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우고 론디노네는 표현을 최대한 아낌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거대하고 육중한 청석 조각들로 채워진 그의 전시장에서 말해지지 않은 말들을 들었다.
청석을 쌓아 올려 완성한 거대 조각들이 뉴욕 록펠러 센터 앞 광장에 출현한 건 약 2년 전의 일이었다. 고대의 신상 같은 돌탑들은 반듯하게 솟은 마천루 사이에서 낯설고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번화한 도시 한복판에 원시적인 풍경을 이식한 인물은 바로 아티스트 우고 론디노네다. 표정도 동작도 없이 묵묵한 형상에 그는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국제 갤러리에서 오는 10월 11일까지 계속될 전시 <감정들(Feelings)>은 그 연장선상에 놓인 프로젝트다. 화이트 큐브 안에 자리한 다섯 점은 록펠러 센터 앞에 설치했던 시리즈와 얼핏 흡사하지만 좀 더 아담한 편이다. “실내에 들일 수 있는 높이여야 했으니까요. ‘휴먼 네이처’는 스톤헨지만 한 크기였거든요.” 물론 아담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다. 여전히 3미터가 훌쩍 넘는 거인들은 허리 아래의 관람객을 당당하게 내려다본다. 작가는 조각을 직접 만져보라는 이례적인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에게 예술은 해독하고 설명해야 할 암호라기보다는 직관적인 체험의 대상에 가깝다. 수천 년의 세월이 돌에 새긴 흔적을 손으로 쓸고 있으면 사람들 틈에서도 문득 세상이 고요해진다.
론디노네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어떤 사람들은 시적이라는 수사를 사용한다. 표현을 가능한 한 아낀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의 작업은 산문보다는 시를 닮았다. 거인들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고 댄서와 광대들도 주저앉아 시간을 흘려보낸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 작품의 ‘수동성’이 관객으로 하여금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나는 작가가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을 강요하기 위해 그와 마주 앉았다. 즉, 자신의 프로젝트들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길 청했다.
댄서나 광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기존의 연작과 비교하자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청석 조각들은 추상적인 형태에 가깝다. 그런데 형상이 모호해지면서 각각의 작품이 오히려 구체적인 제목을 갖게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댄서를 모델로 한 조각이 ‘누드’ 시리즈로 통칭됐다면 의 전시작은 ‘참견쟁이’ ‘변태’ ‘관찰자’ ‘호기심쟁이’ ‘순종자’ 등으로 불린다. 추상적인 작업일수록 의식적으로 설명적인 제목을 붙이는 걸까? 우고 론디노네 특별한 규칙이나 패턴은 없다. 게다가 나는 이청석 조각들이 추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체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거기에 인간의 감정을 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름은 그 감정을 지칭한다. 사실 처음에는 기쁨과 슬픔, 선과 악 등 보편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시리즈가 하나씩 늘어가더니 어느덧 거의 아흔 점에 이르게 됐다. 일반적인 감정에서 출발해 복잡하고 미묘한 상태까지 망라하게 된 것이다. 함께 언급할 만한 다른 예도 있다. 작년 시드니 비엔날레에는 쉰아홉 마리의 새 조각으로 구성된 ‘원시P(rimitive)‘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각각에는 모래, 달, 별, 먼지 등 자연물에서 따온 이름을 붙였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인 이 청석 조각들이 특별한 예외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예 ‘원시’라는 제목의 작업을 발표하기도 했고, 이번 전시작이나 기존의 ‘문라이즈’ 시리즈를 보더라도 원시 미술로부터 받은 영향이 확연히 읽힌다. 당시의 유물들은 어떤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나? 초현실주의 운동에 관심이 큰 편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예술을 비롯한 토속 문화는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언급한 작품들은 원시 예술과 민속 미술을 내 방식대로 표현한 결과물에 가깝다.
초기에는 패션 잡지의 화보나 광고 이미지에 본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유머러스한 작업도 시도했다. 가장 동시대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원시 미술에 가까운 형식을 실험하고 있으니, 그동안 관심의 초점이 더 오랜 과거를 향해 거슬러 올랐다고 봐도 될까? 내 첫 전시는 16세기 풍의 흑백 풍경화로 구성됐다. 그러니까 당대의 동시대적 이미지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질문에서 언급한 사진 작업은 일종의 농담이었다. 1995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초대장이 필요해서 만들어본 이미지가 하나의 시리즈로 발전했다. 당시는 포토샵이 소개된 지 1년쯤 지난 시점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놀아보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어떤 작가들은 최신 기술을 주요한 도구로 활용하곤 한다. 그런데 내게 그건 승산이 없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현재 가장 새로운 무언가라고 해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금세 낡아 보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느림’을 중시하고 첨단의 기술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방식을 취한다. 내가 모르는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타인에게 위탁해야 하는 부분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위험 부담을 떠안는 셈이다. 내가 최대한 도맡을 수 있는 방식을 찾다 보니 현재와 같은 작업으로 귀결됐다.
휴식을 취하듯 널브러진 댄서와 광대, 경직된 자세의청 석상등 의도적으로 역동성을 배제한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나는 이러한 ‘수동성(Passivity)’이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해석의 여지를 더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품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면 관람객의 감상이 교정되거나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업에 분명한 목소리를 담고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걸 꺼린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이 상적인 작가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미술 작가의 역할은 음악가에 가까워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감상자의 모든 감각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공백이 생겼을 때, 인터뷰에 동석한 전민경 큐레이터가 다음과 같이 첨언을 했다. “교육을 받아야 이해할 수 있는 현대미술에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시는 작가예요. ‘왜 미술을 감상하는 데 레퍼런스가 필요할까? 음악처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을 품는 거죠. 별다른 지식 없이도 접근 가능한 작업을 지향하신다고 할까요.”) 내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책이 있다.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의 <거꾸로(A Rebours)>다. 책 말미에 작가는 그의 사상과 세계를 동사의 나열로 표현하고 있다. 내게는 큰 영감이 됐다.
육중한 돌 조각부터 무지개 색상의 네온사인까지, 한 작가의 작업이라는 게 의외일 정도로 다양한 화법을 시도한다. 한 가
지 방식을 파고드는 것보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실험하는 쪽을 선호하나? 20여 년 전부터 다양한 방법론을 고루 실험했는데, 초기에는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외에도 여러 장르를 망라하는 작가가 부쩍 늘어난 듯하다. 나는 회화, 조각, 멀티미디어 등 각각의 매체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나름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예전부터 믿어왔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청석 조각 시리즈와 오래된 나무를 본뜬 알루미늄 조형인 ‘서머문(Summer Moon)’은 모두 색이 배제된 작품들이다. 하지만 다른 작업을 보면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도 여럿이다. 당신에게 색은 어떤 도구인가? 매체와 마찬가지로 색은 고유의 잠재성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색을 사용함으로써 그 힘을 빌려오는 셈이다. 나는 이중성과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색을 쓰는 전시와 쓰지 않는 전시를 교차적으로 선보이는 편이다. 아마 다음 프로젝트
에서는 컬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이사한 스튜디오를 미국판 지면을 통해 구경했다. 교회 건물을 개조해서 작업실과 거주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워낙 특별한 환경이다 보니 그로부터 받는 영향은 없을지 묻고 싶다. 교회에서 사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아직 1년밖에 되질 않아서 특별한 변화와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전시를 열어도 될 만큼 넓은 곳이라는 점이 마음이 들긴 한다. 높은 층고를 활용해 거대한 작업을 시도할 수도 있을 듯하다.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도 열성적이라고 들었다. 스튜디오를 채우고 있는 소장목록이 궁금하다. 이를테면 가장 최근에는 누구의 작품을 구입했나? 미국 낭만주의 초기의 화가인 루이스 에일셔무스(Louis Eilshemius)의 회화다. 얼핏 민화처럼 보이지만 살필수록 만만찮은 내공이 읽힌다. 1924년에 마르셸 뒤샹이 그의 개인전을 기획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젊은 미국 작가인 안드라 우수타(Andra Ursuta)의 조각도 최근에 들였다. 대단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죽은 뒤 묘비 대신 당신의 무지개 사인 작업을 하나 골라 무덤 앞에 세워야 한다면? 어떤 문장을 고르겠나? 이런 건 어떨까? ‘흙이 되는 중(Becoming Soil)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조영수