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고 거칠지만 한없이 아름답게 빛나는 젊음! 지금 패션계는 과거의 향수와 추억, 그리고 미래이자 희망인 새로운 세대가 전하는 유스(Youth) 신드롬에 푹 빠져 있다.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와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라는 두 명의 인물을 빼놓고는 ‘지금, 여기’의 패션을 논할 수가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 제안하는 이 두 디자이너가 언제나 충격적이고 신선한 것을 갈망하는 패션계에 전례없는 유스(Youth)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항기와 자유로움,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처럼 생경하고도 친숙한 동유럽의 분위기를 잔뜩 품은 이들의 등장은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유스 컬처는 패션을 정의하는 이름이 되었다. 2016 S/S 파리 패션위크의 베트멍 오프닝 모델로 고샤 루브친스키가 DHL 티셔츠를 입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 장면은 기라성 같은 럭셔리 패션 하우스마저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젊음, 그 순수한 반짝임은 고샤 루브친스키 작업의 진앙지다. 소비에트 붕괴 후 러시아에 생기 넘치는 스포츠웨어와 파워풀한 80년대 테일러링이라는 새로운 빛을 몰고 온 그가 선보인 컬렉션 속 정맥을 흐르는 혈액과도 같은 것이다. 2015 S/S 파리 패션위크로 데뷔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그는 슈프림이나 반스와의 협업과 레이 가와쿠보의 절대적 지원 등 한꺼번에 모든 걸 거머쥔 듯 보이지만 스웨트셔츠 몇 장으로 소비에트 스포츠 홀에서 쇼를 열기도 했고, 척박한 패션 불모지였던 러시아에서 유스 패션을 꾸준히 개척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 세계 패션의 판도를 갈아엎는 핫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의 서로 다른 곳, 뉴욕이나 파리, 모스크바 혹은 상하이에서 무얼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어떻게 입고 어떤 스타일을 근사해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죠.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를 파악하기도 쉽고요. 고샤 루브친스키라는 레이블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관한 것을 보여줍니다.”
루브친스키는 독자적인 예술적 비전을 지닌 포토그래퍼이자 필름 제작자이면서 패션 디자이너를 아우르는 멀티 스토리텔러의 보기 드문 예다. 멀릿 헤어스타일에 적당히 각진 턱 라인, 거리에서 갓 캐스팅한 신선한 얼굴의 러시안 젊은이들이 루브친스키의 런웨이 쇼에 등장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테지만 그의 옷에서는 젊음의 본질적인 기운이 감지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진가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러시아 청춘들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집이다. 사진집 속의 피사체들은 온갖 형태의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거나 비틀거리며 넘어지거나 빈둥거리거나 과장된 포즈를 취하는 등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명료하게 담겨 있다. “방과 후 OM과 푸츠를 읽으면서 잡지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사진과 스타일링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스케이트보더들을 만났고, 그들은 내 영웅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나는 그들에 관한 모든 걸 맹렬히 찍었죠.” 래리 클락(Larry Clark), 낸 골딘(Nan Goldin)과 마찬가지로 그는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낡은 카메라를 들고서 흥미를 사로잡는 것을 찍기 시작했어요. 친구들, 내가 만드는 옷,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일상적인 장소를 포함해서요.”
지난 10월, 그는 크림반도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담은 사진집 〈Crimea/Kids〉에 이어 두 번째 사진집 〈유스 호텔(Youth Hotel)〉을 발간했다. “내게 젊음은 마치 호텔과도 같아요. 한동안 머물지만, 다시 어딘가로 이동하지요. 에너지를 바꾸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랄까요.”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틴에이저들의 사진, 덧없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경, 황량하게 버려진 랜드마크, 콘트리트나 철제를 사용한 브루탈리즘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루브친스키는 젊음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도발적이면서도 통렬한 러시아 도시 곳곳의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갖고 있어요. 평범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롭고요. 내가 그들을 따라다니고 그들이 최고의 자화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 책은 현재 러시아의 미래이자 희망인 새로운 세대에 관한 것입니다.”
러시안 유스 컬처의 제왕이 된 그의 영향력은 스타일이 십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라프 시몬스의 책과 전시물 <네 번째 성:사춘기의 극단, The Fourth Sex:Adolescent Extremes>에 견줄 만하다. 라프 시몬스는 사춘기와 문화를 좀 더 총체적으로 바라봤지만, 루브친스키의 그것은 한층 지역화된 형태랄까. 소비에트 붕괴 후 비틀거리는 제국을 조국으로 한 젊은이들, 다른 세상이 지금껏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들의 자화상과 함께 이들 역시 에디 슬리먼의 캘리포니아 서퍼들이나 스케이트와 마약, 섹스와 슈프림에 중독된 십대들이 등장하는 래리 클락의 1995년 영화 〈키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다큐멘터리 북 <The Smell of Us>에서 J.W. 앤더슨의 키룩을 입은 런던의 뉴 키즈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고샤 루브친스키처럼 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 역시 새로운 세대의 모습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불과 세 시즌 만에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항공 재킷과 들쭉날쭉한 헴라인의 데님 팬츠, 로고와 절개선이 비틀어진 티셔츠에 열광하는 추종자들을 양산해냈다. 폭풍의 눈에 서 있는 뎀나 즈바살리아는 그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쿨한 방식으로 제안할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평소 열광하는 베이식 아이템을 규정하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결과 일상과의 관련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근사한 룩을 만들어냈다. 베트멍의 런웨이는 고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도시에서 날아온 개성 넘치는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런던, 스톡홀름, 모스크바, 헬싱키 등에서 온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피팅과 동시에 백스테이지를 자욱한 담배 연기로 채워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파리에서 새로운 유스 컬처를 조형해가고 있는 그는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청소년기에 해 이렇게 추억했다.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이 시점은 매우 특별해요. 왜냐하면 많은 것들이 주어지는 시대였고, 예술, 음악, 문화 운동, 정치의 발전이 무궁무진하게 이뤄지던 시대였죠. 그곳에서 고트 문화와 힙합 그리고 레이브를 발견했어요. 서로 연관성이 크지는 않지만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었죠.” 그는 파리의 유스 컬처는 새로운 태동기라고 설명한다. “베트멍과 유스 컬처와 의 연관성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확실한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음악이나 예술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면에서 파리는 뚜렷하게 규정할 만한 유스 컬처가 없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우린 컬렉션을 통해 스트리트와 일상의 요소를 섞음으로써 새로운 유스 컬처를 북돋우려 하지만, 후디와 보머 재킷을 비롯해 사람들이 연관짓는 건 아직까진 ‘거리’와 ‘젊은이들’일 뿐이에요. 프랑스에는 유스 컬처가 없다고 언급한 건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유스 컬처의 부재를 설명한 것이죠. 젊은이들이 우리의 옷이나 개념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고안하고 투영할수록 새로운 유스 컬처가 생성할 가능성은 높아지죠.”
파리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뉴욕 스트리트 패션의 다크호스라고 불리는 후드 바이 에어의 셰인 올리버는 맨해튼의 스케이트 신과 힙합, 빈민가의 고딕풍을 혼합해 실험적이고 강렬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으며, 베트멍, 파우스틴 스타인메츠, 코페르니와 함께 LVMH 신예 디자이너상을 놓고 경합을 벌인 파이널리스트,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영감 역시 런던 십대 소녀들의 옷차림과 너바나, 코트 커베인의 스타일, 90년대 꼼데가르송 아카이브의 아방가르드한 하위문화에 기인한다. 농구와 힙합,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하던 유년기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버질 에이블로의 오프 화이트 또한 쿨한 유스 컬처를 대변하는 핵심브랜드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 인디 신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괴물처럼 성장해버린 혁오 밴드의 오혁은 트래셔의 후디와 고샤 루브친스키의 볼캡을 쓰고 무심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며, 유년기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젊음을 갈구한다. 청춘이란 부서지기 쉽고, 아스라이 사라지는 불빛처럼 덧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패션계는 그 젊은이들을 통해 낡은 것을 몰아내는 새로운 가능성과 에너지를 발견하고 있다. 고샤 루브친스키 사진집에 담긴 소년, 소녀들의 모습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과 시각을 지니고 있다. 온갖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좇는 패션계가 그들이 가진 찬란함을 동경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청춘을 영원의 이름으로 변형시키고 박제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패션계가 이토록 유스 컬처에 집착하고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INDIGITAL, 유영규, 목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