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이란 자유

W

LA의 상징적인 레코드 숍, 아메바 뮤직에서 열린 스텔라 매카트니의 2016 가을 프레젠테이션이 흥겹게 펼쳐진 그 다음 날. LA의 건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샤토 마몽의 한 카페에서 그녀의 가을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를 직접 만났다. 어제의 격한 파티로 어깨에 작은 통증을 얻은 그녀는 얼음 찜질을 하고 있었고,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얼굴로 <W Korea>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의 스모키 메이크업을 지운 말간 얼굴은 전날과 또 다른 활기를 띠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데님 점프슈트를 입은 채 소파에 기대 앉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엔 스텔라 매카트니의 옷들이 지닌 따스한 편안함이 그대로 배어나왔다. 바로 그녀의 룩이 그녀 자신과 다름없음을 일깨우며.

crop

가장 현대적인 동시에 편안한 룩으로 여성들의 지지를 얻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고대하던 당신과의 인터뷰가 성사되어 너무 기쁘다. 어제 쇼를 마친 기분이 어떠한가?
무척 기분이 좋다. 아메바 (Amoeba Music) 레코드 숍에서 음악이 아닌 패션 브랜드의 행사를 연 건 처음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서 자랑스럽다. 아메바의 오너가 내게 매 시즌마다 와서 이벤트를 해달라며 격한 축하의 인사를 했을 정도다. 음악과 관련된 다채로운 이벤트를 지켜본 인물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더욱 뿌듯했다.

빈티지 란제리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닝 룩에 모던한 감성을 더한 스텔라 매카트니 가을 컬렉션을 입고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델들.

독립 레코드 앨범을 판매하는 LA의 아메바 뮤직에서 선보인 스텔라 매카트니 2016 가을 프레젠테이션.

코르셋과 뷔스티에를 연상시키는 란제리 원피스 위에 샤 소재의 시스루 드레스를 레이어링한 시리즈는 정말 아름다웠다. 페이크 퍼로 만든 레오퍼드 패턴 코트와 안에 입은 스포티한 스웨트셔츠와 쇼츠 룩도 탐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 룩을 꼽을 수 있을까? 물론, 당신이 고른 퍼 코트에 스포티한 아이템을 매치한 시리즈는 나 역시 마음에 든다. 근데 이런 질문은 항상 대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 예쁘니까(웃음). 디자인 팀원들과 함께 룩을 만들지만 하나하나 룩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모두 직접 확인하고 결정한다. 지금 생각나는 건 어제 현장에서 나는 그저 모델들처럼 놀고 싶었다는 점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프레젠테이션 때 모델들을 조금은 심심하게 그냥 세워두고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라고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좋은 음악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옷과 함께 즐기는 공간 아닌가. 모델들에게도 샴페인을 마시며 파티처럼 생각하게 했고, 실제로 그 어여쁜 모델들이 새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노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냥 하루 신나게 놀고 싶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어머니 린다 매카트니의 전시 열기 역시 무척 뜨거웠다. 그런 어머니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뮤지션 아빠인 폴 매카트니와 함께 보낸 당신의 어린 시절은 매우 특별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 있다면?
맞다. 특별한 가족임은 분명하다. 우리 가족은 굉장히 일찍 채식 주의를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런 시도 자체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부모님 덕분에 그런 문화를 일찍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독특한 성장 과정이 내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아버지 덕분에 많은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모든 세계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버지의 음악을 언어와 문화, 삶의 방식이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이 이해하고 즐기는 것을 보면서, 음악을 통해 지구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러 도시를 가서 인터뷰하다 보면 그 도시의 여자들은 어떠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나는 도시가 다르다고 해서 여자들이 어떠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여자들을 위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한 도시의 특정한 여자를 위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해 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음악처럼. 전 세계의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늘 찾고 있다.

얼마 전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떠나며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패션계는 아이디어나 생각을 공글릴 여유도 없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우리는 빠른 시대에 살고 있고, 사실 나 역시 때론 이 모든게 숨 가쁘다고 느낀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런 정신없는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빠른 속도 안에서 디자인하고 살고 있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내 직업을 즐기는 편이 랄까. 나는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잘 재단된 좋은 옷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것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바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들기 쉽고 돈 벌기는 더 쉬운 매스 패션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방식을 반대하고 어렵지만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현상에는 오늘날의 디지털 패션이 일조한 것 같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이커머스나 SNS 운영에 있어서 매우 선도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패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나?
맞다. 디지털 패션의 등장으로 패션 신에 가속이 붙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회사의 공정을 현대화하려고 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막 론칭한 새로운 브랜드도 아니고 오래된 브랜드도 아니다. 우리는 젊은 감성을 가진 브랜드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들이 하고 있는 공정이나 운영 방식을 보면 대단히 구식이다. 왜 패션 브랜드는 IT와 가까울 수 없다고 생각할까? 차, 건축, 공간, 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패션 브랜드 역시 인류를 생각하고 환경을 고려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디자인해야 한다는 공공의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업종이든 지금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범인류적 가치를 생각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대담한 애니멀 프린트와 스포티함을 보여주는 사선 스트라이프 패턴이 돋보이는 가을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은 빈티지 핀볼 게임 머신과 비디오 게임, 주크박스 등을 즐겼다.

다니 해리슨, 더티 더즌 브라스 밴드, 핑크와 댈러스 그린의 합동 무대, 비치 보이, 브라이언 윌슨, 그리고 조니 뎁과 마릴린 맨슨의 깜짝 공연도 펼쳐졌다.

패션계의 뮤즈로 등극한 조니 뎁의 딸인 릴리 로즈 뎁, 조니 뎁과 엠버 허드 커플, 스텔라 매카트니, 그리고 올랜도 블룸이 함께 했다.

스텔라 레코드 커버로 위트 어린 포즈를 연출한 스텔라 매카트니.

그러고 보니 1년에 프리 스프링, S/S, 프리폴, F/W 시즌 컬렉션은 물론이고, 액세서리, 란제리, 향수 라인 등과 더불어 아동복, 아디다스 바이 스텔라 매카트니 컬렉션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당신의 하루는 매우 빡빡한 스케줄로 채워져 있을 것 같다. 더구나 당신은 워킹맘이지 않은가.
맞다. 나는 늘 생각한다. 왜 나는 일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하지만 금방 깨닫곤 한다. 나는 편한 상태, 쉽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내 안에 잠재된 펑크 록적인 성향이 발현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기질은 부모님께 받았다. 부모님은 일부러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들 그 자체 였다. 자신을 믿고 신념을 가지고 나아갔고 그것을 지켜봤기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 어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 자신감, 용기가 필요하다. 어렵지만 내 자신 스스로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힘든 점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정신없는 스케줄 속에서 내 자신을 계속해서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일이 겠지만. ‘나는 누구인가?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모든 이를 위해 베풀고 있나? 잘하고 있나?’라고 스스로 늘 되뇌며 생각한다.

한국이나 영국 모두 일하는 엄마로서의 하루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신의 24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아이들 이 내 삶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내 일과 인간관계에 매우 집중했다. 여전히 바쁘지만 지금은 나의 네 아이들이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다. 아이들이 괜찮은지(특히 정신적으로) 살피는 것은 엄마로서 가장 큰 책임감이다. 그래서 그 무게가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당신의 삶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좌절도 겪더라도 굳세게 나아가라고 하고 싶다. 용기를 잃지 말고 늘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말이다. 물론 내가 자라온 환경이 특별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진 않다. 하지만 당신이 어디서 자라왔든 그건 상관없다. 당신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야 하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쉽고 좋지 않은 방법으로 이윤을 쫓고 남을 해치는 세상이다. 그것을 쫓아가면 안 된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결국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에디터
박연경
사진출처
METSON SCOTT(디자이너 포트레이트), DAVID X PRUTTING(현장 스케치), COURTESY OF STELLA McCARTNE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