트롱이 말한다. “조니는 멀버리에 재치를 불 어넣어요. 그가 자신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놀라워요. 장황하기만 한 빈 껍데기 따위는 없어요. 가죽에 대해 깊이 알고 어떻게 해야 더 세련되어 보이는지도 잘 알죠. 게다가 영국에서는 멀버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어요. 미국의 코치와 닮은 구석인데, 바로 모든 소녀들이 자신의 첫 번째 메이저 가방으로 이 브랜드를 열망한다는 거예요.”
파리에서 일하는 날이면 링 귀고리에 검정 꼼데가르송 베스트를 흰색 무지 유니클로 셔츠에 즐겨 매치하는 그가 오늘 배기 스타일의 릭 오웬스 검정 바지에 버클이 달린 가죽 바이커 부츠를 신 고 나타났다. “20유로예요. 더 비싼 게 필요한가요?” 그는 손뼉을 치며 유쾌하게 웃었다. 가끔 꼼데가르송이나 알렉산더 매퀸의 퀼트를 더하는 식으로 그만의 럭스펑크 스타일을 완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코카가 패션계에서 일할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설계 공학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갔고, 나중에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다. 항상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있었지만, 그건 차나 배나 건물이었다. “저에게 루이 비통은 직장이 아니라 학교 같았어요. 가죽 제품의 모든 것을 배우려고 애썼고, 제 모든 시간을 작업실에서 공예가들과 보냈지요.” 5년 후, 액세서리 디자인 수장으로 마이클 코어스가 지휘하는 셀린으로 건너간 후엔 이어 스위스 가죽 제품 기업인 발리에 잠시 있다가 피비 파일로의 셀린으로 돌아갔다. 처음 셀린으로 돌아 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거절했지만. “그 당시 피비를 만났죠.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모든 일을 할 때 엄청난 사랑과 마음을 바쳐요. 그녀처럼 강하고 재능 있는 사람과 일하면 성공이 바로 앞에 있을 듯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그저 피비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셀린에서 일했을 때처럼, 그는 멀버리에서도 런던과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 사이를 오간다. 지난 2년 동안 피카소 미술관 근처의 파리 아파트에 거주했지만, 켄싱턴의 멀버리 사무실에서 가까운 새 집을 찾는 몇 달 동안에는 런던의 호텔에 묵었다. 클래식하고 보수적인 파리에 비해 별난 구석이 있는 런던을 오가는 삶이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저는 항상 사람들을 살펴요. 그들이 왜 저 가방을 들고 왜 저 코트를 입고 있는지 분석하려고요.” 또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베르너 판톤, 에토레 소트사스 등 학생이던 시절부터 영감을 준 20세기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찾아나서는 것을 즐긴다.
멀버리는 영국 남서쪽에서 가장 예스럽고 아름다운 자치주 중 하나인 서머싯에 기반을 두고 농지에 둘러싸인 공장에서 가방을 만든다. 코카가 취한 첫 번째 단계는 공장 방문이었다. 대다수 견습 생으로 회사에 입사한 직원들은 공예와 품질이라는 단어가 등에 새겨진 폴로 셔츠를 입고 있다. 공장은 팀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팀은 가격표가 보이는 표지판 아래의 특정 가방을 만든다. “저 희는 장인들에게 누군가는 이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멀버리에 입사하여 이곳에서 25년간 일해온 그룹 생산 책임자 닉 스피드가 말한다. 코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방향과 비전을 찾을 필요가 있지만 가격 역시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멀버리에 대한 비전은 지난 2월 런던 패션위크 기간 중 호화로운 중세 길드홀에서 열린 가을 레디투웨어 컬렉션 발표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정교하게 재단된 망토, 그런지 룩에서 영감을 받은 슬립 드레스, 울퉁불퉁한 가죽 베스트 그리고 스터드로 장식한 바이커 재킷은 터프하면서 도시적이고 펑키한 영국 스타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마크 제이콥스가 그랬던 것처럼) 토털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멀버리에서 일하며 얻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너 이거 전에 한 번도 한 적 없잖아?’라고 말해요. 그렇지만 저는 레디투웨어를 만드는 사람들과 몇 년 동안이나 함께 일해왔어요. 제가 다음 컬렉션에 정확히 어떤 메시지와 무드를 투영하고 싶은지도 알죠. 어쩌면 알레산드로와 피에르파올로가 각각 구찌와 발렌티노에서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그들이 액세서리에서 레디투웨어로 진출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코카는 스페인 출신으로, 특히 영국의 인디 스타일 문화에 흠뻑 젖은 자신이 멀버리의 ‘영국스러움’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시즌, 코카가 새로 내놓은 멀버리의 가방은 극찬을 받았다. 세 개의 주머니와 체인 스트랩으로 이루어진 숄더백, 클리프톤 (Clifton)과 스터드를 장식한 쇼퍼백 스타일의 캠든(Camden), 메이플(Maple)이다. 가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기능이라고 믿는 그는 잡지와 노트북을 넣을 수 있고, 주머니를 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설명한다. 또 안감에 가죽이나 스웨이드를 접목 하고, 가장자리에 색을 덧칠하는 등 생산 과정에 가벼운 변화를 주었다. 그는 남부 스페인과 80년대 초반 멤피스 그룹이 생산해 낸 포스트모더니즘 가구에서 영감을 얻은 어두운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으로 독특한 팔레트를 구성했다. 그러나 멀버리에 끼친 영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베이스워터다. 손잡이와 안감을 가볍게 하고, 무두질에 신경을 써 완성도를 높인 새로운 버전은 더 고급스럽게 재해석했지만, 가격은 동일하다. 더군다나 멀버리의 나무 로고를 수정하고 70년대에 사용한 활자체를 부활시키며 브랜드 정체성도 잘 살려내고 있다. 다음으로 그가 할 일은 멀버리 스토어를 다시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제 저에게 그건 너무 어렵겠는걸요.” 과장스럽게 눈을 굴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당연히,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압니다. 어쨌든 저도 건축을 공부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요?”
- 에디터
- 이예진
- 포토그래퍼
- BEN TOMS
- 글
- Alice Rawsthorn
- 스타일링
- ROBBIE SPENCER
- 모델
- KATIE MOORE, GRETA VARLESE @ ELITE LONDON
- 헤어
- NEIL MOODIE FOR WINDLE & MOODIE @ BRYANT ARTISTS
- 메이크업
- GEMMA SMITH-EDHOUSE FOR MAC @ LGA MANAGEMENT
- 세트 디자인
- ROBERT STOREY @CLM
- 현지 프로덕션
- CREATIVE BLOOD AGENCY
- 디지털 테크니션
- JAMES NAY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